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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누가복음 10:36-37/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새벽]
  • 조회 수: 1, 2022.10.20 10:07:40
  •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율법사라는 사람이 등장을 합니다. 요사이 우리  현대말로 하면 '율사(律師)'라고 할 것입니다. 법을 전공한 사람, 또는 법 쪽에서  일을 하는 전문가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유대 나라의 엘리트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에 대해서 좀 알다 보니까 예수님을 평생 못살게 굴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에게서 어떤 티를 잡아내어 법망에 걸어 넣으려고 매일 따라 다녔던 사람들입니다.


     어느 날 한 율법사가 이런 음흉한 생각을 가지고 예수님의 약점을 찾아보려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요즘 우리가 많이 쓰는 말로 바꾸면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좀 더 쉽게 말하면 "어떻게 하면 천국 들어갈 수 있습니까?" 하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시기 때문에 그가 좋지 못한 동기를 가지고 말을 걸어오는 것을 아시고 그에게 거꾸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었느냐?" 그랬더니 이 율법사가 무엇이라고 대답했습니까? 27절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자기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영생을 얻는 길인  줄을 알면서도 스스로는 그대로 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은 그가 바로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꿰뚫어 보시고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 사마리아 사람처럼 하라!"


    가나안 농군학교의 오래된 이야기입니다만 참 의미가 있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가나안 농군학교에서 양계장을 하고 있었는데, 양계장에 피워둔 연 탄 난로에서 불이 나서 삭풍이 불어 닥치는 12월 한밤중에 대화재가 났습니다. 난데없는 불길에 휩쓸리게 되자 거기서 기르던 닭 500마리와 앙고라토끼 200마리가 아우성을 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다가 전부 내의 바람으로 뛰어나왔지요. 거기에 와서 교육을 받던 생도들 몇십  명도 정신없이 뛰어나왔습니다. 나 와 보니까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습니다. 모피용 앙고라 토끼의 털에 불이 옮겨 붙으니까 완전히 새빨간 폭탄이 되어버렸습니다. 닭은 닭대로, 토끼는 토끼대로 막 날뛰니까 이건 생지옥입니다. 사람들이 불을 끄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불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김 장로님이 이렇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러분, 우리 이 자리에 조용히 앉아서 저 광경을 보면서  살아있는 교육을 받읍시다.“


    이젠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는지라 전부 멀찌감치 앉아서 닭들과 토끼들이 살려고 발버둥 치다가 불에 타 죽어 재가 되는 그런 끔찍한 장면을 지켜봤습니다. 이미 때가 늦었는데도 살아보려고 아우성을 치는 닭이나 토끼들을 보면서, 인간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못하고 육신의 욕심만을 추구하며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에 직면하게 되는 날, 그 영혼은 속절없이 유황불이 이글거리는 지옥에 떨어져 울부짖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하니 가슴이 서늘해 지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불길이 다 사그라진 후에 김 장로님은 교육생들을 이끌고 교회로 들어갔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치고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그때 교육생으로 와 있던 사람 중에 자기 손으로 1천 명 이상 되는 깡패를 길러내고 경찰관까지도 폭행 을 한 전력이 있는, 대전에서 왔다는 깡패 두목이 그 불타는 양계장의 현장을 지켜보다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회개하고 목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날 밤 그 끔찍한 광경을 지켜보던 교육생 중 법대를 나와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임영철이라는 청년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서 법관 되는 것을 포기하고 가나안 농군학교에 들어와서 농군이 되었고 나중에는 김용기 장로님의 첫째 사위가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모르고 세상 살다가 갑자기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가게 되면 그들이 가게될 곳이 뻔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강도 만난 사람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것입니다.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영원한 죽음을 당해야 하고 영원한 저주를 받아야 하는데, 그런 이웃을 보고 우리가 무관심하다면 이것은 얼마나 무서운 죄를 범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원수 같은 사람이라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힘들고 귀찮고 돈이 들어도 그들을 진정 사랑한다면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 사마리아 사람처럼 하라!"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위즐이라고 하는 사람이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사랑의 반대는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교육의 반대는 무지가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아름다움의 반대는 추함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삶의 반대는 죽음이 아니라 삶과 죽음 모두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우리의 자화상이 제사장이나 레위인과 거의 비슷하게 닮았다면 "하나님, 나의 무관심을 용서해 주옵소서." 하는 회개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는 그 말씀을 명령으로 받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을 딱 닫아걸고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옆집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든, 불이 나든, 나하고는 관계가 없다며 벽을 쌓아 놓고 나만 아는 이기주의에 빠져 있는 이 무관심,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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