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한 기독교 가정(엡 5:22-33)
  • 조회 수: 39, 2013.07.19 21:40:17
  • 앨빈 토플러라는 미래학자는 미래의 충격이라는 책을 써서 큰 센세이션을 일으킨 일이 있는데, 그 책의 내용을 보면 "새로운 기술의 발달과 또 급격한 가치관의 변화, 물밀 듯 밀려오는 정보 때문에 우리의 미래가 놀랍게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미래는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얘기하면서 그 영향이 우리 가정에 제일 먼저 침투해 들어오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가정의 미래가 매우 부정적이고 비관적이다. 가정이 와해될 지도 모른다"고 예언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가 맞고 있는 가정의 위기는 이제 위험 수위 직전까지 왔습니다. 왜 우리의 가정이 요 근래에 들어서면서 이렇게 깨지고 있을까요? 잘 살게 되면서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니까, 또 신세대 감각주의에 물들게 되면서 결혼을 연습으로 가볍게 여기는 젊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의해서 이렇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우리 사회를 지탱해 주고 있는 가장 기초적인 공동체인 가정이 파괴된다면 우리 사회의 장래는 보장할 수 없게 됩니다. 가족학자들은 가정 공동체가 흔들리면 사회 국가 공동체가 흔들리고, 가정윤리가 붕괴되면 사회윤리도 붕괴되어 청소년 범죄, 성 범죄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의 가정들이 병들었습니다. 가정이 큰 상처를 입고 살아갑니다. 결손 가정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해 주신 가정이 어떻게 병든 가정을 건강한 가정으로 만 들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사회도 아니고 대학도 아니고 바로 우리 교회입니다. 교회와 가정은 이웃 사촌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병든 가정을 우리 교회가 책임지고 치유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주신 하늘나라를 닮은 작은 천국은 세 곳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과 가정과 교회입니다. 특히 가정 천국은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고 형제간에 사랑하고 음식을 같이 나누고 서로 사랑하고 위로하고 대화하는 곳입니다. 모두가 다 없고 부족할 지라도 주님만 계시면 내 잔이 넘치는 교회, 내 잔이 넘치는 가정, 우리 마음이 될 줄로 믿습니다. 



    가정의 생명은 평화입니다. 에덴 동산의 가정도 평화로운 가정이었습니다. 평화는 가정의 그늘입니다. 그래서 가정에서는 쉬는 것입니다. 중국 격언도 "평화로운 가정은 행복이 제 발로 찾아온다"고 말합니다. 

    가정은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가족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부모님을 공경하고, 부부간에는 사랑하고, 자녀들에게는 잘 가르치는 곳입니다. 우리 인류의 가장 오래된 학교는 가정입니다. 가정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우는 곳입니다. 



    기독교는 에덴에서 잃어버린 가정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가정에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행복과 사랑이 넘치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 시대는 변화의 시대입니다. 세계가 다 변합니다. 문화도 자연도 국제 질서도 가치기준도 바뀝니다. 그것도 하루가 다르게 변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아무리 변해도 우리는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지만 변하면 안 되는 것이 바로 가정입니다. 가정은 흔들려도 안 되고 변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인류의 위기는 가정이 붕괴되고 변한다는 것입니다. 가정이 변화고 붕괴됨으로 오늘 인류가 고통과 불행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가정의 파괴는 곧 사회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이 사회의 치료는 가정에서 시작해야 하고 이 나라를 복되게 하는 길도 가정에서 찾아야 합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입니다. 그래서 가정은 인간의 힘이나 노력으로 행복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하고 타락한 생각입니다. 오늘 우리 가정은 잘 입고, 잘 쓰고, 부자가 되어야 행복해 지는 줄로 생각합니다. 



    시편 127편은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고 말씀합니다. 맞습니다. 참된 행복은 우리의 가정에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고 도와주심으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원료는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주셨습니다. 잠이나 공기나 햇빛이나 식물, 입맛, 사랑을 공평하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이 세상을 낙원같이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의 목적은 가정을 주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염려는 하나님의 몫입니다. 아버지가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현대인들의 문제는 하나님이 할 일을 염려하고 마땅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기쁘시게 해야할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목적이 살아 계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가정을 주시고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섬기고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할 줄 아는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1) 실력을 키워야 합니다. 

    남자는 실력으로 삽니다. 보기에는 어리숙하여 보여도, 키가 작고 못생기고 그래도 아내에게 "야 저 사람 대단한 사람이다." 소리 들어야 합니다.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또 여자가 남편을 언제 존경합니까?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 존경합니다. 



    공부, 지식만이 아닙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 자신 감 가지고 세상에서 제일 잘하는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힘들고 지치면서도 신나게 출근하는 남편은 존경받습니다. 

    자기 일에 긍지 가지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여자가 아름다워야 함 같이 남자는 실력이 있어야합니다. 



    (2) 가슴이 넓어야 합니다. 

    육체를 말함이 아니라, 마음을 말합니다. 넓은 가슴에 가득한 실력, 그러면서도 남자는 뻥 뚫린 가슴이 필요합니다. 



    암은 밖에서 들어오는 병이 아니라 안에서 발생하는 병이기 때문에 인간 신체 안에 지속적인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암은 자연 세계의 동물에게서는 발견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만 인간과 같은 음식을 먹고 생활하는 개와 고양이 등에서 발견되는데 암 치료제라는 것이 인위적으로 동물에게 발암물질을 투입하고 치료제를 통해서 치료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암을 유발하는 환경을 스스로 가지고 있는 인간이 항암제를 통해서 완전하게 치료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모든 인간은 암을 만들어내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인은 인체의 면역시스템이 작용함으로서 암을 자라지 못하게 억제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현재 암에 걸리지 않은 것이 기적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자기 면역이 떨어지기 때문에 암에 걸리는 것입니다. 

    임상결과 97%의 환자가 정신적 혼란과 스트레스로 인해서 암에 걸리게 됩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암 유전자가 좋아하는 인간의 환경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암은 영적이고, 정신적이고, 정서적이고, 환경적이고, 생물학적인 복합적인 원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앙인들도 잘못된 가정생활, 교회생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면의 상태를 치유하고 회복하고 변화시키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가정과 교회의 형식적인 면 에 치중하는 것으로 자신이 열심히 가정생활,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며, 가정적인 사람, 영적인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가정과 교회의 형식적인 면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세계의 치유가 가장 우선되어야 합니다. 수많은 비정상적인 것이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데, 그것이 드러나지 않으면 우리는 가식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고 불행한 삶을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비정상적인 것이 드러나지 않으면 치유의 기회도 상실하게 되고 결국 회복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신체적인 질병과 아울러 인격적인 문제를 다룰 때 본질적인 것은 바로 부모와의 관계입니다. 인간은 모델링(modeling)을 통해서 인격을 형성하게 됩니다. 자신은 부모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누구나 자신에게 부모와 비슷한 점이 상당히 많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부모가 나를 어떤 관점에서 대했느냐에 따라서 자기의 자아상이 성립됩니다. 

    부모가 인격적으로 대접하고 부모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진리의 길로 바르게 배운 사람은 건강한 자화상 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사람은 왜곡된 자화상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내적인 원인 제공을 가지고 있는 암의 치료와 왜곡된 자아상의 회 복에 가장 중요한 치료제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가장 나쁜 것은 나를 선택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자기비하, 자기 모독, 자기소멸인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진단이 제대로 되지 않고서는 치유될 수 없습니다. 왜곡된 인격을 가지고서는 주님을 사랑할 수도, 아내와 자녀를 사랑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는 자기부정의 선고를 내리고, 자신과 가정에 대한 올바른 진단을 해야만 치유와 회복의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민족과 우리사회의 기초가 되는 정신적 가치-사랑과 신뢰와 인간존중 같은 정신적 기초가 다시 놓아 져야 합니다. 그런 정신적 가치를 기초로 해서 다시 이 민족의 삶을 구축해야 되고, 우리사회의 판을 다시 짜야 합니다. 우리 가정을 이 정신적 기초 위에 다시 건설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 이 일은 우리의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가정이 이 사회의 기초요,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무너진 가정의 재건, 흔들리는 가정의 안정..이것이 우리사회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위기를 극복하는 출발이요,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어떻게 해야 흔들리는 우리의 가정을 바로 세울 수 있는 것입니까? 물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우리는 그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가정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의 유산이 전해져 내려오는 통로가 가정입니다. 가정을 통해서 자손이 번성하고, 종족이 이어져 내려갑니다. 가정을 통해서 전통과 문화가 전해져 내려갑니다. 가치와 윤리관이 가정을 통해서 전해져 내려갑니다. 인류의 지혜가 가정을 통해서 전해져 내려갑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통해서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 전해져 내려가는 그런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오늘 위기에 처해 있는 우리의 가정의 문제를 우리가 같이 생각하면서 기도하고자 다짐하는 주일입니다. 그런데 그 무엇보다도 우리가정이 당하고 있는 위기는 신앙의 문제입니다. 

    사실은 그 어떤 일들이 우리 가정에 있을지라도 우리 모두가 다 우리의 자녀들이 함께 하나님을 믿는 신앙 위에 우리 가정이 놓여져 있다고 하면 우리가 당하고 있는 가정의 모든 문제는 하나도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가정의 문제는 신앙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사는 삶-그것만이 가장 값지고 영원한 유산이 될 수 있는 삶임을 우리가 말로가 아니라 부모님의 삶으로 우리 자손들에게 물려주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가정 안에서 남편과 아내를 생각하며, 아내 된 자는 아내 된 자로 남편 된 사람은 남편 된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고 우리 함께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내들아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구주"라는 말은 "보호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아 주고 길러 주는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보호자이며 특별히 믿는 사람의 보호자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 28∼29절을 보세요.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한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제 육체를 양육하여 보호한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몸에 대해서 구주로서 행동합니다. 남편에게는 그의 아내를 돌보고 보호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에 보면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보호해 줄 의무가 있습니다. 대신에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이,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이것은 성경의 교훈이요,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입니다. 



    머리와 몸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있어서 진리는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진리입니다. 아내가 남편에 대해서 가지는 관계는 몸이 머리에 대해서 가지는 관계나 교회가 그리스도에 대해서 가지는 관계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몸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이 몸은 지체들이 모여서 이루어졌습니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붙어 있고 팔과 다리가 붙어 있다고 해서 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몸은 유기적이고 자발적인 연합체입니다. 그것은 하나요 전체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상적인 가정의 남편과 아내는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둘이 하나입니다. 이것이 신비입니다. 어떤 사람을 아는 것도 직장이나 사무실이나 일터나 교회가 아니고 그의 가정입니다. 가정에서는 그의 솔직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진정한 모습은 가정에서 알 수 있습니다. 나를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내 아내요, 내 남편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하나입니다. 머리와 몸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내 마음과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기를 결정하는 것은 나입니다. 내 몸은 그것을 표현하는 방편입니다. 만일에 내 몸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인다면 그것은 일종의 경련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얼굴 근육이 실룩거리는 분을 보셨습니까? 머리를 흔드는 분을 보세요. 손이 떨리는 것을 보세요. 그 분의 마음에서는 그러기를 원치 않는데, 얼굴 근육이 실룩거리고, 머리를 흔들고, 손이 떨립니다. 이것은 정상이 아니라 병입니다. 이런 병이 들면 어떤 목적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제멋대로 움직입니다. 본인은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는데 움직임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병입니다. 



    우리 가정의 부부생활이 그렇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하나가 아니라 따로 따로라면, 이것은 건강한 가정이 아니라 병든 가정입니다. 만일에 아내가 멋대로 행동하면 그것은 혼란입니다. 아내는 남편이 원치 않는 일을 해서는 안되고, 남편은 아내가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건강한 부부입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가정은 남편이 가정의 머리로 모든 것을 통제합니다. 아내가 남편과 상의 없이 멋대로 하는 일이 없습니다. 



    여기 어떤 분이 중풍에 걸렸습니다. 그는 움직이기를 원하지만 팔 다리가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의 일부입니다. 이것이 바로 문제입니다. 이 말은 아내가 남편보다 열등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아내는 아내로서의 고유한 지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경의와 존경심이 가득한 자리입니다. 사도 바울이 여기서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내 된 사람은 자기 남편을 기쁘게 하고 남편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 그를 돕고 보전해서 남편의 기능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류 역사에 크게 공헌한 분들을 보세요. 대부분 그 아내가 훌륭한 경우입니다. 내려오는 말에 "한 남자가 성공하는 데는 두 여자의 손을 거쳐야 하는데 하나는 훌륭한 어머니의 손이요. 다른 하나는 어진 아내의 손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이 세상에 아내의 영향을 입지 않는 남편이 없습니다. 



    사도 베드로의 권면을 들어보셨습니까?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고 했습니다. 



    남편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겸손과 온유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계속 권면했습니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서 값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여자가 화장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겉모양보다 속사람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더욱 힘쓰라는 권면입니다. 



    사랑받을 만한 여자가 되십시오. 



    행복한 아내의 비결은, 

    (1) 절대 아름다워야 합니다. 

    여자가 아름답지 못하면 여성 아닙니다. 여성중의 여성 "시몬느 보봐르"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스스로 여성 되기를 선택하고 결단하여야 합니다. 



    여자는 여자가 되겠다고 여자 되기 선택한 때부터 그 여자는 아름다워집니다. 여자는 여자가 되어야 아름다워집니다. 아름답게 만들어져야 합니다. 천성적인 것보다 후천적인 것에 매력 있는 여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선미. 건강성입니다. 화장하려고 애 쓰기 보다는 건강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2) 슬기로워야 합니다. 

    머리 좋은 여자라는 말이 아닙니다. 여자가 있으므로 분위기 안정될 수 있는 그런 여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3) 홀로 있을 수 있는 기술을 익혀야 합니다. 

    여자는 혼자 못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기 인생을 못산다는 것입니다. 시간 있고 할 일이 없으면 조용히 책을 보거나 자기 삶을 만들지 않고 어딘가 나가고 싶고, 무엇인가 새로운 것 하고싶고, 그래서 혼자서 즐기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인생을 만들어 가지 못합니다. 



    그러니 아이들, 남편하고.... 바쁘게 지내다가 모처럼 여가가 나면 뭔가 불안하여지는 것이 여성의 심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 다 크고 남편 직장 바쁘고 하면 자기 혼자 버림받은 것 같고 인생을 헛산 것 같고 불안하여 못 견디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장 매력 있는 여성은 혼자 있을 수 있는 여성입니다. 자기 인생을 살 수 있는 여성입니다. 성경의 훌륭한 여성은 혼자서 할 수 있었던 여성들입니다. 



    어떤 여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생활에 찌들려 살고, 정신이 없어서 살다가 혼자 사는 것 생각 못했다"고 



    아이들이 원수입니까? 자식 키우는 것 그것 때문에 늙은 것이 아닙니다. 자식 키우는 그것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습니까? 아이 키우는 것 때문에 얼마나 즐겁게 살았습니까? 그것 때문에 건강한 것이고 행복한 것인데 왜 그것이 낭비입니까? 



    아이가 없어 보십시오. 더 늙습니다. 그것이 바로 큰 행복이었습니다. 



    문제는 아이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하는 삶을 즐기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이지 남편 뒷바라지 자식 키운 것이 문제 아닙니다. 혼자 사는 자기 드라마의 주인 노릇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뭔가 자기 것을 해야 합니다. 남편으로 하여금 자기를 계속 다시 발견토록 해야 하고 자기 삶을 살아야 합니다. 



    (4) 사랑스러운 여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복종하는 것입니다 

    존경스럽지 않아도 복종하면 남자가 존경 받을만한 존재가 됩니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사랑 받을 수 없는 여성은 그 아름다음이 남성의 노리게 감에 불과하게 됩니다. 



    슬기로우면서 사랑 받아야 합니다. 사랑 받을 수 없는 아내의 아름다움은 남자를 무능하게 하는 잔소리 꾼이 되게 합니다. 여자에게 주눅든 남편 - 여자가 사랑 받지 못하고 똑똑하기만하기 때문입니다. 



    사랑 받지 못하는 아름다움이나 사랑 받지 못하는 슬기로운 것은 무용합니다. 스스로 있을 수 있고 홀로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고 해도 그 즐거움이 결코 남과 더불어 연결되지 못하여 행복으로 연결되지 못합니다. 



    사랑스러워지는 것 -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군림하고 싶어하고 고집을 갖고싶습니다. 여자가 그 것 좀 받아 주어야 합니다. 남자는 무서운 경쟁의 병에 걸려 있습니다. 투쟁이 병입니다. 그래서 열등감에 허덕입니다. 하나님이 여성을 왜 만들었습니까? 남편 기죽이기 위하여가 아니고 남성 열등감 풀어 주려고 창조되었습니다. 아내의 사명은 남편 칭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버릇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존경받을 남자됩니다. 존경할 남자이어서가 아니라 존경할 남자를 만들어서 존경하여야 합니다. 본래부터 존경할 만한 남자보다는 부인이 존경할 남편 만들어야 합니다. 남편이 존경 못할 남편이면 그것은 아내의 책임입니다. 존경 못 받는 남편은 그 아내가 존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스런 여인, 사랑 받을 수 여인은 남자가 열등감과 좌절감에 빠져 있는 남자를 존경스런 남자로 바꾸어 주고 그 존경스런 남자에게 복종하면서 사는 지혜를 가집니다. 복종은 사랑의 일부분입니다. 



    어떤 어머니가 딸 집에 갔더니 사위가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 있는 모습이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이더랍니다. 그런데 아들 집에 갔더니 자기 아들도 똑같이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데 이번엔 그 모양이 그렇게 밉상맞게 보였다고 합니다. 



    요즘 신세대 젊은이들은 권위주의보다는 실용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남녀 구분 없이 가정일을 돌봅니다. 어떻게 보면 시대에 맞는 좋은 현상으로 보여지면서 한편 어른들은 걱정을 앞세웁니다. 



    지금까지 가정을 지켜 온 기둥은 가장의 권위였는데 하는 생각에서입니다. 그렇습니다. 권위주의와 권위는 아주 다른 것입니다. 권위주의는 무너져야 합니다. 그러나 권위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옛날이나 요즘이나 가장의 권위는 서 있어야 합니다. 기둥이란 세워야 하는 것이지 눕히면 집이 무너집니다. 

    아내들은 남편의 권위를 세워야 합니다. 정말 지혜로운 여인들은 남편의 권위를 세워 줄 줄 압니다. 



    지금까지 아내에 대한 권면을 말씀드렸습니다만, 25절 이하는 남편에게 주시는 권면입니다. 바울 사도께서 남편에게 주시는 권면은 "남편들아, 너희 아내를 사랑하라"입니다. 아내에게 대해서 권면한 것은 남편에 대한 복종이요, 남편에게 주시는 권면은 아내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 말씀은 남편만이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 그것도 사랑입니다. 이 균형이 언제나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남편은 아내의 머리라고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실 뿐만 아니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남편은 언제나 사랑으로 아내의 통제를 받아야만 합니다. 



    어느 의사부부가 가족문제가 생겨서 목사님께 상담을 하러 찾아왔습니다. 이 목사님께 상담을 하는데 부인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목사님, 제 남편은 언제나 분석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제가 고민합니다." 분석적으로만 본다는 것이지요, 왜 그랬을까? 



    그러니까 남편이 옆에서 듣다가 호소하기를 "내 아내는 언제나 저를 다른 남자와 비교해서 생각합니다." 가정에서 분석해 보고 분류해 보는 방법으로는 하나가 될 수가 없습니다. 파트너십, 역할분담을 잘해야 되고,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남편들아, 너희 아내를 사랑하라." 여기서 말씀하는 사랑은 무엇입니까? 오늘 주신 말씀에서 바울 사도는 분명히 밝혔습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참사랑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죽기까지 사랑한다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있겠습니까? 



    그리스도는 교회에 관심이 깊으십니다. 교회의 가능성을 아십니다. 그는 교회가 완전해지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이것이 주님이 그의 신부인 우리를 향해 갖고 계신 열망이요, 사랑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참사랑의 특징은 자기를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주님은 교회를 위해서 죽기까지 교회를 사랑하셨습니다. 희생이 사랑의 특징입니다. 이 사랑은 주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언제나 가지려는 것은 생각지 않고, 다른 이의 유익을 위해서 삽니다. "남편들아 너희 아내 사랑하기를 주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같이 모든 것을 주는 사랑을 하라." 구체적으로 사랑하세요. 이처럼 아내가 남편에게 사랑으로 복종하고, 남편이 아내에게 사랑으로 모든 것을 줄 때 행복한 가정이 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의 모든 가정이 이렇게 주 안에서 서로 사랑해서 행복이 넘치는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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