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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은 부활절 전 40일간 금식하며 지내는 절기입니다. 3세기 전까지는 부활절 전에 금식기간을 2일이나 3일을 지낸적이 있습니다. AD 325년 니케아 교회법 제5조에 그 관습이 나오는데 이것은 원래는 세례 예비자에게 적용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왜 40일 입니까?
모세는 40세까지 애굽에서 학문을 익히고 40년동안은 미디안 광야에서 있었으며, 엘리야는 이세벨을 피하여 40주야를 로뎀나무 아래서 기도하였으며,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셨던 것입니다. 원래 동방교회에서는 금식일을 7주간 이었으며 토요일과 일요일을 빼면 36일간이며, 서방교회는 6주간을 금식해서 42일동안이지만 역시 주일을 빼면 35일뿐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8주간을 5일씩 금식하여서 실제로 40일간 금식했습니다.
이때는 물은 마셨습니다. 사순절 첫날은 성 금요일이어서 금식을 했고 사순절동안 매일 미사와 예배, 축제의 삶과 자선을 베풀고 회개절기로 지켰고, 그후 육식도 약간 허락하였던 것입니다. 금번 부활절은 4월 23일이고 종려주일은 4월 16일이며 금년 사순절은 3월 15일부터 시작이 됩니다. 오늘이 3월 26일이니까 벌써 11일이 지났습니다. 여기에 나의 일말의 책임이 있는 것 같아서 오늘 사순절과 금식에 대한 설교를 하게 됐습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고난과 부활을 예고한 곳입니다. 기독교 역사속에서 살펴보았듯이 사순절은 고난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이것은 금식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금식에 대하여서 선지자 요엘이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엘서 2장 12절에서 14절까지는 요엘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에게 간절히 돌아오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금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12절은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고 하였고 13절은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라고 말씀하시는데 금식은 하나님께 돌아가려는 하나님의 사람의 방법 즉 금식, 우는 것, 애통하는 것, 마음을 다하는 것 중 그 하나인 것입니다. 지금은 어느 때입니까? 오늘의 사회는 혼탁한 사회입니다. IMF의 한파가 몰아 닥치고, 대량의 실업이 발생하고 노사정의 극한 대결이 팽팽하게 맞서 있습니다.
개인이 범죄하면 웃시야 왕처럼 병이 들게 되고, 국가가 범죄하면 전쟁이 일어나며, 백성이 범죄하면 흉년이 드는 경우를 우리는 성경의 역사를 통해 깨달을 수가 있는데 본문 12절과 13절에서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마음을 찢고...."라고 하심을 보면서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요, 외모보다 더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34-35절에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나라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라고 하였고, 바나바는 안디옥에 가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한 말이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라고 하였습니다.
마음! 마음을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가 중요할 뿐입니다. 잠언 23장 16절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 할찌어다"라고 하였고, 마태복음 5장 8절에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라고 하였으며, 누가복음 10장 25절에서 27절은 영생을 묻는 율법사에게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옛날 우리 속담에 "마음이 지척이면 천리도 지척이요 마음이 천리면 지척도 천리라" 라는 말도 있으며 유교에서는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라고 하였고, 불교에서는 '부정한 마음에서 해탈'을 강조하듯 이처럼 모든 종교가 마음을 중요시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사람을 그 마음에 찾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누가복음 8장 4-15절의 씨뿌리는 비유에서도 길가나 돌작 밭이나, 가시떨기, 좋은 땅은 다 마음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며 야고보서 4장 9절에서 보면 두 마음을 품은 자들에게 마음을 성결케 하라고 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에는 '마음'이 850회나 있습니다. 마음은 곧 '영혼'을 말하며 '중심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사실은 취미도 아니요, 교육도 아니요, 훈련도 아니요, 취미나 오락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모아 바침입니다. 왜 요엘 선지자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고 하셨습니까? 이것은 회개의 방법임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세리와 바리새인의 기도에서 바리새인이 이레에 금식을 두 번하는 것에 대해 세리에게 자랑하듯 하는 기도가 얼마나 허탄한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8장 14-25절 어간에서 베드로와 요한의 기도로 성령을 받는 것을 보고 시몬이라고 하는 사람이 돈을 드려 자신도 누구든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라고 요청하자 베드로가 말하기를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을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될 것도 없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이란 선한 것과 악한 것을 담는 그릇입니다. 여기에다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서 그 그릇의 가치가 평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이 질그릇에 보배를 가졌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은 올바라야 하며, 밝아야 하며, 그리스도의 빛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로마서 1장 21-2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저희를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셨고,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여 그 마음 그릇에는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비방등의 죄악등이 담겨져 있게 되어 하나님의 미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즉 우리들 마음속에는 별나고 못된 것은 다 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을 모셔야 하는 자리요 의가 자리 잡아야 할 자리요 성령이 충만해야 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죄가 가득차 있으니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개인으로는 타락케 되는 것이요, 가정은 파괴되고 나라는 무질서하게 되고 세계는 파멸로 가게 하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를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막힌 담이요, 괴롭게 하는 인간 본질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로마서 7장 21절에서 24절에서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 하되 내 지체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 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는 장탄식을 하였던 것입니다.
개혁자 루터는 [로마의 왕보다 내 마음이 더 두렵다]고 하였고, 우찌무라 간조는 [마음이 깨끗하면 천사보다 높을 인간이 마음이 더러우면 마귀만도 못해 버린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 25-28절에서 그 마음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찬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마음을 지적하셨던 것입니다. 리빙스턴의 마지막 일기장에는 이렇게 고백되고 있습니다. "내주여 다시 주께 마음을 바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성도의 최후의 고백입니까? 금식! 기도! 철야! 이것을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바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누가복음 17장 21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은 곧 하나님의 나라가 있을 곳, 즉 주님을 모시는 곳입니다. 사도행전 7장 51절에서 스데반은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리고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로 드려야 합니다. 사도행전 13장 21-22절을 보면 "...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왕으로 40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라고 말씀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얼마나 귀한 존재입니까! 잠언 4장 23절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가면 하나님께서는 이제라도 내게로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돌아가야 합니까?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며, 마음을 다하여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남쪽 유다 백성들에게 전달되는 선지자 요엘의 마지막 경고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선지자 요엘은 겉으로만 하는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찢으라는 것입니다. 울고 애통하면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예비하신 축복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립시다. 회개합시다. 마음을 찢어 낮아진 마음으로 준비하고 부활절을 맞이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분류 | 제목 | 등록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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