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홀로 서는 존재가 아니라 나 아닌 타인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존재로 특징지어져 있습니다.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 있어서 기쁨이요 희망으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됨을 저버리고 스스로 범죄함으로써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 기쁨과 희망이 아니라 도리어 나 아닌 남을 배척하고 미워하고 또 나를 위해 남을 이용하게 되어 인간관계는 서로 대립되고, 서로 경쟁하고, 서로 파괴하는 결과에 떨어졌습니다. 바로 여기에 인간 사회가 겪게 되는 모든 비극과 고통과 절망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인간 사회에서 나타나는 엄청난 이 모든 비극적인 일들과 사회 문제를 분석해 보면 그 원인은 인간 자체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기쁨과 희망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 고통과 불안을 주는 요소가 되었다는 것"에서 모든 문제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만약 누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오늘의 정치, 종교, 과학은 인류의 희망인가 아니면 절망인가?" 대답은 둘 다 가능할 것입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기쁨과 희망이 되는 사회가 된다면, 오늘의 종교, 정치, 과학은 인류의 희망이 될 수 있지만,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불안과 고통을 주는 존재가 된다면 오늘의 정치, 종교, 과학은 분명 절망인 것입니다. 문제는 언제나 인간 자체에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된 자리에 바로 서는 것이 가장 우선되는 인간 사회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며 인간 자신의 새로워짐을 강조하셨습니다. 우리가 실현하기 위해 바라보아야 할 "참된 인간"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백부장의 고백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 당한 이후에 운명하실 때 그 곳에서 그 현장을 끝까지 목격한 로마 군병의 지휘관인 백부장은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십자가 상에서 고난받으시고 운명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켜 본 백부장은 "이 사람을 보라 이는 참 하나님의 아들이요 참 의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백부장의 고백에서 강조되는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참된 길을 걸으셨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높으신 분으로서 가장 낮아지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낮아지심으로써 인간을 높이신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인간됨의 길이 있습니다. "스스로 낮아짐으로 다른 사람을 높이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서 나타내 보이는 인간됨의 길입니다. 오늘의 인간 사회의 모든 비인간화의 추악한 일들은 인간이 스스로 높아지려고 다른 사람을 발로 밟기 때문이 아닐까요?
둘째,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고난을 짊어지심으로써 인간에게 새 생명의 삶을 열어 주신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은 고난과 전혀 관계가 없는 분이신 데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스스로 인간이 죄로 져야 할 모든 고난을 짊어지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최 극단의 모든 고난을 자신의 몸으로 짊어지셨는데 그것이 그가 지신 십자가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에게 자유와 새 생명 안에서 사는 새로운 삶을 열어 주시고자 스스로 고난을 지셨습니다. 오늘의 인간의 문제는 어디에서 생기는 것일까요? 자신의 안일과 평안을 위해서 남에게 고난을 지우고, 자기가 살려고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것에서 야기됩니다. 바로 여기에 인간이 겪고 있는 인간 사회의 비극적인 비인간화의 현상이 있습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절망을 짊어지심으로써 인간에게 참된 희망을 열어 주신 분입니다. 절망은 죽음이라는 실존적 상황 속에 사는 인간에게 해당되는 문제인데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의 생명을 제한하시고 절망을 짊어지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은 인간이 져야 할 절망이라는 죽음을 짊어지심으로써 인간에게 절망을 넘어서는 부활의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한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에게 기쁨이 되고 희망을 주며 새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사셨다는 것에서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바라보고 실천해야 할 참 사람됨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백부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속에서 인간의 모든 절망을 극복하고 새롭게 살아 움직이는 참된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말이나 사상이 아니라 곧 생명력이요 새로운 힘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백부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목격하면서 "이 사람을 보라" 고 외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자신의 몸을 찢어서 인류에게 나누어 주심으로써, 자신 속에 있는 생명을 모두에게 나누어 주심으로써 인류에게 영원한 새 생명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인류의 참 살 길은 돌로써 떡을 만드는 것과 같은 과학적인 생산이나 경제적인 기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찢어 나누시고 자신의 피를 나누어 주심으로 인류에게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은 진정한 "나눔의 삶"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부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목격하고 "이 사람을 보라"고 외쳤습니다. 바로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인간됨의 길에 진정한 인류의 살 길이 열려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실천하자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실천하는 자가 되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게 됩니다. 여러분 나는 나의 가까운 이웃에 대하여 어떠합니까?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살아가기에 나의 가까운 이웃에게, 나 자신이 그들의 기쁨이 되고 희망이 되고 있습니까? 내가 만약 가까운 사람에게 기쁨과 희망이기보다는 고통이요 절망이 된다면, 나는 잘못 살아가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자
성도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이 사람을 보라"고 외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인류의 희망이 있고 참된 살 길이 있고 영광된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남을 위해 사신 참 인간됨의 길을 찾아가자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의 절망을 극복하고 새 생명으로 일어나는 참 희망을 회복하자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주심으로 인간에게 생명을 주신 나눔의 삶을 통해 이루어질 인류의 참 살 길을 찾자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의 영광된 미래를 가꾸어가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본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이란 곧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희망이 되고 기쁨이 되는 사회를 이루기 위한 선교적인 노력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의 성도는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실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선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샌프란시스코 근교에 위치한 스탠포드 대학은 미국의 대학총장과 학장들이 최고의 대학이라고 1983년도에 뽑은 학교입니다. 이 명문학교의 창설자 리랜드 스탠포드(Leland Stanford)씨는 칼리포니아의 주지사를 역임하였을 뿐 아니라, 태평양 철도회사 사장과, 상원위원도 역임한 분입니다. 대단한 부자였던 스탠포드씨에게는 금지옥엽(金枝玉葉)처럼 여기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스탠포드씨 부부는 이 아들에게 세상이 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주기 원했기 때문에 어린 아들을 일찍이 이태리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아들이 나쁜 병에 걸려서 9살의 나이로 죽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스탠포드씨 부부에게는 정말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쓴 잔이었습니다. 가슴을 에이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부는 비통과 낙담으로 허랑방탕하지 않았습니다. 비관하여 인생을 포기하거나 한숨만 쉬고 두문불출하는 폐인이 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인내로 다시 캘리포니아로 왔습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의 과거의 꿈과 희망은 다 먼지로 돌아갔다. 우리의 아들은 가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 부부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모든 자녀들을 우리의 자식들처럼 여기며 그들을 위해 살겠다". 그리고서는 지금의 명문 대학 스탠포드를 설립했던 것입니다.
스탠포드씨가 세상을 떠날 때 당시의 액수로는 엄청난 2천2백만 달라를 이 학교를 위해 다 바쳤습니다. 이로 인하여 캘리포니아의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전 미국과 세계의 유용한 인재들이 이 학교를 통해서 배출될 수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참된 재산(財産)과 부(富)의 평가는 그 사람이 재산을 모두 잃어 버렸을 때에도 얼마나 가치가 나가는 사람이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이 세상에서는 빈부귀천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고통이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고통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스탠포드씨는 세상에서 더할 수 없는 비통 속에서 더욱 빛나는 위대한 일을 성취하여 놓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은 비행기와 같은 것입니다. 가다가 멈추면 반드시 떨어지는 법입니다. 참된 크리스천의 생애는 번영(繁榮)에서도 타락하지 않고, 고난 중에서도 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우리 모두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도 도리어 고난을 통하여 깨닫는 은혜들을 받아 승리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