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의 주를 만나자(요20:19-23)
  • 조회 수: 274, 2013.06.22 21:24:37
  • 본문 20절에 보면 제자들이 "기뻐하더라" 고 했습니다. 바로 전까지도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떨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문을 닫고 숨어 있었습니다. 숨도 크게 못 쉬고 공포에 질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러한 기쁨을 얻게 되었습니까? 저들의 기쁨은 자신들 스스로에게서 생겼습니까? 무슨 코믹한 사건이라도 생긴 것입니까? 어떻게 금방 두려움이 기쁨으로 변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 가운데 오셨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며 예수님이 다시 사신 것을 분명히 증거해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두려움과 근심에 빠져 있는 모든 성도들의 기쁨의 근원이 되심을 알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공포와 근심과 슬픔으로 불안에 떨고 있는 제자들을 찾아 주셨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과 모든 믿음의 성도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와 만나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른 새벽 그의 무덤에서 슬피울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처음 나타나셨습니다. 그 다음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근심과 슬픔에 잠겨있던 베드로에게, 또 두려움 때문에 예루살렘을 탈출하여 엠마오로 도망가던 두 제자들에게, 오늘 본문에는 다락방에 숨어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공포와 근심과 절망상태에 빠진 자들을 특별히 찾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두려워 하던 저들은 자신을 얻었고 근심하던 저들은 위로를 받았고 슬픔에 잠겨 있던 자들은 큰 기쁨을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을 만난자들은 변화되었습니다. 새힘을 얻었습니다. 자신과 확신과 소망이 넘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이런 기쁨을 얻고 소망찬 인생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1.그러면 주님께서 언제 어디에 찾아오셨습니까? 

    그곳은 어디였지요? (마가의 다락방이었습니다.) 그곳은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나누던 곳입니다. 
    그곳은 제자들의 집합장소였습니다. 잠깐 흩어졌다가 그곳에 오면 피차 소식을 듣고 만날 수 있던 장소였습니다. 또 그들이 언제나 모여 함께 기도하던 장소였습니다. (행1:13-14) 일찍이 선지자의 예언에 "칼이 깨어서 내목자, 내 짝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리라" 하신 말씀과 같이 목자이신 예수님을 잃은 저들은 흩어졌으나 다시 정신을 차리고 돌아왔습니다. 한사람 두사람이 모여들었습니다. 무덤에서 슬피울던 마리아도 홀로 있어 슬퍼하던 베드로도 근심하여 도망가던 엠마오의 두 제자도 다 돌아왔습니다. 주님을 먼저 만난 자들도 찾아왔고 주님을 아직 만나지 못한 자들도 모였습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다 모여 왔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은혜를 받은 사람도 그렇지 못한 사람도 찾아 나옵니다. 그들 중에는 근심 중에 있는 사람들도 슬픔 중에 있는 사람들도 건강한 사람, 병든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뵈올 때 그들은 다같이 큰 은혜를 받습니다. 오늘 본문에 분명히 "두려움과 근심에 잠겨있던 저들이 마침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모이기에 힘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약속된 장소인 교회에 사모하는 자들이 모인곳에 오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 오셔서 여러분과 같이 계실 줄 믿습니다. 

    2.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옛날 다락방의 그 교회와 오늘날의 교회에 있어서 크게 다른 점 하나가 있습니다. 그때의 마가의 다락방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육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때의 제자들 같이 육신의 눈으로 직접보고 기뻐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복음시대요, 은혜시대입니다. 복음시대는 보는 것이 귀한 것이 아니요 복음의 말씀을 듣는 것이 귀합니다. 사도 바울도 가르치기를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라고 하였고 또 우리의 돌아 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듣는 것이 보는 것 보다 더 귀한 복음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믿음과 은혜는 보는 것에서 오지 않고 들음에서 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 암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려고 할것이 아니라 고요히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사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성경을 남겨 주셨고 또 성경을 선물로 보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요히 말씀을 들으며 성령의 감화를 순종하는 것이 가장 귀한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듣고 읽고 믿을 수 있는 증거물인 성경을 주님께서 남겨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본래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떠한 사건이든지 몇 사람의 증인이 있어 확실한 근거를 남기면 그 문서는 영원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 그러한 문서를 후일을 위하여 보존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그러한 방법을 선택하셨습니다. 
    주님의 부활 사건만 하더라도 500여 목격자의 증인을 세워 신약 성경이란 문서를 남기신 후에는 그 기록을 읽고 믿는 자에게 복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도 분명히 밝히기를 '우리는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복된 믿음은 도마같이 만져보고 믿는 믿음도 아니요 또 오늘 본문의 제자들 같이 눈으로 보고 믿는 믿음도 아닙니다. 고요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고요히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통하여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만날 때 근심은 변하여 위로가 되고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그들은 무엇을 보고 기뻐했습니까? 

    그들은 막연히 기뻐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두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도마에게만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에 앞서 다른 제자들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손과 옆구리의 못자국 이야말로 부활하신 주님이라는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대신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주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위로요 기쁨이 됩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저가 친히 나무에 달려 그의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의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이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하심과 같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채찍에 맞으신 주님이 죄로 얼룩진 우리를 깨끗케 하셨고 찢긴 심령을 고치셨습니다. 양과 같이 길 잃은 자들이 이러한 그리스도 앞에 돌아올 때 참 위로와 기쁨이 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오직 그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온전히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늘도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기쁨과 위로가 되는 것은 단순히 그리스도의 어진 인품과 그의 고결한 교훈 때문이 아닙니다. 사실 그의 손과 옆구리의 못자국을 보지 못하는 자에게는 참 위로와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4.주님은 어떤 당부를 하셨습니까? 

    오늘 본문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만으로 끝난 것은 아닙니다. 기쁨이 넘쳐있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게서는 큰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본문20:21절에 보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 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뵈온 제자들은 이제 사도로서의 새로운 사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는 새로운 사명이 저들에게 주어졌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셨습니가? 이제 여러분들에게도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파해야 하는 사명이 주어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독교는 부활이요 생명의 종교입니다. 생명은 땅을 뚫고 자라나고 열매를 맺습니다.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확장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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