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찬에 초청받은 성도(고전 11:23-29)
  • 조회 수: 249, 2013.07.09 21:40:47
  •  오늘 우리 모두는 성찬을 배설하신 예수님의 초청을 받아 거룩한 예배를 드립니다.  성
    찬에 초청 받은 우리 모두는 너무도 행복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성찬은 예수님께서 친
    히 배설하신 가장 거룩한 예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아 계실 적에 사랑하는 제자
    들과 친히 잡수신 최후의 만찬이 성찬인데 이 거룩한 예식에 우리 모두가 초청을 받았습니
    다.  왜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든 인생들처럼 대접을 받기 
    위해서 오신 것도 아니고 세상에 오래오래 살기 위해서 오신 것도 아닙니다.  자기의 몸을 
    대속물로 주시려고 또 십자가에 죽으시려고 오셨습니다.  죄의 삯이 사망인데 우리 모두는 
    일만 달란트의 죄 값을 치러야 될 죄인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죄 값을 치
    르시려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은혜,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에 다락방에 이와 같은 성찬을 배설하시고 사랑하는 제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부르셨습니다.  친히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그리고 잔을 나누어주면서 참으
    로 심각한 만찬의 시간을 가졌는데 이것이 지금 배설하려고 하는 성찬 예식입니다.  
    24절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하셨고 25절에 보면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
    다.  성찬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의 살을 기념하고 그 때 흘리신 주님의 피를 기
    념하는 예식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 없는 성찬은 없습니다.  성찬은 붉은 피의 성찬입니
    다.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 당하셨네♪ 이 감격, 눈물 
    없이 성찬 예식에 참여하는 것은 합당치 못하다고 본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초청 받은 
    성도가 어떤 마음의 자세로 이 예식에 참여해야 하겠습니까?

       첫 째  감사하는 마음으로 참여해야 됩니다.
    감사하지 않은 마음으로 참여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 십가자 무한 영광일세♪ 가슴에서 
    흘러 넘치는 찬송과 함께 예식에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정말 십자가 없는 성찬은 없습니
    다. 우리 모두는 떡을 떼면서 잔을 들면서 예수님의 찢기신 살, 흘리신 피를 꼭 기념해야 할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피를 다 쏟기까지 하시면서 십자가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
    니' 해야만 했을까요?  나의 주홍 같이 붉은 죄, 먹장 같이 검은 죄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찬 예식에 참여하는 모든 성도들은 '주님 감사합니다'하면서 이 예식에 참여해야 할 것입
    니다. 그리고 찬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본문
    24절에 "축사하시고"라고 했는데 원래 뜻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뜻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이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날 대신하여 십자가에
    서 죄 값을 치러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오늘 거룩한 주님의 날, 마음과 뜻
    을 같이해서 내가 받은 그 은혜 한없이 감사하실 수 있기를 원합니다.  내가 믿고 하나님의 
    자녀 되었으며 구원받게 된 것을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감사 감사 아침에도 감사, 저녁에
    도 감사, 어려워도 감사, 넉넉해도 감사, 실패해도 감사, 성공에도 감사♪시종일관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사가 충만하실 수 있기를 원합니다.  왜 우리가 그토록 감사를 많이 해야 합니
    까?  ♪만가지 은혜를 받았으니♪그러니까 이 시간에도 그 주님의 만가지 은혜를 생각하면
    서 감

    사해야 합니다.  성찬예식에 참여하는 초대받은 성도들로서 조금도 부족 됨이 없고 주
    님과 사람 앞에서 부끄럼이 없는 담대한 그러한 믿음, 기쁨, 평안을 가지고 이 예식에 동참
    하셔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룩한 식탁을 마련하신 특별한 초청을 받은 성찬 예식에 동참하는 일은 너무도 행복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친히 이 성찬을 배설하시고 제자들에게만 나누었던 예식이
    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순전히 우리 모두를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불쌍한 인생들인데 이 죄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 죽으심을 기념하
    는 예식이 성찬예식이니 이 예식이야말로 우리에게 큰 축복,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전날 
    밤에 다락방에 사랑하는 제자들을 부르셔서 친히 떡을 떼어 나누어주시고 잔을 나누어 주셨
    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먹을 때 '이것은 내 몸이니 나를 기념하라, 이것을  마실 때 이것은 
    내 피니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찬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기념하면서 
    '내 죄를 어찌할 고' 참회하는 예식이기도 합니다.  십자가가 없는 성찬은 아예 없습니다.  
    성찬은 십자가 성찬입니다.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 당
    하셨네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위하여 보배 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초청 받은 성도가 
    어떠한 마음의 자세로 이 거룩한 성찬에 참여해야 합니까?

       둘 째  회개하는 마음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내 죄 때문이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도 내 죄 때문이
    기에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예식에 참여하면서 그 은혜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
    리고 다함께 '내 죄를 어찌할 고' 참회, 통회하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사실 본문28절에 
    "자기를 살피고"라고 했지요?  자기를 살필 때 회개하지 아니해도 무방할 인생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락방에 만찬을 베푸시고 예수님께서 불러주셔서 동참했던 그 초대받은 사람들
    이 어떠한 사람들이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열두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막14:18을 보니까 "너희 중에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엄청난 마음 
    아픈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때 제자들이 당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씩 하
    나씩   '주여 내니이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찬 예식에 참여하는 성도는 
    누구를 막론하고 '내니이까, 내니이까?'하는 예식입니다.  본문23절을 보면 "잡히시던"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제자가운데 한 사람 가룟 유다에게 배반당할 것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매튜 헨리라는 분은 이 말씀을 전해주시면서 지금도 제2,3의 
    가룟 유다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배반을 당하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는 이 예식에 참여하면서 '주여 내니이까?'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 죄가 무엇이
    냐?  내가 어찌 이 모양이냐?  내가 주님을 배반한 유다는 아니냐?  자기를 살피면서 허물

    을 헤아려 가면서 거룩한 예식에 동참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내 행한 것 죄 뿐인 것을 낱낱이 기억하여 하얀 백지 장에 메모를 해가
    면서 낱낱이 주님 앞에 회개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야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 합
    당하게 먹고 마실 수 있습니다.  성찬예식에 동참하는 성도는 정말 행복한 성도입니다.  
    행복을 누리면서 그러나 꼭 한 가지 기억할 것은 '나의 죄를 어찌할 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동참할 때,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는 영광, 우리 모두에게는 넘치는 축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
    다.  
      이 거룩한 성찬예식에 초청을 받은 사실은 엄청나게 행복한 일인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친
    히 배설하신 성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사랑하는 제자들과 잡수신 
    최후의 만찬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대접을 받기 위해서 오신 것 아
    닙니다.  세상에 오래 사시기 위해서 오신 것도 아닙니다.  자기의 몸을 속죄 물로 주시고 
    또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주님이십니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 갚을 길이 
    없는 일만 달란트 빛을 진 자 들인데 다시 말하면 죄의 삯으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인데 우리들을 위하여 대신 그 값을 치르고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 은혜를 생각할 때 우리 모두는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이 몸밖에 드릴 것 
    없습니다.  이 몸을 바칩니다' 헌신을 다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날 밤 
    다락방에 제자들을 초청하셔서 떡을 떼어주시며 또 잔을 나누어주시면서 '이것

    은 너희를 위
    하는 내 몸이니,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피니 이것을 행할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당부
    하셨습니다. 성찬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찢기신 살, 흘리신 피를 기념하는 거룩
    한 예식인고로 십자가 없는 성찬을 도무지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 나를 위하여 십
    자가를 질 때 십자가를 지시고 고초 당하셨네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를 위하여 보배 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전적으로 주님 앞에 나의 생애를 맡기고자 하는 그러한 거룩한 결
    단이 있을 때 성찬 예식에 동참하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초청 받은 우리 모두가 어떤 마
    음의 자세를 가지고 이 예식에 참여해야 하겠습니까?  

       셋 째 헌신하는 마음을 가지고 참여해야 합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하는 신앙의 
    결단을 가지고 이 예식에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성찬 예식은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고 헌신을 다짐하는 예식이라는 말입니다.  본문24절 "나를 기념하라" 또 25절에 
    말씀하시기를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기념하되 
    우리를 위하여 창에 허리상하여 물과 피를 다 쏟으신 사실을 기념하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예식에 동참한 너희여 인생을 살 때 나처럼 살라'고 주신 당부의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예식에 참여하면서 '나의 몸, 달란트, 생애, 시간, 정성, 모든 것들을  주님 
    앞에 드리겠나이다'고 하는 헌신의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아멘 아멘' 하면서 순종할 수 있는 마음,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아골골짝 빈들에도 소돔 
    같은 거리에도 복음을 들고 갈 수 있겠다고 하는 신앙의 의지를 가지고 이 예식에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나의 헌신, 이것은 이웃을 향해서는 어떻게 나타날까요?  그것은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주님께 '이 몸을 바칩니다'하면 성도는 이웃을 향해서는 '내
    가 당신을 사랑합니다'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정말로 이웃을 사랑하고 있
    습니까?  나보다도 어렵고 딱한 불쌍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시야를 넓혀 
    민족, 국가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에 뜨거운 사랑을 안고 이 예식에 동참할 

    때 깊은 뜻이 있을 줄로 압니다. 한 소년이 애완 동물 가계 앞에서 유리창너머로 예쁜 강아
    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강아지를 가지고 싶어서 용돈을 열심히 모았기 때문입니다.  용
    기를 내어 가계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모든 용돈을 다 털어놓았습니다.  그런데 기껏
    해야 2달러 50센트밖에 되지 않습니다.  주인은 물끄러미 보더니 소년을 애처롭게 여겼습니
    다.  그래서 마음에 다짐하고 원가보다도 싼값을 주면 그것으로 한 마리를 줄 테니 골라보
    라고 했습니다.  소년은 용기를 내어 한 마리를 골라 가슴에 안고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주
    인은 '그것은…' 하면서 조마조마하더니 '다리가 다친 강아지인지라 제대로 걸을 수가 없다'
    고 했습니다.  그런데 소년은 빙그레 웃으면서 바지의 한 쪽을 걷어 올려 보였습니다.  보니
    까 보조기구를 낀 다리하나를 못쓰는 불쌍한 소년입니다.  '아저씨 나는 이 강아지가 더 좋
    아요 이 강아지를 내 친구로 삼을래요'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본문의 28절을 보면 "자기를 
    살피고" 했는데 자기를 살피는 성도라면 자기 형편, 처지를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기
    를 잘 살핀 성도라면 많은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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