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를 용납하라(마19:13-15)
  • 조회 수: 109, 2013.05.27 07:05:16
  • 1.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 주일을 비롯해서 어버이 주일, 청년 주일, 교사 주일 등등 교회에서도 가정과 관련된 행사가 많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가 당면한 가장 우려되는 현실이 가정 해체, 또는 가정 파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맨 처음으로 이 세상에 만드신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공동체가 가정이다. 이 사실만 보아도 가정이 얼마나 중요하냐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가정의 위기 현상은 그것이 바로 인간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정이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단지 가정을 함께 밥 먹고 잠자는 곳, 이를테면 하숙집 정도로 아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가정의 더 중요한 기능은 서로 사랑을 나누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먹고 자고 하는 의식주의 기능과 함께 쉬고 즐기는 여가의 기능, 그리고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 곳이 바로 가정이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정은 무엇보다 믿음을 익히고 실천하는 장(場)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있다고 해야 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오늘 생각하고자 하는 어린이문제를 놓고 생각할 때 가정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이 더하게 된다. 그것은 가정은 학교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뉴욕시 교육 위원회가 표본이 될 만한 두 가정을 비교해서 발표한 것이 있다. 한 가정은 저 유명한 프린스톤 대학을 설립한 보수 신학자로 매우 경건하였던 조나단 에드워드의 가정이요, 다른 하나는 뉴욕에서 술집을 경영하다가 거부가 된 마이크 슐츠라는 무신론자의 가정이다. 조나단 에드워드는 가정이야말로 자녀 교육에 가장 중요한 학교 역할을 한다고 믿고 가정에서 철저하게 신앙으로 자녀들을 길렀다. 그러나 무신론자인 슐츠는 가정은 그냥 의식주의 기능만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랜 후에 그 후손들을 조사해 본 결과는 매우 대조적으로 나타났다. 우선 조나단의 5대에 걸친 후손들을 살펴보면 전체 인원이 896명인데, 선교사와 목사가 116명, 교수나 학장을 지낸 사람이 86명, 문학가가 75명, 실업가가 73명, 장로나 집사가 286명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미국의 부통령을 지낸 사람도 있었고 상원 의원을 지낸 사람이 4명이나 되었다.

    반대로 슐츠의 후손은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슐츠의 후손은 전부 1062명이나 되었는데 그 가운데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이 96명, 정신병자나 알코올 중독자가 된 사람이 58명, 창녀가 65명, 영세민이 286명, 무학자가 460명이나 되었다.

    이런 간단한 예를 보면서 우리는 오늘 예수님께서 부모된 우리에게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을 줄 믿는다. 자녀들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먼저 대하게 되는 곳이 유치원도 아니고 초등 학교가 아니다. 가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에서 되어지는 모든 일들이 아이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대하는 무언의 교육이 되는 것이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어린아이들의 마음에 사진처럼 찍혀서 가장 깊은 인상을 오래도록 남기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이 무방비 상태가 되어서 어릴 적부터 제대로 신앙으로 양육시키지 않은 채 세상에 내어놓게 되면 결국 세상적인 가치관에 의하여 그 인격과 삶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 먼저 우리들의 가정을 자녀들에게 신앙을 가르치는 학교로 알고 또 그렇게 가꾸어 나가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 부모들이 가장 중요하게 감당해야 할 몫인 것을 아시기 바란다.

    2. 시편127:3에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고 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인식이 잘못되어 있어서 자녀들에게 부모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오늘 우리 사회에 엄청난 부조리 현상이 연출되어 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여기서부터 중요한 인식 전환이 있어야 한다. 학교에서 학생이 선생님의 소유가 아니듯이 자녀 역시 부모의 소유물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자녀는 여호와께서 우리 부모들에게 맡겨 주신 기업이라고 했다. 기업이라는 말은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한다면 선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녀를 기업으로 주셨다는 것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상급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모든 말씀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맡겨 주셨다는 말씀이 버티고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자녀들을 키워야 장차 부모가 다른 사람 앞에서 수치를 당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서는 부모된 우리들이 먼저 부모로서의 훈련을 받아야 한다.

    지난 세기 최대의 스캔들 가운데 하나는 영국의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너 왕비의 이혼사건일 것이다. 그것도 찰스의 불륜이 문제가 되어 벌어진 사건이었고 나중에 다이애너 왕비는 교통사고로 비운의 종말을 고하는 바람에 영국 황실은 물론 찰스 황태자 자신도 설자리를 잃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이렇게 되기까지 찰스의 부모들의 자녀 교육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찰스의 아버지 필립공은 군인 출신으로 언제나 아들을 군대식으로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했었다. 아들 찰스가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아들을 겁쟁이라고 놀려댔다. 4-50의 나이가 된 후에도 필립공은 아들 찰스의 의견에 항상 조롱과 비웃음으로 응수했다. 또 아들과 직접 대화하기보다는 항상 하인을 통해서 전갈을 보냈고, 심지어 아들의 생일조차도 기억해 주지 않았다. 이런 아버지의 태도는 찰스 황태자의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도 자식을 돌볼 시간조차도 없는 여왕이었다. 어릴적에는 하루에 30분 동안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지만 어머니인 여왕은 아들을 껴안아 주거나 다정하게 대화할 수도 없었다. 그 대신 대부분의 시간을 유모와 함께 지내야만 했다. 이런 성장 과정을 거친 찰스는 애정에 굶주려 있었고, 결국 이런 애정 결핍 현상이 자신의 결혼 생활까지 파경으로 끌고 가고 말았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라는 것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청지기로서 충실해야만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특별히 우리 자녀들을 부모된 우리들에게 맡겨 주셨다고 할 때 우리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맡겨 주신 자녀들을 우리들의 가정이라는 학교에서 가장 하나님 뜻에 합하게 양육하고 가르쳐야 한다. 그러므로 청지기로서의 부모 입장에서 본분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3. 요새는 가정마다 자녀들이 하나 아니면 둘이기 때문에 부모들이 과잉보호하게 된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매우 유약하다고 염려들을 한다. 또 무엇이든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금할 줄 모르고 다 해 주기 때문에 인내력이 부족하고 절제할 줄을 모르는 자녀들을 만든다고 한다. 이런 아이들이 커서 무엇을 하고 싶기는 한데 돈이 없으니까 단지 돈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엄청난 일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살인을 했는데 왜 그랬느냐고 물으니 애인과 즐기려고 하는데 용돈이 없어서 그랬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자녀 교육에 엄청난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기독교 가정 사역 연구소」에서 발표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런 일에 있어서 조화를 잘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아주 듣기 쉬운 말로 "맘마와 지지를 동시에 가르치라."고 했다.

    어른들이 아기에게 먹을 것을 줄 때 하는 말이 '맘마'이다. 그리고 만일 아기들이 더러운 것을 손에 들고 입에 넣으려고 하면 그건 안 된다는 말이 '지지'이다. 그래서 이 '맘마'와 '지지'는 아이들이 배우는 최초의 학습이 되고 가장 훌륭한 의사 소통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말들을 통해서 아직도 백지 같은 아이들이 선과 악을 구분하는 기준을 알게 되고, 질서와 규율을 익히게 되고, 욕망과 억제를 배우는 기준이 된다고 했다. 말하자면 교육학을 모르는 부모들이 가르치는 가장 교육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아이들은 '맘마' 속에서 애정과 사랑을 배우게 되고, '지지'속에서 도덕과 규범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만일 아이가 맘마 없이 자란다면 심리적인 고아가 될 것이다. 그런가 하면 지지 없이 자라게 되면 버릇없는 아이가 되고 말 것이다. 부모가 맘마 없이 지지만 강조하게 되면 자녀에게는 형벌이 되고 고통이 되어 심판의 두려움만 남게 될 것이다. 또 지지없이 맘마만 주다가 보면 자녀들이 나중에는 주체성이 없는 소위 마마보이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둘의 균형을 적절하게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엡6:에 보면 "아비들아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다.

    뒤늦게 자녀를 둔 어느 음악가가 있었다. 옛날 한옥 살았는데 가운데 마루가 있었고 그 한 가운데 난로가 설치되어 있었다. 물론 어린 아들이 위험하기 때문에 난로 주변에 철망을 쳐 놓아서 아이가 난로에 손을 데이지 않도록 했다.

    하루는 손님이 와서 난로 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이 아이가 한사코 난로에 손을 대려고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를 난로에서 떼어놓기에 정신이 없었다. 아무리 말려도 계속 같은 일을 되풀이 하니까 이번에는 아버지가 아이의 손을 잡고 연통 곁으로 가서는 아이의 손을 연통에 갖다 대었다. 아이는 뜨거우니까 금방 죽겠다고 소리를 지르며 울고불고 야단이 났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다음부터는 그 아이가 다시는 난로에 손을 가져가는 일은 없어졌다. 그래서 잠언에 보면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혀 있으나 채찍이 이를 멀리한다."(잠22:15)고 했다. 또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내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한다."(잠29:15)고 했다. 이것이 당근과 채찍 이야기이다.

    저 찰스 황태자의 아버지처럼 너무 엄격한 것도 역시 자녀를 망치게 하였지만 아무렇게나 자녀가 원하는 것이면 분별없이 무조건 방치하는 것도 역시 자녀를 망치게 되는 것이다. 당근과 채찍의 균형이 필요하고 그렇게 하기 위하여 부모들에게 믿음과 함께 지혜가 요청된다고 아니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의 책제목처럼 아버지가 되는 것은 쉬울는지 몰라도 아버지 노릇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기 위하여 기도해야할뿐만 아니라 배우고 노력하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겠다.

    4. 기독교 역사상 자녀 교육으로 가장 손꼽히는 사람이 감리교의 창설자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여사이다. 그런데 그녀가 자녀 교육에 가장 중점을 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게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자녀들로 하여금 성경을 읽도록 가르쳤다. 아예 글자를 배우기 시작할 때 성경을 가지고 알파벳과 영어를 가르쳤다. 뿐만 아니라 매일 저녁 자녀들과 함께 둘러앉아서 같이 성경을 읽었다. 그러나 수산나는 아이들에게만 억지로 읽도록 강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몸소 성경 읽는 모범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수산나의 신앙적 모범과 교육을 통하여 18세기 영국의 거대한 영적 각성 운동을 일으킨 요한 웨슬레와 수많은 찬송가를 작곡한 찰스 웨슬레와 같은 위인이 이 땅에 태어나게 된 것이다.

    여러분! 부모들이 무엇보다 신앙에 본을 보여 주시기 바란다. 자신은 성경 한 줄 읽지도 않으면서 자녀들에게 어떻게 성경 읽으라고 가르치겠는가? 자신은 전혀 기도하지 않으면서 자녀들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칠 수가 있겠는가? 자신은 교회 생활 충실히 하지 않으면서 자녀들보고 교회 생활 충실히 하라고 가르칠 수가 있겠는가?

    기러기는 알에서 태어나면서 맨 처음 보는 것을 자기 어미로 기억하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오리알을 닭이 부화 시켜 놓으면 아무리 어미 오리 소리를 들려주어도 자기가 처음 본 것 이외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할 때 우리 자녀들도 가정에서 제일먼저 그리고 가장 오래 함께 지나는 부모들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경을 보라. 북 쪽 이스라엘의 왕들은 한결같이 악한 왕들뿐이다. 왜 그런가? 어릴적부터 보고 듣고 배운 것이 부왕들의 나쁜 모습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부모들은 100마디 말보다 한가지의 행동을 통한 모범이 훨씬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역시 우리 인간은 연약하기 짝이 없고 부족하기가 이를데 없다. 이런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고 우리 자신의 노력만 가지고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우리 부모들이 해야 할일은 내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또 자녀와 함께 기도하는 일이다. 기도의 분량을 채워야 한다.

    구약에 사무엘 같은 사람은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어릴적에 이스라엘의 타락은 그 도가 넘칠정도였다. 그러나 기도의 어머니 한나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 어려운 때에 이스라엘을 새롭게 세우는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다. 신약에 바울의 뒤를 이었던 디모데는 그 어머니와 외조모의 기도가 있었다. 기독교사에서 유명한 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기도의 어머니 모니카가 있었다. 성도 여러분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는 이 말씀을 오늘 우리 현실에서 받으면서 부모된 본분을 다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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