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그리스도 유월전 전에(고전 11:23-32)
  • 조회 수: 122, 2013.07.09 21:46:00
  • 「예수그리스도 그 잡히시던 밤에」라는 주제로서 이 사순절 기간동안에 시리즈로서 말씀을 드려 왔습니다만 오늘은 성찬 예배로 드려지기에 시간도 좀 조정되어야 되겠고 또 이 수찬하실 여러분들에게 합당한 말씀으로 드려야 될 것 같아서 오늘 제목을「우리가 우리를 살피고 성찬을 받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오늘 받게되는 이 성찬은 23절에 기록된 대로 "주께서 그 잡히시던 밤에 떡을 때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잔을 나누어 주시다가 대야에 물을 준비하고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내가 베푸는 이 성찬이 무엇을 의미하며 또 내가 너희의 발을 씻기는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아야 한다." 하시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때 주께서 그 성찬과 그리고 제자들이 주님의 발을 씻겨드리려 했지만 그렇게 되어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하시면서 "내가 네 발을 씻겨야 네가 나와 상관이 있다." 하시면서 가르쳐 주신 그 진정한 의미는 고린도전서 10장 16절-17절에도 잘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축복 받은 바 그 떡, 축복 받은 바 그 잔에 참예하게 되는 사람들이라면 예수그리스도를 같은 주로 섬기는 자로서 이 축복 받은 한 떡에 참여하게 된다면 그 사람의 수요가 열명이든지 백명이든지 혹은 만명이든지 간에 같은 주를 섬기는 한 떡에 참여하는 한 교회의 무리는 한 몸이라 하는 그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그의 지체의 각분야로서 땔래야 땔 수 없는 한 몸인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께서 베푸시는 그 성찬에 담겨진 의미는 '내가 떼어주는 떡을 너희가 먹어 너희 안에 있게 하고 내가 너희에게 주는 이 잔을 너희가 받아 마심으로 너희 안에 흐르게 한다면 곧 이는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이요, 또한 너희가 내 안에 되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잘 믿지 못하거나 믿으려고는 하지만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힘들어하는 분들도 더러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오늘 수찬 하기 전에 요즘에 잘 알 수 있는 가까운 예를 하나 드려서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이 떡 조각과 그리고 잔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설명을 드려볼까 합니다.

    요즘 한참 뉴스거리가 되어있는 복제 양, 복제 인간 이것이 아마 앞으로도 큰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이미 복제 양이 만들어져 있고, 복제 소도 만들어져 있고 또 실수인 것처럼 만들어진 복제인간도 이 지구상에 저 어느 나라엔가 저 지금 서양에 거닐고 있다는 소식도 우리가 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를 요즘 많은 소식들을 통해서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만 한사람의 유전자나 아니면 한사람의 조직 그 몸 조각을 떼어 내어가지고서 얼마든지 많은 똑같은 동일인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하는 그것입니다. 유전자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만들고 또 그 몸 조각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똑같은 인간을 만들어 낸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인간은 우리의 보기에는 우리와 똑 같을 지라도 이것은 육체적인 인간, 생체적인 인간 즉 혼과 몸을 가진 그런 수준의 인간일 뿐이지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시고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생령이 되는 영적 존재는 인간의 수준으로는 아직 근처에 갈 수도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세상지식이 아무리 발달이 되어도 영의 존재는 잘 알지 못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의 영은 죽어요.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영이 거듭나 살아있다는 그 사실을 이세상의 복제 인간을 만들고 복제 짐승을 만드는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저 겉으로 보기에 사람이요, 겉으로 보기에 똑같은 짐승이니까 복제 짐승 혹은 복제 인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우리는 이 수준보다 더한 영적 존재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영적 부분은 과학자들이 다룰 수가 없는 겁니다. 알지도 못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소관입니다. 하나님께서 불어 넣으심으로 생령이 되는 것인데 이 영을 누가 만들며 유전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혹시 복제 인간을 만든다 라고 해서 인간이 똑같이 만들어진다 라고 해서 영도 자연스럽게 유전되거나 혹은 분리되어 가서 우리들처럼 하나님을 아바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그런 인간이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욕심입니다. 가능치가 않습니다. 이 영적 부분은 하나님에게만 달린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가 구원을 받으며 구원을 받지 못할 것, 누가 천국시민이 되며 누가 지옥에 갈 것, 이것은 다 주께서만 주관하시는 것이니 이것은 하나님에게 달려있다 라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계속되지 않기를 바랍니다만 그러나 사람이 기술을 계발해 놓고서 사용하지 않는 것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얼마간 지나게 되면 뇌피림 같은 용사, 잘 생기고 힘있고, 대단한 능력있는 남성을 뽑아가지고서 그의 몸 조각이나 그의 유전자를 가지고서 복제인간을 많이 만들게 된다면 이 세상에 그런 인간이 우리들과 같이 섞여 살게된다면 세상의 많은 여성들은 보기에도 준수한 남자, 뇌피림 같은 힘있는 남자, 이런 남자에게 모두 시집가려고 야단들일 겁니다.

    또 여자를 만든다면 굳이 못난 사람을 골라서 만들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삼손을 유혹했던 데릴라와 같은 이런 미인을 수없이 만들어 내서 세상 제일 가는 미인들이 거리에 쏟아져 다닌다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부르는 믿는 주의 백성들마저도 그 사람의 아름다움을 보고 장가들려고 할 날도 아마 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에 이런 현상이 오게 된다면 창세기 6장 1절에 나타난 대로 영적인 존재인 하나님의 아들들이 육체에 불과한 영적으로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는 사람의 딸들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취해서 시집가고 장가가서 또 생산하게 될 것인즉, 이들을 결합하게 된다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과 육체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 서로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게 된다면 그때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을 취하셨습니까? 영적인 하나님의 아들들의 신분마저도 육체로 인정해버렸던 사실을 우리는 창세기를 통해서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일이 있어지게 된다면,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기간 동안에도 이런 일 벌어질 수 있게될는지 모르겠는데, 만약에 이렇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어찌하실 것 같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충분히 예측할 수 있습니다.

    노아의 때에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혼합하게 되어 하나님의 아들이 육체로 변하는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두를 이 땅에서 물로 쓸어버렸던 것을 우리는 잘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건장한 용사들이 이 땅에 많기를 굳이 기대하지 않습니다. 데릴라와 같은 아름다운 여인이 많기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영적이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인간이 충만해지지 못한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용감있는 남자요, 아무리 아름다운 여인이 많다 하더라도 육체화 되는 이세상의 인간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않아서 쓸어버릴 것입니다. 물론 물로는 쓸어버리지 않겠지만 이제 그때에는 약속된 대로 불로 다 살라버릴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요즘 기독교인들을 비롯해서 많은 분들이 이 복재 인간 때문에 이렇게 하지 말도록 해야 된다 라고 하면서 어떤 말씀들을 하는고 하면 "사람을 지으신 것은 하나님만 하실 일인데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인간이 도전하게 되면 되느냐? 그 실력은 있다 하더라도 중단하고 하나님만이 하시도록 해드리자." 이렇게 말하는 것 듣게 됩니다. 한편 보면 참 좋은 말 같으나 합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을 무시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같이 된 것처럼 착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이 아무리 올라가도 하나님과 같이될 수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할 수 있는 인간 지으신 일을 이제 사람도 지을 수가 있으니 사람이 양보함으로써 인간 짓는 것은 인간 지으시는 이는 하나님만 하시도록 하나님만이 하신 일로 만들어 드리자 하면서 마치 하나님을 좀 봐드리는 것처럼, 그런 인상마저도 줄만큼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을 위하는 척 하면서 신격화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도와주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분명히 말씀드리거니와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영적 하나님의 아들 딸을 만드는 이 영적 문제는 사람이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시기를 바랍니다. 가능치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복제인간 나는 것을 절대적으로 막아야 되는 것은 '노아 때처럼 쓸어버릴까'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이 땅의 모든 인종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노아의 가족만 놓아놓고 모두 쓸어버리던 그런 일이 또다시 다가올까봐 하나님 두려워서 만들지 말아야지, 하나님 봐드리자는 차원에서 '우리가 실력있지만 좀 억제하자' 이런 논리는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인간이 발달해도 하나님과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유전자를 갖고도 사람이 똑같은 복제인간을 만들고 짐승을 만들어 내는데, 인간의 몸 조각 하나를 가지고도 똑같은 사람을 실제로 만들어 내는 이런 시대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데, 오늘 주께서 차려진 떡에다가 "이 떡은 내 몸이요." 오늘 주께서 우리에게 나누어주실 이 잔에다가 이 잔은 내 피요, 생명이라고 하시고서 우리에게 주신다면 주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신데 인간이 알지도 못하는 그 영을 인간이 아직 믿지 못하는 그 생명을 주께서 그 떡에 축복하여 부여를 하신다면 우리가 우연한 떡 조각 하나 받아 배속에 넣는 것이 아니라 축복된 영이요, 생명이신 말씀이 함께 들게 되는 것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의 몸 조각이나 유전자를 가지고 생체적인 인간을 혹은 복제할 수 있다 하여 똑같은 인간처럼 시집가고 장가가고 할 수 있는 수준의 사람은 만들지 모르지만, 오늘 주께서 이 떡 조각에 "이 몸은 내 몸이요." 이 주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영이요 생명이신 말씀을 이 조각에 축복하셔서 그 조각에 실어서 우리 안에 들게 하신다면 바로 살아계신 주의 영이 주의 생명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밖에 없는 그 영이 그 신분이 우리 안에 들게 됨으로 그 떡을 그 조각을 축복 받은 떡을 축복 받은 잔을 우리 안에 두게 되면 어느 사이 우리도 모르게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될 줄로 믿는 것입니다.

    이 엄청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는 축복을 우리에게 오늘 주시려고 주께서 오늘 성찬을 베푸셨으니 우리가 이 조각을 받을 때에, 우리가 이 잔을 들어 마실 때에 영이요 생명이신 주의 말씀으로 주께서 축복한 그 조각을 우리 안에 모셔들인다고 믿으신다면 사람이 실력이 재주가 있어 만드는 그런 복제 인간의 수준이 아니라 영적인 그리스도의 생명을 여러분 안에 두시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31절에 보면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고 하면 29절에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1:29-32)

    바울 사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말씀은 "성찬을 받을 때에 잘 살피고 합당하게 받으면 연약한 자가 강하여 지고, 병든 자가 나음을 얻고, 시험 들고 잠자는 자도 벌떡 일어나 힘있는 믿음 충만한 사람이 될 수 있지만 성찬을 받기 전에 분변할 것을 분변하지 못하고 알 것을 알지 못하고 잘못 참여하게 되면 멀쩡하던 사람이 약해지고, 병이 없던 사람이 병든 자가 되고 그리고 믿음 충만하고 봉사 잘하던 사람이 잠자고 시험에 드는 자가 적지 않게 발생하게 된다 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사건을 두고 이렇게 단어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성찬사고라고요. 성찬 잘 받으면 상당한 복이 됩니다. 영이요 생명이신 말씀이 부여된 그 떡이 우리 안에 들면 어찌 가만히 있겠습니다. 영이요 생명이신 말씀이 우리 안에 구체적으로 들어오셨는데, 주님의 뒤로 돌아가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나음을 입을 판인데 저 백부장의 주님께서 보내신 말씀만 들어도 하인이 열이 떠나고 살아나는 판인데, 주의 몸이요 주의 피가 축복되어 우리 안에 들어 온다면 무슨 역할을 해도 큰 역사를 하게 될 터인데, 이 성찬에 참여한 후에 잘못된 일이 있는 것은 우리가 우리를 살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관심을 두실 것은 '우리'라는 것입니다. 성찬에 참여하게 되는 분들은 주로 내가 나를 살피는데 강합니다. '내가 죄 있는가? 내가 이 주간에 싸움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많이 살피고 있습니다만 주께서 그 잡히시던 밤에 떡을 때어주시며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 가룟 유다 한사람의 죄로서 열한 제자도 똑같이 발을 씻어야 했던 것처럼, 우리의 죄, 우리의 축복, 이 '우리' 하나인 것을 잘 살피고 인정하고 성찬에 참여하게 된다면 큰 유익이 있게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이 교회의 수많은 성도들은 오늘 한 떡에 참여함으로 한 몸인 것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한 몸이기 위해서 한 떡에 참여하여, 나의 축복 받을 일을 이웃과 나누고 이웃이 지은 죄를 내가 용서함을 구하는 우리가 우리에게 지은 죄,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소서." 나의 죄뿐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소서."

    우리 중에 죄지은 사람이 있는데 죄를 짓고 보니 영이 가리워져서 회개하지 못합니다. '그 우리의 죄를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하여 주옵소서' 이런 정도 수준이 되기를 바라고 주께서 그 잡히시던 밤에 성찬을 베푸시고 발을 씻기셨으니 오늘 수찬 하실 여러분께서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요,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 한떡에 참여함으로 하나인 것을 인정하고 받으신다면 주께서 크게 역사하여 큰 변화와 복을 나타내실 줄로 믿습니다.

    또한 주께서 잡히시던 그 밤에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신 그 성찬의 의미 또 하나는 요한복음 13장 19절에 나타난 대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너희에게 이 일을 행함은" 이라고 했습니다. 가룟 유다가 발꿈치를 들었던 그 죄짓는 행위는 아직 하지 않았습니다만 앞으로 저가 죄를 지을 것까지 아직 죄를 짓지 않았으니 다른 제자들에게도 발을 씻어줄 필요가 없었습니다만 "내가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이것을 너희에게 행함은 내가 너희를 용서하는 것이 이와 같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주께서는 이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서 이러한 사실을 가르쳐주셨으니 탕자가 아비의 집으로 돌아가 보니 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내가 돌아가서 품꾼의 하나로 써주소서. 내가 빌리라. 빌리라. 내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기 어렵사오니 품꾼의 하나로 써 주소서 하면 아버지가 용서해주시리라." 하고 가 보았더니 정작 그의 문 앞에 갔더니 그 아버지는 빌기 전에 이미 대문을 열어놓고 있었던 것을 발견했습니다.

    '품꾼의 하나로 써 주소서' 하기 전에 살찐 송아지를 잡으려고 준비해놓았고 입힐 옷과 끼울 가락지를 미리 준비해놓고 있었던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주님 앞에 나아가 본다면 주님은 그때 비로소 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죄를 사하신 것을 깨닫는 수준에까지 이르라고 가르쳐주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사람 '기다려주소서. 참아주소서' 그랬기 때문에 탕감을 받았던가요? 물론 그 임금이 불렀습니다. 내게 빚을 갚으라 했습니다. "예 임금님이여, 기다려 주소서. 내가 갚으리다." 그때 임금은 뭐라고 했습니까? '그래, 기다릴게 빨리 갚아라'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일만 달란트 모두 탕감할 마음이 있어서 너를 불렀으니 너도 나가서 이와 같이 네 이웃에게 하라."고 해서 탕감해주었습니다.

    빚진 사람이 가서 절절 빌어서 비로소 일만 달란트 탕감 받았던 것이 아니라 빌러 들어갔더니 탕감해주실 분은 이미 미리 탕감해주고 있었던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회개하니까 용서받았다'라고 하지 마시고 '회개하여 들어가 보았더니 주께서는 미리 나를 용서해주시고 회개할 맘까지 주시고 나를 깨끗게 해주셨다'는 사실을 믿게 된다면 오늘 이 성찬이 여러분에게 큰 유익이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이 성찬을 참여하면 즉 29절에 "주의 몸을 분변하고 이 성찬을 받으면 이려니와 그렇지 못하고 받게되면" 30절에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가 많고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많아진다." 했으니 바꾸어 말하면 잘 살피고 분변하여 주의 잔을 받고 주의 떡을 먹게된다면 "너희가 건강해질 것이며, 시험에 들지 않게 될 것이며 그리고 충성자가 될이라." 라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씀을 여러분이 들으시고 오늘 내가 받는 떡조각은 오늘 내가 받게 되는 잔은 영이요 생명이신 주의 말씀으로 축복된 말씀인 것을 인정하고 그 떡이 그 잔이 내 안에 들게되면 영이요 생명이신 주님이 내 안에 드는 것을 확실히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아멘 하는 여러분에게 큰 유익이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혹시 여러분 가운데 혹시 이 잔이, 혹시 이 떡 조각이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있을 것 같아서 이제 성경의 사건 두가지만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요한 복음 13장 26절-27절에 보면, 지난 시간에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만 가룟 유다는 주님을 팔려는 생각을 미리 하고 있던 중에 주께서 떡을 때어주시니 떡을 받게 됩니다. 요한복음 13장 26절-27절 사이의 말씀들입니다.

    주께서 떡을 떼어 주시니 가룟 유다가 떡을 받게 되는데 떡을 받은 후 뭐가 들어갔다고요?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가니라 했어요. 이 떡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지 떡을 떼어주시니 떡을 받으매 그에게 사단이 들어갔다 라고 했습니다.

    사단이 들어가 가득 차 역사해버리니 그 길로 나가서 예수님을 팔려는 행동을 합니다. 예수를 잡으려는 그 병정들 앞에서 군호를 짜가지고서 예수님께게 입맞춤을 합니다. "이 예수를 잡아가시오." 이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양심에 가책도 없습니다. 할 일을 다한 후에 사단은 떠나가 버렸습니다. 할 일을 다하고 사단이 이 가룟 유다를 완전히 다 써먹고 예수를 붙들리게 한 후에는 떠나갔던지 어떻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때 비로소 후회합니다. 얼마나 후회하고 곤두박질을 쳤던지 창자가 흘러나올 만큼 후회할 일을 사단이 들어가면 자기도 모르게 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언제 사단이 들어갔다고요? 주님을 분변치 못하고 떡을 받을 때에, 떡을 먹을 때에 사단이 함께 따라 들어갔다 했으니 오늘 우리가 방향을 잘 잡고 떡을 받으면 주의 영과 권능이 우리에게 들어오게 될 것이요, 잘 잡지 못하고 주님을 팔려는 생각을 가지고 떡을 받으면 주님을 팔고 죽이려고 하는 사단이 따라 들어오게 되는 것이니 이 떡을 먹음이 얼마나 중요하다 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 한군데 누가 복음 24장 13절-35절에 사이의 있는 말씀, 주님께서 부활 하셨으나 그것을 알지 못하고 근심하던 두 제자 엠마오로 내려갑니다. 엠마오로 가는 도중에 사람 남자 한 분이 나타났습니다. 얘기를 나눕니다. 한참 얘기를 하는데 그 남자 분은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걸어가고 있으면서 장시간 가는데도 알지 못했습니다. 이제 권하여 집으로 들어가자 합니다. 주님은 계속해서 가시려고 하고 그리고 이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엠마오로 들기 위해서 (B면)

    29절-30절 사이에 보면 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24장 29절에 "저희가 강권하여 가로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저희와 함께 유하러 들어 가시니라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줄 알아 보더니"(눅24:29-31)

    주께서 많은 말씀으로 길 가시면서 그렇게 말씀해도 함께 가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눈이 가리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식사하시면서 주께서 그 식물에 대하여 축사하시고 그 떡을 떼어 나누어 줄 때 그 떡을 받아먹게 될 때에 눈이 열려 '지금까지 같이 오신 분이 예수님이구나'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 여기에서 찾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식사를 하면서 주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가족들이 먹게 한다면 축복 받지 아니한 먹은 사람들과 축복받은 음식을 먹은 사람들이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주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기도를 한다면 그 음식이 모두 약이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주께서 떡을 주실 때에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주시니 떡을 먹으매 그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육체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영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만큼 중요한 것이 떡일진데 오늘 주께서 베풀어주시는 주의 몸이요, 주의 피가 축복된 떡 조각과 잔을 받으실 때에 이 잔과 이 떡이 내 안에 드실 때에 우연치 아니한 것을 아시고 주님께서 그 잡히시던 밤에 베푸신 성찬의 의미, 우리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 떡에 참여하는 하나라는 사실, 우리라는 사상에 강하여 그리고 또 이미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고 우리가 회개하여 들어가 보면 비로소 우리의 비는 꼴을 보고 사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은혜는 전부터 이후까지 우리에게 내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오늘 여러분이 받게 된다면 이 주님의 주시는 떡 조각, 주님의 몸 조각이 주님께서 축복하여 내리시는 잔, 이 주님의 피가 여러분 안에 들어와 영이요 생명의 수준에서 예수그리스도의 큰 빛과 큰 능력이 여러분 몸 가운데서부터 온몸으로 퍼지고 바깥에까지 이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러한 복을 받으시는 성찬에 주의 이름으로 참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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