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마 18:1-7)
  • 조회 수: 243, 2013.05.24 07:34:12
  • 16세기를 전후하여 전세계의 초강대국 중의 하나였던 스페인 제국이 
    쇄락의 길을 걷게 된 데는 중요한 신앙적인 요인이 결부되어 있습니다. 스페
    인은 유럽의 열강 중에서 가장 먼저 식민지 개척에 나섰던 선진 국가였습니
    다. 전 유럽 대륙이 중세 카톨릭 교회의 개혁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을 때 
    가장 강력한 카톨릭 국가를 이루어 비교적 종교적 동요가 적었던 스페인은 
    관심을 밖으로 돌려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한다는 명목으로 신대륙 개척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스페인 왕실은 콜럼부스(Columbus), 코르테즈(Cortez), 
    피사로(Pizarro) 등의 탐험가들을 동원하여 마침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
    는 개가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스페인의 신대륙 탐험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한다는 종교적인 
    명분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식민지 개척을 통해 국가의 부를 축적하고자 하
    는 세속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역사가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복음전파는 명목적인 일일뿐 그들의 진짜 목적은 황금에 있었다는 것입
    니다. 이렇게 거룩한 열정이 세속적인 탐욕과 뒤섞여 근대선교의 역사가 펼
    쳐지게 되었고 결국 이것이 오랫동안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
    던 스페인 제국을 타락시키고 쇄망하게 하였던 원인이 되었습니다.

    한 예로 피사로(Pizarro)가 잉카제국을 침략하였을 때 그는 잉카의 왕
    을 인질로 잡고 백성들을 협박하여 7피트 높이의 방에 황금을 채우라고 하
    였습니다. 그러면 왕을 놓아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잉카 사람들은 왕을 구
    하기 위해 온 나라의 황금을 다 거두어 그 방에 가득히 채웠습니다. 그러나 
    피사로는 그 황금을 다 받고도 약속을 어기고 왕을 처형하였습니다. 잉카의 
    왕이 황금을 숭배하는 이교도이기 때문에 그는 사형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
    이었습니다. 왕은 화형을 받았는데 예수를 믿지 않으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겁을 주어 결국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게 
    하고 세례를 주어 사형을 시켰다고 합니다.

    참으로 스페인의 잘못된 신앙의 모습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세계
    를 지배했던 스페인 제국이 멸망한 것은 스페인 교회의 잘못된 신앙 때문이
    었습니다. 어느 사회든 교회가 잘못될 때 그 사회 역시 붕괴된다는 것을 알
    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의 사명이 얼마나 큰가를 
    새삼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현대는 황금과 권력과 명예를 탐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
    으로 생각하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 
    살기가 어려운 세상입니다. 사람들은 신/불신자를 막론하고 부와 권력을 얻
    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사회적인 신분을 높이기 위해 모두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갑니다. 재산을 불리기 위해 밤낮으로 연구하고 일합니
    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로 열심인 데마다 분쟁이 일어나고 부패와 이기주의
    가 판을 칩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오늘만의 문제라기 보다는 인류 역사에 언제나 
    있어 왔던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마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3년 동안이나 영적인 훈련을 받았지만 누가 더 크냐에 대한 
    관심을 떨쳐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서로 높이 되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예
    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린아이 하나를 세우시며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
    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3절)고 말씀하셨
    습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로써 주님이 사랑하는 어린이에 대한 묵상을 하고
    자 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는 주님의 말씀을 상고하면서 우리의 신앙
    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결단하는 시간이 되어야겠습니다.

    1. 우리는 높아지려고만 합니다.

    예수의 열두 제자들은 자신들이 모시고 있는 선생님이 누구인가를 깊
    이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그들의 가슴속에서는 한껏 부푼 꿈이 영글어 가고 
    있었습니다. 온갖 기적과 권능이 베풀어지고 가는 곳곳마다 수많은 군중들이 
    운집하는 광경을 목도하면서 제자들은 주님이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
    토록 갈망해왔던 메시야 왕국이 드디어 도래하게 될 것을 점점 확신하게 되
    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메시야 왕국, 즉 예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면 자
    신들도 마땅히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수제자로 인정을 받던 베드로는 이미 반석이라는 이름과 함께 교회의 
    기초가 되었고 천국열쇠를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분명 주님의 나라가 
    임하게 될 때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요한과 야고보 형제는 주님께 각별한 총애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의 최 
    측근에서 핵심적인 부서를 맡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돈
    주머니를 맡았던 가롯 유다는 나라의 살림을 책임지는 재경원 장관의 꿈을 
    가지고 있었을 법합니다. 물론 다른 제자들도 무언가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야심에 불타고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야망입니까? 실상 그들은 모두가 그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만한 인물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세상에서 어부나 촌부에 
    불과한 사람들이었는데 어찌 그렇게 큰 자리를 바랄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
    은 분수에 맞지 않는 꿈이었습니다. 자신들의 능력은 생각지도 아니하고 그
    저 주님과 맺은 친분관계를 이용하여 덕을 보려고 한 것입니다. 우리들도 때
    때로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을 탐하는 때가 많습니다. 결국 그러한 욕심이 죄
    를 낳게 하고 그 죄가 우리를 파멸의 길로 몰아넣게 됩니다. 우리는 마땅히 
    품어야 할 생각 그 이상을 꿈꾸어서는 안됩니다. 언제나 우리의 과거를 생각
    하면서 헛된 야욕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옛날 스코틀랜드의 어떤 왕은 어려서 양을 치는 목동이었다고 합니
    다. 그러나 그는 후에 스코틀랜드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너무 감격했습니
    다. 자기 같은 사람이 어찌하여 이렇게 큰 나라의 왕이 되어 그 많은 부하와 
    백성들을 거느리게 되었는지 하루하루가 꿈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매일 
    아침마다 궁궐의 작은 방에 들어가는 것을 첫 일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 
    방에는 목동일 때 앉아서 쉬던 다 헤어진 의자와 양을 치던 지팡이, 그리고 
    자신이 입었던 천한 목동의 옷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언제나 과거에 자신
    이 일개 양치기에 불과했던 사실을 되새기고 겸손하게 백성들을 섬겨 역사
    에 남는 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그의 부하에게 명령하기를 아침마다 자기를 찾아와
    서 "폐하는 꼭 죽습니다"라고 하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는 언제나 유한한 인간으로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자기를 모
    르고 과도한 이기심으로 욕심을 부려 재물의 바벨탑을 쌓고자 합니다. 실상 
    우리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살고 있는데도 기뻐하고 감사하
    며 행복해하기 보다는 더 많은 재물, 더 좋은 환경만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사람의 욕심이란 한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과도한 욕심
    으로 우리들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습니다.

    우리 개인들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도 대접
    받고 높아지고자 하는 욕심입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자기 중심주
    의가 교회의 분열을 몰고 왔고 이로 인해 한국교회는 하나님께는 물론 불신
    자들에게조차 얼굴을 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교회분열을 야기한 사람들은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고 그것이 자기들의 참된 신앙을 고수하기 위해 불
    가피한 선택이었음을 강조하지만 사실은 교회분열이란 누가 주도권을 잡고 
    누가 높이 되느냐의 문제로 인한 갈등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세속적인 가
    치관이 교회에까지 침투하여 한국교회가 백여 개의 교파로 갈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해야 합니다. 교회
    가 하나 되지 못하면 동서의 지역감정과 남북의 통일에 대하여 말할 자격조
    차 없습니다.

    2. 우리는 낮아져야 합니다.

    지극히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갈등 속에 빠져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께
    서는 아주 극단적인 말씀을 가지고 그들을 경고하셨습니다. "천국에서는 누
    가 크니이까?"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주님께서는 한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
    데 세우시고 "너희가 돌이켜 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
    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3절)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돌이켜"라는 말은 하늘
    나라에 합당한 자가 되기 전에 먼저 마음의 생각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곧 
    우리 속에 있는 교만과 야망과 명예욕, 권력욕, 물질욕 등을 회개하고 참된 
    자아를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가 다 헛된 꿈에 불과합니
    다. 우리가 만약 이런 것들로부터 스스로를 돌이키지 않으면 우리는 진실로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세속적인 꿈에서 돌
    아서야 합니다.

    또한 주님은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
    니라"(4절). 자기를 낮춘다는 것은 인격적으로 겸손한 사람이나 혹은 온유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반적인 이해 
    외에도 본문의 앞부분의 문맥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말씀의 깊은 뜻을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본문 말씀의 앞부분에 보면 세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님과 
    베드로간에 개인적인 대화형식으로 되어 있는 이 이야기에서 주님은 하나님
    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세상에 세금을 낼 필요가 없지만 오해를 방지하기 위
    해서 당신의 몫뿐만 아니라 베드로의 몫도 납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
    은 우리 주님께서 "자기를 낮추는" 행위의 모범을 친히 보여주신 것으로 이
    해할 수 있습니다.

    실상 베드로는 예수님은 세금 징수권자인 로마권력보다 크신 분이시
    므로 세금을 낼 필요가 없을 것이고 제자들마저 낼 필요가 없다고 하실 줄 
    알았는데 세금을 내라는 말씀에 어리둥절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권
    세까지 포기하고 국가의 권위에 굴복하여 세금을 내시는 예수를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곧 하나님 나라에
    서 큰 자라는 것을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본연의 사명, 곧 복음전
    파를 위해서는 세상의 작은 것을 포기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마땅히 주장할 수 있는 권리 
    또한 포함이 됩니다. 자기의 권리를 대의를 위해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사
    람, 그가 바로 자기를 낮추는 자요 천국에서 큰 자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서 세금을 바쳐야 합니다. 돈의 문제로 복음전도에 방해
    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요, 복음
    이요, 교회입니다. 그 무엇으로도 이런 생명의 역사가 방해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시고 복음을 이 땅에 전하시
    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의 특권을 버리시고 가장 참혹한 십자가에서 죽으
    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도 주님처럼 주님의 몸된 교회와 복음을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고 낮
    아진 사람입니다.

    3.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
    리라고 하셨는데 실상 어린아이는 지혜에 있어서 우둔하고 변덕스럽고 자기
    들의 일에 도취되어 남의 장단에 맞추지 못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
    나님 나라에서 큰 자가 되려면 이렇게 우둔해야만 한다는 말씀은 아닐 것입
    니다. 다만 어린아이들이 엄마의 젖을 사모하듯이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도 
    "신령하고 순전한 말씀의 젖을 사모"(벧전 2:2)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은 아무리 울다가도 엄마의 젖을 물리면 울음을 그치고 행
    복해 합니다. 우리도 이렇게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은 모두가 
    부모가 다 해줄 줄 믿기 때문에 그 무엇도 염려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이렇
    게 염려와 근심을 주님께 다 맡기고 하나님이 다 돌보아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린아이와 같이 악의가 전혀 없고 남을 해할 줄 모르고 다
    스림에 순종하고 명령을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갈 4:2). 특히 어린아이
    는 높은 데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헛된 야망을 품지도 않습니다. 우리도 겸
    손히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이것이 어린아이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어린아
    이들처럼 주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 말씀에 절대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어린이를 영접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물론 
    우리의 어린 자녀들을 신앙으로 잘 키우고 격려하라는 말씀이기도 할 것입
    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의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회학교 교
    사들에게도 깊은 관심을 갖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학교 교
    사들의 헌신은 정말로 대단합니다. 온 교회는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야 할 
    것입니다. 부장집사님들을 비롯하여 총무 선생님들과 온 교사들의 노고에 이
    번 기회를 통하여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어린이는 장차 우리 교회의 집사요 권사요 장로들입니다. 또한 이들
    은 목사와 선교사가 되어 한국교회를 이끌어가고 세계선교에 이바지할 21세
    기의 주역들입니다. 우리는 자라나는 2세들을 격려하되 특히 선생님들의 헌
    신적인 사역에 여러 모양으로 지원해 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꿈은 허무한 돈과 권력과 명예가 될 수 없
    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이 땅에 주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입니다. 이를 위
    해서는 더욱 낮아지고 겸손하여서 주님이 주신 복음선교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해야 합니다. 복음전도를 위해서 해외에 선교사로 직접 나갈 수도 있습
    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이 누구나에게나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주변에 말씀을 전하세요. 기도로 돕는 방법도 있습니다. 물질로 선교하는 방
    법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진정 저 천국에서 큰 자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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