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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_마가복음 9:18/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새벽]
  • 조회 수: 5, 2024.01.16 13:09:42
  • 마가복음 9:18/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쫓아 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친히 인도하시며 먹이시고 입히신 하나님의 능력은 지금도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때나 사도행전의 사도시대 때나 오늘도 하나님의 능력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문제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세 명의 제자와 함께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 산 아래에는 아홉 명의 제자들이 귀신들려 귀 먹고 벙어리 된 아들을 고치지 못해 곤욕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부모는 간절한 기대와 소원을 갖고 제자들을 찾았건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을 찾아왔던 그 아버지는 9명의 제자들을 향해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18절)라고 말합니다. 마치 세상 사람들이 주님께 일러바치는 소리 같이 들립니다. “교회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주님은 그러한 제자들을 향해 ‘믿음이 없는 세대’라고 책망하셨습니다(19절). 왜 아무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의 능력이 약해지셨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히 13:8).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오늘날 또 교회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첫째, 우리의 불신앙이 능력을 제한합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22절) 식의 반신반의하는 믿음은 안 됩니다. ‘고쳐주시든 마시든 마음대로 하세요’ 식의 연약한 믿음으로는 결단코 기적과 역사가 나타날 수 없습니다. 확신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주님은 믿음 없는 자를 향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23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믿음만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합니다. 소경 바디메오가 제자들의 꾸짖음에 굴하지 않고 더 큰 소리로 주님을 불렀을 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선언과 함께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열두 해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도 ‘믿음으로’ 고침 받았고, 이스라엘 가운데 이런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고 칭찬 들었던 백부장도 ‘믿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왜 바디메오와 혈루증 여인에게 있었던 역사들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이유는 우리에게 그런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 믿음이 요구되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합시다. 믿음이 없었던 그 아이의 아비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24절)하며 간절한 믿음으로 나아갔을 때 아들이 고침 받는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또한 “어찌하여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28절)고 질문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기도 외에는’ 이런 능력이 나타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동일한 내용이 기록된 마태복음 17장 20절에서는 ‘믿음이 적은 연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두 본문을 비교해 볼 때 기도가 있어야 믿음이 생겨나게 되고 믿음이 있는 자만 기도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는 자는 끈질긴 기도와 확실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눅18:7).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더욱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가룟 유다와 베드로가 똑 같이 예수님을 배반하고 부인하였지만 유다는 버림받고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사도로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로 믿음의 있고, 없고의 차이입니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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