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절기는 그리스도의 길(요1:19-30)
  • 2013.06.10 21:53:38
  • 지금은 사순절 주간입니다. 그래서 다음 주일은 종려주일이 되고 그리고 또 그 다음 주일은 부활주일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번 고난주간 부활주일에 이어서「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라는 주제로서 같은 시리즈로 말씀을 드리게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 오늘 설교 후에는 하나님의 어린양,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 라는 설교를 마감하는 특별송을 부탁을 해 두었습니다. 그래서 "세상 죄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라"라는 특송이 설교 끝에 설교의 결론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제가 불러야 마땅한데 곡이 보니까 상당히 어렵습디다. 그래서 잘 소화시킬 수 있는 목사님에게 부탁을 해 두었으니까 나중에 누가 부르는지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혹 율법의 대표라고도 하고 또 선지자의 마지막이라고도 하는 대단한 모습을 가지고 나타났던, 보통 사람들처럼 집에 있지도 않고 보통 사람이 먹는 음식도 먹지도 않고 풀 옷을 입고 허리에 띠를 띠고 저 광야에 나가서 외치는 자,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 주식이 되는 이런 특별난 사람, 얼마나 선지자적이고 얼마나 율법의 대표였으면 법이라고 하면 어김이 없다 라고 자신 만만했던 바리새인들을 향해서도 이 독사의 자식들아 회개하라고 할만큼 대단하게 등장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동시대에 등장을 했었는데 잘 아시지요? 이 세례 요한입니다. 이 유명한 세례 요한이 특별난 모습으로 이처럼 나타나게 될 때에 유대인들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보내어서 "당신이 혹 그리스도이십니까?" 하고 묻기도 했습니다. "아니면 엘리야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 선지자입니까?"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이 세례 요한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큰 관심을 가지고 사람들이 모여오고 이 특별나게 등장한 세례 요한에게 인기를 부여하게 되니까 이 세례 요한이 저들을 향하여 자기에게 관심을 갖는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말하기를 "나를 볼 것이 아니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저 하나님의 어린 양을…" 하고 말씀한 겁니다. 
    다시 말해서 "너희가 율법과 그 계명에 눈을 박고 있다가 내가 그 율법과 계명의 아주 대표격으로 나타나게 되니까 내가 혹 누군가 하여 그리스도냐, 또 아니면 엘리야냐, 아니면 어느 특별난 선지자냐 하고 나에게 큰 기대를 갖고 왔지만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의 눈을 내게로 돌릴 것이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에게로 돌려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으니 내 뒤에 오시는 분이 참으로 큰 분이니라."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 관심을 돌리도록 유도한 내용이 오늘 요한복음 1장 19절부터 30절까지 함께 읽으셨던 본문의 내용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의 이 메시지대로 관심을 예수에게로 돌리기는커녕 오히려 성경으로 더 깊이 들어갔습니다. 성경을 상고하고 그리고 또 성경 속에 있는 율법, 계명 더 나아가서 성경에서 지키라고 하는 절기, 안식일, 월삭 이런 것을 철저히 지키면서 이 성경대로 살고 성경을 읽고 또 성경을 지키면 그리고 이 절기와 월삭과 그리고 이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면 곧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옆에 와 있는 예수님에게는 관심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자기들이 지키는 절기와 이 안식일 문제로서 오히려 예수님을 정죄하고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비판하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여러분도 기억하실 겁니다. 이 유대인들이 자기들이 지키는 성경 속에 상고한 이 절기의 방식을 가지고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책망한 것 중에 이런 것이 있지요. "왜 손을 씻지도 않고 음식을 먹습니까? 왜 당신의 제자들은 안식일 날 밀 이삭을 훑터 가지고 비벼먹습니까? 왜 예수님 당신은 안식일에 일을 합니까? 곧 38년 된 병자를 고쳐서 보내고 그가 자리를 들고 가게 하였으니 짐을 들고 가게 한 게 아닙니까? 당신은 이처럼 성경을 어기는 사람이니 벌을 받아야 합니다."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예수에게로 관심을 돌리라는 그런 세례 요한의 강력한 외치는 소리가 있었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님에게는 관심을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경으로 돌아가서 안식일과 월삭과 절기 지키는 방법을 열심히 공부해서 그대로를 지키면서 오히려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이 율법대로 하지 못한다고 이 절기의 예식대로 하지 못한다고 책망을 하면서 비판하는 잦은 충돌이 일어났던 것을 보게 되는데 이렇게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저들에게 말씀해 주셨는고 하면 요한복음 5장 39절에 "너희가 성경에서 즉, 구약에서 구약이 말하는 그 절기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그 절기와 안식일과 월삭의 예법대로 지키거니와 이 성경이 이 절기가 이 안식일 지키는 방식이 다 나 예수 나 그리스도 내게 대하여 말하는 것이니라." 이렇게 주님이 해명해 주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예수님에게 관심을 돌려서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의 하시는 말씀을 따르라고 들으라고 세례 요한이 외쳤지만 이 유대인들은 예수님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예수님을 따를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성경 속으로 들어가서 성경에 있는 절기와 월삭과 그리고 안식일 지키는 법을 연구하고 깊이 파 해쳐서 그대로 행하면서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오히려 그것을 못 지킨다고 말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성경 속에 있는 절기와 안식일 그 법대로 다 지키면 거기에 영생이 있는 줄 생각하고 열심히 성경 읽고 그 읽은 대로 깨달은 대로 열심히 지키고 있다만 그 성경이 즉 그 절기가 그 안식일이 그 월삭이 누구를 가리키고 있는가? 곧 나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니라. 구약성경에 나타난 모든 것들이 다 내게 대하여 말하는 것이니 너희는 그 책에서 생명이 있는 줄 알고 지키고 있다만 그것보다는 그것이 말하는 날 따르라."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겁니다. 
    유대인들이 성경을 따라 지켜오는 가장 큰 절기는 크게 세개가 있습니다만 그 셋 중에서 이번 기회에 해당되는 유월절 절기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볼까 합니다. 큰 세 절기 중에서도 유월절 절기는 가장 큰 절기로 지키고 있는데 이 절기는 일년 일차 지키게 됩니다. 
    절기의 날짜는 언제냐 하면 정월 십사일입니다. 이날은 무엇을 하느냐? 저녁에 양을 잡는 것이 그 절기의 첫 행위입니다. 이것이 바로 유월절 절기에 첫날 일어나는 것인데 일년 일차 정월 십 사일 밤에 양을 잡는 그것이 바로 유월절 이 제일 큰 절기의 제일 큰 행사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절기에 대하여는 물론 제사법은 레위기에 있겠지요. 레위기는 한번 같이 찾아보도록 하십시다. 구약 레위기 23장 5절 말씀 참고합니다. 정월 십 사일 저녁은 잘 기억해두십시오. 1월 14일입니다. 물론 히브리인들의 월력입니다. "정월 십사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이 달 십오일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칠일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는 안식하면서 아무 일 하지 못하도록 이제 지시를 하고 있습니다. 정월 십사일을 여호와의 유월절 절기로 삼도록 말씀하셨고 그리고 또 십오일은 무교절이니 이 무교절은 장례 후에 지키는 제례로서 십오일은 무교병을 그 발효되지 아니한 떡을 먹도록 하고 일 나가지 않도록 안식하도록 이렇게 지시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 그렇다면 이 정월 십사일 유월절 양이 죽는 것이 구약에서 말하는 절기의 가장 큰 행사 중의 한 행사인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아까 소개한 요한복음 5장 39절 말씀대로 구약에 있는 성경 모든 내용이,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이 절기들이나 안식일 지키는 모든 것들이 다 내게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니라. 나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했는데 과연 예수님의 말씀이 맞다면 예수님이 이 양처럼 죽은 날이 정월 십사일이겠느냐 그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죽으신 그날로 장사가 되셨느냐 그것입니다. 그래야 십오일 날 무교절을 지킬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이것을 이제 한번 찾아볼까 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신 날짜가 과연 구약이 말하고 있는 유월절 절기에 첫날 양이 죽은 그 양을 예수님으로 말한다면 그리고 정월 십사일에 죽으셨으니 예수님이 과연 정월 십사일에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그 다음날 십 오일은 무덤 속에 들어가 계신 것인지 그것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만약 주님께서 정월 십사일에 죽으시고 십오일에는 무덤 속에 들어가 계셨다면 구약에서 말하는 그 절기 정월 십사일은 의미가 있는 십사일이요 또한 그 죽은 양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는 주님의 설명이 맞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제 주님께서 죽으신 날짜가 언제며 또 십오일에는 어떻게 되어 있었는지를 마가복음 15장에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마가복음 15장 열어주시기 바랍니다. 37절 말씀 봅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제 운명하신 내용을 37절에서 마가는 본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성소 휘장도 찢어지고 한 이날이 언제였느냐? 42절을 봅시다. "이날은…"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이날은 예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운명하신 날은 예비일, 곧 안식일 전날입니다. 
    그러면 유월절을 지키는, 물론 이때 죽으신 것은 그 앞에도 나와 있습니다만 14장 12절 이하에 보면 일년 일차 지키는 유월절에 만찬을 베푸시고 이제 가서 잡혀서 고난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으니 바로 안식일 전 유월절 시작하는 그날 죽으신 것인데 이날은 예비일 곧 안식일 전 날입니다. 

    그러면 요일로 말하면 안식일은 토요일입니까? 일요일입니까? 토요일입니다. 그러면 안식일 전날 안식일을 예비하는 날에 양을 잡게 되어 있었으니까 안식일 전날 예비일이면 무슨 요일이 되겠습니까? 금요일이 되겠습니다. 이 금요일이면 언제냐 하면 바로 안식일 전날 십오일 무교병을 먹는 무교절 전날이니까 몇 일입니까? 정월 십사일입니다. 이 정월 십사일 저녁때에 예수님께서 운명하게 되신 것이지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날짜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여 주셨던 유월절 날짜와 같은 날짜입니다. 이것이 맞아진 겁니다. 그 다음에 이렇게 되셨을 뿐만 아니라 이 정월 십사일 그 유월절 저녁에 주님께서 죽으셨는데 이 죽으신 후에 어떻게 되셨느냐? 십사일에 죽으셔서 십오일에 무덤에 들어가 계시려면 십사일 저녁때에 죽으셨는데 십사일 저녁때에 장사가 되어야 됩니다. 그래야 십 오일에 무덤에 들어갈 수 있는 겁니다. 유대 사람들의 장례법이나 우리들의 장례법으로 볼 때 이렇게 죽자마자 무덤에 넣을 수는 없습니다. 삼일장이나 오일장이나 이렇게 해야 되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가능했던가? 또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작년까지도 그리하지 아니하시고 제 작년에도 그리하지 아니하셨는데 이 3년 차 되는 이 유월절 절기를 잡수시러 오시면서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내 때가 가까웠으니 내 죽을 때가 가까웠으니 이제 포도나무에서 난 것은 너희와 먹는 것이 이것이 마지막이라."라고 말씀하면서 만찬을 베풀었습니다. 그때 제자들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죽을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죽을 죄도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괜한 말씀을 하신다고 지금 제자들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6장 18절에 보면 "내 때가 가까왔으니…" 이것은 죽을 때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죽으실 때를 이렇게 아셨을까요? 그리고 금년에 먹는 이 떡과 그리고 금년에 먹는 이 포도주 이것이 마지막이 될 것임을 어떻게 아셨을까요? 그리고 이제는 다음으로는 다시는 양을 잡을 필요가 없다 라고 어떻게 말씀하실 수가 있었겠는가? 이것은 딴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과 그 천사로써 예수님에게 미리 주무시고 계신데 귀속에 가서 '이번은 너 죽어. 이번 정월 십 사일은 너 죽는 날이야' 그렇게 말해주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아셨을까요? 구약에 말씀한 모든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 등 모든 말씀이 주님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왜 33년 계시는 동안에 30세 될 때까지는 요셉의 집에서 목수의 일을 도우면서 그냥 평범한 청년으로 자랐습니다. 
    그런데 전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하나님의 아들로서 공적 공생애는 몇 세부터 시작했습니까? 33세부터 시작했어요. 지금 3년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공인된 후에 공적인 생활을 지금 3년째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첫해에 유월절에도 죽으신다는 말씀 아니하시고 둘째 번 유월절에도 죽으신다는 말 아니하시더니 이번 3년째 되는 이 공생애의 유월절을 맞을 때 "내 때가 가까왔으니…" 왜 이랬을까요? 그것은 성경에 이미 기록된 대로 자신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삼 년 된 수양을 잡아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삼 년 된 수양을 잡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공생애를 시작한, 물론 처음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만 일반인처럼 자라나던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공적 생애에 들어간 3년째 되는 때에는 내가 양 잡히던 그날에 하나님께서 정해주셨던 절기의 첫날에 즉 정월 십사일 오후에 나는 죽게될 것임을 알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내 때가 가까왔으니…" 주님께서 이처럼 말씀했던 것을 볼 때 주님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이것을 인정하시면 아멘 합시다. 주님이 그리 믿으신 대로 그리 된 줄 또한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그렇지요. 예수님께서 죽으신 날이 유월절 안식일 전날 곧 예비일 오후였으니 금요일 정월 십 사일에 죽으신 것이요, 안식일에는 십오일은 예수님께서 무덤 속에 들어가 있었다 라는 그것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성경대로라면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절기라면 십사일 날 오후에 죽고 그날에 장사가 되어야지 만 십오일에는 다 손을 털고 무교병을 먹으면서 안식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장사를 지낼 수가 있겠습니까? 십자가에 달려 죽으면 그렇게 묻어버리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사형을 당하게 되면 보통 그 죽는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아침 일찍이 매달았으면 저녁에 주로 죽습니다만 보통 점심때부터 매달기 시작하면 또 낮부터 매달기 시작하면 해 떨어지기까지 안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피를 그리고 물을 방울 방울 흘려서 고통을 당해 매달려 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주 목숨이 질긴 사람은 죽지 않습니다. 

    그러면 안 죽으면 그날 내 두고 다음날까지 둡니다. 그래서 죽고 난 다음에는 그 다음에 그 시신을 가지고서 죽은 것을 확인합니다. 해 가지고서 누구에게 줍니까? 가족에게 줍니다. 가족이 그 시신을 수습해서 장사를 지내게 되는데 죽고 난 후에 3일 지나서 하던지 아니면 이제 또 5일 지나서 하던지 그것은 그 유가족이 알아서 할 일로 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에 사형을 시키고서 그들이 갖다 장사지내주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예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때가 아까 마가복음 15장 42절에 보면 "이 날은 예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라고 말합니다. 이 저물었을 때에 겨우 이제 운명을 하시게 되는데 금요일 오후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과연 그 당일에 주님께서 장사가 되셨느냐 하는 그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것이냐 그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이제 예수를 죽이기 위해서 언제 죽일까 언제 죽일까 이렇게 하다보니 날짜를 잘못 잡아 가지고서 안식일 전날 예수님을 죽였던 겁니다. 십자가에 매달았던 겁니다. 매달아놓고 보니 큰 문제가 생긴 겁니다. 안식일을 지킬 때에는 송장을 매달아놓고 지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안식일에 그것이 죽었으면 그것을 끄집어 내려야 되는데 끄집어내리는 일을 한다든지 이런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놓고 보니 이것 보통 걱정이 아닙니다. '내일 안식일인데 곧 안식일이 시작되는데 이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아주 큰 고민을 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안식일 전날 정월 십사일 금요일 오후에 예수님과 강도들이 매달렸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것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바리새인들은 바리새인들대로 내일 안식일에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내일 곧 안식일이 이제 몇 시간 남지 않았는데 십자가에 죄수를 매달아 놓고 어떻게 우리가 안식일을 지킨단 말인가? 이것도 안식일에 걸리는 겁니다." 이게 걱정이지요. 
    빌라도는 빌라도 대로 걱정이지요. 안절부절 하는데 누가 나타났습니까? 유가족이 나타났습니까? 아닙니다. 당돌하게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누구입니까? 아리마데 사람 요셉이 나타났습니다. 이 사람은 공회원이요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감동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혹시 아까 찾아둔 성경 마가복음 15장 42절 이하를 봅니다. " 이 날은 예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막15:42-43) 
    자, 구약에 말씀한 모든 절기와 모든 일정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일거수 일투족을 미리 예언해 주신 것이라면 예수님께서 금요일 오후에 죽으시고 이날 장사가 되셔야 되겠는데 죽은 예수님을 가족들이 갖고 간다면 언제 그 밤에 무덤을 파서 그 사람들이 주로 파는 무덤은 돌무덤인데 우리처럼 흙을 그저 삽 가지고 파 가지고 되는 게 아닙니다. 돌로서 파야되는데 이게 몇 일 걸려야 될 일인데 이게 가능치가 않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부자요 공회원이요 당당한 사람이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 빌라도에게 나타나서 "그 시체를 지금 내게 주시오." "어떻게 하려고?" "내가 장사하겠습니다." 대제사장들이 또한 고민합니다. "아니 그 시체를 어떻게 하려고?" "내가 오늘 묻겠습니다." "무덤은 언제 파고? 돌무덤을 언제 팔 것인데?" "나는 다 만들어 놓았습니다." 자기가 들어가려고 미리 만들어 놓았던 무덤, 그래서 그 시체를 달라합니다. 
    그런데 걱정입니다. 해가 다 졌는데 어두워져 가는데 시체를 달라고 하는데 과연 죽었느냐 이겁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짓고 십자가에서 사형을 집행 당하고 있다 하더라도 죽기 전에 끄집어내려 가지고서 확인하기는 참 어려운 것 아닙니까. 십자가에 죽음까지 하면서 죽기 전에 끄집어 내려서 묻을 수는 생매장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이 고민 저 고민하는데 시간이 문제입니다. 즉시 묻지 않으면 안될 판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들과 빌라도 등이 연구해 가지고서 묘안을 내었습니다. 그 묘안이 뭡니까? "내려보아라. 혹 안 죽었으면 지금 시간이 없으니까 당장 갖다 묻어야 되니까 혹 안 죽었으면 꺾어라." 그랬어요. "뼈를 꺾어라. 뒤집어라." 그랬어요. 무릎을 꺾어버리고 허리를 꺾어버리면 안 죽고 배기겠습니까. 

    그런데 강도들은 아직까지 살아서 버티는 모양인데 예수님을 내려보니까 얼마나 온유하신 주님이 많은 짐을 짊어지고 얼마나 고통 당하시고 물과 피를 다 쏟아 버렸던지 이미 운명하신 것 같다 그겁니다. 맥도 뛰지 않고 숨이 이미 끊어진 것을 확인합니다. "그러나 알 수 없다. 지금 그 시간에 벌써 죽었단 말인가? 뭔가 확실히 죽도록 확인해라. 만약에 덜 죽은 사람을 묻었다 하면 되겠느냐?" 하니까 "그러면 이렇게 하자." 해서 푹 옆구리에 창을 찔렀다 그겁니다. 창으로써 옆구리를 푹 찔러서 물과 피를 다 쏟아 내렸습니다. 
    "이쯤 되면 죽은 것 아니겠습니까? 이쯤 되면 죽은 것이지요." "그렇다. 그렇다면 뭐 죽은 것이지, 갖다 묻어라." 해서 이미 예비 된 무덤 속에 그날 저녁에 갖다 묻으니 따라오던 사람이 어둠 속에서 아리마데 사람 요셉의 무덤에 주님 들어가는 것을 본 여인들이 있었다 라고 성경의 기록을 보게 됩니다. 
    이 일이 우리는 성경에서 읽으니까 평범한 일, 예수님 죽으시고 아리미데 사람 요셉의 무덤에 들어가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이렇게 간단한 것 같지만 삼일 만에 부활하신 것은 죽은지 삼일 만에 어디서 부활했습니까? 누워있다 일어난 게 아닙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신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무덤에 들어가신 시간이 언제냐? 정월 십 사일 죽자 그 밤에 들어갔다 그겁니다. 이러한 일은 평소에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초 풍습적이고 초법적입니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죽으신 날이 정월 십사일이요 그리고 그 십사일 오후요 그리고 그날 무덤 속에 들어가 십 오일 안식일에는 무덤 속에 들어가 있었다가 십 육일에 안식 후 첫날에 주님은 무덤에서 살아나셨다 그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결코 평범하게 아무 때나 늘 있는 그런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유월절 절기를 지키라고 하시면서 정월 십사일에 양을 잡을 것이요, 십오일에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그리고 그 다음날에 초실절을 지키도록 이렇게 명령했습니다. 이것이 어찌 가능한 것인가? 사람들은 양을 잡는 것이고 그냥 하니까 시키는 대로 절기를 잘 지켰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절기를 지켜오고 있습니다. 정월 십사일은 철저히 지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께서 죽으신 날짜가 정월 십사일이었다는 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까? 물론 성경을 통해서 아신 분도 계신 것입니다만 별 관심 없으셨을 줄 믿습니다. 왜 주님 죽으신 제삿날인데 주님 죽으신 날을 그다지도 기억들 안 한단 말입니까? 주님은 제사만 받고 계실 것이 아니라 단 삼일 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날을 소홀히 여긴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느냐? 성경 한군데 더 참고하도록 해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12장 13절 14절 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찌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찌니라" 그랬어요. 
    "너희는 이 날을 절기로 삼아 이 날을 기념하여…" 이날이 언제라고요? 처음 양이 죽는 날, 그래서 양이 죽는 그때에 애굽의 장자는 다 죽고 이스라엘의 장자는 그 문설주와 인방에 양의 피를 발랐더니 다 보호를 받아 살아났습니다. 이 날을 기억하여 이날 양을 잡는 날이 유월절 첫날이 몇 일이라고 레위기에서 아까 읽었습니까? 정월 십사일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이 있기 전부터, 잘 들으십시오. 이 유월절 양이 죽기 전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을 했습니다. 이날을 기억하라 그랬어요. 이 날이 몇 일이라고요? 정월 십 사일입니다. 이 정월 십사일을 기억하여 여호와의 절기로 삼아서 대대로 지킬지니라 이랬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날을 철저히 지킵니다. 우리가 음력 정월 초하루가 설이요 양력 1월 1일이 신정 날인 줄로 지키는 것처럼 알고 있는 것처럼 대를 이어가도 이 날 바꾸지를 못하는 것은 또 음력 8월 15일이 추석인 것을 누구나 기억하고 지키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날을 지켰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이 정월 십 사일을 지켰습니다. 지금도 지키느냐? 그렇습니다. 지금도 지키고 있다는 겁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날을 기억하고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겁니다. 
    하나님께서 정월 십사일을 양 잡는 날로 정하신 것은 정월 십사일에 양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최종 목적이 아니라 정월 십사일에 죽으실 하나님의 어린 양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 날을 정하신 것이요, 또한 양을 잡으셨던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양이 실제가 아니라 양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죽으실 죽음의 그림자인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다시 상기해 보십시오. "너희는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로 생각하고 절기와 그 날짜를 철저히 기억하고 그때마다 양을 잡고 철저히 절기를 지키고 있다만 그 절기가 다 내게 대하여 말하는 것이니라. 그 날짜가 다 나의 죽을 날을 말하는 것이요, 그 양이 나를 말하는 것이니라."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그때 죽었던 양들은 참 제물이 아니요 그 제물이 가리키는 예수 그리스도가 참 제물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너희는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로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철저히 그 날짜를 하나님이 명령한대로 그날을 기념하고 그 날 되기만 하면 매년 저 갈릴리 한 해변에서까지 너희는 예루살렘으로까지 몰려와서 유월절 양을 잡고 있다만 그것이 다 내게 대하여 말하는 것이니 장래에 있어질 나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니 그림자를 너희는 믿을 것이 아니라 그림자가 보여주는 실물을 믿을 것이니라. 지금까지는 실물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그림자인 양을 잡았고 실물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정월 십 사일을 지켜왔지만 그 정월 십사일에 죽을 나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났으니 그 정월 십사일에 죽을 양이 아닌 양이 가리키던 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을 것이니 나를 믿으라. 나를 따르라 하였으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이 죽는 그 해에도 십자가 밑으로 달려 나아갔던 것이 아니라 번제단 앞에서 여전히 양을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그때에 나타나 "지금까지 너희가 정월 십사일을 기억했노라.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하루도 어김없이 정월 십사일 저녁에는 양을 잡아 왔도다. 그것이 누구를 가르킨 것이냐? 구약 성경 모두는 장차 나타나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한 것이니 그 정월 십사일에 정말 죽으셔서 인류를 구원할 것은 양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시요, 정월 십사일에 양을 잡도록 명하시고 그날을 기억하라 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죽는 날이 그날인가 아닌가 보고 그날에 죽는 자가 있으면 내 아들인줄로 믿으라고 한 것이니 너희는 이제는 성경에서 눈을 떼어서 성경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라. 나를 그리스도냐, 나를 엘리야냐, 나를 선지자냐 하고 나를 따를 것이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이제 보라. 지금까지는 삼 년 된 수양을 보았지만 이제는 수양으로써 정월 십사일을 지키던 것은 이것이 마지막이고 그 장본인이 나타났으니 이제는 그림자를 놓아버리고 실상을 붙들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하고 관심을 주께로 돌리도록 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해 그 날에도 여전히 십자가가 서고 있는데도 양을 때려잡고 있었으니 그들이 잘 믿는다 라고 하는 성경대로 산 것은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버린 것이 된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지금도 성지 순례를 가보면 그 통곡의 벽 앞에서 지금도 그 뙤약볕에 성경을 놓고서 읽고 있습니다. 이 레위기를 읽습니다. "정월 십사일은 유월절이요, 이날 우리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우리는 양을 잡노라. 피를 어떻게 받노라." 하면서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많이 봅니다. 성경대로 삽니다. 
    그러나 그 성경이 가리키던 정월 십사일 성경이 말하던 정월 십사일에 잡을 양은 누구였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천 년 전에 이미 그날 죽으시고 양을 양이 가리키던 그 참 죄를 지고 가던 하나님의 어린 양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이 그토록 가르치던 주님이 옆에 와서 죽으시건만 죽으시는 십자가 옆에는 가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들고 양을 그 양을 제단 위에 갖다 놓으면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소서 하고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성경 많이 읽는 사람이지요. 성경대로 사는 사람이지요. 그러나 이 사람들은 성경이 말하여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옆에 두고 오히려 성경에 눈을 박고 성경대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을 안타깝게 여긴 세례 요한이 "이제는 너희가 지키는 그 절기의 날짜와 너희가 절기에 잡았던 그 양 거기에 매달려 있지 말고 그것이 가리키는 예수 그리스도 나타났으니 나에게도 관심을 베풀지 말고 내 뒤에 오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보라. 바로 이 사람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하나님은 당신의 어린양 이 예수 죽을 날을 위하여 벌써 출애굽 때에 날짜를 정해주셨고 예수 그는 그날에 죽을 것이라.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날 오후에 죽으시고 그날 오후에 무덤 속에 들어가신 바가 되어 세상에 없던 법대로 무덤 속에 들어갔던 바가 되어 다음 날에 무교절을 지키게 될 것이라." 이렇게 말씀하신 세례 요한의 외침을 우리가 들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은 주장하면서 예수님의 죽으신 날은 거의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까 출애굽기 12장 13절 14절에 말씀한대로 "이날은 여호와의 규례 영원히 대대로 지킬 날짜이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날짜를 알아야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예수그리스도 탄생하신 날 대단하게 생각합니다. 12월 25일이라고 정해놓고 그 날을 대단하게 여깁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부활하신 날 부활절 대단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죽은 날짜는 과연 언제냐? 부활하기 3일 전이지, 대강 이 정도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어릴 때에 탄생하시고 33세에 또 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어려서 12월 25일에 나셨다면 예수님이 정월 십 사일에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사신 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났다가 또 난 것이 아니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어야 우리의 죄를 사하게 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죽으신 날짜를 기억하면 그 날짜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에 죽으셨다면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었던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무덤을 깨뜨리고 살아나셨으니 우리는 그의 부활로 우리의 부활이 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을 보면서 성경 곧 골로세서 2장 16절로 17절에 말씀한 그대로 구약 성경 속에 있는 절기 그리고 월삭 안식일 등은 정작 주인이 아니라 절기와 안식일과 월삭 주인은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니라.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그러니까 잡히던 양이 주인이 아니라 그 양의 주인은 예수이신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양이 잡히던 정월 십 사일이 주인이 아니라 그날의 주인은 예수이신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무덤에 들어가셨던 그 날이 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안식일의 주인이요 죽는 날의 주인이요 부활의 주인인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를 따라가야 될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로 날짜를 정해주었더니 유대인들은 그 날짜를 예수보다 더 붙들었습니다. 그 날짜 저녁에 양을 잡으라고 명하여주었더니 성경대로 한다고 지금도 양을 잡노라고 오신 예수님은 아니라고 하고 따르지 않습니다. 이게 성경을 많이 아는 겁니까? 이것이 성경을 다 지킨 겁니까? 저들에게 물어보십시오. 성경을 달달 외우고 하나도 어김없이 다 지켰노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진정 지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림자를 붙들고 그림자를 믿는 것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를 보았으면 그림자를 낸 실물을 찾아야 될 줄 믿습니다. 그림자를 밟았으면 그림자가 잡혔으면 그림자를 만드신 실제의 인물을 찾는 것이 성경을 잘 본 것인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잘 보았다면 성경을 다 지켰다면 성경을 붙들었다면 예수를 잡은 사람인줄 믿습니다. 
    그래서 저 유대인들 지금까지도 예수를 붙든 것이 아니라 날짜를 붙들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예수의 십자가를 붙든 것이 아니라 그날 잡을 양을 붙잡고 있습니다. 이들을 가리켜 주님은 뭐라고 말했습니까? 이제 너희가 이스라엘이 아니요 저 이방인들이 참 이스라엘이라 했습니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나를 붙든 저 사람들이 나의 자손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다 붙잡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성경 구절을 많이 알고 성경 속에 있는 내용 하나 하나를 다 지킨 사람이 물론 좋은 일입니다만 지켜서 죄 될 것은 없습니다만 그것을 지킨 것이 참 믿음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보시고 참 예수님을 깨달은 자가 그리고 참 예수님을 붙든 자가 참 예수님을 붙잡은 자가 믿는 자가 성경을 다 읽은 자인 줄 믿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제대로 읽은 자가 된 줄로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 할 그 때에도 절기와 안식일 지키는 것을 예수 따르는 것보다 더 귀한 일로 여겨서 성경은 말하기를 절기와 안식일이 모두 예수 찾으라고 우리에게 보여준 주소와 같은 것인데 약도와 같은 것인데 약도를 붙잡고 집 앞에 왔는데 집에 들어오라고 하니까 약도만 붙잡고 안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지요. 이게 유대인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 사람들을 불쌍히 여깁니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어떨까요? 과연 예수님을 발견하고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찾고 이 사람이 성경이 말하는 그 예수구나 생각을 하고 과연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유대인들 중에 간음한 여인을 율법을 좇아서 죽여야 된다고 율법에 기록한 대로 죽여야 한다고 돌을 들고 몰려들 왔습니다. 율법 때문에 돌을 들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돌을 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율법은 누구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예수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여인 앞에 있는 예수님은 그 여인을 살려주려고 애를 씁니다. 정죄하지 아니하려고 굽혀 글을 쓰기도 합니다. 
    "나는 이 여인을 정죄하지 않겠노니 나를 이 여인을 용서하겠노니 여인아, 이제는 다시 이런 죄를 범하지 말라." 주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둘러섰던 사람들 돌을 들고 왔던 사람들은 율법을 주인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돌을 들고 왔습니다. 여인을 놓고서 혼란합니다. "내가 율법을 주인으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이 주님을 주인으로 삼을 것인가?" 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저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습니다. "내가 율법을 좇아 돌을 든 것이 잘못이구나. 율법보다 크신 이가 주님이시구나. 율법은 그림자에 불과하다면 주님은 그 실상이시구나." 주님의 말씀을 듣고 돌을 다 떨어뜨리고 돌아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중에 성경에 나타난 이 간음한 여인처럼 죄인이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쫓아 법을 지킨다고 "이 여인을 정죄해야 한다. 이 사람을 제명해야 한다. 이 사람을 출교해야한다. 이 사람은 집사 자격이 없다. 이 사람은 목사 자격이 없다." 우리는 돌을 들고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옆에 이 죄인 옆에 누가 또한 계신가? 주님이 어김없이 계십니다. 그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이 어김없이 계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돌을 들고 율법의 종이 되어야 될 것인가? 아니면 율법이 말하는 예수님의 종이 되어야 될 것인가? 
    우리는 지금 같은 장소에 주님도 모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가방마다 율법책을 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디에 매여 있습니까? 날짜를 믿고 있습니까? 절기 속에 있는 그 법을 믿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러한 법들이 가리키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했습니까? 그가 어디 있습니까? 십자가 위에 있습니까? 무덤 안에 있습니까? 살아났습니까? 올라갔습니까? 그러면 성령으로 오신 주님을 여러분은 만나고 계십니까? 성령 보혜사로 오신 주님을 만나서 그 주님이 지금 뭐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깨닫고 계십니까? 아니면 성경 속에 있는 헌법 속에 있는 법 책만을 붙들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성경 모두는 이 구약 모두는 신약을 말하고 있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성경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보거든 율법과 계명을 보거든 그것으로 만족하지 마시고 그것을 지킨 것으로 영생을 얻었다 생각하지 마시고 그것이 가리키는 예수님을 꼭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율법이 가리키는 예수 어디 계신가? 이 계명이 가리키는 예수 어디 계신가? 이 율법의 뜻이 가리키는 이 하나님의 말씀이 가리키는 예수님은 어디 있는가? 
    성경 속에 들어가 그 속에 영생이 있는 줄로 생각하고 거기에서 지키는 대로 다 지키어서 영생할 줄 생각하고 안심하고 있지만 오늘 주님의 이 말씀을 다시 한번 들으십시오. 요한복음 5장 39절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너희가 성경을 상고하고 성경에 있는 내용들을 철저히 지켜서 양도 잡고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치려고 돌 치려고 들고 왔다만 내가 여기에 있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내가 지금 십자가에서 죽고 있는데 너희가 양 잡는 그날에 어느 날이더냐? 정월 십사일이 아니더냐. 내가 십 사일에 죽고 있는데 바로 그 뒷날이 무교절이 아니더냐. 내가 무덤 속에 들어가 있는데 너희가 잡으라고 하던 그 양이 구세주냐? 그것은 장차 오실 하나님의 어린양을 가리켜주신 것이 아니더냐. 그러면 그 양을 누구를 위하여 지금까지 잡았느냐? 날 만나기 위하여 잡지 않았느냐. 그 날을 누구 만나려고 지켰느냐? 나를 그 죽는 날 지켜보려고 내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발견하려고 그날을 지켜오지 않았느냐. 
    그런데 내가 그 날짜에 그 양처럼 내가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심지어 삼일 후에 부활했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따르지 아니하고 나를 등 돌리고 나를 정죄하고 너희가 붙들고 있는 성경 내용 가지고 당신과 당신의 제자들은 법을 어기고 있소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 너희가 성경을 아는 자냐? 너희가 성경을 믿는 자냐? 너희는 읽기만 하였고 너희는 성경대로는 살았지만 너희는 글꾼만 되고 말았느니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글이 말하는 그 내용이 말하는 예수를 찾으라. 사모하라. 구하라. 그러면 주를 만날 것이니…."

    오늘날 주님을 만나시려는 여러분, 성령에 의존하시기를 바랍니다.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와 계시니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 영혼과 만나고 계신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한다면 성경을 다 읽었고 다 지켰을지라도 그 지킨 것 가지고 예수를 정죄하는 예수의 백성을 정죄하는 이런 유대인과 같이 될 수가 있으니 그리 되지 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세례 요한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너희가 성경에 들어있는 내용대로 살기 위하여 지금도 양을 잡고 그 날짜를 지키고 있지만 그래서 내가 율법의 주인 같고 그리고 선지자의 대표 같으니까 내게 와서 그인 줄 알지만 나는 그가 아니라. 나는 정월 십 사일에 죽을 자도 아니요, 나는 너희가 잡는 양을 대표할 자도 아니요, 그리고 삼일만에 살아날 자도 아니니라. 너희는 성경에서 예수님이 어떤 분임을 알았으면 언제 죽을 자임을 알았으면 그리고 성경이 가리키는 자를 만나라는 것을 너희가 알았으면 이제는 너희 관심을 그 절기에 두지말고 그리고 나 세례 요한에게 두지 말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저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교회 생활하면서 성경 상고하면서 예수를 보려하시기 바랍니다. 세상 죄 지고 가는 예수를 보려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예수를 보려하시고 예수 만나기를 원하시면 아멘 합시다. 우리의 아멘 하는 소원을 이시간 특송으로 주 앞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특송)-

    저 유대인들이 지금까지 유월절 정월 십 사일을 주님의 명하신 그대로 기억하는 것 오늘날까지도 양을 잡고 있는 것 저들은 성경을 다 읽었고 성경의 지시대로 철저히 행한다 하고 있지만 주님을 지금 옆에 두고 양을 따로 잡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 날짜를 지키고 있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약간의 문제는 있습니다. 예수님 만나서 그저 좋으니 '오직 예수, 오직 예수' 하면서 구약과 예수는 별 상관 없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뭐 율법 율법 따지냐고 합니다. 그저 용서 용서 은혜 은혜면 되지 무엇 때문에 그런 것 따지느냐고 말하고들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약을 초월하여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구약의 모든 말씀대로 나타나셨습니다. 구약 전부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약도 지켜야될 줄로 믿습니다. 그저 예수 예수 좋은 예수만 은혜 베푸신 예수만 생각합니다. 구약과 신약은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이 주간 이 말씀 시리즈를 위해서 지난주간 오프닝 메시지로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구약에서만 남의 머리가 되고 남의 위에 있도록 한 것이 아니라 신약 예수님께서도 구약과 다르지 아니하고 똑같은 말씀을 하셨는데 더 구체적인 말씀으로 남의 위가 있고 남의 머리가 되도록 하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은 아멘 했습니다. 신약과 구약이 틀리지 않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날짜를 기념하고 지키라고 해서 오늘날까지 지키는 그들도 문제입니다. 그날이 가리키는 예수님이 왔는데도 예수님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차라리 그 날짜 가지고 예수님을 비판하는 그들도 큰 문제입니다만 예수 예수 믿노라고 하면서 구약이 가리키는 율법과 계명은 무시하고 그런 것은 안 지켜도 되고 그냥 은혜 은혜 하면서 자유로우려는 우리도 문제입니다. 
    오죽하면 예수님 죽은 날짜도 모르겠습니까. 성경이 말하고 있는데도 그냥 그렇게 무시하고 살았습니다. 은혜는 거저 나온 것이 아닙니다. 율법과 계명 구약에서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 나온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약을 통해서 예수를 찾았으면 예수를 믿으려면 구약에 나타난 모든 율법과 계명을 다 지켜야 예수를 지키게 된 줄로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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