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속의 십자가(마27:24-44)
  • 2013.06.03 21:21:15
  •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죄 없는 예수님께서 처절하게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신 장면을 봉독 했습니다. 한마디로 생각 없는 인간들의 편파적이고 이기적이며 악질적인 무지몽매한 근성이 그대로 드러난 픽션 드라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얼토당토 않는 누명을 씌워 십자가에 못박고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는 커녕 조롱하며 모욕하고 마치 자기들이 대단한 승리자인양 착각하는 회개할 줄 모르는 군상들을 보면서 저러니 인간들은 죽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안 드십니까? 
    그들의 맘보다 그들의 모습은 곧 오늘날 나의 모습이며 타락한 인간의 모습인 것입니다. 
    타락하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영이 죽은 인간은 오직 육체의 정욕대로 행하므로 必死必滅(필사필멸) 할 수밖에 없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던 것입니다. (엡2:3) 
    그러한 인간들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셨다는 사실아래 어안이 벙벙할 때가 많습니다. 
    대부분 자과부지(自過不知)라고 남의 눈에 티는 보면서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자신을 괜찮은 것처럼 착각하고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人生生活 교본인 성경말씀을 거울삼아 나 자신을 비추어 보면 너무도 추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人間의 限界를 느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죄가 많은 나이기에 아마 나만 그렇게 느끼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구원받지 못하고 죽는다고 해도 억울할 것 같지 않아요. 왜냐구요? 
    당연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나를 살리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셨기에 내가 죽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되었으니 어찌 천만번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죄가 적어서 어떠하신 지 모르지만 나는 나이가 들수록 구원의 은총이 어찌 감격스러워 지는지 주님의 대속의 십자가 앞에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타락한 인간의 본질과 형태를 바로 공부하고 깨닫지 못한 사람은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 앞에 감동의 반응이 있을 수 없습니다. 

    ◎ 서구 어느 나라에서 딸 하나만을 기르고 어렵게 사는 아버지가 딸을 남부럽지 않게 가르쳐 보겠다는 부정(父情)에서 도둑질까지 하기 시작했습니다. 
    밤마다 이슬을 맞고 돌아오는 아버지를 보고 딸이 결국 눈치를 채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수없이 아버지를 말렸습니다. 그러나 도둑질이 습관처럼 되어 버린 아버지는 딸의 간곡한 눈물의 호소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부자 놈들 것 좀 나누어 먹는데 무슨 죄가 되느냐며 뻔뻔스럽게 말했습니다. 
    우리 속담에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결국 아버지는 체포되었는데 강도치사죄까지 범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재판 결과 사형 인도를 받았고 마을 광장에서 정오 종소리에 맞추어 교수형에 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광장으로 모여 들었고 사형수의 목에는 밧줄이 걸려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긴장 속에서 종이 울리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김없이 정각에 종을 치던 충직한 종지기였는데 이날 따라 시간이 지나도 종이 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나중에 사람을 파송하여 알아보았더니 귀머거리 종지기는 어김없이 종을 첬다고 우겨되는 것 아닙니까? 
    까닭을 몰라 조사 해보니 큰 종탑위로 어렵게 기어올라간 범인의 딸이 종속으로 들어가 추를 잡고 매달려 종이 좌우로 움직일 때마다 머리가 부딪쳐 피를 쏟고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기막힌 장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때 재판관은 당신의 죄는 죽어 마땅하지만 당신의 딸이 대신 죽었으니 사면한다고 살려주었다는 이야기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형법을 위반한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은 형법을 위반하지 않은 사람이 대신 죽어 살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영적으로 죄를 지어 죽게 된 인간은 영적으로 모두 타락해버린 어떤 사람의 대신 죽음으로 결코 사함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근본적인 죄가 없는 그런 사람이 대신 죽어 주지 않고는 그 어떤 사람이고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어 흠없고 티없이 탄생한 영적으로 순수하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을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행 4: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특별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한번 재정하신 법을 스스로 파기 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살리시려는 사랑이 극진하시기에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게 하시므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고 다시 사는 영생의 복락을 누리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곧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죽으신 십자가의 이야기는 복음인 것입니다. 
    곧 십자가는 기독교 복음의 진수입니다. 
    이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공의와 무한하신 사랑이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한낱 애국자의 죽음이 아닙니다. 순교자의 죽음도 아닙니다. 정적에게 밀린 억울한 죽음이 아닙니다. 
    곧 우리의 죄값대신 죽으시므로 우리에게 죽을죄를 사면 받게 하신 대속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실로 예수님은 사도 요한이 지적한 것처럼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었습니다. 
    우리 마음의 문설주에 뿌려질 유월절 어린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셨기에 이제 우리는 죽음에서 자유케 되었습니다. 
    죽음이 우리를 넘어 가게 되었고 우리는 영원한 가나안 복지의 주인공들이 다 되게 된 것입니다. 
    이제 구원받은 우리는 주님이 지신 십자가의 죽으심을 무색케 해서는 안됩니다. 
    무의미하게 해서도 안됩니다. 

    1. 그러면 어떻게 구원받습니까? 
    이제 인간의 선행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세상 법을 위반한 사형수가 착한 행실을 했다면 감형이나 사면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영적으로 타락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본질상 죄인인 우리는 행위나 선행으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대속의 주가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 받고 구원받는다는 이 진리를 주님의 십자가가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오늘 본문 말씀을 봉독하면서 마음이 찡하지 않으셨습니까? 
    예수님의 머리에 눌러 씌여진 가시관이 보이십니까? 
    큰못이 무정하게도 예수님의 부드러운 살을 찢으며 뼈 사이를 뚫고 나무에 박혔습니다. 
    주님의 보배로운 뜨거운 피가 흘려 내립니다. 
    무지몽매한 군병들이 예리한 창 끝으로 주님의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우리 주님은 물과 피를 쏟으시며 무려 6시간 동안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 당하시다 숨을 거두셨습니다. 
    죽으시면서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지금도 십자가상에서 그 음성이 울려 나옴을 들어야 합니다. 
    루소는 볼테르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같이 죽었다. 그러나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처럼 죽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써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대속의 제물로 죽으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믿음으로 구원받게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주님은 바로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이사야53: 4-5) 
    이사야 선지자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미리 예언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십자가가 나와 상관이 있을 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은 바로 나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먼저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 못 박읍시다. 주님의 십자가는 용서 못할 죄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 이 은혜에 감사 감격하여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은 꼭 굉장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됩니다. 
    이 고난 주간에 주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신 고난을 생각하며 헌신을 다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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