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되기 원합니다(마18:1~4)
  • 조회 수: 253, 2013.05.24 07:21:48
  • 여러분 따뜻한 봄날에 어머니 손을 잡고 초등학교 에 입학하던 때가 기억나십니까?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아마도 이런 시를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강소천 선생께서 지은 '병아리'라고 하는 그런 시입니다. 아주 짧은 시인데 이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물 한 모금 머금고 구름 한번 쳐다보고 또 물 한 모금 머금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 그것이 '병아리'라고 하는 시의 전문입니다. 얼마나 마음이 흐뭇해지는 그런 시입니까! 그런데 여기에 나타나는 병아리는 어린이의 모든 마음을 상징하는 그런 동물입니다. 어른들과 달라서 어린이들은 거룩한 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다 하늘과 연결되어 있는 그런 신비한 생각을 하는 능력이 그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어린이 주일을 지키게 되는 대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잘 교육하자고 하는 어린이 교육에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마음이 어린이 같이 순수하고 단순하고 또한 간절히 믿는 그런 어린이의 마음을 준비하자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 주일을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티없이 맑고 순수한 어린이들을 보면서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는 우리 마음속에 주님을 향한 기도가 있습니다. "주님 아이처럼 되기를 원합니다." 원래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이 같은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라 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물도 버리고 배도 버리고 심지어 부모까지 버리고 주님을 따라나선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순수했던지 모두다 어린 아기 같은 마음으로 순수하게 주님을 따라 나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이 제자들의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 생각하지 않던 좀 이상한 생각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계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머리가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12명 가운데 '누가 가장 큰가? 누가 가장 훌륭한가? 누가 더 좋은 자리에 있는가?"하는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변화 산에 가실 때에도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 야보고, 요한 세  람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나머지 아홉 사람은 수근거립니다. "정말 저 세 사람이 가장 귀한 사람들인가?" 가이사라 빌리보 지경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은 묻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여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대답 잘 해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제자들이 또 생각을 합니다.

    "아하 저 베드로가 우리 가운데 가장 훌륭한 제자인가?" 심지어 오늘 방금 본문 직전에 일어났던 일도 있습니다. 세금을 바치는 문제로 제자들이 방황하고 있을 때 주님은 세금을 바쳐야 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재정이 없던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직접 물고기를 잡아서 물고기 입안에 있는 동전을 끄집어내어서 그것으로 세금을 바치도록 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역시 '베드로가 가장 중요한 사람인가? 왜 우리는 중요하지 않은가?'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주님, 천국에서 누가 제일 큽니까?

    우리 가운데 누가 크게 될 것입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를 믿고 교회 생활을 시작했을 때 우리는 그렇게 마음이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머리도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주님이 좋고 주님 앞에 예배하는 것이 너무도 기뻤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에 감격이 우리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신앙 연주가 너무도 길어지면서 서서히 우리의 마음은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머리가 조금씩 복잡해지는 것을 느끼는 때가 있었습니다. '누가 교회에서 더 중요한가? 누가 더 영향력이 큰가? 누가 더 똑똑한가?'

    이런 쓸데없는 생각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사학자인 윌리암 바클레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멀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신앙 연주와 신앙의 질은 같이 나아간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처음 믿었던 마음이 훨씬 더 순수 할 수가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처럼 주님을 믿었던 그 당신의 마음이 훨씬 더 주님 앞에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신앙 연주가 높아지고 직분이 점점 더 높아질수록 잘못하면 우리의 마음은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점점 복잡하고 생각하지 않아야 될 생각들도 하게 되는 것, 그것은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의 그런 상태, 또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잃어 날 수 있는 일인 것입니다.

    이것은 성장이 아니라 쇠퇴입니다. 개발이 아니라 쇠약해 지는 그런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항상 어린이의 마음처럼 단순하고 순수해야 합니다. 물 한 머금 먹고 구름 한번 쳐다보고 또 물 한 머금 머금고 하늘 한번 쳐다보는 그런 병아리의 마음, 어린아이의 마음,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는 이런 순순한 어린 같은 마음을 소유한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 복잡해진 제자들을 향해서 주님은 어린아이 하나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를 보여 주시면서 지금 설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 앞에 어린아이를 세우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돌아 갈 수 있게 되기를 명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3절 말씀입니다.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아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제자들은 자기들이 이미 천국에 들어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천국에 들어가기 보다 천국에 입성 할 수 조차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차도윅이라는 사람이 말합니다. 어린이처럼 되는 것은 바로 보물 창고를 여는 그런 열쇠를 가지는 것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은 거대한 영적인 축복에 창고를 어린이의 마음으로 들어가지 않고는 찾을 수도 누릴 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귀한 은혜는 어린이 같은 단순한 믿음으로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만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이처럼 되기 원하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오늘 말씀하시는 귀한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먼저 주님은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돌이켜라."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되기 원한다면 먼저 돌이켜야 합니다. "너희가 돌이켜 아이처럼 되지 아니하면" 가끔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 이게 아닌데 이렇게 복잡하게 믿고 쓸데없는 것에 내 마음이 흔들리게 되면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실거야.' 순간적으로 우리는 이렇게 느낄 때가 있습니다. 방향을 전환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지금의 상태에서 회계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담,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처음 하나님의 지명을 받았을 때 그들의 마음은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순순했습니다. 몰라야 될 것은 몰랐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한 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범죄한 이유에 아담과 하와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해졌습니까! 눈이 밝아졌습니다. 몰라도 되는 쓸데없는 것, 그런 것들을 바라보면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숨었습니다. 옷으로 몸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무와가 나무 잎사귀로 자기들의 몸을 가렸습니다.

    누구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가 시작했습니다. 이전에 하지 않던 이상한 행동들을 그들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은 서로 미워합니다. 시기합니다. 또 싸웁니다. 서로서로 죽이기도 했습니다. 바벨탑을 쌓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런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이들이 하나님의 귀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이처럼 순종하시고, 아이처럼 자기를 낮추셔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면 하나님이 처음 지으신 아이 같은 마음을 가진 귀한 천국에 주인공들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잔인하게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죽이던 사울도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만난 이후에 그 마음은 아이처럼 단순해 졌습니다. "이전에 좋아하고 자랑하던 모든 것들을 분토 처럼 여겼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그 분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그 분 때문에 살아가는 그런 단순하고도 순수한 아이 같은 존재로 변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기에 돌이킨다는 말은 스스로 돌이킨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누가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뜻을 바꾼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한 순간에 결정적으로 방향이 전환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 우리 마음이 어린아이 마음으로 변하게 되는 것, 그런 상태를 여기에서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우리의 마음이 변할 수 있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어린이 주일 날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묻기를 원합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은 어떠합니까? 시기와 분쟁, 거짓과 탐욕의 마음은 없으십니까? 몰라도 될 것을 너무 많이 알고 있는 그런 마음이 아닙니까? 계산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쓸데없이 너무 많이 계산하는 그런 마음이 아닙니까? 이 시간 스스로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로 돌이킵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임하여 우리 모든 복잡한 마음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변하여 아이처럼 될 수 있는 귀한 축복이 이 시간에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바울의 동역자였던 대마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 어린 같은 마음으로 바울을 따라나섰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했습니다.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흘러가면서 "내가 이것을 하다 밥이나 벌어먹을 수 있을까?"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보다 세상에 나가서 노는 것이 더 재미있다는 생각이 그 마음속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손해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는 바울을 떠나서 세상으로 나아갔습니다. 성경에는 간략하게 대마의 비극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갔고" 머리가 너무 세상적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지금 주님이 왜 나에게 자리 잡고 있는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열심히 계산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와 비교하면서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여러분 생각을 중단하십시오. 계산을 이 아침에 중단하십시오. 경쟁을 중단하십시오. 그리고 거기에서 돌이키십시오. 복잡한 것에서 단순한 것으로 돌이킵시다. 수만 수천 가지의 갈등에서 오직 예수님에게로 눈과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이처럼 되셔서 주님 품에 안겨서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주님 얼굴 바라보는 것을 내 속에 기쁨이 충만한 아이 같은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은 또한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아이처럼 믿으십시오."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이렇게 주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다른 부분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10:15절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은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떠받들며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린아이처럼 믿는 다는 것은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떠받는 것을 의미하는 그런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마도 기억이 나실 것입니다. 저도 가끔 아이들이 어렸을 때 그들의 서랍을 열어 본 기억이 있습니다. 열어 보면 거기 안에는 쓸데없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가득차 있습니다. 이상한 것들이 가득 들어차 있습니다. 돌, 나무 별에 별것들이 가득차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떠받드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웃곤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여러분 같이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듣는 자세는 어린아이들이 자기 어른 눈에는 쓸모 없이 보이는 것일지라도 귀하게 떠받들 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받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들을 귀하게 떠받드는 마음 이것이 바로 어린아이의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마치 생생하게 보듯이 어린아이처럼 떠받들어 믿는 믿음이 어린아이의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맑은 날씨에도 산에서 배를 만들었어야 했던 노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받들어야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조롱하지 않습니까? "저 늙은이 정신이 잘못되었다." 모두 비웃고 조롱했지만 노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떠받드는 단순한 어린이 같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구원의 역사를 진행할 수 있는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풍랑 치는 바다를 향해서 단순하고도 순진한 믿음으로 발을 내 딛은 베드로 여러분 그는 마음이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물위로 걸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파도를 보면서 순간적으로 그는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아닌데, 사람이 어떻게 물위로 걸어간다 말인가?" 복잡해지는 그 순간에 그는 다시 물어 빠질 수밖에 없었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여러분 아이처럼 단순하게 믿어야 합니다. 맹자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위대한 사람이란 어린아이에 순진함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아이처럼 믿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어린아이처럼 믿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린아이처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어린아이처럼 확신하는 그런 자세, 그것이 바로 위대한 믿음의 사람의 모습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 좀 안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성경에 정확 무엇은 영감설 같은 것을 믿는 않는 모습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공부를 많이 한 주일학교 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성경도 보고, 또 열심히 신학 서적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출애굽 사건을 아이들에게 설명하면서 홍해가 갈라진 사건을 이렇게 설명했다고 합니다.

    "어린이 여러분 이건 홍해가 갈라진 것이 아니라 홍해 옆에 있는 갈대 밭 위로 40만 하나님의 백성들이 걸어갔습니다." 그렇게 한참 가리키고 있는데 한 아이가 손을 들었습니다. "선생님 신기합니다. 기적입니다." "아니 무엇이 기적이란 말이냐?" "그 갈대 밭 위로 사람들이 걸어갔다고 했는데 수많은 애굽 군대들이 말과 수레와 함께 그 갈대밭에서 어떻게 빠져 죽었을까요? 참 신기하네요." 여러분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 볼 때 모든 것이 믿어집니다. 그러나 여러분 괜히 머리가 복잡해지고 쓸데없는 것으로 가득차 있으면 하나님의 귀한 능력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부활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자의 마음, 그것은 어린아이처럼 떠받드는 믿음, 단순하게 믿는 믿음,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모든 것들을 믿을 수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마태복음11:25절 말씀입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여러분 여기 나타나는 지혜로운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 당시 자기가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남들보다 똑똑하게 여기고 있던 서기관과 바리세인들을 지칭하는 말이 아닙니까! 그들은 천국의 비밀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배운 것도 부족하고 또 지혜도 없는 아이 같은 제자들은 천국의 비밀을 알았습니다. 아이 같은 마음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순수하고 단순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그 심령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의 역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단순한 마음으로 주님 나와 동행하시는 것을 믿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린아이처럼 주님을 믿고, 주님의 믿으며 주의 역사를 믿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주님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어린아이처럼 낮추십시오." 4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여러분은 어른들은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괜히 인사치레로 말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고향에 한번씩 가면 고향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될 때 이런 인사를 하게 됩니다. "아무 것도 모릅니다. 잘 부탁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진짜로 그 마음속에 아무 것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냥 인사치레로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자기를 낮춘다고 하는 말은 단순한 의미의 겸손이 아닙니다. 아이가 낮춘다고 하는 말은 "나는 연약해요. 나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합니다. 오직 당신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절대 의존적인 그런 겸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불만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 아들 성진이가 웃지 않는데서 있습니다. 이 아이가 예전에는 얼마나 코메디언처럼 잘 웃기고 잘 웃었는지, 늘 싱글벙글 웃으면서 하루종일 쓸데없는 말을 하는지 귀찮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춘기가 되었다고 얼굴이 얼마나 심각해졌는지 웃지를 않습니다. 집에 들어와서는 묵묵히 자기 일만 합니다. 전에는 자기가 나를 향해 놀자고 했는데 지금은 제가 "얘야 한 번 놀자." 제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제는 아빠가 없어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자기도 어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무표정한 심각한 얼굴을 보면서 저는 요즘 하나님의 마음을 묵상하게 됩니다. 여러분 참으로 어릴 때 있는 그 웃음이 왜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까? 자기 혼자서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도 의젓한 어른이니 대접을 해 달라는 그런 표현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아이처럼 하나님이 없으면 전혀 못살 것 같은 모습으로 살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너무 거룩한 모습으로 너무 어른 같은 모습으로 그렇게 다가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고 하나님과 함께 대화하고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는 것을 가장 기쁘게 여기는 그런 마음, 이런 마음을 주님이 원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즐겁게 하는 방법이 여기에 있습니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십시오. 주님과 함께 걸어가고 주님과 함께 교제하는 것을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단순한 기도를 드리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어린아이 같은 그런 모습으로 그런 마음으로 나아가서 기도하고, 섬기고, 봉사할 때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영광 받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겸손의 의미입니다. 하루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못살 것 같은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단 한 주간이라도 예배를 빠지면 죽을 것 같은 마음으로 주님 앞에 예배해야 합니다. 하루라도 말씀을 안보면 죽을 것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또한 멸시, 천대, 굴욕을 당하면서 까지 자신을 낮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 나는 낮아져도 주님의 영광은 높아지면 괜찮다는 뜻, 이것이 바로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춘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내가 욕먹고 내가 좀 수고스러워도 주님의 영광만 높아진다면 나는 만족하다고 하는 마음, 이것이 바로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춘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야구를 좋아하십니까? 야구를 보면 그 사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야구 외야수들을 보십시오. 타자가 공을 쳤습니다. 공이 높이 날았습니다. 그 외야수가 공을 잡는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넘어지기도 합니다. 무릎이 까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부상을 당하기도 하고 발목이 부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공 하나를 잡기 위하여 다른 모든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높이 잡고 공을 잡았다고 기뻐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그 공을 흔드는 모습을 보셨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소중하고 나의 다른 모든 것들은 소중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고통을 당해도 감사하고 또 욕을 먹어도 감사하는 마음, 이것이 바로 자기를 낮추는 어린아이 같은 성도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내 자존심이 허락하는데 까지만 참습니다. 자신을 낮춥니다. 내가 참을 수 있는 상황까지만 참아 줍니다. 왜 전도가 어렵게 느껴집니까? 한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마치 외야수처럼 자기를 던지지 않게 때문입니다.

    그 영혼이 귀하고 다른 것은 상해도 된다는 것이 우리 속에 적기 때문입니다. 기분 나빠도 상관없고, 욕을 먹어도 상관없고, 무안을 당해도 상관이 없이 한 영혼을 구하는 일에 집중하면 반듯이 자기는 낮아지고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아직 우리는 넘어지기 싫어합니다. 체면이 구겨지기 원치 않습니다. 듣기 싫은 소리를 듣기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면서 몸을 던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복음을 전하십시오. 생명을 구원하는 일을 하면 이웃이 우리를 향해서 실없는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해도 상관없는 마음, 이것이 바로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마음인 줄로 믿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면서 때로는 욕을 먹기도 할 것입니다.

    속상한 일을 당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영광만 드러난다면 내가 낮아져도, 내가 손해를 보아도, 내가 억울해도 참을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빌립보서2:5-8절 말씀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기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십이라." 아이처럼 자신을 낮추신 주님의 삶의 모습이 여기에 농축이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너무 똑똑하고 계산 적이어서 믿지 못하는 모습에서 돌이킵시다. 의심해서 인간적인 생각에서 돌이킵시다. 그리고 어린이처럼 믿읍시다. 단순하게 믿읍시다. 순진하게 믿읍시다. 한 분만을 바라봅시다. 어린이처럼 참으로 주님을 높이고 자신을 낮춥시다. 하나님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라고 인식하면서 주님을 절대 실례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영광만을 위해 자신을 낮추는 아이 같은 성도가 되셔서 천국에 주인공이 되는 놀라운 축복을 소유하는 복된 성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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