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슥9:9) [고난주간]
  • 2013.05.09 21:05:25
  • 금주는 교회 절기로 종려주일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3년 동안 공생애를 사시다가 오늘 이 날에 십자가의 구속의 사역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들어 오시고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리시게 됩니다. 예루살렘에 들어 오실 때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회치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시는 주님을 환영하였기에 종려주일이라고 칭합니다. 

    종려나무(대추야자)는 18-20미터 까지 자라고 200년 이상을 산다고 합니다. 보통은 2미터 정도의 나무이고 나일강과 홍해 주변에 많이 번식하는 나무입니다. 그리고 베다니는 '종려나무의 집'이라고도 불리웠고, 여리고도 '종려나무의 집'이라고 불리웠습니다. 열매가 여러모로 사용되기에 아주 유용한 나무입니다. 

    유월절은 출애굽을 기념하여 일 년에 한 번씩 그 때 먹던 특별한 음식, 무교병과 양고기를 먹으며 그 때의 일들, 애굽으로부터 또한 장자들이 죽어가는 그것으로부터 구원함을 얻었던 일을 기어하며 지키는 절기입니다. 이 유월절이 있는 달이 유대인들의 첫번째 달이 됩니다. 신약 시대에는 일 년에 세번 예루살렘에 모여서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록하고 있고 이것은 유월절 기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유월절에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함을 받기 위하여선 한 마리의 양이 희생 당해야 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십자가의 제물이 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목요일 저녁에 여리고에서 삭개오의 손님으로 그와 함께 보냈습니다. 그리고 금요일에는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걷고 계셨습니다. 점심 때가 되어서는 자주 들르시던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은 베다니에 머무르시면서 안식일을 보냈습니다. 안식일이 끝나는 토요일 저녁에 예수님은 식사초대를 받으셨습니다. 마르다가 준비를 하고 얼마 전에 죽음에서 일으켜주신 나사로도 참석하였고 마리아는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부었습니다. 
    여리고로부터 예수님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이 베다니에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와 그를 살리신 예수님을 보기 위하여 모여들었습니다. 이들 모두는 예루살렘에 사는 거주자가 아니라 유대와 여러 먼 지방으로부터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온 순례자들이었습니다. 금요일 오후로부터 일요일 아침 사이에 많은 방문객들이 베다니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중 많은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믿게 되었습니다. 이일로 인하여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향한 미움과 시기가 극에 달하여 예수님을 죽이기로 계획을 세웁니다. 또한 예수님 뿐만 아니라 죄없는 나사로까지 죽이려는 음모를 꾀하였습니다. 

    일요일 아침 베다니에 모인 군중은 그 어느 날 보다 더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얼마남지 않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위하여 준비하고 계실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소식이 베다니의 구석구석에 알려지고 예수님이 출발하시자 또 다른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예수님의 행렬에 합세하였습니다. 벳바게라는 도시에 이르럿을 때 예수님은 2제자를 앞서 보내시며 그들이 매인 나귀와 나귀새기를 보리니 가져오라 명하십니다. 이처럼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먼저 무엇을 보시지 않고도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하였습니다. 그들은 나귀와 나귀새끼를 가져와 그것들 위에 그들의 겉옷을 깔았고 예수님은 위에 앉으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왜 이러한 일들을 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신 후에 그들은 선지자 스가랴가 예수님에 관하여 기록한 것을 기억했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슥9:9) 
    약속된 왕은 나귀새끼를 타고 들어오셨습니다. 이 땅의 강한 힘을 보이시면서가 아니라, 겸손하셔서 나귀를 타고 오셨습니다. 

    베다니로부터 함께 온 사람들이 예언에 기록된 대로 시온의 딸들이, 예루살렘의 딸들이 크게 기뻐하며 왕이 오신다고 소리쳤던 것입니다. 군중들은 예수님의 앞과 뒤에 둘러서서 외쳐댑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마21:9) 이 말은 시편 118편에 기록된 말씀과 제사장이 유월절 행렬에서 하는 구절들이었습니다. 또한 백성들이 유월절 식사를 집에서 할 때 부르는 노래였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지나시는 행렬을 따라 종려나무 가지를 꺽어 길에 깔아놓습니다. 사막이 많은 동쪽 지역에선 이 종려나무는 죽음의 세계에서 생명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200년을 변함없이 서있는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종려나무는 기쁨과 생명과 구원을 상징합니다. 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무리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마21:8) 
    먼곳으로부터 이곳까지 유월절을 지키러 오는 순례자들은 하나밖에 없는 외투를 벗어 길에 깔면서 예수님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호산나를 외치는 것은 아무 비용이 않듭니다. 그리고 종려나무 가지를 구하기 위해선 약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겉옷을 길에 펴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진정한 희생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행위는 주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었습니다. 이 날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백성들로부터 당신을 향한 존경을 받아들이는, 그 분의 생애에 있어서 단 한번의 가장 큰 날이었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자 온 도시가 술렁이며 묻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저 사람은 누구입니까?" 군중은 대답합니다.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입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이 예수님의 입성은 그들의 권위에 대한 공공의 도전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제까지 어디에서든지 예수를 보면 체포하려던 그들은 많은 군중과 함께 드러내고 나타나신 예수님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호산나 외치면서 열광하는 백성들을 보면서 바리새인들은 감히 예수님을 붙잡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유대교 지도자들 마음속에 타오르는 예수님을 향한 미움과 예수님을 향한 백성들의 환호는 이 종려주일에 흥미 진지한 대조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유대교 지도자들 마음속에 타오는 이 증오를 주님은 이미 알고 계셨고 그것을 받아들이시기로 작정하신 주님의 모습은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합니다. 

    이 이야기가 종려주일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호산나 그분을 향해 노래합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은 자는 복되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이천년 전에 있었던 또 다른 외침입니다. 그러나 군중은 중요한 의미를 놓칩니다. 백성은 생각했습니다. 그 분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언하며 이 땅에서 그들을 회복시키실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목적지가 시온 산의 왕관이 아니라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였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의 환호와 열정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과 그들이 당신을 배신할 것을 아신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23:37)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집과 당신의 백성에게 왔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니 아니하였습니다. 

    이천년 전 구원의 사역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던 그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찾아 오십니다.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그 분의 목적은 구원을 주시고, 축복을 내리시며, 사람을 회복시키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하여 오십니다. 그런데 심지어 그의 몸된 교회에 오늘도 많은 자들이 주일에 호산나 외치고는 목요일 저녁 동산에서 그로부터 도망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많은 자들이 그 분앞에 아름다운 고백으로 영광을 돌립니다. 당신은 나의 구세주요, 평강의 왕이요, 주의 주요, 왕중의 왕이요, 그러나 가정과 사업과 교회 밖에서는 그 분을 거절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많은 이가 베드로처럼 맹세하고나선 부인합니다. 

    그러나 십자가 위에 달리셔서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을 향하여 저들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말라고 기원하시던 그 예수님을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만이 인내와 겸손을 가지시고 문 앞에 서서 두드리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고 우리 삶에 왕으로 맞이하기를 주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약간의 두려움을 갖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과 삶의 문 앞에 서서 두드리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마음의 문을 닫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십자가의 주님, 내 생활을 조금만 더 허락해 주십시오. 언제가는 당신을 높이며 영광돌리는 삶을 살겠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저를 이대로 놓아두십시오. 당신이 내게 오시면 제가 포기해야 할 것이 많기에 저를 이대로 조금만 더 놓아 주십시오." 

    그러나 그 분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그 분을 절대로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 분은 당신의 자녀가 세상적인 욕심에 가득한 삶을 살도록 허락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결정해야만 합니다. 이 결정은 우리의 몫입니다. 이것은 우리 개인의 영혼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결정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녀와 후손들에게 까지 연관되어지는 것입니다. 

    종료주일에 주제는 이것입니다. 구세주는 우리의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우리의 가정속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밝은 빛을 우리의 어두운 부분을 밝히시고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십니다. 

    아주 먼 옛날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성전을 깨끗이 하셨습니다. 오늘 그 분은 또 다른 성전에 들어가시길 원하십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의 성전입니다. 

댓글 0 ...

분류  제목  등록일 
고난주간 2013.02.07
고난주간 2013.03.09
고난주간 2013.03.09
고난주간 2013.05.03
고난주간 2013.05.03
고난주간 2013.05.09
고난주간 2013.05.09
고난주간 2013.05.09
고난주간 2013.05.09
고난주간 2013.06.18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