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의 겸손하심 같이(슥9:9) [고난주간]
  • 2013.05.09 21:03:54
  • 오늘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신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성에 들어갈 때에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영한 것을 기념하여 종려주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종려주일에는 두가지 상징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종려나무 가지와 새끼나귀입니다. 
     상징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말로 설명하기가 너무 복잡한데. 
     상징적인 행동이나 물건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깊은 의미까지도 다 전달하는 
     것이 상징입니다. 
      
      요즘은 잘 볼 수 없지만, 예전에 아이들이 나면, 집밖에다 새끼줄에다가 
     고추도 꼿고 또 숯도 꽃아서 걸어두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걸 보면 말하지 않아도 다 아들인지 딸인지 아는 것이지요. 
     상징은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에게 돌아와서 우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사람들이 들고 나왔던 종려나무 가지는 무슨의미가 있겠습니까? 많은 다른 나무들이 있었을 텐데 왜 하필이면 종려나무가지를 사람들이 들고 나와서 흔들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종려나무 가지는 그 생긴모양이 아름답고 열매가 많이 맺히기 때문에 번영, 
     아름다움, 승리의 상징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예수님이 자신들의 나라 이스라엘에게 번영과 승리를 가져다 주기를 원하였던 것입니다. 
      
      또 예수님 자신도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십니다. 
     예루살렘 성읍에 들어오는 방법이 여러 가지 였을 텐데, 예를 들면 걸어 들어 올 수도 있고, 짐승을 타야 한다며 품위있게 말을 탈 수 도 있었을 텐데 
     왜 하필이면 꼭 어린 나귀를 타야 되느냐는 말씀입니다. 
      
      이 의미를 구약성경 스가랴서 9장 9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사람들이 나귀를 타신 예수님을 볼 때, 100번 예수님의 겸손하신 왕이시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예수님이 얼마나 겸손하신 분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겸손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을 앞에둔 싯점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앞으로 될 일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이 말씀에 베드로가 대답하고 나섰습니다.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 
      
     항상 그렇지만 나는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문제입니다. 
      예수님 저를 그렇게밖에 못보셨습니까? 
      저를 그렇게 알지 못하십니까? 믿지 못하십니까? 
     저는 여기있는 다른 사람들과는 분명히 틀립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언제든지 하나님앞에서 나만 특별한 존재라고 말하거나 내세우지 마십시요, 
     남이 별것도 아닌 문제로 시험들고 별것도 아닌 문제로 넘어지는 것을 볼때, 
     뭐 그정도 문제가지고 그렇게 힘들어 하느냐고? 하다가도 
     나는 더 문제같지도 않는 문제가지고 시험을 드는 존재가 바로 우리들 입니다. 
     예외가 있냐고요? 예외가 없습니다.(롬3:10)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특별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나 나만 특별한줄 알고 그렇게 자신있어 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오직 베드로만 지명하여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내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에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얼마나 놀랍고 가슴이 뛰는 말씀입니까? 
     나는 특별하다고 과신하는 베드로에게, 
     오히려 너는 남보다 더 못한 존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놀란 베드로는 더욱 힘을 주어 말합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 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이 대답은 차라리 울부짖음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이 말은 베드로의 말뿐이 아니었습니다. 
     거기 있던 모든 제자들이 함께 말하였습니다.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죽을 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제자들은 한결같이 자신을 믿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자신만만하고 확신에 찬 제자들이 그 다음에 어떻게 했는지는 우리 모두가 다 아는 바입니다. 뿔뿔이 흩어졌으며, 어린 여종 앞에서도 비굴하게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이런 철저한 자기 패배와 실패와 낮아짐을 경험하고 나서야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5장 5절에서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신다고 고백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진정 제자됨의 길은 무엇이며, 그리스도인의 길은 무엇입니까? 
      
     진정한 제자됨은 그의 인간적인 확신과 용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앙적인 겸손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아니라. 
     나는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기 겸손과 연약함에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3절로 16절 말씀에 보면 
     "들어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사람은 무엇입니까? 연약한 존재입니다. 
     안개와 같고, 풀과 같은 존재입니다. 
     교만하게 살 존재가 아니라. 늘 하나님의 은혜안에 겸손하게 살아가야 할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겸손하게 예루살렘성에 들어오셨지만. 
     그분만이 십자가를 지실 수 있는 분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렇게 자신이 없다고 하나님 앞에서 울부짖었지만 
     그분만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너무나 내 자신을 믿고 과신한 나머지 
     겸손함을 잃어버리고, 주님을 의지하지 못한다면, 그것처럼 큰 불행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예수님이 타신 겸손의 나귀를 우리도 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자신있다고 소리치기 보다. 
     겸손히 하나님앞에 의탁하고 맡기고 기도함으로 
     내 능력보다 뛰어나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삶속에 경험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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