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험을 이기는 비결(마26:31-35)
  • 2013.06.03 20:59:10
  • 성경을 자세히 살펴 나가노라면 크게 두 종류의 사람들로 구분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시험을 이긴 사람들과 시험에 넘어진 사람들입니다. 시험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욥이나 다윗이나 베드로나 바울이나 주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 아나니아와 삽비라, 아간 같은 사
    람들은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졌습니다. 그렇게 볼때에 시험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그 시험을 어떻게 대하느냐, 그 시험을 어떻게 이기느냐가 중요합니다.유비무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마는 시험도 미리 오는 것을 알고 예방한다면 별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현대인의 적이라고 부르는 성인병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조기에 발견하면 치료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방이라고 합니다. 요즈음 예방의학이 각광을 받고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
    다. 우리는 우린 사순절 넷째 주일을 맞이해서 예수님의 고난 주간에 있었던 한 사건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를 모델로 시험이 오는 경로를 생각하고 예방과 이기는 비결을 찾도록 합시다.

    1.자기 도취입니다.
    마태복음 26장 33절을 보면 베드로가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했고, 마가복음 14장 31절에 보면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고 누가복음 22장 33절에서는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은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라고 했고, 요한복음 13장 37절에는 "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복음서에서 나타나는 베드로의 지나친 장담은 결국 내가 제일이며 내가 예수를 제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자기 과신과 도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얼핏보면 신앙고백처럼 보입니다마는 그러나 고백은 실천이 될 때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말로야 누군들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지 않겠습니까? 헌신하지 못할 사람이 누구가 있겠습니까? 베드로의 문제는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내세우고 믿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행동보다는 말을 앞세웠다는데 있습니다. 떠벌리는 신앙, 실행없는 신앙은 시험받기 쉽고 약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십일조, 봉사, 철야, 금식,헌신,사랑등 모든 것을 입으로만 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미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친 그물에 걸린 사람들입니다. 대개의 경우 장담은 허풍스러움과 통합니다. 속이 차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장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속이 빈 사람이나 능력이 없을 때 장담을 늘어놓기 마련입니다. 서부영화를 보면 언제나 떠들고 말많은 총잽이가 말없이 눈을 굴리는 총잽이에게 당하
    는 것이 정석입니다. 허풍스레 떠들어대는 신앙은 빈 수레와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신앙태도는 시험이 찾아드는 통로가 됩니다.

    2.혈기입니다.
    마 26장 51절에보면 베드로가 칼을 들어서 사람을 친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태는 직설적으로 베드로였다고 그 이름을 밝히지를 않았습니다. 요한은 요한 복음 18장 10절에서 그가 베드로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평화의 왕이신 주님을 수행하는 베드로가 로마 병사처럼 칼을 휴대하였다는 사실도 문제이고 더욱이 칼
    을 휘둘러 말고란 사람의 귀를 짤랐다는 것은 더욱 이해가 안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의분과 혈기 비폭력과 폭력을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혈기는 자기 감정을 통제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심리적인 현상입니다. 다시말하면 자기가 자기를 억제하지 못할 때 혈기가 일어나는 것입니다.현재 미국에는 약 4천만명의 만성 두통환자가 있다고 합니다. 과학천국이라고 자부하는 미국에 왜 이토록 많은 만성 두통환자가 있겠습니까?그들은 자신들의 감정이나 욕구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의사인 그레이스와 그래햄(Grace and Graham)팀이 1280명의 외래환자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두드러지 때문에 찾아온 31명의 환자는 자기들이 멸시와 천대를 받고 있다고 느낄 때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27명의 습진 환자들은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데 심한 간섭이나 방해를 받고 있다고 느낄 때 습진이 일어났고 10명의 비염환자들은 자기들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비염이 일어났고, 7명의 천식환자들은 역시 어떤 절망감을 가졌을 때 일어났고 9명의 십이지장궤양환자들은 증오심을 품고 복수심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 병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레이스와 그래햄 의사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질병의 원인은 물리적인데 원인이 있기 보다는 정신적인데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화잘내고 신경질을 잘부리고 혈기를 내는 것도 예외가 아닙니다. 혈기를 잘 부리는데는 다음 몇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1)욕구불만 때문입니다.
    2)약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3)주의 성령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4)사단의 노리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레이버 위크박사(dr.Ray Burwock)는 혈기 혹은 분노를 가리켜서 "감추어진 폭탄"이라고 했습니다. "폭발하는 분노는 당신의 건강을 해친다.그것은 무서운 파괴력으로 궤양, 고혈압,그리고 편두통을 일으키며 감정적으로는 우울증을 일으키며 심하면 정신이상도 일으킨다."고 했습니다.
    혈기는 전염병입니다. 그리고 습관입니다.  잠언서22장 24절∼25절을 보면 "노를 품는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찌니 그 행위를 본받아서 네 영혼을 올무에 빠칠가 두려움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린 이 말씀 속에서 분노는 전염된다는 사실과 영혼까지도 파멸을 시킨다는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바울은 에베소서 4장 26절에서 "해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분을 이기려면 
    1)그 위험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유명한 생리학자인 존헌터(John Hunter)는 평소 심장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늘 입버릇처럼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이 나를 죽일것이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어느날 의학세미나에서 한 사람이 헌터박사를 공격하고 모욕을 주었습니다. 이를 맞받아 소리를 지르고 욕하는 순간에 헌터박사는 심장심실
    의 수축으로 죽고 말았습니다.죠지크릴(Georg Crill)박사는 "오래 사는 비결은 긴장과 분노를 피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2)그 무익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작은 혈기와 분노는 모든 관계를 깨뜨립니다. 가정불화의 원인이며 사회생활의 부적응의 원인이 됩니다. 백해 무익합니다.

    3)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화 잘내고 혈기 부리고 성잘내는 것은 사단의 뜻이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바울은 딤전 2장 8절에서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3.무사안일주의에 빠진 신앙태도입니다.
    마태복음 26장 40절을 보면 "너희가 한시동안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더냐"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한시동안은 극히 짧은 시간을 의미 합니다. 다시말하면 한시간 정도도 깨어 있지 못했다는 책망이며 탄식인 것입니다. 사실 그날 밤에 제자들이 한시간 정도도 깨어 있을 수 없을 만큼 중병에 걸려서 있었거나 허리가 부러졌던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신체구조상 적당한 휴식을 통해서 새로운 활력을 얻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적당한때 적당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정상적인 삶의 태도입니다. 신앙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기도해야할 때 졸고 있다든지 찬송해야할 시간에 잡담을 한다든지 일해야할 때 잠자고 있다면 시험이 오는 통로를 열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4.거리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6장 58절에보면 붙잡혀 가는 예수를 따라가는 베드로의 모습을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갔다."고 했습니다. 멀찍이라는 거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적당한 간격을 두고 불리하면 뛰쳐 달아날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한채 따라서 갔다는 말입니다.
    베드로의 이 태도를 가리켜서 부르스라는 사람은 "다른 제자들 보다는 용기있는 처신이었지만 그러나 만족할만한 것은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와 자동차 사이에는 거리가 절대로 필요 합니다.  속도만큼의 간격을 두고 달려야 급제동을 할 때 충돌을 막을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남남끼리는 적당한 간격이 필요 합니다. 그러나 부부 사이라든지 부모 자식간의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산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더구나 주님과 나 사이에 거리가 있으면 그 사이에 시험이 끼어 들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번 우리교회가 구암동에서 있을 때 지하실에 교회를 임대로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2년쯤 지났습니다마는 그때 지하를 내려가는 계단에서 한방울씩 한방울씩 물이 뚝뚝 떨어져서 거기에 그릇을 바쳐서 물을 받아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 나름대로 걱정이 되어서 주인에게도 여러차례를 이야기 해보기도 하고 
    직접 사람들을 데려다가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혹시 1층화장실인가해서 화장실을 다 파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물줄기를 찾아내기가 어려웠습니다.이유는 1층 목욕탕에 틈이 있어서 새어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물이라는 것은 틈이 있으면 샙니다. 연탄가스도 틈만 있으면 들어옵니다. 시험도 주님과 나사이에 틈이 있으면 끼어 듭니다. 틈이 생기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감정, 편견, 고집, 게으름, 완악함 등이 원인이 됩니다. 빨리 거리를 좁히고 틈을 막아야 합니다. 그래야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5.혼합주의입니다.
    마태복음 26장 69절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이 붙잡혀 끌려가신 가야바의 뜰안으로 들어가서 사람들 틈안으로 끼어 있었습니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예수를 사형시키라고 소리지르고 얼굴에 침뱉고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으로 때리고 조롱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 틈바구니에 끼어 앉은 사실부터가 잘못이었습니다.참기름은 참기름을 담았던 병에 담아야 합니다. 식수는 식수를 담는 통에 담아야 합니다. 석유통에 생수를 담으면 생수도 석유도 버려야 합니다. 베드로는 썩이는 바람에 시험에 빠졌습니다. 시험은 신앙의 혼합주의의 통로로 옵니다. 그러나 순결한 신앙을 보수하면 시험은 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시험을 이깁니까? 그것은 시험이 오는 통로를 차단해 버려야 합니다. 시운말로 원천봉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혈기는 마귀의 선물이니까 그대신 성령이 주시는 은혜를 충만히 받아서 온유와 절제와 화평의 선물을 받으면 물러갑니다. 다시말하면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됩니다.텅빈 내속에 말씀의 능력으로 채우면 허풍떨고 장담하는 짓을 그만둘 수 있습니다. 주님 바싹 따라가고 주님과의 거리를 좁히려면 주님과 연합해버리면 됩니다. 다시말하면 예수 안으로 나를 포기한채 들어가 버리면 됩니다. 
    마치 주님께서 사단의 시험을 말씀으로 물리치셨듯이 우리도 말씀을 의지하고 그 말씀대로 살면 오던 시험이 도망치게 됩니다.
    그리고 이미 시험을 이기신 주님을 의지하고 내 모든 시험을 주님께 말씀드리면 시험은 나를 떠나게 될 것입니다.광야에서 예수님처럼 우리도 시험이 오는 통로를 차단해 버립시다. 말씀과 믿음으로 무장하고 마귀의 도전을 물리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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