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이 쓰시겠다면(마21:1-11)
  • 2013.05.27 22:09:18
  •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시기 위해서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가까운 감람산 벳바게란 동네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이 두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맞은 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이것은 이미 기원전 520년 경에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에언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슥9:9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탓도다 하라." 두 제자들이 예수님의 명령대로 맞은 편 마을로 가서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왔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서 그 나귀 새끼 위에 얹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그 위에 타시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함께 모인 무리들의 대부분이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서 길에 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무 가지들을 베어서 길에 폈습니다. 무리들이 나귀 새끼를 타고 가시는 예수님의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큰 무리들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 가셨을 때에 온 성이 소동하면서, "이 분이 누군가?"라고 물을 때에 무리들이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고 대답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종려주일인 오늘 생각할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이 두 제자를 벳바게 맞은 편 마을로 보내면서 하신 말씀 중에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적어도 나귀 새끼의 주인은 주님이 필요로 하신다고 할 때에, 즉시로 나귀와 나귀 새끼를 함께 주님께 보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주님이 쓰시겠다면"이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주님이 나귀 새끼를 쓰시겠다고 두 제자를 통해 나귀 새끼 주인에게 말할 때에 그 주인은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거절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나귀 새끼 주인은 주님이 필요로 하신다고 하니까 즉시로 주님에게 나귀와 나귀 새끼를 보낸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필요로 하시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때에 우리도 나귀 새끼의 주인처럼 즉시로 주님에게 드릴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1) 주님이 내 재능를 필요로 하신다면, 내 재능을 기꺼히 주님에게 드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 재능이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찬양에 대한 재능도, 가르치는 재능도, 남을 섬기기를 좋아하는 재능도, 봉사하는 재능도, 그 밖에도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재능들이 있는데 이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신다면 우리의 재능을 하나님을 위해서 다 드려야 할 것입니다. 나귀 새끼 주인이 주님이 쓰신다고 하니까 자기가 가지고 있던 나귀며, 나귀 새끼를 주님을 위해 드렸던 것처럼 우리의 재능도 주님이 원하신다면 그 분을 위해서 드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우리가 잘 아는 달란트의 비유를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가면서 그 종들을 불러 한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한 종에게는 두 달란트를, 또 한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서 멀리 떠났다고 그랬습니다. 그 후에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은 부지런히 장사해서 각각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겼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땅 속에 묻어 두었다고 그랬습니다. 주인이 타국에서 돌아와서 그들과 계산을 하였습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앗던 종들은 주인으로부터 이런 칭찬을 받았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라는 큰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았던 종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가진 재능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인 것을 믿는다면, 하나님이 요구하실 때 인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찬양대원으로 봉사하는 것도 여러분의 재능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어린이나 학생들을 말씀을 가지고 가르치는 것도 여러분의 재능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필요한 것들을 알아서 채워주는 것도 역시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썩혀 버린다면 주님은 먼 훗날 우리에게 무섭게 책망하실 것입니다. "이 악하고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 쫓으라."는 책망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헨델이란 음악가는 '할렐루야'란 곡을 작곡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오고 오는 후대 사람들이 찬양하도록 하였습니다. 미칼렌젤로라는 예술가는 시스티나 예배당에 '최후의 심판'을 제작하므로 오고 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알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톨스토이와 같은 러시아의 작가는 '전쟁과 평화'나 '부활', '참회' 등의 작품을 쓰므로 그 당시 사회 전반의 구조적인 모순을 지적하고, 인간의 도덕적인 회생을 묘사하면서 하나님을 만방의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하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독일의 신학자였던 슈바이쳐는 철학자로, 음악가로, 의사로서 13년 동안 부인과 함께 아프리카 가봉의 람바르네로 가서 병원을 세우고, 원주민들을 위한 구제활동에 헌신을 다하므로 '밀림의 성자'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이 지구촌의 역사 가운데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기의 재능을 다바쳐 하나님을 위해서 살다가 간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재능을 땅 속에 묻어두는 악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필요로 하신다면 언제든지 그 재능을 하나님을 위해 드릴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정말 보람있는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2) 주님이 내 재물을 요구하신다면, 내 재물도 주님을 위해 기꺼히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역대상 29:12절에 보면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이 노래는 다윗이 성전에 필요한 모든 재료들을 백성들과 함께 다 준비한 후에 노래한 것입니다. 다윗은 부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철저히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역대상 29:14절에서는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노래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믿는 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물도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일 내가 가진 재물을 요구하신다면 그것도 하나님을 위해서 다 드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R.T 켄탈이란 분이 쓴 '왜 모든 그리스도인은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가?'라는 글에 나온 내용이라고 합니다.

    <십일조를 배우는 가장 최상의 장소는 바로 가정이라는 것을 알아야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아들, 딸들에게 십일조를 가르친다면 여러분은 그들에게 큰 은혜를 베푸는 것일 것입니다. 켄탈이 자기 힘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때는 10살 때였다고 합니다. 그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그릿'이라 불리는 신문을 팔았습니다. 신문은 그때 한 부당 10센트였는데 동네에서 한 부를 팔면 약 3센트가 자기에게 돌아왔다고 합니다.

    첫째 주에는 50센트를 벌었습니다. 그는 무척이나 기뻐했습니다! "부모로부터 용돈을 받지 않고도 내 스스로 돈을 벌다니!" 그가 거실에서 돈을 세고 있을 때 아버지가 들어오셨습니다. "내 아들아! 이 중에 5센트는 주님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5센트를 움켜쥐면서 "이건 제거예요. 제가 벌었어요. 제가 열심 히 일해서 번 거예요." 그때 켄탈의 아버지는 결코 양보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얘야, 그것은 주님의 것이란다." 이렇게 해서 켄탈의 십일조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수입의 10분의 1은 반드시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물질을 하나님께 드린 후에 내가 무엇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무엇을 받을 것이라는 보상심리가 있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린 후에 그것이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아까 나왔던 다윗과 같은 고백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만일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 나서 하나님이 나에게 복을 갑절로 주시겠거니하면서 라고 기대하는 것은 올바른 믿음의 자세가 아닌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주님이 내 자녀를 요구하신다면, 그 자녀도 주님을 위해서 기꺼히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요구하셨습니다. 그 때에 아브라함이 그것을 거부하거나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자기 아들 이삭을 정말 드리기를 위해서 번제로 잡아 드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한나는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드리기로 하나님께 서원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니 그녀는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려서 사무엘이 성전에서 자라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공산당들에 의해서 두 아들인 동인 군과 동신 군을 모두 잃어 버렸습니다. 그때에 그는 슬퍼하거나 낙망하지 아니하고 뭐라고 고백하였습니까? "내 아들들을 미국에 유학보내려고 그랬는데, 미국 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하나님 아버지! 오히려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내 자녀가 내 소유물이거나 내 것이 아닙니다. 내 아들도, 내 딸도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목사되기를 원하시면 그 아들을 목사로 드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교사가 되기를 원하시면, 그 아들을 선교사로 드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종이 되기를 원하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는 내 것이니 내가 마음대로 하겠습니다"라고 하나님 앞에 우기는 것은 성도로서 절대로 옳은 태도가 아님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4) 주님이 내 생명을 요구하신다면, 주님을 위해서 내 생명도 기꺼히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Frances Ridley Havergal 이란 분이 쓴 찬송가 348장에 보면 
    "나의 생명 드리니 주여 받아 주셔서 세상 살아 갈 동안 찬송하게 합소서. 
    손과 발을 드리니 주여 받아 주셔서 주의 일을 위하여 민첩하게 합소서. 
    나의 음성 드리니 주여 받아 주셔서 주의 진리 말씀만 전파하게 합소서. 
    나의 보화 드리니 주여 받아 주셔서 하늘 나라 위하여 주 뜻대로 쓰소서 
    나의 시간 드리니 주여 받아 주셔서 평생토록 주 위해 봉사하게 합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늘 존경하는 사도 바울은 주님이 그의 생명을 요구하실 때에 구차하게 이유를 대지 않고, 로마에 가서 그의 생명을 주를 위해 기꺼히 드렸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서머나의 교부였던 폴리갑도 85세의 나이에 하나님이 순교하기를 요구하실 때에, 그는 그 자리를 구차하게 피하거나 이유를 달지 아니하고 기쁜 마음으로 불에 타 순교하기를 자처하였던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일제 치하에서 신사참배하기를 끝까지 거부하다가 감옥 안에서 기꺼히 순교하기를 자처하였던 것입니다.

    내 재능이나 내 재물이나 내 자녀뿐만 아니라 내 생명까지도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확신한다면, 하나님이 내 생명을 요구하실 때에 그것까지도 기꺼히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주께서 쓰시겠다 하라" 이것은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내 재능이 왔습니다. 
    주님으로부터 내 재물이 왔습니다. 
    주님으로부터 내 자녀도 왔습니다. 
    주님으로부터 내 생명도 왔습니다.

    내가 가진 것 중에 주님으로부터 오지 아니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사야서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사45:7) 하나님이 우리에게 빛도, 어두움도 만드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평안도, 환난도 만드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생명도, 죽음도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이 온 우주의 모든 것들을 다 주관하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이 나의 가진 것 중에 재능을 요구하시면 내 재능을 기꺼히 하나님을 위해서 드리고, 내 재물을 요구하시면 내 재물도 기꺼히 하나님께 드리고, 내 자녀를 요구하신다면 내 자녀도 기꺼히 하나님께 드리며, 하나님이 만일 내 생명을 요구하신다면, 내 생명까지도 하나님을 위해 기꺼히 드릴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시면 뭐든지 다 드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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