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인간 타락성이 보여주는 가장 깊은 욕망이 무엇임을 보여주십니다. 이것은 인간의 모든 욕망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성적 욕망입니다. 이 욕망은 인간 모든 욕망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본 장에 나오는 성적 타락을 일컬어 애굽땅의 풍속이라고 했고, 이 애굽 땅의 풍속은 더 나아가 앞으로 살게 될 가나안 이방 족속의 풍습이기도 하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그 거하던 애굽땅의 풍속을 쫓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를 행하지 말고...." 라고 한 말씀에서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풍속은 애굽이나 가나안이나 꼭 같다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 이 풍속은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똑 같습니다. 애굽의 풍속은 바로 지금 우리가 접하는 문화적 환경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방인 풍속이 어떠하다는 말입니까? 골육지친을 가까이 하여 범죄하는 풍습입니다. 그 실상을 열거하자면.... 자식이 어미를 범합니다.(7) 친어머니가 아닌 계모를 범합니다.(8) 이복 자매를 범합니다.(9) 손녀나 외손녀를 범합니다.(10) 이복 여형제(11), 고모(12), 이모(13), 숙모(14)를 범합니다. 시아비가 자부를(15), 형수나 제수를 범합니다.(16) 근친 관계 속에 있을 수 있는 모든 관계 속에서 인간의 정욕을 따라 범죄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나아가서는 인간이 얼마나 욕망을 추구하고 있는가를 보여 줍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욕망이 이끄는 대로 무슨 일이든지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렇게까지 인간이 갈 수 있습니까? 그것은 성을 부부간의 연합의 표현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짝지어 주실 때는 서로서로 사랑하고 돕는 배필로서 짝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성을 자기 만족의 수단으로 생각하니까 그 안에 사랑이 없고, 연합이 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육체적 욕망은 한 사람에게서 만족을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상식선을 뛰어넘는 근친상간이 이루어지고 성적 향락의 도구로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육체를 성전이라 일컫습니다. 신약의 관점은 더 엄격합니다. 고린도전서 3:16-17에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그리고 고린도전서 6:18-20에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가 소위 문화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주변의 환경에 익숙해지다 보면 무엇이 경건이며 무엇이 구별된 생활인지를 놓치게 되기 십상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로마서 12:2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늘날도 세상은 성적인 타락의 현장으로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럴 때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아주 강력한 경고가 됩니다. 성적인 타락은 1차적으로는 배우자에 대한 배신이며, 2차적으로는 자기 스스로를 더럽히는 범죄이며, 더 나아가서 우리 안에 심겨 놓은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더럽혀 놓는 것으로 하나님께 큰 범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레위기 11장 44절에서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잘 알고 타락한 이 시대에 우리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산 제물로 지켜나가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