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의 주님을 만납시다(요 20:19∼31)
  • 조회 수: 231, 2013.06.22 21:23:58
  •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복된 부활의 주일, 주님의 전에 나아와 예배하시는 여러분들과 여러분의 가정 그리고 경영하시는 모든 일들 위에 항상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부활은 우리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되는 개념입니다. 우리 모든 신앙의 중심과 목표가 바로 부활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이 없다면 우리처럼 불쌍한 사람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고린도전서 15장 19절에서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부활주일이 되면 우리 모두가 다른 주일보다도 특별히 기뻐합니다. 그러나 이런 부활 주일을 맞아서 예수님의 부활이 연례 행사가 되어서는 안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살아 계신 주님을 믿음으로 만나고 느끼고 감격하는 부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입으로는 예수 부활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이 아직도 무덤에 누워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삶을 다스리지도 않으며, 간섭하지도 아니하며 나에게 어떤 헌신도 요구하지 않는, 무덤에 아직도 죽어 누워있는 시체처럼 취급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을 무덤에 그냥 누워 있게 하는 신앙입니다.
    예수의 부활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부활하셔서 살아 계신 주님을 믿는 믿음이 따라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할 뿐만 아니라, 살아 계신 주님이 나의 삶을 다스리고 지배하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완전히 변화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첫째 변화된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라고 하는 부인과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몇몇 여인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다른 열 명의 제자들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 열 명의 제자들 외에도 무명의 제자들이 여러 명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극적으로 만났습니다. 만난 다음에 그들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우리의 옛 사람은 죽고 주님과 함께, 주님이 다스리는 새로운 사람을 입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막달라 마리아를 봅시다
    그녀는 슬픔에 빠져 있었던 여인입니다. 누가복음 23장 27절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하실 때 그 뒤를 따라간 무리들 가운데는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섞여 있었다고 했습니다. 가슴을 치면서 슬퍼하는 여자들의 무리 속에 이 막달라 마리아가 끼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보면서 누구보다도 슬픔을 가누지 못한 여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누구보다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마음의 슬픈 상처를 안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사흘째 되는 날 이른 아침에 무덤으로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마리아 앞에는 그 사랑하는 예수님의 시체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슬픔을 눈물로 씻어내며 울고 있었습니다(11절)
    그때 예수님이 그를 찾아 오셨습니다. 마리아야!하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자마자 마리아의 슬픔은 다 날라 가버렸습니다.
    우리 중에는 슬픔을 완전히 씻어 버리고 세상을 사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눈물이요 슬픔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리아처럼 부활하셔서 살아 계시고 나를 찾으시는 예수님을 날마다, 아니 순간마다 들을 수 있다면, 이 슬픔 많은 세상을 이기고 얼굴에 웃음을 띄고 살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는 사람은 감당할 수 없는 슬픔도 딛고 일어나서 기뻐하며 살 수 있습니다. 살아 계신 주님이 나의 삶을 다스리고 인도하심을 믿는다면 우리의 슬픔은 기쁨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내 인생이 어떤 면에서는 내가 원하는 대로 안되었다 할지라도 부활하신 주님,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날 수 있다면 그 속에서 우리는 기쁨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슬픔을 이기고 매일매일 기쁨으로 살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는 중에나 설교를 듣는 중에, 찬양을 하거나 기도를 하는 중에, 예배를 드리는 중에 나의 삶을 인도하시는, 나를 도와주시는, 나의 곁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눈에서 모든 눈물이 씻겨질 것이요,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제자들을 살펴 봅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들 공포에 짓눌려 있었습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들이 얼마나 두려움에 떨고 있었는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믿고 의지했던 선생님이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들은 자신감과 용기를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되는 모습을 보자 예수를 따라 다녔던 제자들에게 선생님도 저렇게 비참하게 죽이는데 제자인 우리를 가만 두겠느냐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말할 수 없는 공포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방문을 걸어 잠근 채 두문 불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을 찾으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예수님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하시고는 제자들에게 자기가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부활하신 몸인 것을 제자들에게 확인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 결과 제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며 고문하던 공포가 완전히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리고 담대해졌습니다.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요즈음 나라 경제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위기 의식을 느낍니다. 경제가 밑바닥을 모르는 채 가라앉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를 맞이하여 우리의 마음에 두려움이 가득차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오늘 부활 주일을 통해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부활하셔서 오늘도 살아 계시고 나와 함께 인생을 걸어가시는 주님을 날마다 만나면 그 모든 공포를 쫓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을 보십시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고통도 당할 수 있고, 실패 할 수도 있고, 핍박당할 수도 있고, 또 어떤 때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공포에 짓눌려 고생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주님도 그 모든 상황을 인정하십니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도 이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우리의주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우리가 그 모든 상황에도 담대할 수 있는 한가지 이유는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기고, 죽음을 이기고, 죄를 이기고, 인간의 슬픔을 완전히 발로 밟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의 보호자가 되시고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며 날마다 우리와 만나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 지어다하시는 주의 음성을 우리가 말씀을 통해 날마다 듣는다면,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 지어다.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무릎꿇고 기도하는 가운데 들을 수 있다면 우리 마음에 있는 공포는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의 주님과 함께 하면 우리는 부활의 주님과 더불어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우리 모두 날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면 우리의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됩니다. 공포가 사라지고 마음에 평안이 찾아옵니다. 용기가 생깁니다.
    우리 나라에는 동굴들이 많습니다. 저는 동해시에 있는 환선굴을 가보았습니다. 그 동굴은 맨 처음에는 흙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석회로 이루어진 땅으로 지하수가 흐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물이 땅을 녹이는데는 수많은 시간이 소비되었습니다. 비록 당장에 큰 동굴이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땅을 녹이는 부분이 나중에는 큰 동굴을 이루어 갑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만나면서 은혜를 받으며 변화되는 우리의 모습 역시 이와 비슷합니다. 당장 우리의 앞에 큰 변화가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과 함께 있으면 우리의 모습은 아주 조금씩,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변화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나타날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부름 받은 것은 부활의 주님과 똑같은 모습으로 변화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살아 계신 주님과 교제하면서 살면 자기도 모르게 주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3-4절에 보면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우리는 생명을 얻을 뿐 아니라 신의 성품에 참예할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부활의 주님을 만납시다.슬픔이 떠나갑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납시다. 공포를 이길 수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남으로 주님이 세상을 이기신 것처럼 우리도 세상을 이기는 축복을 날마다 누리면서 살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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