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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 레위기 20:17-27/ 너희는 거룩하라 [레위]
  • 조회 수: 816, 2013.05.15 16:14:30
  •  본문은 레위기 18:6-23에서 이미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그런데 또다시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범죄는 하나님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며 하나님의 창조의 의미를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출생과 번성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의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켜 "너희로 나의 소유를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셨음이니라"고 말씀 하신다. 이 얼마나 확고한 관계선의 표현이며 그 백성을 행복하게 만드는 말씀인가?


    첫째는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보호하시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둘째는 이스라엘이 앞으로 들어가서 살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동시에 간음과 근친상간, 동성애나 수간 등 온갖 부도덕한 성생활이 만연되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성적타락이 더 극심합니다. 성은 신비에 쌓여 있어야 하는 것인데 너무나 개방적입니다. 부끄러운 일을 부끄럽게 생각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성을 상품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요셉은 날마다 성적유혹을 받았지만 단연코 거절하였습니다. 요셉이 말하기를 "내가 어찌 하나님의 면전에서 득죄하리이까?" 요셉은 성에 대한 유혹을 큰 죄악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면전에 자신이 서 있음을 언제나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전입니다. 롬 12:1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예배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야 합니다.
    둘째로, 생활이 구별되어야 합니다.(22-25절)
    23절 말씀에 "너희는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의 풍속을 좇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가나안 족속들을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좇아내는 이유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준엄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저들이 쫓겨난 이유는 저들이 하나님 원치 아니하는 풍속을 쫓았기 때문입니다.
      25절에서는 "너희는 짐승이 정하고 부정함과, 새가 정하고 부정함을 구별하고, 내가 너희를 위하여 부정한 것으로 구별한, 짐승이나 새나 땅에 기는 것들로 너희 몸을 더럽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레위기 11장에서 말씀하신 부정한 음식과 정결한 음식을 말씀한 내용을 반복한 말씀입니다.
      성도는 의식주 문제에 있어서도 구별해야 합니다. 먹는 문제, 입는 문제에 구별되지 못할 때 믿음이 약한 형제에게 상처가 됩니다.
      마틴 루터는 "그리스도인은 용서받은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쟌 칼빈은 "우리가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는 죄인" 요한 웨슬레는 "우리가 성결의 단계에 이르지 못한 죄인" 이러한 말들은 우리가 하나님 자녀이지만 완전치 못한 인간이므로 날마다, 시간마다 구별된 삶을 통하여 성화의 단계에 나아가야 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피곤하고 혼탁한 세상 가운데서 우리의 생활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절제생활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생활을 검소하고 절제하면서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 합니다. 이것이 생활의 구별입니다.
    셋째로, 신앙의 구별을 말씀하십니다.(26-27절)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성품, 본질, 속성이 거룩하십니다. 특별히 우상을 섬기지 말고 하나님만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남자나 여자가 신접하거나 박수가 되면 반드시 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이방우상 종교 사이에 타협이 없음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신앙의 구별은 세속적인 것을 배격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섬기든지 아니면 아모리 사람을 섬기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신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화를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고(수24:) 하셨습니다.
      신앙에는 분명한 칼라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안됩니다. 불교는 선에도 악에도 속하지 말라고 회색이랍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신앙의 구별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안디옥 교인들에게 처음으로 불리워졌습니다. 이것은 안디옥 교인들이 붙인 이름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붙인 이름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이 나를 보고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겠는지, 사이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겠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 성경을 처음 라틴어로 번역한 제롬(345-420)이라는 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유고슬라비아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훌륭한 세상 교육을 받았는데 철학도요 시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분명하지 못하였습니다. 세상의 쾌락을 추구하는 욕망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도하는 중에 주님께서 아기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너무나 감사하고 기뻐서 주님, 제가 무엇을 주님께 드릴까요?"하고 물었습니다. 주님께서 대답하시기를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나의 것이다. 그런데 그대가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단 말인가?" 하였습니다. 제롬은 "저의 가진 물질을 다 드리고 싶습니다"고 하니까 "너의 돈은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라"고 하셨습니다.
      제롬은 다시 "주님 제가 무엇인가 꼭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주님 대답하시기를 "그러면 너의 죄와 세상을 사랑하는 욕망을 내게 다오. 그러면 그것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다시 못 박히겠다"고 하셨습니다. 제롬은 그후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온전한 헌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구별된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성결의 삶을 사는 제롬을 통해 성경을 번역하는 위대한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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