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울 것과 가르칠 것(잠 23:13-25, 마18:1- 6)
  • 조회 수: 233, 2013.05.24 07:20:54
  •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일반적으로 어린이날에는 이 아이들을 바르게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과 위하여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 들은 이 날에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는 이 아이들에게서 하늘 나라를 배워야겠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이 아이들의 신앙적 삶을 바르게 형성해 주어야겠 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 두 가지 의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린이에게서 배울 것

      먼저, 오늘 읽어드린 마태복음 1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고, 또 어린 아이들처럼 자기를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을 어린 아이들에게서 배우라는 말씀입니다. 본트레이 저 라는 분의 "그는 당신을 가르칩니다"라는 시를 소개하겠습니다.

    그는, 그 어린 아이는 당신보다 훨씬 위대합니다. 
    당신이 가르치는 그 아이가 당신을 가르칩니다. 
    당신은 그더러 예수와 같이 되라고 가르치지만 당신은 
    그가 이미 당신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잊었습니까? 
    당신은 그의 잘못을 올바로 가르친다고 하지만 가르치는 쪽은 
    당신이 아니라 마음이 더 깨끗하고 자유로운 그입니다. 
    당신은 그더러 하나님을 믿으라고 가르치지만 
    그러나 알 수 없겠습니까? 
    그보다 믿음이 부족한 사람은 당신입니다. 
    그는 단순한 믿음으로 즉시 믿으나 
    당신은 당신 나름의 의심과 이유를 찾아냅니다. 
    당신은 그더러 용서하라고 가르치지만 그러나 모르겠습니까? 
    그는 당신이 가르칠 때 이미 용서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그가 용서할 때는 당장에 용서해 줍니다. 
    그러나 당신은 어떻습니까? 
    원한을 오래 품고 빚진 자를 잊지 못합니다. 
    당신은 그에게 사랑을 가르치려 하지만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외칩니다. 
    "얘야, 내가 선생이 아니라 네가 선생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가르치는 그에게서 배우십시오. 
    그를 닮으십시오. 
    천국에 가려면 그래야 한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어린이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단순하기 때문에 별로 근심 걱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근심되는 일이나 걱정되는 일이 있을 때 천진난만하게 웃고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눈 녹듯 근심이 사라지게 되 는 경험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전혀 염려할 필요 없 는 어린 아이들이 우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못난 부모이지만 절대적으 로 신뢰하기 때문에 결코 염려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부모들은 자신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셨으면서도 무엇을 먹 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계속 염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이 가진 신뢰심을 우 리가 배워야 할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스트레스가 쌓이지는 않습니다. 물론 요즈음은 어린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가르치려고 쉴 사이 없이 몰아치는 부모 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만, 그렇지만 않다면 아이 들이 스트레스 때문에 병들 일이 없는 것입니다. 천국은 근심 걱정이 없는 곳이 아 니겠습니까? 어린 아이와 같이 되라는 말씀은 바로 쓸데없는 염려를 모두 벗어버리 고 그날 그날의 삶을 만족하게 살아가라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둘째로 어린이에게서 배울 것은 경이의 눈입니다.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신성모독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을 보고 조금도 경이로움을 느낄 줄 모르고 그저 그러려니 라고 지나쳐버리는 무감각함입니다. 어린이들은 대부분의 어른들이 전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봅니다. 그리고 그들의 관찰은 가끔 마음을 열어 주고 영혼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의문들로 이어집니다. 아이들은 그래서 다 철학자가 됩니다. 저 하늘은 얼마나 높을까?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들기 전에 이곳에는 무엇 이 있었을까? 이런 질문들은 어른들은 전혀 생각해 보지 않는 것들입니다. 하나님 이 지으신 세계에 대한 놀라움을 전혀 느끼지 못할 때 인간은 병들어 가고 있는 것 입니다. 꽃이 피는지 낙엽이 지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삶에 쪼들려 쫓기는 삶이야 말로 비참한 삶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잘 아는 윌리암 워즈워스의 "무지개"라는 시를 다시 한번 음미해 봄이 어떨까요?

    저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 볼 때 
    내 가슴은 뛴다. 
    내 인생이 시작할 때도 그랬는데 
    어른이 된 지금도 그렇구나 
    아무쪼록 늙어서도 그러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지!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나의 하루하루가 
    자연의 경건함으로 엮어지기를 바란다.

      여러분 가운데 지금도 무지개를 보면 가슴이 뛰는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 가운데 혹시 밤하늘의 별을 보려고 가끔씩 마당에 서 계시는 분이 계신가요? 우리는 너무나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이 아닌지요? 대도시 문명이 우리의 삶을 자연에서 격리시켜 우리의 심령을 메마르게 하고 우리의 육체를 병들 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린이의 눈을 가지고 자연을 보며, 어린이의 가 슴을 가지고 하나님의 신비를 보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거기에 천국의 아름다움 이 빛나지 않겠습니까?

      셋째로, 어린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가슴을 열고, 다른 사람들을 믿을 수 있는 커다란 능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믿으며 의심치 않습니다. 어린 아이에게 기도를 가르치면 의심치 아니하고 그대로 따라합니다. 누구에게 기도하느냐고 묻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의 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심치 않고 기 도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린이들이야말 로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자들로 보셨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 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 심을 감사하나이다"(마11:25). 그리고 예루살렘 입성 때 아이들이 호산나로 예수님 을 영접하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 미를 온전케 하셨다"라는 시편 8편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반대자들을 침묵케 하셨 습니다. 어린이야말로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있는 자들이며, 저들의 찬송이야말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가장 아름다운 것임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시는 말씀들입니 다.

      그런데, 이런 믿음이 점점 자라면서 없어지는 것은 순전히 어른들의 책임입니다. 어린이들의 믿음에 대하여 어른들은 늘 실망을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보지 못하고 자기들이 믿지 못하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보고 믿는 것들을 환상으로, 어리석은 것으로 돌려버리고 그 믿음과 그 꿈을 깨트려 버리는 것입니다. 이제 우 리는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똑바로 기억하면서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을 갖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미리암 지버 린트의 "아이가 온다"는 시를 하나 더 소개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손으로 신선하게 지음 받고 
    최신 작품으로 새롭게 지음 받고 
    화창한 날씨에 깨끗하게 지음 받아 
    이 땅의 음울한 풍토 속으로 
    오랜 세월의 풍상 속으로 
    낡고 진부한 이야기 속으로 
    복잡다단한 역사 속으로 
    아이가 자신 있게 온다.

    그를 통해 초점을 잃었던 목표가 
    완전하고 뚜렷해진다. 
    그를 통해 우리의 기쁨이 새로워지며 
    그의 눈을 통해 새로운 미를 본다. 
    그를 통해 오만한 마음이 스러지며 
    언덕과 골짜기가 평탄해진다. 
    그를 통해 교만한 영혼이 순진해지며 
    하늘 문으로 가는 은총을 얻는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의 어린이들을 통해 우리의 눈이 떠지고 우리의 믿음과 사랑이 되살아나며, 교만한 영혼이 다스려져서 하늘 문으로 가는 은총 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린이들을 가르칠 것

      다음으로,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어린이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잠언 22장 6절에 보면,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또 23장에는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13-14)고 하였습니다. 또 에베소서 6장 4절에는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 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였습니다. 어린이들의 마음이 순수하고 깨끗할수록 악 에도 물들기 쉽다는 사실을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입니다. 그러므로 악과 선을 분 별할 줄 알며,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존 웨슬레의 어머니 스잔나 웨슬레가 1732년 7월 24일 그 아들에게 보낸 글을 보면 다음과 같은 자녀교 육 원칙 20가지가 서술되어 있습니다.

    1. 유아기에는 언제나 규칙적인 생활 방법을 가르쳤다. 입는 것, 먹는 것, 자리 갈아 뉘는 것, 목욕하는 것, 일년 약 1/4은 일반적으로 잠을 재우고, 그 외는 할 수만 있으면 요람에 깨어 뉘어두었다.

    2. 일년이 지나면 혹 그 전에라도 채찍이 두렵다는 것을 가르쳐서 가만히 울게 가 르쳤다. 그래서 우리 가정에서는 어린이가 하나도 없는 것같이 큰소리로 우는 소동 없이 조용하였다.

    3. 퍽이나 장성하자 하루 삼식만 허락했다. 식사시간 외의 간식은 병들었을 때 외 에는 허락지 않았고, 그래서 어린이라고 별식을 만들지 않고 일반 식사를 동일하게 했다.

    4. 아이의 마음을 형성하기 위하여 할 일은 그들의 의지(고집)를 꺾고 순종하는 성격을 만드는 일이었다. 감성을 지도하는 것도 시기를 따라 할 일이다. 그래서 서 서히 감당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그러나 고집을 꺾는 일은 즉시 시작했다. 나는 아이의 의지를 적당할 때 정복할 것을 주장한다. 이것이 종교 교육의 유일한 가장 합법적인 기초가 되기 때문에 이것이 잘 될 때 아이의 중심에 종교의 원칙이뿌리 박 히기까지 부모의 경건으로 지배될 수 있다.

    5. 말할 줄 알게되면 주기도문을 가르쳤다. 잘 때, 깰 때 꼭 외우게 했다. 그리고 그들이 장성해 가면 자기 부모형제를 위한 작은 기도를 첨가해 주었다. 또 요리문답 성경 성구를 기억케 했다.

    6. 말 잘하고 잘 걷게 되기 전에 벌써 주일을 다른 날과 일찍이 구별하게 했다.

    7. 가정예배에 참여해서 기도하게 가르쳤다.

    8. 자기들이 구하는 것을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급속히 이해 하게 만들고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예의 있게 구하도록 가르쳤다.

    9.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게 부르는 것, 저주, 맹세, 독설적인 외설, 무례는 결코 행하지 못하게 했다. 자기 형제간에도 이름만은 못 부르게 하여 반드시 형님, 누님 등 존칭을 붙여서 부르게 하였다.

    10. 큰 소리로 노래하며 놀고 떠드는 것도 금했다.

    11. 날마다 학교공부를 6시간 하게 하고, 자기 일을 열심히 하게 했다. 건강과 능 력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열심히 하게 했다.

    12. 화재로 집을 재건한 후에는 조석으로 시편을 노래하게 하였다. 저녁 5시에 시 읽고 신약성경을 한 장 읽게 하고 아침도 그와 동일하였다.

    13. 솔직하게 고하기만 하면 용서하고 때리지 아니한다고 약속하고, 벌이 두려워 거짓말하지 않게 했다.

    14. 그러나 유죄한 행동은 반드시 벌했다.

    15. 같은 과실로 두 번 이상 책망 받거나 매 맞는 아이는 없었다. 고친 일을 다시 책한 일도 없었다.

    16. 순종은 언제나 칭찬해 주고 상도 때때로 주었다.

    17. 순종만 하면 일을 성공 못했어도 친절하게 받아주고 장래는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지를 지도해 주었다.

    18. 재산에 대한 권리는 반드시 보호하고, 비록 작은 재산 소유라도 서로 침해하 지 못하도록 하였다.

    19. 약속은 꼭 지키게 하였다.

    20. 아무도 글을 잘 읽을 수 있을 때까지는 일 시키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아이마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간 하루 저녁씩 권면하고 가르쳤다.(존 웨슬레의 저녁은 목요일이었다. 그래서 일평생 목요일 저녁 명상기도를 하였다고 한다). 

      이 같은 방식으로 스잔나 웨슬레는 19 자녀를 길러 모두 훌륭한 사람을 만들었 다고 합니다.

      자녀들의 신앙교육과 올바른 인격 형성을 위한 부모의 역할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위에 적힌 대로 한 아이만 기르려 해도 어머니는 잠시도 쉴 사이가 없이 분주하게 움직여야 하고, 규칙적으로 생활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부 모들이 자신이 감당해야할 이런 책임을 돈으로 사려하고 남에게 맡겨서 하려고 하 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신앙교육은 특별히 부모가 아니면 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청소년들의 탈선이 심각하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만, 결국은 부모가 올바로 교 육을 시키지 못한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공연히 허영에 들떠서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기본적인 태도와 습관은 제쳐두고 기능적인 인간을 위한 교육에만 열을 올린 결 과입니다. 여성의 사회활동도 중요하지만 자녀교육 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습니다.

      이 어머니의 역할과 책임이 소홀히 되는 데서부터 오늘날 우리의 청소년들이 문제아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요즈음 교회학교 학생들의 수가 부쩍 줄어들 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의 감소에도 원인이 있지만 믿는 부모들이 철저하게 교회 학교 교육을 시키겠다는 의식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지금 교회는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교회학교가 점점 비어가고 있는 이런 현상이 계속될 경우 2, 30년 후의 교회들은 커다란 건물 안에 노인들 몇 사람 만이 모여 예배드리는 구라파 교회들을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철저하게 신앙을 가 르쳐야 할 부모의 책임을 결코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을 후회할 날이 곧 올 것입니다. 자녀를 올바로 가르치고 양육하여야 할 부모의 책임은 막중 한 것입니다. 이 부모의 책임을 소홀히 하는 자에게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바 있습 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 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어린이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보내주신 귀중한 생명입니다. 그들을 우리에게 주심은 그들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고 하나님의 나라를 배우게 하시기 위함이요, 동시에 이 아이들을 올바로 양육하여 하나님의 나 라를 이 땅에 이루게 하려 하심에서입니다. 이 막중한 책임을 이제 우리가 올바로 감당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 땅 위에 이루어 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여 러분의 가정에 있는 어린이들과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어린이들 위에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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