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이 임하신다.(스가랴9:9-10) [고난주간]
  • 2013.05.09 21:00:19
  • 오늘의 교회력은 종려주일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의 수난주일입니다.  그리고 금주간은 수난주간, 또는 고난주간이라고 합니다.   다음주일은 우리 주님이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날입니다.  주님은 당신 공생애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유월절을 예루살렘에서 보내시기 위하여 요단강 동편 베뢰아 지방을 거쳐 올라오는 길로 여리고를 지나 오셨습니다. 그리고 베다니와 벳바게라는 동리를 거쳐 감람산을 넘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감람산을 넘어가면 베다니라는 동리와 벳바게라는 동리가 있습니다.    이 두 마을은 예루살렘에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아니한 1.6Km 정도였기에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곳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 중에 두 사람을 보내시면서 맞은 편 마을로 들어가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볼 것이니 풀어 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리 하느냐"고 물어보면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고 하셨습니다.  두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동리로 들어가서 나귀 새끼의 매여있는 것을 보고 끌어오려고 하니 어떤 사람이 "나귀 새끼는 풀어 무엇하려느냐?"고 물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였더니 허락하여 끌고 왔습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아무도 타보지 아니한 어린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있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팔레스틴에 있어서 나귀는 경멸받는 동물이 아니었습니다.     나귀는 사람과 아주 친근했으며 고상한 동물이었습니다.  왕이 전쟁에 나갈 때에는 말을 타고 나갔지만 평화로운 중에 다닐 때는 나귀를 탔습니다.  오늘의 나귀는 조롱을 받고 경멸받는 동물이 되었지만, 예수님 당시의 나귀는 왕이 이용하는 동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시려고 하자, 제자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등위에 걸쳐놓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 곧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예수님을 환호하였습니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사람들이 불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따르면서 소리질렀습니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고 했습니다.   이들의 소리친 내용들이 조금씩 달리 기록되었지만, 거의 같은 의미로 말했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이 즐겨 읽고 있는 시 중에 솔로몬의 시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시에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메시아, 그들의 마음 속에 그리고 있는 메시아는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당신의 메시아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로 메시아는 이런 왕이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보시옵소서, 오!, 주여, 그들을 위하여 다윗의 아들을 그들의 왕으로 삼으소서.  오! 하나님이여, 당신이 보실 때에, 그에게 당신의 종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소서. 그가 불의한 지배자를 때려부술 수 있도록, 당신의 힘으로 그를 지키소서.   예루살렘을 짓밟고 멸망시킨 모든 백성으로부터.   그를 통하여 예루살렘을 깨끗케 하소서.  현명하고, 의롭게, 그는 죄인들이 유업을 받지 못하게 추방하리라.  토기장이 손에 있는 질그릇 같이,  그는 죄인들의 오만을 꺾으리라.  쇠 채찍을 휘두르며, 죄인들의 존재를 분쇄하리라. 그의 입의 말씀으로 하나님이 없다는 백성을 멸망시키리라.   그에게 책망 받는 모든 백성이, 그의 앞에서 도망치리라.  그는 죄인들의 마음의 생각 때문에 비난받으리라.  만백성은 그의 앞에서 떨게 되리라.  영원히 그는 그의 입의 말씀으로 이 땅을 칠 것이기 때문에" (솔로몬의 시편 17:21-25, 39)  
    우리는 이런 시를 통하여 볼 때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하고 고대하던 메시아는 한마디로 정치적인 메시아였습니다.  위대한 나라,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를 예루살렘에 건설하고, 세상의 모든 불의한 자를 멸하고, 예루살렘을 괴롭힌 모든 나라와 백성을 멸하고, 회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현명하고, 의로우며 죄인들의 오만을 꺾어버리는 지도자,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멸하는 지도자, 만백성이 그 앞에서 벌벌 떨 수밖에 없는 그런 지도자라고 말하였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이 고대하던 메시아는 이런 정치적인 지도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있습니다.  나귀는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의 성품과 아주 잘 어울리는 동물이었습니다.  예수님도 당시 유대인들이 고대하는 메시아 상을 모르는 바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정치적인 왕, 사람들을 당신의 발아래 지배하는 그런 왕이 되기를 원치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귀를 타시고, 온유하고 겸손하시며 평화를 주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호산나", "호산나"라고 외쳤습니다.  이 말은 "지금 구하소서"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이 역사에 개입하셔서 우리의 매인 것을 구원하여 달라는 간절한 외침이었습니다.   후에는 이 '호산나'라는 말은 환호하는 말, 만세라는 의미로 쓰여졌습니다.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습니다.  그들은 이 종려나무 가지를 승리의 상징으로 극진히 영접한다는 의미로 흔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가시는 길에 옷을 폈습니다.    이것은 옛날 예후라는 사람이 왕이 될 때에 그의 부하들이 옷을 벗어 그의 앞에 깔았습니다.    이것은 그에게 충성을 다하겠다고 하는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고로 성이 소동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더 많은 수로 불어났습니다.  사람들은 노래하였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무리 중에는 바리새인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이때 예수님을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메시아는 과연 어떤 모습이시며,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주님은 어떤 모습의 메시아인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옛날 예루살렘만 입성하셨다고 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이 주는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나에게 찾아오시고 들어오시는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것이지만, 그 분은 나의 왕이 되십니다.  
    1.  예수님은 나의 왕이십니다.  
    옛날 왕이라는 사람을 일반 백성이 이해할 때는 그는 신들과 어떤 항구적인 연관관계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왕은 신의 현현(顯現)이라고 이해하였습니다  신의 아들이나, 혹은 신에 의하여 특별히 선택된 인물이라고 보았습니다.    
    이집트의 왕들은 신 [레]의 아들이라고 보았습니다.  이집트만이 아니라 고대 바벨론에서도 왕위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것은 페르시아 제국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며, 이런 최고 지배자를 숭배하는 사상은 헬레니즘 시대를 거쳐 로마제국에 와서 황제를 신격화하는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나라에서는 사람을 왕으로 세운다든가, 사람을 신격화하거나 숭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람을 지배하고, 인도하고 주관하는 일은 오직 한 분,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주변의 여러 나라가 다 왕정제도를 가지고 있다보니, 이스라엘에도 왕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구약 성경 전체에 나타난 신앙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왕이 되셨습니다.  
    시149:2-3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시온의 주민은 그들의 왕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지어다"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들의 왕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사33:22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이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는 재판장이며 율법을 세운 우리의 왕이 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하신 왕이 되십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다윗의 위를 이으신 다윗의 자손이며 그의 나라를 다스리시는 우리의 영원한 왕이 되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빌라도 총독이 심문하실 때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먼저 빌라도의 말입니다.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이 때에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요18:37)고 했습니다.  
    인류는 아주 오랫동안 왕정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오랫동안 왕이 있었습니다.  아직까지도 선진 국가에서도 이 왕정제도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하고 상징적으로 가지고 있는 나라도 있고, 어떤 나라는 고대 왕정제도와 똑같은 절대군주제도를 가지고 있는 나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 통치자는 백성을 위한 봉사자요, 백성의 종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우리의 왕으로 모신다고 할 때, 우리의 마음가짐은 신하된 정도가 아니라, 먼저 그의 백성으로서의 모든 의무를 감당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셨는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세주로 그리고 만왕의 왕으로 오셨으면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낮은 사람들 세리와 창기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과 함께 사셨으며 목수의 일을 감당하셨고, 마지막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입니다.    나 한 사람을 사랑하시는데, 주님은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과 같은 모습과 유형으로 살아야 원형 인간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나라의 국왕이 우리 집에 찾아오시거나 한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맞이하시겠습니까?  때로 우리들이 사람들에게 어떤 대접을 받기를 원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를 위해 죽으신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은 나의 집에서 지금 어떤 대접을 받고 있으며, 어떻게 취급받으시고 있는 것입니까?  왕으로 합당한 대접을 하는 것입니까?  문전에서 박대하는 것은 아닙니까?  감옥에 가두고 돌아보지도 아니하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도 우리의 옷을 벗어 주님 앞에 깔아드리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영접하여야 합니다.  그분에 합당한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준행하면서 그 분의 영광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드리는 것입니다.   옛날 왕의 명령을 받은 신하가 그 명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바치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위하여 살아드리는 것입니다.   왕의 명령을 받아 나라의 독립과 한국이라는 존재를 알려야 하는데, 일본의 방해로 알릴 길이 없게 되자, 할복 자살하며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린 [이 준] 열사도 있지 않습니까?  한 나라의 왕이 내린 밀지를 받고도 생명을 바치는데, 우리는 나를 위하여 죽으신 왕의 명령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2.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예수라는 이름부터가 저희 백성을 저희 죄 가운데서 구원하신다는 뜻이며, 여호와는 구원이시라는 뜻입니다.  사도 행전 4:12에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아들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화목제물을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다 속량하시므로 우리는 그의 피 공로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분은 우리의 왕이 되십니다.  우리는 그를 위하여 살아가는 것을 최대의 영광으로 알고, 그를 위하여 죽는 것은 영광으로 알고 살고 죽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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