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6:14-15/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길
누가 뭐라고 해도 기독교는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며 사랑하시는
‘헤세드’(자비, 긍휼, 인애)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가득한 니느웨 성 사람들도, 악독이 가득한 애굽 사람들도,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도, 아람 사람 문둥병자 나아만도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며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모든 종류의 죄인과 세리와
창기와 병자와 이방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며 사랑하셨습니다. 그 당시 저주받은 사람으로 간주하고 멸시하던 문둥병자에게도, 이방인
백부장에게도, 간음 현장에서 붙잡힌 창녀에게도,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에게도,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가던 강도에게도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손길을 폈습니다. 그리고 긍휼과 용서와 사랑이 최고로 나타난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셨습니다. 부활하신 후에는 배신자 베드로와 핍박자 사울에게도,
오랜 후에는 길선주 도사와 이기풍 깡패에게도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손길을 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도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며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마 9:13)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마 6:14)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그러므로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길로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주님의 길을 가장 잘 따르는 신앙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리가
귀하고, 믿음이 귀하고, 천사의 말을 하는 것이 귀하지만 긍휼과 용서와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기독교는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이 가장 잘 나타난 곳입니다. 십자가에는 모든 종류의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며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지극한 긍휼과 용서와 사랑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 십자가에 나타난 긍휼과 용서와 사랑을 생생하게 보여준 사람들 중에는 성
프랜시스와 손양원 목사님과 주기철 목사님 등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와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유창한 설교나 심오한 신학, 놀라운 이적, 멋진 행사보다 예수님께서 친히 삶과 죽음으로
보여주신 긍휼과 용서와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가 이런 긍휼과 용서와 사랑을 지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저 예수님과 십자가를
바라보고 또 바라볼 때, 그리고 예수님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을 실천한 예수님의 제자들을 바라보고 또 바라볼 때, 우리도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부스러기를 조금씩 받아서 몸에 지니며 나타낼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의 몸과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신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에도 아들을 버리신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을 조금씩
부어주셔서 우리도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흔적을 지니고, 나타내며, 그 길로 걸어갈 수 있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분노와 증오와 저주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 사회와 이 나라가 조금씩 녹아져서 화해와 평화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주여, 우리들에게 당신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을
부어주셔서 우리를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그릇과 도구들로 써 주옵소서!” 아-멘
번호 | 분류 | 제목 | 조회 |
---|---|---|---|
![]() | 공지사항 | 130139 | |
1388 | 새벽 | 349 | |
1387 | 새벽 | 173 | |
1386 | 새벽 | 79 | |
1385 | 새벽 | 214 | |
1384 | 새벽 | 7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