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찬의 의의 및 주의점(고전11:23-34)
  • 조회 수: 459, 2013.07.09 21:42:45
  •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 남은 것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귀정하리라


    우리 예수님이 말씀으로나 또는 친히 본을 보이심으로 제정하신 성례, 곧 거룩한 예식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세례와 성찬입니다.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몸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친히 세례를 받으심으로 공생애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지상에서의 모든 사역을 마치시고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하셨습니다. 마28:19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세례를 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난 주일 성삼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교회에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이 세례와 더불어서 우리 예수님이 친히 제정하신 거룩한 예식이 바로 성찬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잡히시던 그 날 밤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마가의 다락방에 올라가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드셨습니다. 그 때 준비되어진 떡과 포도주로 예수님은 성찬을 제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성찬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 지신 것을 성찬을 행할 때마다 되새기면서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서 성찬을 행하고자 합니다. 우리 예수님이 직접 세우신 뜻깊은 성찬을 통해서,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오는 은혜와 평강이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게 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속에서 성찬의 의의와 또 우리가 성찬에 임할 때 명심해야 할 몇 가지 사항들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었습니다. 2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바울은 성찬에 관한 가르침을 주께 받은 그대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전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성찬의 기원이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성찬은 사람들이 제정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만들어낸 예식도 아닙니다. 다른 사도들이 만들어낸 예식도 아닙니다. 교회가 만들어낸 종교 의식도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시고 세우신 것이 바로 성찬 예식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언제 성찬 예식을 제정하셨습니까? 23절 하반부를 보시기 바랍니다.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그 날 밤에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마가의 다락방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의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드셨습니다. 그 때 준비된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예수님은 성찬을 제정하셨습니다. 만찬을 다 드시고 난 뒤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앞으로 지셔야할 십자가를 앞에 놓으시고 하나님께 무릎 꿇고 피땀 흘리시면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를 마치신 우리 예수님은 검과 몽치를 들고 온 대제사장의 종들에게 잡히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위함이셨습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은 주변이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더욱더 선명하게 비취기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성찬이 우리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잡히시던 바로 그 날 밤에 제정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가슴을 더욱더 뭉클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듭니다. 
    그러면 우리 예수님은 어떤 식으로 성찬을 제정하셨습니까? 23절 끝부분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축사라는 말은 축복과 감사가 합친 말입니다. 예수님은 성찬에 참예하는 제자들을 위해서, 또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 시간 성찬에 참예하는 모든 사람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사죄의 은총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예수님은 성찬에 임하는 우리 모두를 위해서 하늘의 문을 여시고,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을 아낌없이 내려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축사라는 말에는 감사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떡을 가지고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엄청난 감사입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감사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온갖 고통을 다 겪으실 것을 미리 아시고 감사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의 죽음으로 인해서 감사하는 사람이 또 누가 있겠습니까?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 바쳐지는 제물인 소와 양은 울부짖으면서 끌려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어린 양 되신 우리 예수님은 죽음 앞에서 입을 다무셨습니다. 오히려 자기의 죽음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셨습니다.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또한 주를 믿는 모든 백성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을 생각하시면서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셨던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떡을 가지사 축사하신 뒤에 “떼어”라고 했습니다. 떡을 떼어서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몸이 찢기워질 것을 의미하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살이 어떻게 찢겨졌습니까? 로마 군병들이 사정없이 휘두르는 채찍에 의해서 살이 찢겨졌을 것입니다. 가시 면류관을 쓰실 때도 살이 찢겨지셨을 것입니다. 손과 발에 굵은 못이 박히셨을 때도 살이 찢겨졌을 것입니다. 로마 군병이 날카로운 창으로 예수님의 허리를 찌를 때도 찢겨졌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찢어주신 살을 받아먹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가 성찬에 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로,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주셨습니다. 나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내주셨습니다. 오늘 성찬에 임하면서 우리는 예수님의 음성 듣기를 원합니다. 
    “나는 너를 위하여 십자가를 졌다. 나는 너를 위하여 내 몸을 찢어 주었다. 나는 너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고 너를 위하여 죽었다.”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철저하게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신 것입니다. 오늘 주께서 성찬 예식을 허락하신 것도 우리를 위해서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잊어서는 안될 줄 압니다. 
    둘째로, “너희는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잊지 말고 되새기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며 그 몸을 아낌없이 찢어주셨다는 것을 우리가 잊지 말고 성찬을 통해 다시금 되새겨야 될 줄 압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다시금 불태울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우리의 헌신을 다시금 다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이와 같은 은혜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25절 말씀입니다.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먼저 떡을 가지고 축사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그 뒤에 잔을 가지시고 축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를 마시는 자들을 위하여 축복하셨습니다. 사죄의 은총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늘 문을 여시고 하늘의 신령한 복을 내려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우리 예수님이 피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주를 믿는 우리와 하나님이 다시금 화목하게 될 것을 생각하시면서, 또한 우리의 모든 죄가 깨끗하게 사해질 것을 생각하시면서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셨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두 가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첫째로,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시대 때 성도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마다 짐승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짐승의 피를 제단에 뿌렸습니다. 그것은 옛 언약을 맺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 곧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성도인 우리들은 더 이상 짐승을 잡을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어린 양되신 우리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아낌없이 보혈을 다 흘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과 새 언약을 맺게 된 새 언약의 백성입니다. 이 언약은 영원합니다. 결코 폐하여 지는 법이 없습니다. 새 언약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구원은 영원합니다. 한 번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새 언약의 백성인 우리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인 영생이 보장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둘째로,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를 위하여 뜨거운 보혈을 아낌없이 쏟아주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곧 이어 바울은 26절 말씀에서 성찬의 의의를 간단하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우리가 성찬에 참예할 때마다 제일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주의 죽으심입니다. “주께서 나를 위해서 죽으셨다.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 주께서 나를 위하여 그 몸을 아낌없이 찢어주셨다. 주께서 나를 위하여 뜨거운 피를 흘려주셨다.” 어떻게 우리가 그 사실을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 거룩한 성찬의 예식을 언제까지 거행할 것입니까? 주님 “오실 때까지”입니다. 내 생명 다할 때까지 우리는 성찬을 계속해서 반복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주의 죽으심을 세상 만방에, 또 우리의 자손들에게 계속해서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의 죽으심을 결코 부끄럽게 생각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결코 수치스럽게 생각지 않습니다. 오히려 십자가를 자랑합니다. 십자가를 사랑합니다. 십자가의 도를 담대하게 입을 열어서 전합니다. 초대 교회 때부터 모든 성도들이 성찬을 통해서 주의 죽으심을 지금까지 전해 왔습니다. 믿음의 선조들을 통해 충성스럽게 전해 왔습니다. 우리도 성찬을 행하면서 주의 죽으심을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계속해서 전파할 것입니다. 
    곧 이어서 바울은 우리가 성찬에 참예할 때에 주의해야 할 몇 가지 사항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27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성찬에 합당치 않게 참예하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다고 했습니다. 주의 몸과 피를 받으면서도, 아무런 마음의 감동없이 임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저 교회에서 때가 되었으니까 하는가 보다!” 이러한 자세를 가지고 관습적으로 생각없이 참예하는 것은 합당치 않은 태도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진지한 자세로 참예하지 않고, 아무런 생각없이 가볍게 성찬에 임하는 것도 합당치 않습니다. 지은 죄를 회개하는 마음없이 그 죄를 그대로 품고서 성찬에 참예하는 것도 합당치 않습니다. 형제에 대한 미운 감정을 그대로 품고서 성찬에 참예하는 것도 합당치 않습니다. 이런 합당치 못한 태도로 성찬에 임하는 것은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살을 찢기시고 피를 흘려주신 예수님을 욕되게 하는 행위입니다.
    예컨대 우리 나라 국기인 태극기를 땅에 놓고 짓밟는 행위는 단순히 하나의 천 조각을 짓밟는 행위로 끝나지 않습니다. 태극기가 상징하고 있는 우리 나라를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마찬가지로 성찬에 합당치 않는 자세로 참예하는 것은 주의 몸과 피를 경멸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그 분 자신을 모독하는 행위가 된다는 것입니다. 
    28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찌니.”

    우리가 성찬에 임하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을 자세히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어 있는가? 이웃과의 관계는 바로 되어 있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택해 주시고, 내게 귀한 사명을 주셨는데 과연 충성 되게 사명을 잘 감당해 왔는가? 하나님을 내 목숨과 내 마음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고 있는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나 자신을 더 사랑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것들을 우리가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잘못된 것이 생각나거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먼저 다 남김없이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아래에 놓고, 회개하고 죄의 사함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요일1:9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성찬에 임하기에 앞서서 먼저 우리 자신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29절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자기의 자신을 살펴보지 아니하고 합당치 아니한 태도도 함부로 경망스럽게 성찬에 임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는 행위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 짓는 행위를 할 때 하나님의 무서운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0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고린도 교회 안에 약한 자, 병든 자, 그리고 잠자는 자가 적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들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야만 했습니까? 성찬에 합당치 않은 자세로 임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함부로 먹고 마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다시는 똑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도록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하여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의 몸을 약하게도 만드시며, 병으로 고통 당하게도 하시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처럼 우리의 목숨을 잃게 만들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3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만일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성찬에 참예하기에 앞서서 먼저 자신들을 잘 살피기만 했더라도, 저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로 인한 약한 자, 병든 자, 잠자는 자도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3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들을 징계하시는 것은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고자 함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깨닫고 이제 더 이상 잘못된 태도로 성찬에 임하지 말고 바른 자세로 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우리 자신을 살피는 가운데 우리들도 주님 앞에 깨끗함 받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몸된 우리 교회가 다시금 성찬 예식을 통해서 깨끗해지는 역사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3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성찬이 거룩한 예식이 되도록 서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다함께 떡을 떼고, 다함께 잔을 나누면서 성찬이 거룩하게 행해지도록 협조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떡이나 잔을 받으시고 개별적으로 들지 마시고, 같은 시간에 다함께 들도록 조금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3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 남은 것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귀정하리라.”

    성찬은 결코 우리의 배를 채우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니 목사님, 이왕 주시려면 좀 빵도 큰 것으로 주시고, 잔도 큰 잔으로 주시지, 이게 뭡니까?” 물론 우스개 소리로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찢기신 살을 조금만 받아도 황송할 따름입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뜨거운 보혈을 우리가 마시는 것입니다. 피 한 방울도 소중합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시는 자세로 임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성찬에 대한 불경한 태도로 인해서 하나님의 판단이,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는 일이 없게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오늘 말씀을 이렇게 끝맺고 있습니다.

    “그 남은 것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귀정하리라.”

    성찬과 관련해서 자신이 못다한 가르침은 그가 고린도에 갈 그 때에 올바른 지침을 주겠다는 약속으로서 성찬에 대한 가르침을 끝맺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성찬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과연 준비가 되었습니까? 자기를 살피지 아니하고 합당치 않은 태도로 먹고, 마시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 행위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행위라고 했습니다. 이천년 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손가락질하며 조롱하던 군중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 자신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바로 되어있는가? 나와 이웃과의 관계가 바로 되어있는가? 내 마음속에 회개하지 못한 죄가 도사리고 있지 않는가? 이것을 우리가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살과 피를 받는다는 심정으로 진지하게 임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자가 되겠다는 결단을 새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오는 은혜와 평강이 우리에게 충만히 임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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