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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마가복음 9:14-24/ 언어생활 속에 감추어져 있는 축복 [주일낮]
  • 조회 수: 656, 2013.06.16 10:15:23
  • 하나님은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고,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으며, 성령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시고 말씀을 통하여 하늘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 주십니다. 따라서 말은 생명이며 능력입니다. 말 한마디로 나의 영혼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며, 말 한마디에 전쟁이 일어나기도 하고 평화가 오기도 하며, 개인 간의 갈등이나 국가 간의 관계도 말 한마디로 풀어지기도 하고 더욱 악화되기도 합니다. 가정의 행복도 말로 얻을 수 있고, 자녀들이 잘되는 길도 부모의 말에 달려 있습니다. 좋은 말을 하면 좋은 자녀가 되고 신앙의 말을 하면 신앙 안에서 자라게 됩니다. "나는 네가 가장 소중하다. 나는 너를 위해 항상 기도한다. 나는 너를 언제나 사랑한다. 나는 너를 믿는다.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이러한 말은 자녀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고 앞날을 열어주는 말이 됩니다.

     

    피터 로드 목사님이 지은 ‘축복의 언어’가 생명의 말씀사에서 번역판으로 나왔는데 이 책에는 어릴 때 어떤 한 마디 말을 듣고 생애가 달라진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모아 쓴 책입니다. 축복의 말을 듣고 마술과 같이 그 생애가 바뀐 사람들의 예를 수도 없이 들면서 말 한 사람이나 말을 들은 사람이나 다 축복 가운데 사는 이런 신비로운 이야기들을 보면 우리 언어생활에 반드시 복과 화가 같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책입니다.  

     

    며칠 전 아침 교회 출근하기 전에 잠간 TV를 통해서 어떤 가정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고등학생 딸 때문에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딸이 아무래도 동성연애에 빠져 있다고 본 것입니다. 딸인데도 예뻐지기보다는 씩씩하게 보이려고 하고, 머리도 스포츠머리처럼 짧게 자르고, 오빠가 입는 좋은 옷은 다 자기 옷장에 갖다 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 친구 일이라면 그냥 새벽 1시라도 쫓아나가는데 이것은 단순한 우정 이상의 감정이라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자가 그 딸을 만나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해 보니까 정말 동성연애자가 맞아요. 언제부터 이렇게 동성을 좋아하게 되었느냐... 하고 물었더니 이 여자 애가 중학교 때 이웃의 어떤 아저씨에게 성폭행을 당한 이후부터라고 했습니다. 성폭행을 당하고 난 뒤에 엄마는 의외로 왜 그런 아저씨에게 문을 열어주어서 일을 당한 거냐 하면서 오히려 딸을 나무랬답니다. 그러면서 이 딸이 마음속으로 상처가 깊어가는 줄 모르고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바보처럼 그렇게 산다’고 하며 딸을 막 타박하는 겁니다. 방송에서 보니까 그 엄마가 딸한테 말하는 투가 정말 수준이하로 느껴졌어요. 어찌 사랑스러운 딸에게 저렇게 말 할 수 있을까... 물론 딸이 그렇게 사는 것에 대하여 답답함이 있겠지만 말을 너무 심하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딸이 하는 말이 그 아저씨로부터는 성폭력을 당했고, 어머니로부터는 언어폭력을 당해서 자기를 위로해주는 친구를 의지하게 되었는데 그 감정이 동성연애 쪽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엄마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결국은 성폭력을 한 아저씨 못지않게 그 엄마도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딸과 함께 울어주고, 딸과 함께 분노했다면 어찌 딸이 그렇게 되었겠습니까? 이렇게 우리가 말을 할 때 자신은 의도하지 않지만 자신의 말 속에 사람을 헤치는 독도 들어 있고, 사람을 살리는 신비로운 약도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할 때에 항상 긍정적이고 신앙적인 말, 남을 칭찬하고 존경하는 말, 용기를 주고 힘을 주는 말, 덕이 되고 감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좋은 언어를 쓰고, 덕스러운 말을 쓰고, 남을 격려하는 말을 하라고 합니다. 하물며 심령을 치유하는 복음과 말씀을 품고 사는 신앙인들이야 말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부정적인 말을 쓰는 사람을 책망하는 모습을 봅니다. 귀신들려 벙어리 되고, 간질까지 앓은 불쌍한 아들을 둔 아버지가 예수님께 말씀합니다. ‘무엇을 할 수 있거든 도와주소서!’ 이 말을 듣고 예수님께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 아버지가 얼마나 예수님께 결례를 행했습니까? 천지만물을 지으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복을 받고, 인생에 성공을 하려면 말을 잘 해야 합니다. 말 속에 복이 숨어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말은 사람과 사람 간에 통하는 수단이지만 사실은 하나님도 우리가 하는 말을 다 들으십니다. 우리가 하는 말은 하나님께 직접 전하여 집니다. 시편139:4에 보면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나이다" 라고 하십니다. 요즘 미국의 국가안보국의 정보수집에 대해서 말이 많습니다. National Security Agency라고 하는데 흔히 NSA라고 약자를 쓰죠. 이 NSA는 지구 위를 흘러다니는 모든 신호를 장악하여 이른바 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엿듣습니다. 흔히「공중의 모든 소리를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에 비유하기도 하죠. 이 기관의 비밀이 지난 주 스노든이라는 인물에 의해 노출되었습니다. 이 사람에 의하면 NSA에서 하루에 17억 건의 통신 감청, 이메일 검색 등이 이루어진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경악하고 두려워합니다. 내가 하는 말, 내가 사람들에게 보내는 문자, 카톡, 편지 내용이, 다 이 기관에 스크리닝 된다는 것이니까 사생활이 다 드러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사람들이 난리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보면 더 경악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우리 마음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까지도 다 보고 계시니까... 이것은 사생활 침해라고 해도 보통 사생활 침해가 아닌 거죠. 그런데 미국 NSA는 두려워하면서 왜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미국의 국가안보국 이상의 정보처리 능력이 있으셔서 특별히 우리가 하는 말을 다 들어요. 다 스크리닝 해요.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다 정보처리를 하셔서 그 말대로 축복해 주시고, 다 그 말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두 가지 의미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첫째, 말은 그 자체가 믿음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말이라는 것을 아주 가볍게 생각합니다. 한 번 해 보고, 아니면 말고... 그러지만 사실은 우리가 하는 말 자체가 믿음의 행위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책망하신 것은 왜 말을 믿음이 없이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 제일 먼저 변하는 것이 말입니다. 거친 말들이 부드럽게 변하고, 입만 벌리면 욕하고, 음담패설이 나왔는데 예수 믿으면서 ‘아멘’, ‘할렐루야...’ 이렇게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말이 바뀌지 않으면 그 다음의 것들은 말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야고보 사도는 한 샘에서 쓴물과 단물이 같이 나올 수 없다고 하며 믿음이 있는 말, 성령충만한 언어생활을 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어떤 여자가 전도를 받아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길을 가다가 앙숙이었던 동창생을 만납니다. 이전 같으면 서로 자기 자랑하며 상대방 기를 꺾기 바쁜데 대화를 들어보니 역시 교회에 다닌 티가 절로 납니다. 먼저 그 앙숙이 교회 다니기 시작한 여자 앞에서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얘, 우리 남편은 아주 자상해. 다이아몬드 반지가 더러워지니까 2캐럿짜리로 새로 사주더라!" 그러자 교회 다니기 시작한 여자가 무척 부러워하며 말합니다. "어머, 아주 환상적이구나!" 의외의 반응이 나오자 또 다른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그뿐이 아냐. 우린 두 달에 한 번씩 외국 여행을 가기로 했어."  "그래? 아주 멋있고, 환상적이구나!" 이렇게 상대방이 의외의 반응을 보이자 이번에는 상대방에게도 자랑의 기회를 주고자 묻습니다. “그런데 너는 요즘 무얼 하길래 잘 보이지도 않니?” 그러니 이 여자가 대답합니다. "요즘 교회 다니고 있어. 그런데 교회에선 ‘꼴값 떠네’ 라고 말해야 할 때 반드시 '아주 환상적이구나'라고 말해야 한다고 배우고 있어!"

     

    교회에 다니면 제일 먼저 말이 달라집니다. ‘꼴값 떠네’ 라는 말이 진심으로 ‘환상적이네’라고 바뀔 때 그 때가 바로 축복 받는 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어떤 일이든 주님께 가지고 나오는 문제들이 있을 때 그것에 대해 믿음이 없는 말은 아예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랬잖아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느니라’ 이 아버지의 태도가 틀렸다는 말입니다. 귀신들려 말도 못하는데다 간질병으로 그렇게 죽도록 고생을 하는데 병으로 고치는 것도 아니고, 의술로 고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침 받는 것인데 그 하는 말이 기가 막히는 것입니다. 어떤 환자 보호자들은 의사가 고치지 못한다고 손을 놓을 때 고함을 지르고 소동을 피웁니다. 못 고친다는데도 ‘너는 고칠 수 있잖아? 고쳐내란 말이야!’ 얼마나 절실하면 이렇게 하겠습니까? 정말 고치겠다는 의지가 철철 넘치잖아요? 그런데 무엇이든 할 수 있거든.... 아주 마치 예수님을 무시 하듯... 그래가지고 뭘 좋은 것 얻으려고 주님 앞에 서 있을까요?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기적이 믿음의 말을 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셨습니다. 내 믿음대로, 내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집니다. 믿음과 기도와 말과 성령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기도하고 믿음이 있어야 긍정적인 말을 하고 그 말에 성령이 역사합니다. 기도하면 성령 받고 믿음이 생깁니다. 성령이 역사할 때 말이 달라집니다. 믿음의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하는 것을 들어보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하는 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천국의 보화는 말에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부강하여 큰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를 움직이는 지도자들이 모두 입으로 큰일을 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이렇게 언어생활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복스러운 말을 쓰면 반드시 복이 들어오고, 부정적인 말을 쓰면 반드시 인생이 그렇게 바뀝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죽겠다, 죽겠다 하며 모세를 원망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 광야에서 죽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처럼, 갈렙처럼 긍정적인 말을 하게 될 때 두 사람은 광야에서 죽지 않고 한 사람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고, 한 사람은 12 지파 가운데서 왕이 나오는 유다 지파의 수장이 되어 80이 넘어서까지 가나안 땅 변경까지 땅을 넓혀나가는 이런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정리를 해 보면 그래요.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은 그 믿음대로 복을 받고, 부정적인 말을 하면 그 입에서 나온 쓴 물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그대로 쓰게 될 것이며, 다른 사람을 칭찬하고, 격려하고, 복을 비는 사람은 그 생애가 영화롭게 되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헐뜯고, 비판하는 사람은 로마서 2장 1-2절에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하신 말씀처럼 자신이 남을 판단한대로, 남을 비난한대로.... 그대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화와 복이 바로 우리의 언어생활에 있는 것을 알고 복을 부르는 언어생활, 천국의 언어생활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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