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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_로마서 11:33-12:1/ 오직 하나님께 영광 [새벽]
  • 조회 수: 1, 2024.01.17 10:14:42
  • 로마서 11:33-12:1/ 오직 하나님께 영광

     

    종교개혁자들이 내세운 모든 중심사상들은 결국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이 한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솔라 피데, 솔라 그라티아, 솔라 크리스토스, 솔라 스크립투라.... 이 모든 것은 솔라 데오 글로리아라는 한 정점을 향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나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나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은혜로, 나의 선함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로 구원받는 것이 확실하다면,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이 말씀인 오직 성경이 내게 계시하여 알려주었다면 우리 편에서 그 어떤 기여나 공헌이 있겠습니까? 이 모든 사실은 구원이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알려줍니다. 그러면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돌아가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1. 하나님만이 영광스러운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솔라 데오 글로리아’에서 데오(theo)라는 말은 여격으로 사용되어져서 ‘하나님에게’로 해석됩니다. 말하자면 오직 영광이 하나님을 향하여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의 행동으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만한 그 무엇이 없습니다. 성경에는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이렇게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고유한 속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받아서 영광스러운 분이 아니십니다. 그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하나님을 둘러싸고 있는 그 영광을 우리가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한 이사야는 “오호라 내가 죽게 되었도다” 이렇게 고백하였고, 모세도 하나님의 영광이 지나갈 때 바위 뒤에 숨었습니다. 다니엘도, 사도 여한도... 우리 중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영광은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것입니다. 그래서 단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미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고 바울처럼 그것을 찬양할 뿐입니다.

     

    2. 오직 하나님만이 만물과 구원의 기원이자 궁극적 모적이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4가지의 솔라의 가치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목적하고 있습니다. 중간에서 이것을 가로챈 자들이 중세 로마 사제들이요 교황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개신교회는 사제주의를 배격합니다. 장로교 신학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입니다. 장로교신학의 최고 교리문답인 대요리문답과 소요리문답의 첫 번째 질문은 “사람의 크고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로 시작하고 그 대답은 “사람의 크고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로 마칩니다.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그 존재의 목적대로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제일 되는 즐거움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에 따르면 우리가 누군가를 평가할 때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면 그를 알 수 있습니다.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누구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는가, 무엇을 즐거워하는가?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3. 우리의 존재목적을 알았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래 로마서는 한 편의 서신이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장절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성경은 11장이 36절로 끝나고 12장으로 바뀌지만 원래의 성경에서는 12장 1절이 36절과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시작한다고 해서 흔히 그러므로의 신학이라고 별명을 붙입니다. 이 말 뜻은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다 알았으니 이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할 때 처음으로 나타나는 것이 우리의 예배입니다. 그래서 12장 1절에 그러므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를 예배의 삶으로 이끌어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 사람은 무릎을 꿇고 탄식하며 경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6장에서 “그 때에 내가 이르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느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라.....” 이처럼 여호와의 영광을 본 사람은 탕식하며, 무릎 꿀고 엎드려 경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절정이 바로 예배입니다. 그러데 오늘날 인터넷이란 산물이 우리를 예배의 자리에서 산만하게 합니다. 영광스러운 예배가 되지 못하고 내 편리한 시간에, 내 마음에 드는 예배를 불러내어 그걸 예배한다고 합니다. 지난 코로나 기간에 이러한 예배의 타락이 일어났습니다. 거기에 나의 기호와 편리함만 있지, 하나님께 영광이 눈꼼만치라도 있을까요?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면 분명 자신을 목적으로 하게 됩니다. 자신을 공공연히 드러내놓기 민망하니까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하나님을 자기 대신에 그 자리에 올려놓는 것입니다. 마치 금송아지처럼 말입니다.

     

    예배뿐만 아니라 실제의 삶도 예배와 같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불완전한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것은 신자의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영화로우심을 거울처럼 반영하고, 드러내는 것입니다. 마치 거울처럼 자꾸 하나님의 영광에 나를 비추어보고 고쳐나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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