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마18:1-4)
  • 조회 수: 103, 2013.05.24 07:23:56
  • 어느 교회 목사님께서 천국에 관한 설교를 열심히 하셨습니다. 그리고 설교후에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자,여러분! 이좋은 천국에 장차 가시기를 원하시는 분은 솔직하게 손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그날 설교를 들은 모든 교인들이 너나 할것없이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목사님이 또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가운데 저 좋은 천국에 지금 당장 가시기를 원하시는 분이 계시면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그랬더니 서로 얼굴만 힐끔힐끔 쳐다볼뿐 아무도 손드는 이가 없었습니다. 사실 우리에게 천국은 너무나 가깝고도 먼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마치 천국에 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고 천국에서 누가 큰 가라고 길거리에서 다투고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이 그들의 다투는 소리를 다 듣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천국에서는 누가 큰자입니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1.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예수님은 제자들의 이같은 질문에 대하여 먼저 누가 천국에 들어갈 자인가를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당연히 자신들은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몰라도 주님은 천국에 들어갈 자격에 대하여 먼저 말씀하신 후에 누가 천국에서 큰 자인가에 대하여 말씀하셨는데 그 대답이 제자들에게는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가운데 세우시고“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왜 [어린아이와 같지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어린아이 처럼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신‘어린아이’란 육체적, 신체적인 요건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정말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한다면 이건 도무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천국의 오묘한 비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을 읽어보면 니고데모라는 유대인의 한 관원이 밤에 사람들 몰래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행하신 표적에 대하여 놀라운 마음을 표시하면서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임을 고백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니고데모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다 자란 사람이 어머니의 뱃속에 다시 들어가서 태어날 수 있단 말인가라고 의아해 했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거듭난다라는 말이 어머니의 뱃속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라는 뜻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압니다.우리가 흔히 중생이라는 말로 설명하지만 이 말을 좀 더 알기 쉽게 설명하면‘위로부터 나지 아니하면’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의아해 하는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다시 설명해 주셨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 하나님의 새롭게 하는 역사가 있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노력과 행위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거듭나게 하심으로 들어가게 됨을 예수님은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또 다른 천국민의 자격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천국에 결단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들이 천국에 들어가기를 진정으로 소원한다면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어린아이’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자격의 기준으로 사용되어 졌음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이 아파트를 소유하기 위해서 제일먼저 아파트의 모델하우스를 구경합니다. 물론 다 지어진 아파트를 나중에 보고 선택할 수도 있지만 모든 아파트들이 아파트를 완성하기 이전에 모델하우스를 짓습니다. 모델하우스를 보면 앞으로 자신이 들어가서 살게 될 아파트가 어떤 아파트인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런 기준 조건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미로 모델하우스같이 눈에 분명하게 보이는 천국의 모델을 제시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로 그 모델이 어린아이인 것입니다. 아마 제자들은 어린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 어린아이를 가운데 세우시고 천국을 설명하시던 주님의 가르침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어린이들의 중요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합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이런 날 저런 날로 사람들은 피곤하고 마음만 분주합니다. 마치 일년내내 자식에 대하여 무관심하다가 혹은 부모에 대하여 무관심하다가 한꺼번에 날이라도 잡은 것처럼 큰 행사를 치르듯이 부모노릇, 자식노릇을 한다고 야단들입니다. 

      어린이날엔 부모들이 피곤합니다. 어버이날엔 자식들도 피곤합니다. 스승의 날엔 제자들이 피곤합니다. 그리고 이런 날들이 지나가면 평상시로 돌아갑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무관심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이런 날들을 맞이하면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더 절실하게 느껴야 하겠습니까? 어린이 주일이라고 어린이들을 한번 추켜세우고, 어버이주일엔 부모님에게 효도 잘 해야 한다고 하고, 그것도 아니면 이것저것 섞어서 가정교육 잘 해야 된다고 강조하고 말아야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천국의 그림자로서 가정을 강조해야 하며 천국시민의 자격으로서 겸손히 섬기는 자로서의 삶을 강조해야 합니다.

      겸손히 섬겨야 할 대상으로서 가장 우선순위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부모입니다. 자기 부모에게 잘 하지 못하고 남에게 잘하는거 이거 별 의미가 없습니다. 세상사람들이 기독교를 불효의 종교라고 합니다만은 기독교만큼 효를 강조하는 종교는 세상에 없습니다. 또 어린아이들을 볼때마다 그 어린아이들 속에 내재되어있는 천국시민으로서의 자질과 자격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우리 주위의 모든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천국을 가르치고 천국을 깨닫게 하는 존재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린아이처럼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입니까?

    2. 어린아이처럼 된다는 것은...
      우선 주님이 어린아이처럼 되라는 말에 먼저 사용하신 말씀에 주위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돌이켜’라는 말씀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써 선행되어야 할 행동입니다. 바꾸어 말한다면 돌이키지 않으면 어른은 결코 어린아이와 같은 특성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돌이켜’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트라페테]는‘스스로 돌이키다’는 뜻입니다. 이말은 순간적이고 결정적인 방향 전환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말은 한낱 행동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가능한 마음의 변화, 즉 참회와 중생을 이루는 전인적인 변화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마치 성령에 의해 거듭나고 새 사람으로 변화되듯이 천국시민의 자격을 가지는 것은 마치 이런 중생의 새로운 역사를 체험하고 경험하는 것과 같은 차원에서 전인적이고 전폭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그렇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중생하여 새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함 아닙니까? 천국과 상관없는 중생, 천국과 상관없는 구원이 있다면 그것은 가짜입니다.천국이 이렇게도 중요하다면 돌이켜 어린아이처럼 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우리가 느껴야 합니다.

      혹, 어린아이처럼 꾸미고 흉내는 낼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돌이켜’어린아이처럼 된 것은 아닙니다.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것과 내가 돌이켜 어린아이처럼 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어린아이처럼 되라고 말씀하신 가장 중요한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여기서 어린아이란 천진난만함이나 순결함 혹은 믿음의 이상형으로서가 아니라 겸손의 이상형으로서 혹은 세상과 사회적 부와 명예에 대한 무관심의 표상으로서 내세워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천국민의 본질적 자격으로서 겸손한 마음에 대하여 강조하시는 것이지 어린아이와 같은 유치함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린아이는 어떤 점에서 겸손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본문에 어린아이로 사용된 헬라어는 우리 나이로 치면 두 세살 먹은 어린 영아들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여러분 어린영아들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한발짝도 부모곁을 떠나지 않으려는 100퍼센트 완벽한 순수 의존형입니다. 

      간혹 엄마의 품을 떠난 어린 아이들이 엄마외에 어떤 사람에게도 가지 않으려고 하면서 콧물 눈물이 범벅이 되어 울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주위의 사람들도 보기에 딱합니다. 그냥 이 사람 저 사람 낯 가리지 않고 좀 가서 있으면 저도 편하고 그 엄마도 편할텐데...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엄마가 나타날때까지 거의 막무가내로 까무러 칠 듯이 울어댑니다. 도무지 손쓸 도리가 없습니다. 엄마외에는 아무도 그 아이를 달랠길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엄마가 나타나면 신기한 듯이 울음을 뚝 그치고 금방 생글거립니다. 바로 이러한 어린아이의 속성을 말합니다.

      세상에서 천년 만년 살 것처럼, 온갖 부귀영화 다 누릴려고 하고 무병장수 할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천국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사는게 천국인데 죽어 천국가는게 뭐 그리 중요한 일입니까? 그러나 여러분 오해는 마십시오. 이땅에서 물질의 복을 누리고 건강의 복을 누리게 사는게 잘못되었다는 얘기는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아이가 부모의 품을 떠났는데도 그 품이 그립지 않고 그 손길이 귀하지 않다면 그 가정이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 이미 그 아이에게 부모나 가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곳입니다.정상적인 아이는 부모가 십분만 눈에 띄지 않아도 부모를 찾아 헤매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인간관계에서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맺었는가 그렇지 못했는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뭡니까? 있을 땐 잘 모르는데 없을 때 그의 존재가 부각되는 사람입니다. 있을땐 몰랐는데 없을땐 그의 빈자리가 더 커 보이고 속히 그가 보고 싶은 사람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천국백성으로서 성도들이 이 땅에 살면서 이땅에서 누리는 물질과 건강에만 관심이 있고 앞으로 우리가 살아야 할 영원한 처소에서의 삶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도 없다면 우리는 천국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에서 살면 살수록 천국이 더 그리워지고 천국을 더 소망하게 되는 것! 바로 이게 돌이켜 어린아이처럼 되어 사는 것입니다.

      엄마품에 늘 있을때는 몰랐는데 잠시라도 엄마품을 떠나게 되었을 때 그 아이가 본능적으로 찾게 되고 애타 기다리게 되는 존재로서의 엄마처럼 천국도 그런 사람만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천국에 대한 그러한 열망과 대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어린아이처럼 이런 돌이킴이 있는 사람들에겐 교만함이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입니다. 어린아이를 가만히 보면 부모에게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알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투정을 부리고 울기도 하고 물건을 잡어당기고 이건 다 자신의 존재를 알아달라는 몸짓아닙니까? 따지고 보면 생존권도 경제권도 부모의 손에 의해 좌우됩니다. 부모가 걷어주지 않으면 그 아이는 이미 죽은 목숨일 따름입니다. 아이는 자신의 말로 그것을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그 사실을 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한마디 말에 절대 복종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이들이 언제부터인가 부모에게 반항하고 부모의 손에서 벗어날려고 발버둥 칩니다. 바로 '돈 맛'을 알고나면 그때는 이미 끝입니다. 몇 푼 안되는 과자얻어먹기 위해 부모에게 슈퍼에 같이 가자고 조를때가 좋은 때입니다. 그럴 때 귀찮아 하지말고 같이 가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어린 자녀들이 언제까지나 아빠랑 엄마랑 같이 시장가고 슈퍼마켓에 가자고 할 줄 아십니까? 

      이 세상에서 부모가 가장 위대한 줄 알았는데 부모보다 더 위대한게 돈이라는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그때부터 이미 독립선언입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말씀안에서 부모보다 돈보다 더 소중한 믿음의 가치를 알고 자란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고 얼마나 절실한 일인지 모릅니다. 아이가 세상에 눈을 뜨기 전에  돈에 눈을 뜨기 전에 먼저 믿음에 눈을 뜨고 신앙에 눈을 뜨고 하나님을 향하여 눈을 떠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를 처음 믿을때는 얼마나 순수하고 겸손하고 순종적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아닌 세상을 알게되고 세상의 달콤함을 알게되면 그때부터 태도가 달라집니다.여러분 돈맛을 알고 세상맛을 아는 사람들은 천국이 절박하지도 않고, 가고 싶지도 않은 곳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하는 찬송은 한낱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헛된 공치사일 뿐입니다.

      어린 아이처럼 된다는 그 말에는 빨리 돌이킨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정상적인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다른 어떤 사람들의 말보다 먼저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아이의 고집과 잘못에 대하여 지적해 줄 때 즉시로 반응을 보입니다.

      어린이의 마음은 뉘우치는 일에 빠릅니다. 최소한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어른들처럼 숨기거나 변명하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잘못을 잘못으로 받아들입니다. 죄를 뉘우치는 일에 있어서 우리는 어린 아이들의 마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또 하나의 기준은 잘못에 대하여 죄에 대하여 신속한 돌이킴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인생을 돌이키는 인생으로 만드셨습니다. 천국에는 죄 없는 인간이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죄에서 돌이킨 인생들이 가는 곳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린아이들은 그들의 마음의 밭이 단순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 들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심는대로 거둔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연의 법칙보다 세상의 이치보다 더 중요한 영적인 법칙입니다. 어린아이들의 마음은 아직 죄로 인하여 단단한 길가를 이루지 아니했습니다. 아직 돌밭도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재리의 유혹을 상징하는 가시밭도 아닙니다. 씨를 뿌리면 뿌리는 씨대로 그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어느 교육학자는 어린이 마음을 흰 종이와 같다고 했습니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가르쳐 주는 대로 의심하지 않고 액면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다 큰 중고등학생들이 유괴되었다는 보도를 접해본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영악하고 세상에 때가 더 묻었기 때문입니다. 하긴 요즘 아이들은 더 영악하더군요. 낯선 사람이 가까이 와서 말걸면 절대 대답하지 말고 집으로 오라고 부모들이 가르치면 그대로 합니다. 귀여워서 쓰다듬어 주면 이상한 눈초리로 어른을 회피하는게 요즘 아이들입니다. 

      그래도 어린아이들에게는 한마디의 농담도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엉터리로 가려쳐 주어서는 안됩니다. 부모의 무성의한 답변, 한마디의 말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깊이 잠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아이들의 마음 속에 참 생명의 씨앗인 하나님의 말씀을 심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심는 대로 결실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도 어린 아이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지 않으면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하고 귀한 천국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돌이켜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돌이켜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주님께서 단언하셨습니다.

      해마다 가정의 달을 맞으면 우리는 분주하게 자녀들이나 혹은 부모들을 챙긴다고 마음이 바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런 시류에 마음을 흔들릴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자녀를 온전히 하나님앞에 키워나가는 것은 우리의 평생의 의무이고 책임입니다. 제 나은 육신의 부모를 살아 생전에 잘 존경하고 섬기는 것은 하나님이 인생의 삶에 세우신 법도입니다. 부모를 섬기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부모보다 더 큰 권위를 가지신 하나님께 복종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제대로 말하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는 어린 아이들을 볼때마다 우리는 그들 속에 숨겨져 있는 천국백성으로서의 오묘한 이치와 진리를 배우고 깨닫게 됩니다.

      누가 크냐고 소리를 높여 다투는 제자들의 한 가운데 어린아이를 세우신 주님이 오늘도 우리의 삶의 중심에 어린아이와 같은 순전하고도 온전한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신뢰와 겸손 그리고 자신의 낯춤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가정의 달이라고 불리워지는 5월이 천국을 맛보고 천국의 소망을 다시 깨닫게 되는 천국의 달 5월이 되어야 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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