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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_왕상19:4-5/ 짐을 지시는 예수님 [새벽]
  • 조회 수: 8, 2024.01.18 10:13:50
  • 왕상19:4-5/ 짐을 지시는 예수님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한국이 전 세계적으로 1위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K팝, K드라마, 교통문화, 인터넷, 깨끗한 공중시설 등입니다. 그런데 그중에 불명예스러운 것도 있는데, 그것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타이틀입니다. 이 타이틀은 오랫동안 연속해서 1위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벗기 위해서 정부 사회 국가 단체들이 여러 노력을 하고 있지만 효과는 여전히 미비합니다. SNS를 보면 자살이라는 단어를 희화화하는 문장들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것을 봅니다.


    요즘 젊은 층은 나쁜 상황이 생겼거나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자살각’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이번 생에는 틀렸어, 자살함, 인생 리셋’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급격하게 번지는 이 신조어들은 자살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충격적인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적지 않은 이들이 습관처럼 ‘죽겠네, 죽고 싶다, 뒤져버리든가 해야지’하는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표현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많은 곳에서 여러 사람이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우리 중에도 피할 수 없는 어려움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즐겁고 행복한 날들도 있지요. 그런 중에도 고통과 권태를 실감할 때도 있습니다. 고난이 끝나가나 싶으면 새로운 고난이 다가옵니다. 이러한 사이클 안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난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아,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은 좌절감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나쁜 감정이 점점 자라면 그 사람의 영혼은 깊이 병들게 되고 ‘자살’이라는 극단을 선택하게 됩니다.


    성경에서도 자살충동을 느꼈던 인물들이 많습니다. 동방의 의인으로 표현되던 욥은 고난 앞에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선지자 엘리야도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고 싶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먹은 후 자살하게 됩니다. 이렇게 성경의 인물들도 고난 앞에서 죽음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 엘리야를 생각해 본다면 아름드리 그늘을 안겨주는 수려한 나무 아래 산들산들 부는 바람에 흘린 땀을 식히며 쉬는 모습을 상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로뎀나무는 그런 나무가 아니라 로뎀덤불이라고 표현해야 할 만큼 그늘로 쉬기는 보잘 것 없습니다. 그나마 겨울비로 물을 품어 2월달에 꽃을 피울 때가 잎이 가장 번성한 때이니 엘리야가 앉아 쉬었던 로뎀나무는 3년 6개월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않아서 메마르고 메말라 그래도 생명이 질긴 사막의 관목 특성상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던 그런 나무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는 마치 그 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소원하는 엘리야의 영적인 상태와도 같은 것이기에 얼마나 서글픈 조화인지요. 아무리 강인한 사람이라도 절망에 연속에 빠지게 되면 죽음의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기에 엘리야도 죽고싶다고 한 한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의 가까이서 죽음을 권하고 있습니다. 마치 술을 한잔 두잔 하다 보면 마침내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취하게 되는 것처럼, 사단으로부터 죽음을 한번 두번 계속 권함을 받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나는 죽어야 하는 사람’이 됩니다. 요즘 영끌 투자의 실패를 감당하지 못하는 청년들, 이성 친구와의 관계에 실패하며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낙심에 빠져있는 사람, 어릴 때부터 노는 일에도 돈이 들어가는데 청소년의 소비를 감당하지 못하여 될대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식 인생.... 이런 결과로 죽고 싶은 만큼 힘들어하는 청년들이 많습니다. 결국 이들은 될대로 되라는 자포자기식의 무차별 폭력과 칼부림, 혹은 자살을 선택하게 하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얼굴을 돌려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하면 힘들 때 도와주시고 위로하시고 안아주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세상이 무너질 것 같겠구나, 가슴이 너덜너덜해졌구나, 미래가 보이지 않겠구나’하고 우리의 아픔을 공감하시는 예수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자유의지가 있는 사람은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사단이 주는 죽음의 유혹을 선택하겠습니까. 아니면 살리시는 예수님의 도움을 선택하겠습니까. 생명의 예수님을 의지하고 새해를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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