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가 쓰시겠다 하라(마21:1-9)
  • 2013.05.27 22:08:18
  •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고난 주간 첫날인 예루살렘 입성에 관한 내용입니다.
    유대인의 명절 중에 하나인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에 모인 순례자들이 약 250만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운집된 가운데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우습기도 하고, 코미디를 연출하는 모습일 수도 있었습니다.
    당당한 왕이 아니라 초라하게 안장도 없는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시는 모습은 모든 사람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될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분의 그런 모습은 이미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것을 성취시킨 것이요, 자신이 바로 메시아이심을 드러내는 행동이었습니다.
    그 메시아의 길이 영광의 길이 아닌 고난의 길이요, 죽음의 길이요, 십자가의 길임을 보이시기 위해 주님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마20:18).
    주님은 예루살렘 입성 직전에 자신이 타고 들어가실 나귀를 위해 제자들을 벳바게로 보내어 나귀를 가져오게 하셨습니다.
    여기서도 주님은 철저히 자신이 누구신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도 본문을 통하여 '주가 쓰시겠다 하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함께 은혜를 받고 주님의 쓰심에 합당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1. 예수님은 만물의 소유주

    본문 2절에 보면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고 하였습니다.
    3절에는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자신을 '주'(Lord)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주님이 모든 피조 세계의 주인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만물을 지으신 창조자십니다. 그러므로 '주'가 쓰시겠다는 것은 예수님이 모든 만물의 주인이심을 의미합니다. 모든 만물의 지배자요, 통치자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 자신이 기른 나귀도 아닙니다. 그러나 어느 사람의 나귀 새끼를 주가 쓰시겠다는 것은 주님이 만물의 소유주이심을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이런 진리를 일찍이 터득한 다윗은 이렇게 주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29:11-13)
    주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자이십니다. 그분이 눈에 보이는 세계를 만드셨고, 그분의 형상으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너는 내 것이라'(사43:1)고 하였고, 바울도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8)고 하였습니다.
    모든 피조세계를 만드신 주님은 피조세계에 대해 자신의 목적대로 사용하실 수 있는 권한이 있으신 절대자이십니다.
    주님께서 자신이 사용하시기 위해 모든 것을 주장하실 수 있는 권리를 가지신 만유의 주되심을 인정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순종하는 인생

    본문 3절에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고 하였고, 6절과 7절을 보면 "제자들이 가서 예수의 명하신 대로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라고 하였습니다.
    보냄을 받은 두 제자는 이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남의 물건을 어떻게 가져옵니까? 가져오다가 도둑으로 몰리면 우리를 책임지시겠습니까? 혹시 이것은 십계명중에 8계명을 범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런 잡다한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했습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말에 있지 않고 순종에 있습니다.
    주님은 저들을 보내면서 나귀 임자가 '즉시' 보내리라고 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여기 '즉시'는 즉각적으로 보내겠다는 말입니다. 바로 보내겠다는 말입니다.
    이것저것 생각해보고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계산해보고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의 신분을 확인하고, 영수증을 받고 보내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이 쓰시겠다는 말에 즉각적이 반응을 보이겠다는 말입니다.
    제자들은 가서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어오려고 했습니다.
    그때 임자들이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막11:5,눅19:33)
    이때 제자들은 당당하게 '주가 쓰시겠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들은 나귀의 임자는 즉시 보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광경이었습니다. 자신이 키우는 짐승을 가져가는데도 항거하지 못하고 순순히 내어주는 이 일은 신비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주님의 초자연적인 권능을 보게 됩니다. 주님은 어느 곳에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아시고 제자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주인이 그것을 즉시 보낼 것도 다 아시고 계셨습니다. 아니 주님은 그 임자의 마음까지도 다스리시는 전능자이심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하늘과 땅의 주인이십니다. 그 분은 언제, 어디서나 그 분이 쓰시고 싶은 사람을 자기 의도대로 사용하십니다. 자신이 쓰시고 싶은 대로 물질을 사용하십니다.
    주님은 우상의 도시인 갈대아 우르에 있는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에서 대신에 야곱을 선택하셔서 12지파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서 애굽의 물질을 이스라엘이 사용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엘리야와 과부를 가뭄에서 건지시기 위해 사렙다 과부의 마지막 음식마저도 엘리야에게 대접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이 인생의 공급자 되심을 증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굶주린 사자의 입도 봉하셨습니다.
    어마어마한 금 신상 앞에서도 절하지 않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사용하셔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어찌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역사를 다 열거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모든 피조 세계의 것들을 사용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자들과 나귀 임자는 철저하게 주님께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창조의 본연의 모습입니다.
    창조자의 쓰심에 합당하게 모든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모든 피조세계는 창조의 본연에 따라 철저하게 순종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11:36).
    이런 피조세계의 법칙에 따라 때를 따라서 열매도 맺히고, 꽃도 피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칙에 따라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열매를 거둬들이는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은 인생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에 반항하고 거역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인생은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신다고 할 때 거절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여기 나귀 임자는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요, 하나님이 준비한 사람입니다.
    그는 그 기회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 축복의 기회를 잡은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길러 새끼까지 보았는데 주님이 그것을 쓰신다고 하니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이것보다 큰 축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내가 벌어놓은 물질을 주님이 쓰신다고 할 때 그렇게 응답하는 것이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의 건강을 쓰신다고 할 때 우리의 몸을 드려 충성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의 재능과 시간을 쓰시겠다고 하면 기꺼이 모든 것을 드려 헌신할 수 있는 소망의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이 우리의 물질을 쓰시려고 할 때 순종해야지 요령을 피우면 물질이 다른 대로 세어 나가게 하십니다.
    주님이 우리의 건강도, 생명도 쓰시고자 할 때 순종해야지 순종치 아니하면 건강도 잃고, 생명도 잃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인물입니다만 미국 대통령을 역임했던 지미 카터는 주일마다 교회에서 주일학교 어린이를 가르치는 교사였습니다. 그는 대통령 선거 유세 기간에도 어김없이 주일이면 교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범적인 교사였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어서도 교사의 일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철저히 하나님에 의해 사용되어진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이 쓰신다는 말씀에 자신을 모두 드린 사람이었습니다. 참으로 멋쟁이 예수쟁이였습니다.
    이런 숭고한 신앙을 가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예언(성경) 성취의 말씀

    본문 4절과 5절은 스가랴 9장 9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주님이 어린 나귀를 타시는 것은 이미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한 일의 성취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쓰시겠다고 하는 이 말씀은 우연 발생적인 사건이 아니라 구약의 예언 성취사건입니다.
    예언성취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키는 것입니다.
    주가 쓰시겠다고 하는 이 말씀은 이렇게 하나님의 목적 성취를 이루는 말씀이었습니다.
    인생의 삶은 결코 우연이 없습니다. 성도의 삶은 다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입니다. 그러므로 짧은 인생의 길을 걷지만 우리는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주가 쓰시겠다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이 말씀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말씀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키기 위해 나귀를 키운 임자에게 주어진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주님이 자기의 것을 사용하신다고 할 때 기쁨으로 주님께 내어놓았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님은 지금도 우리가 가진 것을 사용하시겠다고 하실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의 건강을, 여러분의 물질을, 여러분만이 가진 재능을 사용하시겠다고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주가 쓰시겠다는 말씀이 들려올 때 철저하게 순종의 삶으로 주님께 드리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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