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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마태복음 5:40-43/ 기독교윤리 [새벽]
  • 조회 수: 1, 2022.10.20 10:15:00
  • 40.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42.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43.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일반윤리학에 'life boat ethics'라고 하는 흥미로운 학설이 있습니다. 이른바 '구명 보트 윤리'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큰 배가 빙산에 부딪혀 좌초되었습니다. 몇 몇 사람만이 간신히 구명보트에 몸을 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구명보트를 붙잡고 매달립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더 타면 구명보트마저 가라않습니다. 그래서 함장은 구명보트를 잡지 못하게 때리고 발로 밀쳐버리고 구명보트에 있는 몇 사람만이 살아남아 구조되었습니다. 함장은 뒤에 재판을 받게 됩니다. '너는 죽어가는 사람을 물 속으로 밀어 넣었다' 결국 그는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 중 얼마 후 미국 대통령의 특별 사면을 받았습니다. 사면내용은 이렇습니다. '제한된 상황 속에서 발생하는 일부의 희생은 불가피한 것이며 따라서 비윤리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자, 이 구명선과 같은 이야기,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변명을 하려고 듭니다. 내가 살기위해서 남을 죽여야 하고, 보다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소수의 희생을 할 수 밖에 없고, 정치적 문제, 경제적 문제, 더 큰 일을 위하여 이만큼의 불의는 감수해야 된다고, 필요악이라고, 아차피 죽을 사람이니 내버려두자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윤리는 내가 물 속으로 들어가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기독교 윤리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40.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42.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43.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특별히 본문 43절 말씀을 보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크게 왜곡시키고, 잘못 가르쳤는지 깨닫게 됩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여러분! 구약성경에 원수를 미워하라는 교훈이 있습니까? 구약성경에는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이 한 구절도 없습니다. 오히려 원수일지라도 적극적으로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레위기 19:17,18절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사랑 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출애굽기 23:4-5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만나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 돌릴지며,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삼가 버려두지 말고, 그를 도와 그 짐을 부리울지니라”..... 다 이런 식입니다. 다 이런 말씀 뿐입니다. 따라서 바리새인의 가르침은 전적으로 구약성경의 교훈을 왜곡한 것입니다. 자기들 유리하게 해석하기 위해서 구약의 계명을 그대로 받지 않고 내용을 가감함으로써 성경의 참 가르침을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타난 주님의 교훈은 성경을 본래의 가르침으로 돌렸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원수를 미워할 권한이 없습니다. 오직 사랑해야 할 의무와 책임만 있을 뿐입니다. 뿐만 아니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세상 사람들로서는 지극히 어렵고 불가능한 것으로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변화된 그리스도인들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야, 얼마만큼 믿음이 성숙해져야 이런 단계에 이르게 될 수 있습니까? 그 답은 48절 말씀....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온전하라.... 여기서 온전하라는 것은 아버지의 온전하심에 이르기까지 자라가라.... 이런 뜻이며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 끝날까지 성화의 과정이며, 하늘나라에 가서야 영화로운 상태... 즉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누구라도 나는 됐어, 끝났어가 아니라.... 더 자라야 하겠구나.... 하며 오늘 주님의 말씀을 실천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알프레드 플루머의 말을 결론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선한 일에 대해 악으로 갚는 것은 마귀의 일미여, 선한 일에 대해 선으로 갚는 것은 사람의 일이며, 악한 일에 대해 선으로 갚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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