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라도의 예수께 행한 일을 보며(요19:10-12) [고난주간]
  • 2013.06.20 10:28:05
  • 로마의 지배하에 있던 유대인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던 바로 그때의 일입니다. 요즘 영국의 통치하에 있던 홍콩이 이제는 영국의 통치를 벗어나서 아마 내일인지 모래인지 본국 중국으로 다시 반환되는 반환식을 한다고들 하고 있습니다만 영국에 홍콩이 지배를 받고 있던 것처럼 당시 유대가 로마에 지배를 받고 있던 바로 그때 예수님이 오셨고 또 십자가에 죽으시게 되셨지요. 이 유대인들이 예수를 끌어다가 죽일 생각으로서 자기들의 제사장인 가야바의 뜰에서부터 또다시 로마의 관정으로 예수를 끌고 가게 됩니다.

    로마 관장에서 직무를 하고 있는 빌라도가 유대인들의 고소하는 고소 소리를 듣고 나왔습니다. "이 사람을 왜 고소하느냐" 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유대인들이 말하기를 "행악자입니다. 당연히 고소 받을만한 그런 행악자입니다." 그랬더니, 이 빌라도가 또 말하기를 "너희들에게도 자치 법이 있지 아니하냐? 행악자이면 너희 법대로 처리하지, 이러한 사람을 왜 로마의 관정에까지 데리고 왔느냐?" 하면서 데리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때 또 유대인들이 소리 소리 지르기를 "총독각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일 권(權)이 없습니다. 당신네들이 우리를 지배하면서 웬만한 것은 처리하도록 했지만 사람을 죽이고 살리고 하는 일은 로마의 권한에 두었기 때문에 이 사람을 죽여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죽일 권이 없기 때문에 로마의 관정으로 끌고 온 것입니다." 하면서 이 제사장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로마 빌라도 총독 관저로 왔던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주로 요한복음 18장과 또 19장 사이에 있는 예수님이 고난받으시며 죽으신 그 내용을 중심해서 생각을 해 보고자 합니다. 18장 28절 이하를 살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8장 28절

    "저희가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저희는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저희에게 나가서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 하니"(요18:28-31)

    이 내용과 마찬가지로 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일 생각으로서 자기들 권한밖에 있는 죽일수 있는 권한을 가진 로마 빌라도에게 찾아간 사실을 성경에서 함께 읽어보았습니다. 오늘 제목이「 빌라도의 예수께 행한 일을 우리가 보며」" 라는 제목인데, 이 빌라도가 고소 당한 이 예수님께 대하여 어떤 행동을 했는지, 또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의 신앙의 현 주소를 한 번 찾아볼까 합니다.

    예수님을 넘겨받은 이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심문을 하기 시작합니다. "네가 과연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당신이 지금 내게 질문한 그 질문이 당신 마음대로 하는 질문이요? 아니면 다른 사람들 얘기를 듣고 묻는 질문이요?"라고 했더니, "여보시오. 예수,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소. 내가 당신나라 사람이요? 당신을 고소한 당신네 사람들이 당신을 유대인의 왕이라 한다고 문제를 삼고 있으니 그래서 묻는 것 아니겠소." 이렇게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네 말대로 총독의 말대로 나는 유대인의 왕이요." 이렇게 대답하게 되지요. 이렇게 말씀을 드렸고 또 여러 가지를 심문한 후에 이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아무 죄를 찾지 못했습니다. 죽일만한 죄는 커녕 아무 죄를 발견하지 못하고 내어놓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예수를 꼭 죽여달라고 갖다 맡겼으니 그렇게 쉽게 놓아줄 수도 없습니다.

    물론 당시의 로마이니까 큰 권세를 갖고 있기는 해도 지금 총독부가 어디 있느냐 하면 예루살렘에 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로마 본국은 먼데 있고 자기가 총독부에만 들어와 있기 때문에 그 유대인들이 떼를 지어 가지고서, 뭐 총독을 죽이려고 하면 죽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사실은 권세는 가졌지만 군중을 보고는 상당히 겁을 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빌라도가 예수님을 어떻게 하려고 했는고 하면, 어찌하든지 자기는 예수를 죽이지 아니하려고, 또 자기가 예수 죽이는데 가담하지 아니 하려고 해 가지고서 군중 앞에 나와서 한 제안을 합니다. "여러분, 곧 유월절 아닙니까? 이 유월절에는 항상 죽어야 마땅한 사람 하나씩을 내가 놓아주는 전례가 있으니 이번에 사면해야겠소. 사면하겠는데, 여러분을 괴롭히고 그 사람이 여러분 동네에 돌아다닌다면 무서워서 잠을 자지 못할만한 '바라바'라는 강도와 그리고 유대인의 왕 이 둘 중에 하나를 내가 놓아주겠소. 여러분들의 소원대로 해 주겠소. 예수를 놓아주랴, 바라바를 놓아주랴?" 이렇게 묻게 됩니다.

    "그에게서 죄를 찾을 수가 없다." 하며 결국에는 예수를 놓아주려고 이 빌라도는 온갖 노력을 다 하고 있습니다. 이 빌라도의 예수를 놓아주겠다는 시도는 아주 대단했습니다. 18장 33절부터 또 참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저희가 또 소리 질러 가로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러라"(요18:33-40)

    요한복음에는 그저 "누구를 놓아주랴, 예수를 놓아주랴?" 하니까 "예수 말고 바라바를 놓아주세요." 이렇게 말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마태, 누가복음 전부 합쳐보면, "이 두사람을 내어놓고서 둘 중에 하나만 내어주겠다, 누구를 택하든지 너희가 택하라." 이렇게 제안하게 되었는데 의외로 "그 무섭고 독한 강도, 바라바를 우리에게 내어주어서 우리가 밤에 잠을 못 잤으면 못 잤지, 저 예수는 죽여야 됩니다." 이런 반응을 받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 빌라도는 예수님을 죽이지 아니하려고 여기에서 그친 것이 아닙니다. 더 노력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백성들이 예수를 죽이라고 이처럼 극한 반응을 보였지만 그는 예수를 죽이려 하지 않습니다.

    아마 그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예수님을 안 죽이려고 애를 쓰는지, 어쩌면 마태복음 26장19절에 보면 자기 부인이 총독자리에 앉아서 예수를 재판하고 있는데 사람을 보냅니다. 급히 사람을 보내 가지고서 빌라도의 귀에다 말을 해줍니다.

    "여보 당신, 오늘 그 사람에 대해서 당신은 아무일을 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에게 상관하지 마십시오. 내가 어젯밤 꿈에 그 사람을 인하여 굉장히 애를 썼습니다. 그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다가는 당신 큰일납니다." 이렇게 아마 부인이 재판하고 있는 도중에 일러준 사실도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마는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이 사람이 또 예수를 살려보려고 2차시도 1차시도 이렇게 하게 됩니다. 19장으로 가서 또다시 시도하는 그의 시도를 봅시다. 19장 4절부터 보겠습니다.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이에 예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자색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저희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대제사장들과 하속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요19:4-6)

    이 빌라도는 이 같은 상황에서도 "내가 아무리 예수를 심문해 보았지만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 죽이려면 너희가 죽여라." 이렇게 하면서 이 빌라도는 예수를 살리려는 예수에게 피해를 기치지 아니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너무나 강하게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하니까 어쩔수 없이 그냥 "그러면 나는 손대지 않겠다. 내 병사들로 십자가에 못박게 하지 않겠다. 너희가 죽이든지 살리든지 마음대로 해라." 이렇게 이제 말하게 되는데 곧 이어서 7절 이하에 보면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은 저가 자기를 하나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서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주지 아니하시는지라"(요19:7-9)

    자 여기서부터 심각해집니다. 이 빌라도가 예수를 만나서 심문할 때부터 뭔가 자세가 다릅니다. 당시의 빌라도 로마의 총독으로서 유대인들이 죽여달라고 부탁하면 뭐 사람하나 죽이는 것, 파리 목숨하나 끊는 것이나 진배 없을 겁니다. 간단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빌라도는 예수에게 아무일을 행치 아니하려고 합니다. 성경 다른 곳에 보면 예수를 포승줄로 묶어서 이렇게 끌고 오려고 예수를 찾으려 갔을 때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고 나오실 때 나사렛 예수를 찾는다 했습니다. 가룟 유다가 입을 맞추고 떠나갔고, 예수님을 잡으려할 때 예수님이 너희 누구를 찾느냐? 나사렛 예수를 찾습니다. 내가 나사렛 예수니라 라고 말할 때 잡으려 가던 병사들이 대풍에 겨가 날라가듯, 확 쓰러진 사실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를 잡아오는지 자기들이 끌려오는지 몰랐다고 하는 보고를 또 받게 되었지요. 그러니까 이 빌라도가 생각하기를 이 사람은 분명히 보통 세상 사람이 아니다. 외계인쯤은 되지 않겠는가? 아마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고 '이 사람은 보통 사람들이 갖고있는 그런 수준 이상의 굉장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쉽게 다룰 것은 아니다' 이런 생각을 일단 하고서 예수님을 이렇게 만나서 심문을 하게 되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또 자기 부인의 권유 때문에 그랬는지는 몰라도 예수님을 살려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바라바를 놓아주고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하니까 "그러면 너희 마음대로 하라." 했는데, 그러면 흥분한 이 유대인들이 안할 말을 했어요. 빌라도에게 무슨 말을 했는고 하니 "저가 우리 법대로 한다면 당연히 죽어 마땅할 것은 저가 스스로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소. 그랬단 말이지요?"

    그런데 유대인들이 그렇게 말한 사람을 돌로 쳐죽일 수도 있고, 불살라 죽일 수도 있어요. 뭡니까? 간음한 사람도 돌로 쳐죽이거나 불살라 죽일 수 있는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한다 라면, 만약에 아니라면 그것은 뭐 당장 죽일 수 있는 권리가 있어요. 그런데 왜 못 죽이고 있었습니까? 로마에게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너희가 함부로 사형에 처하지 말라 했기 때문에 지금 법이 있는데도 못 죽인다' 라고 하면서, 그 사람이 죽을죄를 지은 것은 무엇이냐? '저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한다'라고 했던 겁니다.

    빌라도가 스쳐 지나가는 말이지만 그 말이 귀에 속 들어왔습니다. "뭐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뭔가 이상했어. 그럴 것 같아." 해서 예수님을 저들에게 넘겨주다가 다시 관정 안에다가 그대로 붙들고서 다시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예수님에게 묻습니다. "그대 분명하게 다시 말하시오. 당신 어디로부터 왔소?" 그러니 뭐냐하면 땅으로부터 사람에게서 난 사람 자식이냐. 하늘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이냐. 이제 묻는 겁니다.

    이 빌라도는 분명히 그러려니 싶어서 "그대가 어디로부터 왔소?" 라고 심각하게 물어 들어갑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아까 조금 전까지는 심문 받을 때는 "내가 유대인의 왕이로다." "그것 누가 물었느냐? 네 말이냐? 유대인들의 말이냐?" 유대인들이 그렇게 하더라고 하니까 별 관심 없는 줄 알고 대략 예수님 자신을 밝히다가 이제 이 빌라도가 나갔다 오더니 심각해 가지고서, "그대가 어디로부터 온 사람이요?" 이렇게 묻는 겁니다. 그러면 바꾸어 말하면 "당신은 세상사람이 아니구료?" 이렇게 물은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도 이 빌라도의 심각한 모습을 읽으시고 제대로 알려주었다가는 이 빌라도가 넘겨주지 않을 것 같거든요. 예수님이 죽으실 수가 없을 것 같거든요. 그때부터 예수님께서 묵비권을 행사했어요. 아무 대답을 해 주지 않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더욱 무서워합니다. 이 빌라도가 아주 더욱 두려워하게 되는데, 이 빌라도가 예수님의 아무 말씀을 안 하시는 것을 보고 더욱 겁이 납니다. 겁이 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려고 또 다시 애를 쓰는데 이제 오늘 본문으로 택했던 10절 이하를 봅시다.

    "빌라도가 가로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 하시니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요19:10-12)

    이제 세 번째까지, 이제 한 번 재판하면서 로마의 총독으로서 속국의 백성들인 유대인들 앞에 나와서 죄 없다. 이 사람 못 죽인다 했다가 또다시 훤화하고 티끌을 날리면서 이렇게 소리를 지르니까 또 다시 심문을 하고서 두 번째 나와 가지고서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죄를 찾지 못하였으므로 이 사람을 죽일수 없소." 다시 또 말합니다.

    그런데 또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바라바를 내어놓으시오." 이렇게 하게 됩니다. "그래 너희 마음대로 하라." 이렇게 하고 내어주게 되는데, 또 다시 저들이 말하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니 우리 법대로 다 집행할 수 있는 권리만 있었으면 당신에게 가지도 않고 저사람을 죽였을 것이요."라고 하니까 "당신이 어디로서요?" 하고 묻게 되는데,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지 아니하시면서 "나를 네게 넘겨준 사람들의 죄는 더 크니라." 그랬어요.

    이 말씀을 듣고서 이 빌라도가 더욱 겁이 나서 12절에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그러니 3차 시도를 했습니다. 이렇게 살려보려고, 예수님을 살려보려고 크게 애를 쓴 것을 보게 되는데, "힘썼으나" 12절 중반절에 "유대인들이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이 가이사는 로마의 황제지요. 황제가 발령을 해서 총독으로 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이사는 빌라도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인데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와서 박석(히브리 말로 가바다)이란 곳에서 재판석에 앉았더라 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저희가 소리지르되 없이하소서 없이 하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가로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저희에게 넘겨 주니라"(요19:12-16)

    이런 상황으로 이제 변화되어 간 것을 보게 되는데, 어쩔 수 없이 자기 손으로는 죽이지 않아도 이제는 유대인들에게 "그러면 너희 마음대로 하라." 하면서 넘겨주게 되었던 것은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당신은 가이사 황제가 보낸 총독인데, 우리에게와 당신에게 왕이 하나뿐인 줄 아는데, "어떻게 유대인의 왕이 따로 있다는 것을 당신은 인정하려 하시오? 만약에 가이사 황제 말고, 이 예수가 또 다시 왕이라면 두 왕이라는 뜻인데 당신이 그렇게 하고도 가이사의 충신이라 할수 있겠소! 당신은 그러면 반역자입니다. 우리가 가이사에게 직접 가서 고발하겠소." 이렇게 되니까 "그러면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 이렇게 해서 이제 내어주게 되지요.

    세 번씩이나 예수를 살려보려고 이 빌라도가 노력을 대단히, 대단히 했지만 분위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예수를 저들에게 내어주었습니다. 자기 스스로는 자기 병사들로 집행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자기는 벗어나 보려고 유대인들에게 넘겨주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 요한복음의 사도 요한만 빌라도가 세 차례나 예수를 살려보려고 무죄를 주장했던 사실을 이 요한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누가도 이것을 대단한 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 23장 22절에 보면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행하였느냐" 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 사람을 죽일 이유를 찾지 못한다' 이 요한도 대단한 사도이지만 누가는 의사출신으로서 얼마나 핵심을 잘 집어내는 제자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 4복음서를 읽을 때 요한복음 하고 누가복음을 읽으면 가장 깊은 내용까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누가가 기록한 것도 빌라도가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시도한 것이 세 번째나 했다는 겁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이렇게 애를 썼다는 것을 이 제자들은 큰 이슈(issue)꺼리로 삼고있는 것을 여기에서 보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 빌라도의 중심은 어떤 것입니까? 빌라도의 중심은 어떤 것입니까? 바로 이것입니다. 그 하나는 '예수는 무죄' 빌라도의 중심생각은 이렇습니다. 예수는 무죄, 또 두 번째는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예수를 죽여서는 안된다. 또 세 번째는 무엇입니까? 예수는 땅으로부터 사람들의 자식으로 난 것이 아니라 온 곳이 다르다는 겁니다. 이것을 빌라도는 정확하게 간파를 했습니다.

    많은 대중 앞에 나와서 "그에게서 아무 죄를 찾지 못하노라." 하면서 재판권을 가지고 있는 재판장으로서 자기의 재판권위와 실력을 놓고서도 분명하게 세 번씩이나 말하기를 "아무 죄가 없고, 이 사람을 죽일 이유를 찾지 못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빌라도의 중심사상이요. 그리고 빌라도의 일종의 믿음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 빌라도는 예수님을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어쩌지 못해서 예수를 유대인에게 넘겨는 주었지만은 유대인들에게 끌려가는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예수님, 그 예수님이 얼마나 안타까웠던지 그 예수님이 죽으시는 것이 얼마나 속이 상했던지, 넘겨버렸으면 총독관저에서 그저 쉬고 있어야 될 사람이 이 예수님의 일에 대해서는 아주 노심초사(勞心焦思) 예수님의 십자가 현장에까지 또 따라나왔어요. 이 빌라도가 뭐 하러 나왔겠어요? '내가 언도를 내렸으니 죽여라' 그러고 나왔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지고 가는 십자가를 멈추어라." 그 십자가의 길을 멈추어 서게 해서 얼른 자기가 미리 관저에서 만들어놓은 패에다 판에다가 글을 썼습니다. 그 글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이는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라"라는 글이었습니다. "이는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라" 그 글을 써와 가지고서 그 예수님이 짊어지실 십자가에 스스로 붙입니다. 스스로 붙입이다.

    그런데 얼마나 이 사람이 공부도 많이 했고, 얼마나 확실하게 하려고 했던고 하니 자기들의 글씨인 로마 글씨로서만 쓴 것이 아닙니다. 로마 글로도 썼고, 이 사람이 공부를 많이 해서 히브리 글로도 썼고 그리고 당시의 헬라 글로도 썼으니 당시에 읽을수 있는 모든 족속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예수의 그 패를 볼 때 총독이 써 붙인 것이니 확실한 겁니다.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 대제사장들이 그것을 보니 기겁을 할 일입니다. 죄인이라고 죽이는데 우리의 왕이 아니라는 뜻에서 죽이는데, 빌라도가 나와 가지고서 직접 써서 붙이니, 무엇 때문에 사람 죽는데까지 자기가 나오며 이렇게 직접 붙이고 이런 야단을 치는가 해서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가서 "총독 각하, 그렇게 쓰시면 되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제발 그것 좀 붙이지 마십시오." "내가 내 마음대로 붙이는데 당신들이 무슨 말이 많소!" 총독이 하겠다는 데야 누가 지금 그를 막을 수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이 절충안으로 제사장이 뭐라고 했는고 하니. "그러면 그 앞에다가 이는 유대인의왕 나사렛 예수라는 그 패 앞에다가 '자칭'이라는 두 글자를 좀 써넣어 주십시오." 실제는 아닌데 자칭 그랬다고, "자칭 그랬다고 써 붙여주십시오." 하니 빌라도가 말하기를 "무슨 소리? 나는 내가 쓸 것을 정확하게 썼소." 하고서 자칭이란 말도 쓰지 않고 그 총독이 갖다 붙였으니 누가 그것을 떼어 낼 것입니까?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는 "이는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 라고 정확하게 기록된 사실도 이 성경에서 찾아볼 수가 있는데, 요한복음 19장 17절부터 한 번 보실까요. 요한복음 19장 17절 이하

    "저희가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히브리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오시니 저희가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예수의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빌라도가 대답하되 나의 쓸 것을 썼다 하니라"(요19:17-22)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 빌라도의 심정을 여러분, 충분히 헤아리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빌라도는 중심으로 예수를 인정하고 살리려고 온갖 시도를 했고, 마지못해 어쩌지 못해 예수를 십자가에 죽게는 했지만은 평소처럼 자기들의 병사로 자기들의 사형 집행관으로 집행하도록 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의 손에다가 넘겨줌으로서 유대인들은 유대인들대로 아주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유월절이 당하기 전에 이 예수를 로마쪽에다 넘겨버리고, 자기들은 유월절 절기를 깨끗하게 받으려고 또 유월절 절기가 시작되면 로마의 관정 안으로 들어가도 안된다는 겁니다.

    로마의 관정안에 발자국을 들여놓아도 거룩함을 잃기 때문에 문 밖에서 여보시오, 여보시오, 불러내어서 빌라도에게 예수를 넘겨주었다고 아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려고, 그러니 이 유대인들은 로마에다 예수를 넘겨버리고 로마가 죽이게 만들고, 자기들은 유월절에 깨끗함으로 유월절 만찬에 참여하려고 했는데, 이처럼 밀치고 닥치고 밀치고 닥치고 하다보니 온갖 투쟁 끝에 결국은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라." 하니까 어쩔 수없이 이 유대인들이 예수를 넘겨받았으니 유월절에 예수를 죽이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다급했던지. 금요 유월절 만찬이 시작되기 전에 예수의 시신을 처리하려고 해가 다지고 다음날까지 두어야 되는데 다음날까지 둘 수가 없어서 "가서 해지기 전에 예수를 끌어내리고, 강도들을 끌어내려서 뼈를 꺾어서 빨리 죽여라. 빨리 죽여라." 했는데, 가서 뼈를 꺾으려고 강도는 뼈를 꺾었는데 예수님을 뼈 꺾으려고 보니까 얼마나 고난을 많이 당했던지 "이미 숨이 졌더라." 그랬어요.

    그래서 뼈는 꺾지 않고 창으로 찔러 죽여서 얼른 처리를 했습니다. 얼른 처리를 했습니다. 이 참 복잡하게 되어졌습니다. 이렇게 복잡하게 되어졌는데 이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하지만은 로마 사람 빌라도가 죽이도록 만들었으나 자기들이 또 뒤집어쓰게 되었고, 이 빌라도는 자기에게 넘어왔지만 어찌든지 예수를 자기가 손대지 아니하려고 저 유대인들에게 넘긴 이런 사람을 보게 되는데, 빌라도의 이 예수께 대하여 행한 일을 보면서, 빌라도가 이 예수께 대하여 행한…(B면)(일이 무죄한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한 노력이)

    몇차례 계속한 것을 보면서, 자기가 집행해야 될텐데, 예수를 넘겨준 이런 사실들을 보면서 저와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지 되지 않겠나 그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아는 것, 우리가 예수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 우리가 예수의 영광을 위하여 살려고 하는 것, 이러한 우리의 노력이나 이 빌라도의 노력이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빌라도의 중심이 이러했다 하여, 중심이 뭡니까? 예수님은 죄 없다는 사실, 죽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 또 이 예수는 땅에서 난자가 아니고 하늘로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했다고 보아지는데, 이러한 중심과 이러한 '입술의 고백을 가졌다'라고 해서 이 사람이 구원을 받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죽여야 되는 예수인데도, 자기가 손대지 아니하려고 저 유대인에게다 억지로 넘겨주었기 때문에 이 빌라도가 정상참작이라도 받았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빌라도 중심이 이쯤 되면, 빌라도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이쯤 되면, 빌라도의 입술의 고백이 이쯤 되면 말이요. 많은 사람 앞에 자기를 죽이려고 대어드는 무리들 앞에서 이 사람 아무 죄가 없다고 세 번씩이나 외칠 정도가 되고 또 성경 다른 곳에 보면 절대 "이 사람은 죄가 없소. 나는 이 사람과 상관하지 않겠소" 하고 손을 씻은 이런 것 등을 보면 그의 중심은 무엇입니까?

    대단합니다. 예수께 대해서 굉장히 호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졌다'라고 해서 그 사람이 구원을 받았느냐 이것입니다. 그 사람이 특별히 위로를 받았느냐 그것입니다. 성경은 그에게 '죄 없다 아니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를 '구원받았다'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것을 생각해보아야 됩니다. 아주 중요한 얘기지요. 오늘 본문으로 체택된 요한복음 19장 10절-11절 다시 한번 봅니다. 11절을 보지요.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준자의 죄는 더 크니라 하시니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요19:11-12) 그랬어요.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습니다. 뭐 함으로요? "나를 넘겨 준자의 죄는" 넘겨준 자가 누굽니까? 유대인의 대제사장입니다.

    "나를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라고 했으니까 빌라도가 죄 있습니까, 없습니까? "네가 나를 십자가에 넘겨주는 죄는 당연하지만은 물론이거니와 너에게 나를 넘겨준 사람은 너의 죄보다 더 크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마음놓고 죽였다'라고 했습니까? '놓아주려고 힘썼다' 했습니까? "놓아주려고 힘썼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빌라도가 죄인입니까? 아닙니까? 죄인입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죄인입니다. 이렇게 되어버린 겁니다. 왜 그렇게 되는지 이제 살펴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이 빌라도에게 "너는 죄인이로다" 하니까 그 죄인이 안되어 보려고 "예수를 놓아주려고 힘썼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이 사도들께서, 주님께서 행하신 이 모든 일들에 대한 많은 진리가 이 땅에 다 쌓아도 쌓을 데가 없을 만큼 많은 사건들 가운데 특히 신경으로 체택한 그들의 믿음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랬습니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죽으셨다." 이토록 요한이 빌라도의 예수를 구원해 보려고, 죽지 않게 해 보려고, 죄 없다고 하는 것을 세 번씩이나 강조했다는 사실을 이 요한기자 사도 요한이 기록하고 있고, 누가도 세 번씩이나 '예수를 살려보려고 그에게서 아무 죄를 찾지 못했다고 고백했다'라고 하면서 굳이 세 차례씩이나 '했다'라고 하면서 제자들이 기록을 하고 있으면서도 제자들의 심경은 무엇입니까?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죽으시고" 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너는 나를 죽이는 죄인'이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그 죄인 안되어 보려고 몸부림을 쳤던 것을 여기서 볼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제자들을 통하여 오늘 우리에게 진정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이겠습니까?

    제 아무리 마음으로, 제아무리 중심으로 원하고, 그리고 믿을지라도, 입술로 고백을 한다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입술의 고백대로 행동하지 아니했다면, 제아무리 중심으로는 믿었어도 육신이 약하여 나타나는 열매는 딴판으로 맺었다면, 하나님께서는 행함이 보장해주지 않는 그 입술의 고백은 믿음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중심으로 예수께 대하여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고, 아무리 입술로 그는 아무 죄가 없습니다 라고 외쳤다하더라도 그의 중심의 생각과 그의 입술의 고백대로 행동이 따라줘야지 말 따로 행동 따로, 마음 따로 육신 따로라면 하나님께서 믿음을 볼 때에 마음만 보고서 믿음이라 하지 않고, 입술에 '주여'만 보고 믿음이라 하지 않고, '주여, 주여' 하는대로, 마음에 먹은대로 행동으로 열매를 맺을 때에 "그 열매를 보고 아느니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빌라도가 아무리 마음속으로 주님을 주님으로 알았지만은 입술로 그는 대중 앞에서 공개까지 했지만 결정적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빌라도를 중심에 마음가지고 구원한 것이 아니라, 입술의 고백가지고 그의 믿음가지고 구원한 것이 아니라 그의 예수께 대한 결정적인 행동을 보고 그의 행위를 보고, 입술의 고백도 거짓이요, 그의 중심의 믿음도 거짓이라는 것으로 인정했던 것을 보게 되는데, 이 빌라도의 사건을 우리에게 적용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혹시 빌라도처럼 이지 않는가? 마음은 해야하는 것인 줄로 아는데, 마음은 이렇게 살아야 되는 것인 줄 아는데, 우리가 기도할 때나 모이면 입술로는 이렇게 살아야 주의 뜻이라고는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살지 않는다면은 입술의 고백을 인정할까요? 그렇게 살지 않는 그 행위를 인정하겠느냐 그것입니다. 상식에 관한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이를 사도 야고보가 정확하게 정리를 해주셨는데, 야고보서 4장 17절을 보면 "사람이 선을 알고 선을 행해야 되는 줄 알고도 이를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그랬어요. 야고보서 4장17절에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그랬습니다.

    우리들 마음 속으로야 주의 뜻이 어떻다는 것 알고, 지지합니다. 주 뜻대로 살아야지 하면서 세상에 유혹 받아 세상적으로 살아가는데는 마음먹은 대로 쉽게 몸을 끌고 가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달려가는 우리가 예수의 마음을 듣고서 이 성경의 말씀은 옳은 말씀이요, 진리요, 우리가 따라야 될 것이라고 하면서 내 몸같이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내 영광보다 더 크게 여겨야 된다는 것을 '아멘' 입술로도 고백하면서도 막상 '주를 위하여 너를 부인하고 헌신하라'고 할 때 하지 않는다면 안 것으로 그가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입술로 고백했다 하여 의인이 된 것이 아니라 그의 행함이 뒷받침 해 줄 때 그의 고백은 참 고백이요, 마음으로 굳게 생각했어도 행함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그는 이중적인 죄를 짓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야고보서 조금 앞에 2장 14절에도 보면 믿음에 관하여도 말씀 나옵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믿습니다. 많이 합니다만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나는 믿음이 있습니다. 행동은 엉망으로 딴 길로 갔지만 속에 믿음 하나는 틀림없습니다' 틀림없지요. 행동을 따로 하면서도 믿는 것은 또 틀림없이 믿어요. '나는 행동은 안 하지만 믿음하나는 확실합니다' "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하고 행함이 없으면 그 믿음이 자기에게 유익을 주겠느뇨? 그러한 믿음이 믿음으로 인정되어 과연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가 있겠느뇨?" 이렇게 분명하게 말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빌라도의 사건을 보면서 우리 자신이 빌라도 보다는 조금 나아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그것입니다. 빌라도의 마음이나 우리 마음이나 다를 바가 없고, 빌라도의 입술의 고백이나 우리의 입술의 고백이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빌라도는 실패했습니다. 우리는 이 빌라도의 사건을 보면서 마음으로 이렇고, 입술로 그렇다고 해서 그것 뭐 믿고서 우리가 죽을 때 안심하고, 구원받고 영혼에 유익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이 세상을 떠나갈 수 있겠는가, 한 번쯤 체크해봐야 되지 않겠는가 그것입니다.

    그러면 빌라도가 이처럼 하고도 완전한 죄인이 되었던 이유가 바로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이제 요한복음 19장 10절을 다시 보십시다. 바로 이 구절 때문에 빌라도가 실패한 것입니다. 중심도 좋았고 입술의 고백도 좋았는데 바로 빌라도의 실패한 요인이 19장 10절입니다. "빌라도가 가로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이 구절이 빌라도를 죽인 겁니다. 설명을 드려봅니다.

    빌라도는 자기 자신이 말한 것처럼 절대권 자였습니다. 이 유대지역에 있어서는 절대권 자였습니다. 그러니까 빌라도는 예수를 놓을 권세가 있습니다. 인정하면 아멘 합시다. 십자가에 넘길 권세도 있습니다. 인정하면 아멘 합시다.

    빌라도는 절대권을 가졌습니다 힘이 있는 자였습니다. 예수를 살릴 수도 있고, 죽일수도 있었습니다. 만약에 빌라도가 예수를 세차례나 예수님을 살리려고 시도를 하다가 백성들이 자꾸 소리를 치게되면 이제 빌라도가 관정 앞에 나와서 "유대 모든 족속들 들으라. 그리고 너희지도자들 다 나와서 들으라. 내가 총독의 명으로 너희에게 엄명하노니 그리고 가이사 황제의 명을 받아와서 내가 총독으로서 너희에게 명하노니 이 예수에게 돌맹이 하나를 던진다든지, 침을 뱉는다든지, 조롱한다든지 이 예수에 대해서 인격에 손상을 준다면 나는 그를 다 죽일 것이다." 엄한 소리 한 번 내어버리면 그것은 절대적인 판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외쳤는데 누가 가히 빌라도의 명을 거역하겠습니까? 예수를 못 죽입니다.

    그런데 그 같은 힘을 갖고 있으면서 무엇 때문에 예수를 넘겨주었습니까? 가이사 밑에서 계속 총독노릇 하려고 그랬습니다. 가이사 밑에서 그 벼슬 유지하려고, 그 벼슬 갖고 있으니 많은 수입이 있으니 그 물질 얻어내려고,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권세가 있으면서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힘이 있으면서도 자기 사욕을 위해서 힘을 예수 살리는데 알고도 쓰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빌라도가 아닌 빌라도 밑에 있는 유대인이 이런 형편이 되어있다면 아무리 살리고 싶어도, 자기에게 힘이 없으니 못했을 때에는 차라리 그렇게 하다가 예수를 살리려고 하다가 죽으면 순교가 될 것입니다 마는 이 빌라도는 무엇입니까? 예수를 살릴 힘이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자기도 인정했고 세상이 다 인정하는데,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할수 있는 조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벼슬을 유지하려고, 자기의 수입을 계속 유지하려고 사용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했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우리가 목숨건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 벼슬을 건다면, 물질을 건다면, 체면을 건다면, 명예를 건다면 하나님이 옳다는 것을 중심에 안다면 무엇이든지 목숨 내어놓고 못할 말이 없습니다. 하다가 죽으면 뭡니까? 순교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나를 따라오겠느냐?" "예 따라가겠습니다.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그러면 각각 자기를 부인해야 될 것이야.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진자만이 나를 따를 수 있을 것이야."라고 말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의 영광을 위하여, 주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지키기 위하여, 주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자기의 체면과 자기의 감정과 자기의 모든 여건 부인할 수 있어야 주님을 따를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진자만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억울하게 죽으신 것처럼 우리가 주를 살리려고 한다면 우리도 억울하게 쫓겨날 수도 있고 억울하게 누명을 쓸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과연, 이 세상에서 신앙생할 하면서 빌라도처럼 예수를 살리수 있는 권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벼슬자리 유지하기 위해서, 자기의 사업유지하기 위해서, 자기의 조건 유지하기 위해서, 자기의 행복한 그 환경 지키기 위해서, 가문 지키기 위해서, 직장 지키기 위해서, 마음은 확실히 믿으며 예수님 옳은 줄 알면서도 예수님을 많은 사람에게 내어주어 버린다면, 예수님을 욕되게 하는데 버려 둔다면 빌라도의 실패가 빌라도의 실패로 끝나겠습니까? 바로 그런자의 실패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천국이 그리 쉬운 곳이 아닙니다. 천국 가서 그 행복을 누리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와 바꾼 신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고 찾아낸 사람이라면 아무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귀하신줄 안다면, 여러분께서 믿어 천국에 이르는 것도 쉬운 것이 아닌 줄로 믿으시고 마음으로 믿는 대로 행동으로 옮기려 노력하시기를 바랍니다. 입술로 고백한 대로 그 믿음이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행위를 수반하는 입술의 고백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오늘 이 빌라도의 사건을 보면서 목사인 저 자신도 '과연 내가 빌라도 수준이 아닌가?' 이런 생각도 해 봅니다. 그러나 오늘도 이 밤시간까지 주의 전에 나아와서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 주님 좋은 줄 알고, 하나님의 아들인줄도 알고, 죄없는 줄도 알고 안 죽여야 되는 줄도 알고, 나는 죽이기 싫기도 하지만 오늘 예배 보러 가는 것보다야 내 자신을 위해서 오늘 쉬는 것이 좋구나, 놀러 가는 것이 좋구나,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그저 예수님을 잠깐 뒤로 밀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께서는 자기의 육신적인 유익을 뒤로하고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하여 헌금을 드렸습니다. 이 예배에 참석하여 찬송을 드렸으니 '이 예배에 참석하여 이 예배를 받으시라고 기도를 드렸으니 주께서 여러분을 향하여 네 중심의 생각과 네 입술의 고백이 네 행동으로 옮겨져 오늘 나의 전에 나왔구나' 하면서 '너는 빌라도 같지 않구나' 하는 주의 말씀이 저와 여러분에게 와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이것 다 지키기는 힘들겠지만 가능한 한 성경이 가르쳐주는 옳은 길인 줄 알거든 성경은 항상 내 마음속에서 옳고, 내 입술에서는 옳고. 그러나 내 행동은 항상 내 마음대로 가서 사는 생활, 계속 더하지 마시고, 오래 오래 그리 살지 마시고 말씀대로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힘이 없으면 성령을 받으십시오. 내 안에 진리대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없으면, 내 육신을 끌고 가는 마귀의 유혹이 더 강해서 마음으로는 예수를 알고, 마음으로는 입술로 예수를 고백하고 믿으면서도 실제로는 내 입술에 고백대로 마음에 중심에 믿은 대로 행동이 되지 않거든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십시오.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시면, 여러분이 육신이 유혹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게로 갈수 있어집니다. 저절로 되어 집니다.

    그래서 성령을 구하셔서 여러분이 중심에 가지신 진리가 옳은 줄 알면 행동이 다 따라주지 못해도 하나님이 보실 때 있는 힘이 다하여 내 뜻대로 살려고 하였구나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유익을 위해서 못한다면 할말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힘이 없어서 못한 것은 인정을 받겠지만 권세가 있으면서도 아니한 것은 실패자가 된 빌라도인 것을 발견하고, 어찌 하든지 이 살기 좋은 시대에 살기 좋은 쪽으로만 따라가지 마시고, 진리 안에가 살기 좋은 곳인 줄 믿으시고, 진리 안에 고통스러움이 천국의 행복인줄 믿으시고 영육간 믿음이 일치가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도록 한 번 다짐하시고, 주님께 몸을 드리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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