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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 레위기 14:1-32/ 환자가 정결케 되는 날의 규례 [레위]
  • 조회 수: 771, 2013.05.01 17:29:52
  • 본문 말씀은 의문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그 당시 문둥병은 불치의 병이었는데, 한번 걸리면 그 병에서 낫는 일이 없습니다. 구약 성경에 문둥병에 걸려서 나온 사람이 단 한명이 기록돼있습니다. 그 사람은 나아만 장군입니다. 그나마 이방입니다. 유대인으로서 문둥병에 걸렸다가 나았다는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레위기 13장에 사람이 나병에 걸렸을 때에 제사장이 그를 나병자로 진단하는 규례가 있는 것은 이해를 할 수가 있는데, 14장, 본문 성경구절을 이해를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누가 나아서 제사장 앞에 나와서 제사장이 “당신은 정하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겠느냐는 것입니다. 나병의 혜택을 입은 사람이 과연 그 당시에 몇 명이나 있었을까? 그리고 문둥병을 어떻게 고치느냐에 대한 언급이 없는 상황에서 문둥병자가 정결케 되는 날의 규례는 이러하니 이것이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예비 된 구절이었을까?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예수님을 염두에 두지 않고는 이 구절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마치 탕자의 비유에서 그 비유 자체에서는 예수님이 나오지 않지만 예수님이 그 비유를 말씀하셨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처럼 오늘 성경 본문도 어떻게 나병자가 깨끗함을 입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지만, 예수님을 염두에 두고 나병이 사람의 죄를 상징한다는 것을 기억하면 사람이 문둥병과 같은 추한 죄에서 사함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예수님을 통해서 말미암는 것입니다.


      본문의 두 마리 새의 피는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합니다. 새 한 마리를 생수가 담긴 그릇 안에서 잡습니다. 그 새의 피에다 백향목과 홍색실과 우슬초를 담그었다가 정결하게 되는 사람에게 일곱 번 뿌립니다. 나병에서 나은 자에게 일곱 번을 뿌리니 사람이 온통 피로 덮어쓰는 꼴이 됩니다. 다른 산새도 역시 피에 담그었다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들에다 놓아줍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죽임을 당한 새는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실상을 보여주며, 자유를 얻은 새는 하나님의 은혜로 죽음으로부터 구원을 받아 새 힘을 부여받은 생명체가 되었다는 해석이다. 나병은 새와 함께 죽어서 끝이 나고 오직 예수의 피를 덮어쓴 새 생명으로 새 피조물로 살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7절 말씀을 보면 ‘문둥병에서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 미래형으로 돼있지 않습니까? 이미 깨끗해졌는데, 그렇기 때문에 제사장 앞에 온 것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성경에는 미래형으로 말했습니다. ‘문둥병에서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일곱 번 뿌려 정하다 하고...’ 정하다고 말하라, 공식적으로 제사장이 ‘당신은 이제 정합니다 라고 선포하라’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병이 나은 사람이라도 사람의 입으로 “당신은 이제 정함을 받았습니다.” 라는 말을 들어야 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만큼 이 세상에 미움이 있고 고독함이 있고 소외감을 느끼기 때문에 누군가 자기의 입으로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말을 해주어야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전할 수 있는 가장 기쁜 소식은 주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도 아니고 만사형통 한다는 것도 아니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았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것이 가장 복된 소식 이예요. 만복은 바로 거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모든 은사와 권능도 바로 거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피의 생명을 덮어쓰고 살게 될 사람은 옛 모습의 허물을 철저히 벗어야 합니다. 8절에 9절에는 7일 후에 또 면도칼로 밀고, 떼수건 타월로 빡빡 씻어 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뱀허물 벗듯이 허물을 벗는 기간이 지나면 참으로 자기가 덮어쓴 새의 피가 어떤 성결의 피인지를 밝혀 주는 날이 옵니다. 이 날을 맞아야 비로소 이스라엘 공동체 즉 교회에 들어 갈 수 있고 여덟째 날이 바로 그 날입니다.  이날에 피 흘리는 것은 속건제와 속죄제와 번제의 양들입니다. 이 제물들은 모두가 죄를 속하기 위해 죽은 것들입니다. 덮어쓴 새의 피, 문둥이로 죽고 피를 덮어쓰고 새로이 살게 되는 것을 가르쳐 주던 피가 알고 보니 죄 때문에 죽는 희생 양들의 속죄의 피를 가리키는 것임이 밝혀집니다.


      제사장이 세워질 때 이런 모습을 했었습니다. 오른 귓부리와, 오른 엄지손가락과, 오른 엄지발가락에 피를 발랐던 것을 여러분은 기억할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줍니까? 문둥병에서 정결함을 받는 이 사람도 제사장과 똑같은 거룩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제사장의 영광스러움에 참여할 거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이스라엘의 본 모습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문둥이었습니다. 이러한 문둥이를 희생의 피로써 속죄함으로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가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참 자유가 있는가? 하늘을 나는 새와 같은 자유를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 이것들을 얻을 수 있다.


    ※어느 날 저녁 프란시스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나가 보았더니 한 험상궂은 나병 환자가 서 있었습니다. 그는 몹시 추우니 잠시 방에서 몸을 녹이면 안 되겠느냐고 간청하였습니다. 프란시스는 그의 손을 잡고 방으로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환자는 다시 저녁을 함께 먹도록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식탁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그 환자는 다시 부탁하기를 자기가 너무 추우니 프란시스에게 알몸으로 자기를 녹여달라고 하였습니다. 프란시스는 입었던 옷을 모두 벗고 자신의 체온으로 그 나병 환자를 녹여주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프란시스가 일어나 보니 그 환자는 온 데 간 데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왔다간 흔적조차 없었습니다. 프란시스는 곧 모든 것을 깨닫고는 자신과 같이 비천한 사람을 찾아와 주셨던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올렸습니다. 문둥이촌 사람들에게 죄사함을 주시고 자유를 주시고 영적인 회복을 주신 주님은 우리를 택하여 왕같은 제사장으로 거룩한 나라로 주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이 은혜에 빚진 자로 주님 앞에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주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지금 당신은 무엇을 위하여 살아가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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