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의 첫 증인(요 20:11-18)
  • 조회 수: 241, 2013.06.22 21:03:49
  •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젊어서 미모의 여인과 서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 여인이 칸트에게 찾아와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
    으니 결혼합시다"라고 청혼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칸트는 "좀 생각해보고 대
    답하겠다"고 말하고서는 대학 도서관에 가서 결혼했을 때 유익한 점과 좋지 
    않은 점을 다 찾아서 열거하고는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어떤 날은 결혼하는 것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결혼하
    면 문제가 많아 고생할 것 같아 서성거리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많은 고민을 한 끝에 드디어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결혼
    하면 많은 불리한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하기로 결단하고 그 여인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 여인의 부친을 만나 큰절을 한 다음, "댁의 따님과 서
    로 사랑하는 사이여서 결혼하기를 원합니다.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더니 
    그 여인의 부친이 말하기를 "여보게, 내 딸은 이미 결혼하였고 벌써 아이를 
    둘이나 두었다네"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칸트가 머뭇거리며 고민을 하는 
    사이에 그 여인은 기다리다 못해 그만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고 만 것입니
    다. 생각만 하다가 그만 그 아름다운 여인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사랑이란 개념으로 이해하고 이성적으로 따지다가 기회를 놓치는 것
    이 아닙니다. 사랑은 희생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을 하면 희생도 
    기쁨이 됩니다. 오늘 말씀은 주님을 사랑했기에 온갖 위험에도 불구하고 끝
    까지 포기하지 않은 한 여인의 숭고한 사랑과 헌신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
    론 막달라 마리아의 예수에 대한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은 아니었습니다. 이 
    여인은 본래 창녀로서 일곱 마귀에 시달렸던 자였는데 주님이 고쳐주시자 
    주님을 영접하여 새사람이 된 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의 그 크신 은
    혜를 받고서 어떻게 보답해야 될 지를 몰라 그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뒤에서 말없이 봉사와 섬김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께서 로
    마 병정들과 유대인들에게 잡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충격적인 사건
    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를 결코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사지낸 지 3일째 되는 날 새벽에 무덤을 찾아갔다가 부활하신 예
    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맨 처음 만난 이 여인의 위대한 
    신앙의 삶을 통하여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며 헌신된 부활의 증인으로 세움
    을 입게 되기를 원합니다.

    1. 그녀는 예수를 깊이 사랑했습니다.

    사람들은 은혜와 사랑을 받고도 일단 자기에게 위험한 일이 생기면 
    그만 은혜를 입은 사람을 떠나는 것이 보통인데 이 여인은 그렇지 않았습니
    다. 예수께서 장사된 다음 날은 안식일인지라 무덤을 찾아갈 수는 없었습니
    다. 그녀는 십자가 사건 이후 안식일이 지나기까지 밤을 지새우며 예수의 죽
    음을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그간의 온갖 추억들이 그녀의 서글픔을 한층 진
    하게 돋구고 있었을 것입니다.

    과거에 자기는 창녀였습니다. 몸을 팔아 입에 겨우 풀칠을 하며 사는 
    보잘 것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자기 몸에는 일곱이나 되는 귀신이 
    붙어 있어 자기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그녀는 도무지 사람 구실을 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하루하루가 저주받은 
    삶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그녀의 죄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사 
    그녀를 붙잡고 있던 일곱 귀신도 쫓아 주셨으니 이 여인에게서 예수는 자신
    의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를 만나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인생의 행복을 알았습니
    다. 그녀는 주님께 사랑을 쏟았고 그의 가르침을 경청했으며 자기 재산까지 
    드려 주님을 섬겼습니다(막 18:2). 그러니 예수가 십자가에 죽었다고 그냥 자
    기 갈 길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죽은 후에도 그녀가 예루
    살렘에 남아 있었던 것은 주님의 무덤을 방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녀는 
    엘리사가 엘리야를 끝까지 따라간 것처럼(왕하 2:1) 예수를 따라 다녔습니다. 
    그녀의 사랑은 주님이 십자가에 죽어 무덤에 장사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끊
    어질 줄을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예수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너무나 깊고 진
    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안식 후 첫 날 새벽에 예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그녀는 수제자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보다 앞섰습니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무덤에 와서 주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만을 확인하
    고 곧장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주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알
    면서도 그 무덤을 떠나지 못하고 무덤 밖에서 슬피 울며 서 있었습니다. 너
    무도 큰 슬픔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애절하
    게 주님을 찾고 있을 때 부활하신 주님이 그녀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녀가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으로 목격하고 부활의 첫 증인이 된 것은 결코 우연히 
    어쩌다 된 것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감히 따를 수 없는 주님을 향한 그녀
    의 신실한 사랑이 그러한 영광을 누릴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우리 주님 예수의 십자가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구원
    을 받고 참된 인간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행함에는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열정적으로 주님을 사랑하여 주의 일에 나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려운 환
    경이 닥쳐오면 쉽게 낙심하고 두 손을 드는 때도 많습니다. 우리는 꾸준하지 
    못합니다. 무슨 일을 감정적으로 하고 지속적으로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열
    성을 버려서 그만 축복을 놓치는 때가 많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결국에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사람은 
    실제로 행해야 합니다.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감정적으로 하다가 그치면 안
    됩니다. 끝까지 해야 합니다. 주님 앞에 갈 때까지 주님에 대한 사랑이 변치 
    말아야 합니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주님을 사랑하되 어느 누구도 따를 수 없
    을 만큼 깊이 사랑하고 주님을 따르되 끝까지 따라야겠습니다.

    2. 그녀는 예수를 위해서 모든 것을 헌신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선교 초기에 변화를 받
    고 새사람이 된 다음 주님을 극진히 섬기는 봉사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태
    복음 27:55-56에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쫓아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그 중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배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고 했습니다. 막달
    라 마리아는 예수께서 고난을 받으시기 위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올라오
    실 때도 함께 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어디를 가든지 섬기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 쫓아 온 많은 여자가"(마 27:55)라고 했습니다. 
    이 여자는 예수를 만나고는 줄곧 주님을 섬기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심지어
    는 주님께서 돌아가신 다음에도 그녀는 주님의 시신 곁에 있기를 원했습니
    다. 예수의 시체가 없어진 것을 알고 빈 무덤 앞에서 울고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께서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고 하셨는데 그가 동산지
    기인 줄 알고 "당신이 옮겨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요 20:15)고 간청했습니다.

    그 시체가 무엇이관데 가져간다고 했을까요? 시체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데 연약한 여인의 힘으로 그것을 가져간다는 것인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실로 대단한 것이
    어서 아마도 그녀는 그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이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리마다 요셉이라는 유명한 의회의원의 준비된 
    무덤 속에 다른 사람이 묻혔기 때문에 일꾼들이 치웠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
    는지 모릅니다. 그녀는 예수의 시체를 찾게만 해준다면 자기의 그 무엇이라
    도 팔아서 다른 무덤을 준비해 주님을 모시겠다고 작정하였을 것입니다.

    그녀의 예수님께 대한 봉사는 그 누구도 따를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의 모든 것을 다해서 끝까지 사랑했습니다. 우리도 주님께 얼마나 봉사를 했
    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인 것을 깨달은 바울은 교회를 위해서 일생을 바쳐서 투자했
    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일생을 바친다 하더라도 전혀 아
    까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자를 창조하실 때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후 그의 갈
    비뼈를 빼서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아담이 잠들었을 때 하와를 만드신 것입
    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
    습니다. 하나님은 하와를 만드시기 위해서 아담의 살을 찢고 갈비뼈를 취하
    셨습니다. 하와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아담의 피흘림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 역시 그것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찢긴 살과 피흘림의 역사가 있어야 했습니다. 잠에
    서 깨어난 아담이 하와를 보고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고 
    했는데 예수께서도 교회를 그렇게 생각하십니다. 예수께서 교회를 자기의 분
    신으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났을 
    때 들렸던 주님의 말씀에서 잘 나타납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고 했는데 이는 예수께서 교회를 자기와 한 몸으로 여기
    신 것을 예증합니다. 그때 바울은 "아,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는 것이 교회구
    나"는 것을 깨닫고 그의 남은 평생을 전 세계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여 
    교회를 세우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우리들도 우리 주님의 교회를 위해 헌신
    하는 삶을 살 때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3. 그녀는 곧 전도에 나섰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동산지기인 줄 알았던 이가 곧 부활하신 예수인 것
    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눈이 밝아져 주님을 알아보기까지 
    그녀는 얼마나 처절한 슬픔의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 모릅니다. 자기의 더러
    운 옛생활을 청산하고 참된 재생의 길을 걷게 해주신 예수께서 폭도들에 의
    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자 그녀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
    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장사지낸 지 사흘만에 무덤에 와보니 
    그 시체마저 도적맞아 없어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주님이 돌아가신 것도 억울
    한데 누워 계신 모습조차 다시 뵐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그녀의 마음
    은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은 슬픔으로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죽은 시신을 찾아 슬퍼하며 흐느끼는 마리아에게 정작 주님께
    서는 부활하신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평소에 말씀하신 대로 사흘만에 부
    활하셔서 마리아 앞에서 "마리아야" 하시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그녀를 부르
    셨습니다. 마치 폭풍을 만난 제자들에게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것
    과 같은 위로의 음성이요 소망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부드러운 주님의 음성이 오늘 경제적인 풍랑을 만나 견딜 수 없는 
    위기에 빠진 우리들에게도 들려지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일어나 아무리 한 
    번 해보려고 해도 재기의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절망의 상황에 처한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며 말씀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
    은 마리아에게만 찾아가지 않으셨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도, 
    의심 많은 도마에게도, 디베랴 호수가에서 그물질하는 베드로에게도 찾아가
    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절 아침에 여기 계시는 여러분에게도 찾아오십니다. 
    "마리아야" 말씀하시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마리아를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은 또한 부활하신 주님을 동산지기
    인 줄로만 알고 있는 마리아를 향하여 "마리아야, 어찌하여 내가 너와 이렇
    게 낯설게 되었느냐?"고 아쉬워하시는 음성이었습니다. 주님을 그토록 열심
    히 좇았고 그렇게 애타게 찾으면서도 정작 바로 옆에 계시는 주님을 보지 
    못하고 주님의 음성을 깨닫지 못하는 마리아에게 우리 주님께서 안타깝게 
    부르시는 음성이었습니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이미 부활하신 주님과 너무 낯설게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과 낯설게 산다는 것은 주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지 못하고 
    조금만 어려운 일을 당하면 실망하고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리아는 주님이 평소에 말씀하시던 "이 성전을 헐라. 내가 3일 동안에 일으
    키리라"는 말씀을 잊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는 주님의 부드러운 음성은 지금도 우리에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자기의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될 때 그녀
    는 그가 바로 부활하신 예수신 줄을 알았습니다. 동산지기인 줄 알았던 눈이 
    열리며 비로소 예수를 바라본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집착하며 살았던 데서 주님께로 방향전환을 해야 합니
    다. 그 어느 것도 나와 그리스도 사이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 
    어느 것도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를 간섭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네 형제들에게 가서" 부활의 소식을 전하
    라고 하셨습니다. 그녀는 곧장 제자들에게로 가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것
    을 전했습니다. 그녀는 최초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고 부활의 첫 증인이 되
    었습니다. 그녀는 인류 최초로 가장 좋은 소식을 전한 사람이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 행운을 갖게 됩니다. 
    그러기에 이 복음을 전하는 일이 우리 기독교인의 최대의 사명입니다.

    목사의 일도 복음을 전하는 일이요 장로의 사명도 복음을 전하는 일
    입니다. 집사의 사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의 책임도 그 자녀에게 복음을 
    전해 생명을 구하는 것이요, 주일 학교 교사도, 성가대원의 사명도 복음을 
    전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들의 세상 사는 목적은 온 천하에 가서 복음을 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리아처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나아가 그 사실
    을 증거하여 온 세계를 구원하는 복음의 사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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