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폭풍이 나의 연고라(욘1:11-12) [고난주간]
  • 2013.05.03 07:31:07
  • 부활절 전 주일을 종려주일 혹은 수난주일이라고 말합니다. 내일부터 고난주간 한주간이 시작됩니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의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가?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왜 고난을 당하셔야 했는가?라는 것을 깨달으 면 십자가 앞에 부끄러운 많은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고난주간을 맞이하며 성찬식을 거행합니다. 이 에식을 통해 먼저 나를 비우는 회개를 통해 우리에게 오셔서 친히 생명되기를 원하시는 주님을 받아들이기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 지옥 속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서 천국과 같은 삶을 살다가 영원한 천국으로 가길 원하고 계십니다. 제자들이 천국이 어디있냐고 물었을 때 천국은 네 마음 속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옥역시 마음에 원망과 불평과 시기가 있으면 지옥입니다. 마음을 한번 점검해 보십시오. 악한 영인 사탄은 우리의 마음을 지옥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천국이 되게 합니다. 
    은혜를 깨닫지 못하면 감사할 수 없지만 깨달으면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은혜를 깨닫는 다는 것은 내가 죄 인임을 안다는 것입니다. 죄인임을 아는 자에게 주님은 오십니다. 왜냐하면 내가 온 것은 의인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러 왔노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해서 오신 주님을 받아들일 때 하나 부터 백까지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천국이 되어집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알 때 모든 일어나는 일들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의롭다라고, 내가 괜찮은 존재라고 착각할 때 남을 원망하게 되어집니다. 원망은 시비를 낳고, 시비는 싸움을 가져다 주며, 싸움은 결국 분열을 가 져다 줍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이 땅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실 때 서로 원망하고 시비하고, 서로 싸우다 가 분열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간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마치 폭풍우가 일어난 것같이 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폭풍을 잠재우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이 폭풍을 잠재우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죄도 없으신 분이.. 아무 실수도 없으신 분이 우리를 원망하시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모든 잘못은 우리에게 있지만 우리의 탓으로 돌리지 아니하시고 이 세상의 죄악으로 인한 폭풍이 나의 연고다 라고 하시면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진정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인간들의 모임 속에도 보면 항상 원망이 있습니다. 원망하면 원망을 낳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내 탓으 로, 나의 잘못으로 받아들이고 내 속에 집어 넣을 때 없어집니다. 하나님이 인간되신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 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진리입니다. 진리대로 살아가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셔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해서 모여진 지체들입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내 마음에 다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서로 원망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서로 시비하게 됩니다. 결국은 싸우고 나누어집니다. 누가 패배입니까? 우리 자신이 이미 패배한 것입니다. 왜냐면 한 몸에 붙어있는 지체가 경쟁하다가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떨어졌다면 이미 팔 자체도, 다리 자체도 패배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를 한 몸되게 하신 하나님이 패배하는 것입니다. 연합시켜 주신 분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리가 나누어지면 나도 패배요 하나 님도 패배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사탄이 승리합니다. 
    우리가 지난날을 뒤돌아 보면 사탄의 도구 짓을 얼마나 했습니까? 아니 지금도 사탄의 도구 짓을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깨달아야 합니다. 천국에는 원망과 시기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 내 탓이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옥은 원망과 시비가 가득차 있기 때문에 모두가 네 때문이오 라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교회를 통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이하라 
    처음사람 아담을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을 떠난 결과 어떻게 했습니까? 나 때문이오 하지 않고 너 때문이오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찾아서 문책했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내가 책임져야 할 아내를 내가 지키지 못 하였나이다. 나 때문이오 나를 벌하여 주시옵소서. 했습니까? 그랬으면 모든 문제가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준 그 여자 때문이오. 하나님이 그 여자를 찾아가서 문책할 때에 그 여자는 말했습니다. 내가 남편에 나의 머리로 준 남편에게 물어 보지 않고 내 마음대로 했나이다 나 때문이오.그랬다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저 뱀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뱀도 저주를 받고 아담과 하와도 저주를 받았습니다. 
    노아가 포도주를 너무 많이 마셔서 실수로 벌거벗고 누워 잘 때 함은 아버지를 원망했습니다. 원망의 소리로 나와서 말했습니다. 그 결과 함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샘과 야벳은 아버지의 실수를 이불을 가져 다 덮어 주었습니다. 축복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창조 이래로부터 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진리의 말씀들이기 때문에 그대로 이루어져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같은 사건이라도 서로 원망하면 계속 내려가 가 사탄까지 갑니다. 결국은 파면합니다. 그러나 같은 사건이라도 내 탓으로 돌리면 거기서 멈추어 버립니다. 사랑의 힘으로 더욱 더 큰 일들을 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가정의 한 아이가 성냥을 가지고 불장난을 하다가 집이 다 타버리고 말았습니다. 거기서 가족들이 서로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아이를 잘 돌보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당신이 담배를 피우고 성냥을 아무데로 놓았기 때문이라고 원망했습니다. 할머니는 저희들이 잘못하곤 아이에게 원망을 돌린다고 나무랐습니다. 큰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집도 다 날려 버리고 싸움으로 가정이 파탄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같은 경우에 문제를 자기의 탓으로 돌리면 해결됩니다. 내가 아이를 돌보지 않은 탓이요. 내가 성냥을 아무렇게 나 놓아둔 탓이요. 할머니는 내가 그 아이가 성냥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보았는데도 막지 않았기 때문에 내 탓이다 라고 했다면 이 가정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집은 다 날렸지만 그 사건을 통해서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사랑의 힘으로 인해서 더 나은 집을 지어갈 수 있다는 것을 상식적으로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다 알지만 안돼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이루신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일 때 가능합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할 것이 아니라 정말 그 주님이 나의 주님이 되어질 때 가능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나는 하나님께 사명을 받은 자입니다. 요나가 하나님을 선택한게 아니라 하나님이 요 나를 불러서 세우셨습니다. 목적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 때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기 위해서 만드셨습니다. 마치 요나를 부르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려 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불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그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떠나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라고 말 합니다. 그래서 요나를 통해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게 하고 진리를 알게 하기 위해서 요나를 선택했습니 다. 그래서 그 일을 시켰습니다. 그대로 두면 다 멸망할 사람들인 니느웨성에 가서 복음을 전해라. 복음을 듣고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그러나 요나는 자기의 관점으로 판단했습니다. 니느웨에 사는 사람들이 형편없 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의 의에 자리에 앉아서 판단햇습니다. 저 니느웨성의 멸망은 나의 탓입니다 라고 고백하기 보다는 니느웨성의 멸망은 저들의 잘못 때문입니다 라고 생각하고 불순종했습니다. 불순종한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욥바로 내려가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평안히 갈 줄 알았습니 다. 배 깊이 내려가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항해 중에 큰 폭풍이 일어났습니다. 불순종의 결과는 폭풍입니 다. 
    오늘 이 땅에 일어나는 모든 폭풍들은 곧 하나님을 떠난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결과입니다. 하 나님은 계획한 일들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폭풍이 누구 때문인지 찾아내기 시작하면서 요 나가 지적되었습니다. 여기서 요나의 깨달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등졌던 요나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섬을 봅니다. 하나님을 등졌다는 것은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선다는 것은 자 기를 죽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12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잠잠하리라"  나를 죽여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사도바울은 날마다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했습니다. 그것이 회개입니다. 내가 아니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은 나의 연고인줄 아노라. 회개하고 나니까 모든 것이 나의 탓이라고 깨닫게 되 었습니다. 그 결과 폭풍이 잠잠해졌습니다. 곧 이것은 요나의 회개의 외침이었습니다. 회개의 외침은 여기 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2장에 가서 계속 요나의 회개의 외침이 연속되어집니다. 그리고 3장에 가서 니느웨 성까지 가서 왕과 모든 민족이 회개하도록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상을 향했던 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는 것입니다. 그 결과 폭풍이 잠잠해졌습니다. 죽었던 요나에게 구원의 은총이 베풀어졌습니다. 요나에게 뿐만 아니라 복음을 받아들여 멸망직전까지 갔던 니느웨성까지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나의 죽음이 있을 때 하나님의 개입이 있습니다. 죽는 다는 것은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멸망받을 자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미련하게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십자기 뒤에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모든 폭풍이 자신의 연고라고 생각하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정함을 입고 부름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통해서 당신의 거룩한 뜻을 이루길 원합니다. 요나는 곧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크고 작은 폭풍을 만날 때 남의 탓으로 돌리고 원망하며 시비하고 분열하며 살아왔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은 죄입니다. 죄는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곧 돌아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중심의 삶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곧 나를 비우는 것입니다. 우리를 비울 때만이 천국을 이루시는 주님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오늘 떡과 포도주를 나눌 것입니다. 이 떡은 예수그리스도의 몸을 의미하는 것이요 이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미합니다. 진정한 회개가 없으면 우리는 성찬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나를 비우지 않고는 그분을 받아들일 공간이 없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온 세상사람들을 살리기 위하여 이 땅에 오 셨지만 아무도 공간을 내어주지 못했습니다. 비워주지 못했습니다. 그는 마굿간에서 태어나야 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집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6장24절에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8절에 성찬에 대해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라' 하셨습니다. 이 말은 사람이 자기를 비우고 회개하고 나를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살면 항상 폭풍을 만납니다. 이미 내 뜻대로 살다가 폭 풍을 체험한 사람도 있습니다. 아니 지금 내 뜻대로 살아가면서 폭풍 속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내 뜻대로 내 고집대로 내 주장대로 한일을 생각해봅시다. 
    우리가정에 일어나는 폭풍은 누구 때문입니까? 우리사회에 일어나는 폭풍은 누구 때문입니까? 우리교회에 일어나는 폭풍은 누구 때문입니까? 한번도 내 탓이라고 돌려본 적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원망할 때 우리는 몽둥이를 들고 심판하는 자리에 앉습니다. 그러나 나 때문이라고 돌린다면 우리는 희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기도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오늘날 아프리카에 지금 당장 도와주지 않으면 1000만명이 기근직전에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들이 게을러 서라고 탓할 것입니까?.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았다고 원망할 것입니까? 테레사수녀는 이들이 배고파 굶어 죽는 것은 하나님이 이들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당신들과 내가 나눠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내 자신은 완벽하다고 확신하는 한 우리의 삶 속에서 네 탓이라고 시비하면 그 폭풍에서 벗어 날 길이 없습니다. 결코 주께서 주시는 평안을 맛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나의 탓이라고 돌리고 회개하고 뉘우칠 때 주님을 나의 구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 폭풍이 나의 연고라고 고백하는 것은 곧 내 자신을 비워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께서 친히 일마다 때마다 우리에게 진정한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나 처음에 자신이 스스로 된 줄 알고 니느웨성에 대해서 판단 했습니다. 그 결과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고 엄청난 고난이후에도 4장까지 계속해 서 자기 의를 주장하고 내세우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가 주장을 급히 내세우고 자신이 능력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는 한 폭풍은 언제나 일어납니다. 바로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이것을 처리하는 무기입니다. 만일 자 신의 주장을 십자가 앞에 못박지 않는 한 그렇게 안고 생활한다면 폭풍을 일으켜 자신에게도 치명적이게 될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도 큰 피해를 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름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여!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기를 원합니다. 다만 우 리가 죄인임을 알고 잘못을 뉘우칠 때 우리 속에 임재하셔서 하나님의 큰일들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오늘 진정한 회개를 통해서 자신을 내려놓고 비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충만케 되시기를 바랍니다.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여러분의 삶 속에 평강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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