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이 있는 믿음(요20:19-29)
  • 조회 수: 354, 2013.06.22 21:19:17
  •  우리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 빈 무덤의 종교입니다. 인생들이 가장 두려워하
    는 죽음을 이긴 죽어도 사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계시지 않고 장사 한지 사흘만에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다
    시 살아 나셨기 때문이요. 예수의 부활이 바로 성도의 부활을 예고하는 첫 열
    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살아나신 사건은 역사적인 사실입
    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바와 같이 바울 사도께서는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이 아
    니라는 증거로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많은 증인들을 고린도전서 15장에
    서 낱낱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오늘 본문의 의심 많은 도마와 같이 예수님의 
    부활과 살아 계심을 믿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보지 못
    하고 믿는 자는 복된 자 인줄로 믿습니다. 오늘 함께 은혜를 나눌 말씀은 요한
    복음 20장 19-29절의 말씀으로서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 되도다'라는 제목으
    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20장에서도 예수님의 부활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
    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이 증거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신 시기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19절에 보면 "이날 곧 안식후 첫날 저녁때에"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날'이란 부활하신 당일 날을 말합니다. 이렇게 날짜
    와 시간까지 정확하게 밝히고 있는 사건은 신약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진
    기한 기록입니다. 그만큼 주님의 부활은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이
    고 그날 그때에 있었던 실제적인 사건임을 증거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당일 날 땅거미가 몰려오는 저녁때에 제자들에게 나
    타나셨습니다. 그날은 안식후 첫날로써 "일 주일의 첫 날"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안식후 첫날 곧 주의 날에 제자들을 찾아 오셨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
    습니다. 물론 주님은 언제든지 찾아오시지만, 지금도 일 주일의 첫날, 곧 주의 
    날에 예수님께서는 믿는 성도들에게 찾아  오시는 줄로 믿습니다.

      또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난 시기는 제자들이 불안에 떨고 있을 저녁때 
    찾아 오셨습니다. 19절에 보면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그들이 있는 
    곳의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자기들을 가리켜 나
    사렛 예수가 가르친 거짓 교훈을 따르고, 그 거짓 교훈으로 세상을 현혹시키려 
    한 자들이라고 고소를 하고 예수님처럼 자신들도 십자가에 처형시키지나 않을
    까? 두려움에 떨며 숨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불안에 떨고 있는 그들에게 그리고 저녁때 찾아오신 것은 역시 사랑
    의 주님의 크신 배려였습니다. 밝은 대낮이 아니라 저녁이 오면 불안에 떨고 
    있거나 두려움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는 공포가 더 심해집니다. 그래서 잠 못 
    이루고 긴긴밤을 뜬눈으로 지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걱정
    을 덜고 단 잠을 주시려고 땅거미가 내리고 어둠이 몰려오는 해질녁에 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고 제자들을 위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근심과 두려움 대신 20절의 말씀처럼 큰 기쁨을 얻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2장 17절에서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
    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
    르러 왔노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인생의 역경과 풍랑의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
    들에게 불안과 두려움이 극에 달해 있을 때 찾아오시는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신 장소입니다. 
      19절 말씀에 보면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고 있었는데 예수께서 오셨다"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이름으로 성도들이 모인 곳에 찾아오시는 줄로 믿습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보면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만나기를 원하는 사람은 주
    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 할 때 주님을 만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제자들이 고난의 시기라 할 지라도 흩어지지 아니하고 모여 있었던 것
    처럼, 내 인생의 고난의 시기라 할지라도 주앞에 나아오는 사람은 평강을 주시
    는 주님을 만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또 부활의 주님께서 나타나신 장소는 예루살렘 성전이나 많은 무리가 모인 
    곳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어둡고 초라한 골방 가운데 들어가 
    문을 잠그고 두려움과 불안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의리 의리한 예배당 대형건물 혹은 훌륭한 음향 시설이 설치된 
    곳이나,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만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참 제
    자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찾아오시는 줄로 믿습니다. 아무리 초라하
    고 음침한 지하실 교회라 할지라도 주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 주님을 전
    심으로 찾는 자들이 모인 그곳에 찾아오시는 줄로 믿습니다.

      또 주님께서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오셨습니다. 19절에 보면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
    니..."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성경은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
    다. "그 날, 곧 주간의 첫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무서워서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다."

      사도 요한은 그들이 모인 곳의 문이 한 개가 아니라 여러개 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문들을 분명히 모두 걸어 잠그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는 이 말씀 속에서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사실적이고 또 실제적이었는가? 를 
    알 수 있습니다. 연약한 여인들은 두려움에 떨며 누군가의 요청에 의하여 문들
    을 단단히 걸어 잠궜을 것이며 어쩌면 여러 차례 확인까지 했을지도 모릅니다. 
    왜? 예수님의 제자인 그들을 예수님을 죽인 것 같이 자기들도 죽일지 모른다는 
    보복의 두려움 때문에....

      그런데 주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시는데 어떠한 것도 장애가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어떠한 
    장소에 모일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임이 주님이 찾
    아오실 만한 축복된 모임인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 주님이 찾아오신 대상입니다. 
      부활의 주님은 먼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제사장이나 백성
    의 장로들앞에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주를 믿고 따랐던 제자들, 하나
    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예수를 믿고 따르겠노라고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따랐던 
    제자들을 버리시지 안고 먼저 그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주 예수를 믿고 따르는 
    자를 주님은 결코 버리시지 않고 찾아 오시는 줄로 믿습니다. 
     
      네번째 의심 많은 도마가 주는 교훈입니다. 
      25절에 보면 "다른 제자들이 도마에게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고 말
    했을 때  도마는 "나는 주님의 못 박힌 손과 옆구리에 있는 창 자국과 칼자국
    을 내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왜 이처럼 
    도마는 부활의 주님을 믿지 못하는 의심 많은 사람이 되었습니까? 그것은 첫째

      ① 도마는 제자들이 모인 곳에 함께 있지 않았던 것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본문 24절에 보면 (요 20:24)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이렇게 말씀합니다.

      도마가 이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것은 그에게 불행이었습니다. 물론 참석하
    지 못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건강 때문인지, 가정일 때문인지, 그 모임에 
    관하여 알지 못했기 때문인지, 사업 때문인지, 아니면 "유대인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어찌되었건 그는 불참함으로 부활의 주님을 만
    나는 기쁨과 즐거움을 나누지 못했습니다.

      어느 교회에 집사님이 부흥회 때마다 다른 사람들은 은혜도 받고 방언도 받
    습니다. 자기보다 훨씬 늦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도 다 방언 기도를 유창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은 꼭 결정적인 순간에 빠지는 바람에 은혜를 못 받
    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 주님을 만날지 언
    제 은혜를 받을런지 알 수 없음으로 늘 등불과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아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 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마 24:43)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이
    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② 도마는 믿음에 명확한 조건을 걸었기 때문에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5절 말씀에 보면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도마는 자신의 눈
    으로 그리고 손으로 반드시 확인을 하지 않고서는 주님의 부활을 믿을 수 없다
    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은 흔히 이렇게 조건적인 신앙생활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
    람은 십 수년을 신앙생활도 해도,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
    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봤습니까? 음성 들었습니까? 혹은 어떤 신비한 것을 
    경험을 했습니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③ 기회를 잃었다 할 지라도 그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할 때는 
    반드시 좋은 기회가 주어지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도마는 처음에 제자들의 모임에 함께 하지 않음으로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기쁨과 영광을 얻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본문 26절의 말씀을 보면 8일 후
    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셨는데 그때는 도마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영광과 기쁨을 얻는데 성공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유익을 얻는 어떤 좋은 기회를 놓쳤을 때는 언제나 그 손실을 
    만회할수 있도록 그 다음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서 더욱 진지하게 주의를 기울
    여야 한다는 사실을 도마의 경우를 통해서 교훈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신앙의 유익을 얻는 좋은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해서 아쉬워
    하며 이제는 그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겠다는 마음이 우리 속 사람을 자극
    한다면 그것은 좋은 징조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갈망을 식혀 버린
    다면 그것은 좋지 못한 징조가 될 것입니다.

      ④ 우리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처음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보지 못한 도마는 주님의 부
    활을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는 부활의 주님을 눈으로 보고, 귀로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손으로 주님 손의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만져 본 후에 
    도마는 28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
    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우리는 이 도마의 교훈과 그의 고백을 통해서 우리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라
    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옛 말에 '백문이 불여 일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났다는 말입니다. 도마가 그랬습니다. 제자들
    에게 주님의 부활에 관한 이야기를 아무리 들었지만 도마는 믿을 수가 없었습
    니다. 마음속에 있는 의심을 떨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직접 주님을 만
    난 도마는, "주님은 틀림없이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자신도 
    모르게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이 땅에는 많은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도 여러 성도
    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신
    앙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주님을 향하는 마음도 같을 수 없습니다. 교회를 사
    랑하는 마음이나 자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
    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주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하나님이십
    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고백은 주를 보지 못하였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예수를 나의 주로 고백하는 믿음이 복된 믿음인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님은 장사한지 사흘만에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찾아 오사 "너
    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와 사망을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 승리의 주님은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는 평강의 주님이십니다.

      불안과 두려움으로 떨고 있던 제자들이 평강을 주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남으
    로 크게 기뻐하였던 것처럼, 주님을 보지 못했으나 '보지 못하고 믿는 자고 복
    되다'는 주님의 말씀과 같이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죽으셨
    으나 하나님앞에 나의 죄를 갚으시고는 장사한지 사흘만에 사망의 권세를 이기
    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온전히 영접하여 인생의 여러 
    가지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평강을 주시는 우리주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큰 
    기쁨과 소망가운데 살아가는 복된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우리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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