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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 룻기 2:1-13/ 축복의 사자 보아스 [새벽]
  • 조회 수: 740, 2013.07.16 22:30:36
  • 룻이 고향을 떠나 온 곳은 어떤 곳이었습니까? 정말 흉악한 곳이었습니다. 성공하겠다면서 고향을 떠났으나 이제 남편과 자식 잃고 빈손으로 돌아 온 시어머니와 자신을 이스라엘 사람들, 즉 시어머니의 고향 사람들은 다들 불쌍하게 여기고 수군거리고 손가락질했습니다. '팔자가 얼마나 사납길래...' '남편 잡아먹고 아들들 잡아먹고 무슨 낯으로 돌아왔을까...' 그렇게 돌아 온 시어머니에게 집이나 재산이나 논밭이라고 하나도 없었습니다. 일하기에는 늙고 지친 시어머니를 대신하여 이제부터 낯선 땅에서, 외국인들인 이스라엘 사람들 속에 섞여서, 살아남기 위해 몸으로 부대껴야 했습니다.


    젊디 젊은 한 여인, 타향 땅으로 오자 마자 살아 길이 막막한 현실, 어디서 어떻게 이 어려움을 풀어야 할지 모르는 현실입니다.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고, 하소연할 사람도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주인공 룻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의 문제로 괴로워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적으로 부족해서 괴로워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남편이나 자녀들 때문에 괴로워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살아가는 것 자체가 무거운 짐일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자신을 찾은 여러분들을 기뻐하십니다. 당시 유대사회의 풍습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추수할 때 조금 남겨두거나, 이삭을 떨어뜨려서 가난한 사람들이나 나그네들이 그것으로 끼니를 떼울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룻은 그것을 알고서 그것을 주우려고 갔습니다.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리고 갔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일부러 떨어뜨린 것을 줏어다 끼니를 떼워야 했습니다. 비참하지 않습니까? 이제 20살을 갓 넘었을 나이에 불과한데 말입니다.


    거기다가 당시는 보리밭을 추수할 때가 되면 마을이나 인근에서 건장한 일군들을 고용하여 추수를 했습니다. 건장한 일군들이 젊고 아리따운 룻을 보고 얼마나 군침을 흘렸겠습니까? 누가 보호해줄 사람도 없고 늙은 시어머니 혼자 있으니 건드려도 누구 하나 나서서 변호해 줄 사람도 없고, 힘도 없고, 마땅한 보호자도 없는 룻입니다.


    이런 형편의 룻이 만난 사람이 보아스입니다. 보아스는 룻이 보리 이삭을 줍고 있던 밭의 주인이었습니다. 우선 보아스는 일하는 일군들에게 룻을 건드리지 않도록 단단히 명합니다.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9절 중반절). 젊은 과부이고 이방 여인이라고 해서 함부로 다루지 못하도록 단속한 것입니다. 게다가 이 밭 저 밭 옮겨 다닐 것 없이 계속 자기 밭에서 보리 이삭을 줍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필요하면 물도 마음대로 마실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8-9절). 참 고마운 보아스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택한 백성을 그대로 버려두지 않습니다. 이렇게 멋진 보아스를 준비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보아스의 친절한 배려에 무척 감격하여 땅바닥에 엎드려 절하며 답례하는 룻을 보며 보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12절).


    룻은 쉬운 길을 택하지 아니하고 의리와 신앙을 택하여 그 결과 고통을 감수하며 믿음으로 참아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이러한 룻에게 보응하시려고 일어섰습니다.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에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우리는 한계가 있습니다. 고생을 참아내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지치고 힘들어 뻗어 들어 눕도록 까지 내버려두시지 않으십니다. 적당한 시기에 보응하여 주시사 우리를 크게 위로하여 주십니다.


    보아스의 말 중에 나오는 보응이라는 말과 상이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즉 룻이 하나님에게서 보응을 받고 상을 받을 것이라고 했는데, 도대체 그것이 무엇일까요? 간단히 말하자면 상중의 상, 보응중의 보응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풍성한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급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보아스가 말하는 룻의 보응과 상은 하나님 자신이었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새로운 가정이라든지, 희망찬 미래라든지, 앞으로 좋은 남편 만나 행복하게 아들 딸낳고 잘먹고 잘 산다고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의 근원인 하나님을 소유하게 되니까 그런 것들은 줄줄히 따라 오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보아스는 룻에게 뭔가 새로운 축복을 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룻이 시어머니를 따라 시어머니의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품으로 들어 온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 속으로 들어온 것인지를 되새겨주고 있습니다. 룻은 이미 하나님을 선택하여 이스라엘로 왔고, 그것은 곧 하나님의 날개 아래로 피하여 숨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와 같습니다. 보아스의 말은 이제 룻이 길고도 길었던 고통의 터널의 끝에 서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였습니다. 은혜가 기다린다는 나팔소리요, 희망의 신호였습니다. 그리고 룻이 안고 있던 모든 문제는 정말 그때로부터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신앙을 가진다고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의 선택은 고난의 선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 속에서도 얼마나 참고 하나님을 신뢰하느냐.... 하나님을 그것을 지켜보실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원을 사모하기 보다는 현실에 더 집착하기에 이 과정을 잘 통과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룻이 이 과정을 잘 감당했을 때 하나님은 축복의 사자 보아스를 보내신 것처럼 우리가 낙담, 절망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잘 이기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축복의 사자 보아스를 보내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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