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찌하여 우느냐?(요 20:11-18)
  • 조회 수: 245, 2013.06.22 21:05:21
  • 어느 주일 학교 반에서 선생님이 부활절을 앞두고 숙제를 하나 주었습니다. 상자를 하나씩 다 주었는데 한 주일 동안에 예수님의 부활에 관계된 물건을 하나씩 상자속에 넣어 오게 했습니다. 아이들이 열심히 한 주 동안 물건들을 준비를 했습니다. 드디어 부활절 아침이 밝아왔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였습니다. 상자를 하나씩 제출합니다. 어떤 아이들은 상자속에 나비를 넣어 가지고 왔습니다. 생명중에 생명입니다. 어떤 아이들은 꽃을 가지고 넣어 가지고 왔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개미를 넣어 가지고 왔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파란 나무 잎사귀를 넣어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빈 상자를 들고 온 아이가 있었습니다. "얘, 너는 왜 빈 상자만 들고 왔니?" 그 아이는 그 반 가운데도 지능이 좀 낮은 장애아였습니다. 그래서 말을 잘 하질 못하고 생각이 좀 부족한 아이였습니다. 근데 이 아이가 말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은 무덤 속에서 살아나셨다고 그랬지요? 이 빈 상자는 바로 예수님의 빈 무덤이예요." 선생님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그리고 손을 잡고 "얘야, 네가 가장 훌륭하게 숙제를 마쳤구나. 정말 잘했다." 그렇게 축하했다고 합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무덤 문을 여시고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기쁨의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주일을 맞이하신 성도 여러분의 가정과 개인위에 부활의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능아였던 아이도 이 빈 무덤의 비밀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었던 이 하나님 말씀 속의 마리아는 빈 무덤에 대한 비밀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그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는 안식 후 첫날 주일 새벽에 향품을 준비해 가지고 예수님의 시신에 그 향품을 발라주기 위해서 예수님의 무덤 가까이 갔습니다. 그 곳에 있는 것은 예수님의 시신이 아니라 빈 무덤밖에는 없었습니다. 자기가 바라는 것이 없어졌기 때문에 이 마리아는 그 자리에서 울기를 시작합니다. 흑흑거리면서 울고 있습니다. 왜 이 기쁜 부활절 아침에 마리아가 울고 있을까요?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을 그가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기대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의 생각에 예수님은 시체로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야 향품을 그 시체에 발라 드릴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바라는 것이 사라진 이 마리아는 울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자기가 바라는 것이 사라지게 되면 실망하고 때로는 울게 되기도 합니다. 자기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낙심하고 웁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사시면서 그런 경험을 얼마나 하셨습니까? 시험에 낙방해서 울어보신 경험이 있으십니까? 사랑하는 자를 떠나보내고 울어보신 그런 경험이 있으십니까? 혹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실패를 경험하고 혼자서 문을 잠그고 울어보신 그런 경험이 있으십니까? 귀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없으면 우리 마음이 허전해지고 때로는 눈에서 눈물이 나게 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경험했던 모든 것은 빈 무덤의 경험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성도에게 있어서는 비어 있어도 결단코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비어 있다고 울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비어 있다고 낙심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성도가 경험하는 모든 상실과 모든 절망과 모든 부족의 경험은 오히려 빈 무덤의 영광으로 인도하는 놀라운 축복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이 그 빈 무덤안에 충만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빈 무덤이라고 말하시면 안됩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해 있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이 그 곳에서 빛나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 부활의 아침, 웃지 못하고 울고 있는 성도들이 있을 것입니다.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고 귀중한 것을 잃어버려서 울고 있는 성도들이 있을 것입니다. 애지중지하던 직장을 잃어버려서 가슴을 치고 울고 싶은 그런 성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우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로 이 빈 현장, 결핍의 현장, 상실의 현장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놀라운 빈 무덤의 영광이 충만하게 될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기쁨은 충만해져서 참으로 이 모든 현장이 우리 주님의 빈 무덤인 것을 깨닫고 다시금 그 부활의 기쁨으로 충만해지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빈 무덤 앞에서 마리아가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마리아는 이제 허리를 굽혀서 무덤 속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무덤 속에는 마리아가 울지 않아야 할 이유로 충만해 있었습니다. 무엇을 보았습니까? 그 안에 보인 것은 예수님의 수의가 개켜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시체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울 일이 아닙니다. 또 한참 있다 보았더니 천사가 두 사람이 그 무덤속에 있었습니다. 빛나는 모습으로 있었습니다. 울 일이 아닙니다.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가장 놀라운 기쁨의 이유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그 여자 뒤편에 서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등 뒤에서 울고 있는 마리아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의 쓰라린 마음, 외로운 마음을 잘 알고 바라보시는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이 누구십니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 분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의 삶을 마리아처럼 자세히 머리를 구푸려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비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빈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감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모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우리 주님께서 뒤에 서 계시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충만합니다. 내 고통의 현장 가운데 천사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나의 등 뒤에서 부활의 주님이 지켜 보고 계셨습니다. 그런고로 내 인생은 부활하신 주님 때문에 모자라는 인생이 아닙니다.

    빈 무덤이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주님께서 지켜보시기 때문에 주님께서 바라보고 계시기 때문에 이 무덤은 바로 영광의 무덤, 부활이 일어난 놀라운 현장,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충만한 현장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사막을 걷고 있었습니다. 한참 사막을 걷고 있는데 그만 길을 잃어버렸어요. 사막을 길을 잃으면 갈 데가 어디 있습니까? 갈 데가 없습니다. 한참을 걷다가 기진맥진한 다음에 아들이 묻습니다. "아빠, 이제 우린 죽게 되었어. 길이 보이지 않아. 어딜 가면 좋겠어?" 아버지가 말합니다. "얘야, 길은 있을거야. 잠자코 열심히 걷기나 해." 부지런히 몇 시간을 더 걸었습니다. 이제 그야말로 죽기 직전입니다. 아이가 소리칩니다. "아빠, 저기 봐. 무덤이 보여. 많은 사람들이 우리처럼 이렇게 고난 당해서 왔다 갔다 하다가 저렇게 죽어간 것이 틀림없어. 이제 곧 죽을거야." 아빠가 아이의 손을 잡았습니다. "얘야, 저 무덤은 이 근처에 마을이 있다는 증거야. 조금만 참고 걸어가면 우리는 살 수 있을거야." 과연 이 부자간에 나란히 한참을 더 걸어 갔더니 마을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빈 무덤을 보고 놀라지 마십시오. 울지 마십시오. 자세히 들여다 보십시오. 우리 인생의 빈 무덤속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천사들을 발견하세요. 지금 천사가 보이십니까? 무엇보다도 나의 등 뒤에서 나를 지키시고 나를 바라보시고 나의 슬픔과 나의 문제를 지켜보고 계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빈 무덤은 바로 우리를 소망 가운데로 인도하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놀라운 부활의 현장입니다. 이런 귀한 부활을 믿는 믿음으로 모든 종류의 고통과 슬픔과 고독을 이기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빈 무덤을 바라보며 계속 울고 있는 마리아, 답답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같았으면 거기서 웃었겠습니까? 찬송을 하셨겠습니까? 마리아는 계속 울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그것을 바라보시고 이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접근하셨습니다. 울고 있는 그 마리아의 눈물을 그치게 해 주어야겠다고 주님은 생각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눈물을 닦아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사야 25장 8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이 수치를 온 천하에 제하시리라'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눈물을 닦아주시는 분이며, 우리 수치를 제거하시는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울음을 그치게 하셨습니까?

    주님은 마리아에게 다가가셔서 먼저 마리아를 향해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마리아야'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다가가셔서 그 이름을 직접 부르셨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이름을 아시고 각기 우리의 이름을 불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예배를 드리고 있는 우리 모든 성도들의 이름을 아시고 사정을 아시고 처지를 아시며 우리를 향해서 오늘 사랑의 음성으로 우리의 이름을 불러 주고 계시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0장 27절에 이렇게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같이 읽으십시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아멘.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아시고 우리 이름을 부르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부드러운 음성으로 우리 이름을 불러주시는 그 주님, 그 주님이 오늘 부활하신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제가 한창 칠레 기독교 학교를 건립하기 위해서 여행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집회를 약속하고 이 도시 저 도시로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그 몰몬교회의 성지가 있는 유타주의 수도인 살토렉시티 거기까지 가야만 했었습니다. 비행기를 옮겨 타고 바로 그곳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둘러보니까 노란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전부 미국 사람밖에는 없었습니다. 얼마나 피곤하고 얼마나 고독하고 얼마나 힘이 드는지 그저 시계를 보면서 비행기 출발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 그런데 갑자기 제 뒤에서 "아빠"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평소에 제게 들려오던 그 음성, 그것은 바로 제 아내의 음성이었습니다. 얼마나 반갑던지요. 아니, 이 공항에 아내가 있다니. 뒤로 돌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 있는 사람은 제 아내가 아니었습니다. 아주 시꺼먼, 뚱뚱한 흑인 여자가 한 사람 떡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이상한 듯이 저를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잘못 들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떠들고 말하는 소리가 제 귀에는 저를 부르는 소리로 들려졌습니다. 잘못 들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여러분, 그런데 우리 주님은 우리 인생 곁에서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불러 주시는 분입니다. 내가 외로울 때 다가오셔서 이름을 불러 주십니다. 내가 참으로 힘들어 할 때 찾아오셔서 내 이름을 불러 주십니다. 내가 참으로 남들에게 소외를 당하고 있을 때 주님 찾아 오셔서 나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러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님께서 오늘 이 시간에도 내 이름을 불러 주시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듣는 이 말씀이 부활하신 주님께서 바로 내 곁에 오셔서 아무게야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부르시는 사랑의 음성으로 들려지는 말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 말씀을 듣는 순간에 내게 흐르는 모든 눈물과 근심과 한숨이 다 마르는역사가 이 부활의 아침에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3장 1절을 우리 다같이 읽겠습니다. '야곱야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아멘. 놀라운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이 나를 아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향해서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를 가장 잘 아시는 주님이 내 이름을 부르면서 참으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다 주님의 소유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 제자훈련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장로님반도 있는데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는지. 간증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장로님이 이런 간증을 하셨습니다. 군대에 가서 복무를 하는 중에 많은 어려운 일을 겪었었습니다. 근데 한번은 군부대안에 있는 교회에 참석을 하시게 되었답니다.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하는데 그 순간에 장로님의 이름을 주님께서 마음속으로 불러 주셨다고 합니다. 아무게야! 이름을 듣는데 그 순간부터 기쁨이 충만하고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그 날 이후로 더 열심히 주님을 따르고 섬기는 그런 귀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 되었다고 간증하시는 간증을 듣고 제가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내 이름을 불러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름뿐 아니라 내 사정을 아십니다. 내 고민과 내 염려와 내 약점을 모두 다 아시는 그런 주님이십니다. 오늘 이 시간,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개인적으로 말씀 가운데 들으시고 모든 눈물이 그치는 놀라운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리아가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듣고 가만히 있자니 이제는 부활하신 주님을 향해 '랍오니여' 이렇게 응답했습니다. 한번 같이 해 보십시다. '랍오니여' 랍오니라고 하는 말은 '나의 선생님이여' 하는 뜻입니다. 보통 '랍비' 하면 그냥 선생님, 일반적인 선생님, 그러나 '랍오니' 라고 하면 '나의 주님' '나의 능력' '나의 소망' '나의 부활' 즉, 크고 위대한 존경받으실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 따라갈 바로 내 주님이라고 하는 그런 귀한 고백입니다. 이 칠레 원주민들도 일반적으로 보통 목사를 부를 때는 '빠스또리'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자기 담임 목사를 부를 때는 '니 빠스또리' 라고 부릅니다. 제가 담임하고 있던 원주민 교회 성도들은 항상 저를 보고 '니 빠스또리', '우리 목사님, 우리 사랑하는 목사님' 그렇게 부르면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여러분도 아마 그러실 겁니다.

    부산에 여러 목사님이 계시지만 그런 목사님에게 '니 빠스또리' 우리 목사님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족하지만 이 허목사를 보고 여러분은 우리 목사님이라고 사랑의 귀한 표현을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이게 중요합니다. 목사가 내 목사요. 주님이 내 목사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나의 귀한 목자가 되셔야 합니다. 주님이 바로 나의 주님이 되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어떤 자리에 있든지 주님을 향해 내 주님이라고, 내 구주라고, 내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시신이 아니에요. 죽어 있지 않습니다. 그는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셨습니다. 지금 내 곁에 계셨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부르실 때 마리아처럼 '랍오니여'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나의 능력, 나의 소망되신 주님이여, 하고 응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간에 우리 교회에 공사가 지금 계속되고 있는데 이 전선가닥이 얼마나 수백가닥으로 있는지 어떻게 될까 염려하고 있었는데 기술자가 이 전선을 다 연결했습니다. 불도 들어왔습니다. 마이크도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연결되지 않으면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은혜를 베푸셔도 내가 '주여, 나의 주님이여' 하고 주님의 그 귀한 부활의 축복을 내 것으로 소유해 드리고 내 개인의 고백을 하지 않으면 절대로 은혜의 불은 비취지 않습니다. 은혜의 소리는 절대로 우리 가운데 퍼져 나가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런고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주님이 부르시는 음성에 우리가 '내 주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내 능력이여' 하고 주님앞에 개인적으로 응답하시는 귀한 성도들이 꼭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능력이 우리 속에 있는 모든 의심과 불안과 슬픔을 몰아내고 예수 생명으로 충만해지기 위하여 부활의 주님앞에 '랍오니여' 나의 주님이여, 이렇게 부르시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자 제자반에서 공부를 하는 가운데 한 집사님이 말씀을 했습니다. 적용을 하면서 나는 이번 주간에 하나님 앞에서 내가 화가 날 때마다 주님 주님 주님 세번을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 참 멋진 적용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 어떤 순간에 처하든지 중요한 것은 내가 바로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면서 그를 부르는 것입니다. 슬픔중에, 고통중에 시련중에 '주여, 랍오니여' 하고 부를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 주님이여, 살아계신 주님이여 당신이 나의 능력이십니다. 주님 도와 주세요. 제 인내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부활의 주님, 능력의 주님으로 부르고 고백할 때 우리 눈에 눈물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우리 마음속에 있는 모든 두려움과 근심은 사라지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아름다운 믿음의 응답을 하므로 우리 인생의 모든 눈물들이 다 마르는 축복이 성도들과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드디어 마리아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에게 '랍오니여' 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눈에 눈물이 말라버렸어요. 그리고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눈물 흘리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찾아갈 결심을 했습니다. 가서 부활을 증거하는 놀라운 증인이 되었습니다. 내가 보았다. 내가 그를 보았다고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서 10장 15절을 우리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아멘.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발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입니다.

    예수 부활의 소식을 증거하는 사람의 복된 발이라고 주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성에 있던 네 문둥병자는 아람군대가 도망가 버린 승리의 현장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이제 떠나가서 고하자.' 기쁜 소식을 전하자고 서로 말하고 소식을 전하러 갔던 것입니다. 여러분이여, 빈 무덤을 본 사람은 달려가서 주님이 부활하셨다고 전해야 합니다. 부활을 증거하면 할수록 내 눈의 눈물을 사라지고 내 마음의 근심은 사라지고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쁨이 다른 사람에게도 흘러 넘쳐가 충만하게 채우게 될 것입니다.

    1815년 6월, 영국 해군과 프랑스 해군 사이에 대 접전이 벌어졌습니다. 이 전쟁을 이름하여 워터루전쟁이라고 말합니다. 그 당시는 무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소식을 수신호 내지는 이 빛으로 신호를 했습니다. 영국 국민들은 초초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누가 이겼을까?' 그런데 신호가 왔습니다. 깜짝 놀랄 소식이었습니다. 영국 해군이 패했다고 하는 그런 소식이었습니다. 온 영국 백성들은 거리를 나와서 울고 불고 보따리를 챙겨서 도망가기에 바빴습니다.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한참뒤에 다시 군함에서 신호가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완전히 이겼다. 프랑스 군대는 대패하였다. 우리가 승리했도다.' 이런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모든 영국 백성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얼싸안고 부둥켜 안고 노래를 부르면서 축하했습니다. 승리는 온 나라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소식은 처음엔 패배한 소식처럼 보였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3일 뒤에 주님은 무덤 문을 여시고 죽음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셔서 온 절망과 저주가 있는 땅에 근심과 눈물이 가득찬 땅에 놀라운 기쁨의 소식이 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승리의 소식을 온 땅에 전하십시다. 예수 부활의 소식, 온 땅의 슬픔과 눈물을 몰아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주님이 나를 부르는 음성을 들으십시다. 주님께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을 하십시다. 그리고 내가 주님의 부활을 보았다. 주님은 다시 살아나셨다고 오늘 힘있게 부활을 증거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주님은 오늘 찾아와서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어찌하여 우느냐? 나는 살아났다. 눈물을 닦고 일어나서 부활 소식을 전파하는 자가 되어라.' 고 주님 말씀하고 계십니다.

    빌립 브룹스가 쓴 부활절 캐롤에는 이런 아름다운 싯귀가 있습니다. '무덤이여, 너는 그를 더이상 잡아 두지 못하리니 죽음은 강하네. 그러나 생명은 더욱 강하네. 의는 불의보다 더욱 강하네. 믿음과 소망은 승리의 기쁨을 말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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