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와서 우리는 사순절이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있는데 이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날로부터 역산하여 40일간을 말하는데 그 기간 중 주일은 제외하고 계산하는 날 수를 말합니다.
이 절기에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우리를 위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경건한 삶을 살도록 하는 절기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고난의 장면은 1주일간으로 집약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1장부터 27장까지는 예수님의 마지막 한 주간 동안의 행적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26장부터는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수난을 당하시고, 27장에서는 마침내 인류를 대속하는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구원을 완성하신 모습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한 주간은 예루살렘 입성으로 시작됩니다.
이 승리의 입성은 1주일 후에 있을 예수님의 부활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종려주일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날입니다.
그리고 종려주일과 함께 이 한 주간을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기에 고난 주간이라고 말합니다.
십자가를 지시기에 앞서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 분의 권위와 그 분이 어떤 분이신 가를 살펴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사람들로부터 환영과 영광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죄인들을 위해 고난과 대속의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입성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0장 18절과 19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여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박게 하리니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오늘도 종려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하여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구원자 예수를 만나는 축복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1. 메시아로서의 입성입니다.
본문 4절에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선지자로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본문 5절에서도 인용이 되었듯이 구약 성경 스가랴 9장 9절 말씀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예수님의 예루살렘의 입성은 성경 예언의 완전한 성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여자의 후손'이요(창3:15), '아브라함의 씨'요(창22:17), 다윗의 계보를 따라 오신 메시야이심을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유월절에는 사람들이 약 250만 명이 예루살렘으로 운집하였다고 하는데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시고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길에 펴기도 하고 또 손에 들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9절)
여기 '호산나'라는 말은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말입니다.
화려한 모습으로 예루살렘으로 가신 것도 아닌데 그 예수님이 가시는 길에 사람들이 옷을 벗어 깔아 드리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환호하고 있으니 예루살렘에 소동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온 성이 소동하여 가로되 이는 누구뇨?라고 물었습니다.
이때 무리들이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출현으로 예루살렘은 두 번 소동하였습니다.
아기 예수로 오셨을 때 동방박사들이 경배하려고 예루살렘으로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라고 물었을 때 예루살렘이 소동하였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33년 동안 자신을 숨기시고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한 곳에 오셔서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말았습니다.
호산나 찬송을 받으시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에게 바리새인들이 못마땅하여 제자들에게 찬송을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눅19:40)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땅히 받아야 할 메시아의 찬송을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그 찬양을 하지 못하면 돌들이 찬양할 것이라고 강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호산나 찬송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아이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분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구세주이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매년마다 맞는 고난 주간이지만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이야말로 우리가 영원히 사모하며 믿어야 할 구세주이심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실 구세주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고, 성경대로 죽으셨고, 성경대로 다시 사셨습니다. 그리고 성경대로 다시 오셔서 예수를 믿은 자는 천국으로, 예수를 믿지 않은 자는 지옥으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 종려주일을 맞아 우리 모두 예수님께 호산나 찬송을 올려 드려 예수님이 우리의 영원한 구세주이심을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2. 왕으로서의 입성입니다.
본문 5절에 "시온의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이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심문을 받기 위해 빌라도 총독 앞에 섰을 때 빌라도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이때 예수님은 '네 말이 옳도다'(마27: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군중들의 힘에 밀려 사형 언도를 내리자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께 가시면류관을 씌우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희롱하며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 할지어다'(마27:29)라고 한 말이나, 십자가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마27:37)고 쓴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심을 증거하고 있는 사건들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교만과 권위주의적인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 분은 겸손의 왕이었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화려한 입성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본문 5절에도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고 하였습니다.
기세 등등한 말보다 나귀 새끼를 타시고 입성하셨습니다.
화려한 카페트가 아닌 사람들의 겉옷과 종려나무 가지로 길에 깔았습니다.
웅장한 군악대가 팡파르를 울린 것이 아니라 무수한 무리들의 호산나 찬송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입성은 다른 어느 왕보다도 큰 권세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온 성이 그 소리로 소동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겸손의 왕이십니다.
말은 전쟁에 쓰이는 동물이지만 나귀는 평화를 상징하는 짐승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시고 입성하신 것은 주님이야말로 겸손하신 왕이요, 평화의 왕이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참으로 초라하고, 흠모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 분은 온유와 겸손으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세계를 정복했던 알렉산더 대왕보다도 주님은 더 강했고, 아시아와 구라파를 흔들었던 징기스칸보다도 주님은 더 큰 힘을 가지셨고, 나의 사전엔 불가능이란 없다고 소리쳤던 나폴레옹보다도 주님은 더 큰 왕이시요, 세계를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세인트 헤레나 섬에 유배된 나폴레옹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총과 칼로 세계를 정복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 십자가에 죽어 간 예수는 오직 사랑으로 세계를 정복했다"
저의 말은 사실입니다.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 겸손과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은 모든 인생의 구원자요, 모든 인생에게 영원한 왕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영원히 다스리실 통치자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실 왕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우리가 믿고 섬길 분은 오직 예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진정 여러분의 왕이십니까?
여러분은 그분의 통치를 받고 있습니까?
예수님만이 나의 생명이요, 나의 인생의 전부요, 나의 영원한 통치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만왕의 왕의 신분에 맞지 않는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은 열등감에 사로잡혔을까요? 사람들이 왕다운 화려한 대접을 못해서 우울증에 사로잡혔을까요? 수치심과 패배감에 젖어 고개숙인체 입성하셨을까요?
화려한 입성이 아니라서 분노한 얼굴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을까요?
우리는 너무 형식을 따지고, 체면을 따지고, 높임을 받으려고 하는데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남보다도 더 큰 대우를 받으려고 하고 있고, 남보다도 자신의 체면이 서야 무엇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런 어리석음을 벗어버립시다. 대접을 못 받으면 어떻습니까? 인기를 못 누리면 어떻습니까? 우리의 체면, 자존심이 상하면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겸손이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귀에 안장이 없어 자기들의 옷을 깔아 드렸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봉사요, 헌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터무니없는 헌신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주님을 섬기라고 하고 계십니다.
왕이신 그분께 우리가 가진 것을 아낌없이 드려 봅시다.
우리를 사망에서 구원하신 그 분께 내게 있는 것으로 드려 봅시다.
내가 왕되신 예수님께 드려야 할 봉사와 헌신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종려주일을 맞아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이라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메시아입니다.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실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우리의 왕되신 예수님께 종려나무를 흔들어 영광을 올려 드립시다. 우리의 겉옷을 깔아 드려 예수님을 섬깁시다.
그 분의 통치를 받으며 그 분의 명령을 따라 살아가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 고난 주간을 맞아 우리는 한끼 이상씩 금식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공로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고난을 조금이나마 동참하며 그분을 섬기기 위한 조그마한 몸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메시아가 되시며, 우리의 왕이신 주님을 변함없이 섬기시는 축복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