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 충만한 가정(엡 5:33~6:4)
  • 조회 수: 149, 2013.07.19 21:58:23
  • (엡 5: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엡 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엡 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엡 6:3)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기도를 하며 진리에 대한 눈을 뜨기 시작하게 되면서 제일 먼저 일어나는 것은 가치관의 변화입니다. 이전에 제일로 알았던 것이 무가치한 것이 되고 이전에 무가치하게 보였던 것이 고귀하게 여겨지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자아에 대한 인식의 변화입니다. 그 결과 자신이 누구인가? 에 대한 끝없는 고민이나 회의에서 벗어나 자신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요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만일 사람이 창조주를 부인한 상태에서 자아를 발견하려고 하는 것은 마치 부모를 잃어버린 고아가 자신이 어디에서 태어났는가를 찾아 헤매이는 것처럼 깊은 명상이나 자아 성찰을 통해서 자아를 찾아보려고 할수록 선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깊은 회의와 허무주의에 빠져들고 말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낳은 부모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처럼 자신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때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엡 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나를 지으실 때 세상에서 악하게 되는대로 살아가라고 지으신 것이 아니라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선하게 살아가라고 지으셨다는 것과 그것이 내 힘만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그렇게 될 때 자신의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인지 비로소 삶의 목표가 설정되어지게 되고, 삶의 목적이 자기가 최고이고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가던 이기주의가 추악하게 생각되고 가치 있는 삶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처럼 남을 위해 소중한 생명까지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은 비단 순교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 유지를 위해 절대로 필요한 물질이나 시간을 남을 위해 내어놓는 일을 기꺼이 하게 되며 그것을 삶의 보람으로 느끼게 되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이전에 각자가 자기만을 추구하던 이전의 이기적인 삶에서 그리스도를 닮아 남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내어놓는 이타적인 삶을 살아가게 될 때 비로소 그곳에 사랑이 싹트고 기쁨이 꽃피고 행복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현실 불가능한 이상론이나 소수의 수도자들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비상한 삶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들이 모인 대중 세계에서도 가능한 것으로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성령 충만한 초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의 성령 충만한 삶인 것입니다.

    (행 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행 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행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행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바로 그 사람들은 깊은 산 속에서 진리를 찾던 수도자들이 아니라 우리들과 똑같이 평범한 대중들이었으나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은 그들이 모두 사도들을 통해서 진리의 말씀 성경의 배우고 기도하는 중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행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여기에 바로 오늘의 우리들의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누구든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또한 남을 사랑하게 되며 그것이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의 삶을 통해서 실천되어짐으로 그곳에 사랑과 평화가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와 같은 성령 충만한 삶이 교회 안에서 종교 생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정 생활로 연장되어지고 사회 봉사로 이어짐으로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행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행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오늘이 바로 초대 예루살렘 교회 식구들의 전 삶의 영역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 주었던 성령의 강림을 기념하는 성령강림주일로 세계 교회가 지키는 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들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 중에 하나는 교회 안에서는 성령 충만을 부르짖고 때로 부흥회나 기도회를 통해서 성령 충만을 체험하기도 하는데 문제는 그것을 가정이나 직장으로까지 이끌어가지 못한 채 교회 안에서만 맴돌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에는 인류의 종말인 예수님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지만 그것을 믿는 사람들의 염세적이고 현실 도피적인 내세주의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종말을 믿는 사람일수록 철저하게 현실에 충실해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믿어야 천국에 갈 수 있고 구원함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말씀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함을 받고 언제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게 된 사람들이 어떻게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세상이 다원화되어 갈수록 많아지는 여러 가지 갈등과 고민으로 인한 증가되는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현대인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사람들이 눈만 뜨면 보게되는 텔레비젼 선생님이 가르쳐준 것처럼 포장 마차나 노래방에 가서 소주 한잔 걸치고 흘러간 노래를 몇 곡 불러 제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세계에서 술 소비량이 랭킹에 이르고 있는 나라가 바로 우리 나라입니다. 그러나 삶은 오늘 우리들만의 삶이 아니라 과거 에베소 지방 사람들의 삶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술에 취해 살기를 좋아하는 에베소 교회 사람들을 향해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술에 취하지 않고서는 잊을 수 없는 고민이 있습니까? 술에 취하는 것은 마치 진통제와 같이 내성만 더해 줄뿐이지 근본 치료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를 악화시키게 됩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원망과 불평이 변하여 감사와 기쁨으로 바뀌어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환경의 변화이전에 마음을 지으신 성령께서 내 마음에 임하셔서 내 마음을 다스려 주실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엡 5: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엡 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엡 5: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그것이 바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 믿음이 있다고 하는 성도들에게 문제점은 성령의 충만이 교회 생활에만 머물고 마는데 있습니다. 교회만 성령 충만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 성령이 충만해야 하며 직장이 성령의 충만하여야 하며 이 민족과 국가가 성령이 충만해야만 합니다. 그것만이 가정을 병들어 가게하고 이 사회를 병들어가게 하는 근원인 사단의 세력을 제압하는 길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 최선의 길인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 도덕이 있고 윤리가 있고 또 법이 있습니다. 때로 인간은 그 도덕과 계율과 법에 지배를 받으면서 질서를 유지하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모든 종교는 다 인간에게 선을 가르치고 선하게 사는 방법을 제시하며 모든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선한 길이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갈수록 사람들의 학력 수준이 높아지고 좋은 말들이 기록된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으나 세상은 갈수록 악해져만 가고 있는 것은 바로 도덕과 윤리와 종교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선을 몰라서 선하게 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선을 알면서도 선하게 살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입니다. 과연 세상에서 남을 향해 돌을 던질 수 있는 선한 자가 누구입니까? 사실 인생이 무엇인가? 에 대해서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면 할 수 록 궁극적인 결론은 인생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구원함을 받아야 할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을 돌아보면 선에 대해서 가르치는 자나 배우는 자나 실상 알고 보면 다 위선자요 죄인들이기에 때문에 깊은 진리에 이로 우리는 가르치는 자들의 위선을 보고 실망을 할 때가 더 많습니다.

    (롬 2: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 하느냐 (롬 2: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 (롬 2: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땅히 사랑하면서 살아야 할 부부이지만 서로 갈등하고 불신하고, 본이 되어야 할 부모이지만 자녀들 앞에서 완벽하지 못하고, 효도해야 할 자녀이지만 도리어 부모를 가슴 아프게하는 사람들이 호화로운 맨션 아파트에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지만 거기 행복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일부분만을 읽을 때에는 세상의 다른 종교의 경전이나 세상 도덕과 윤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엡 5: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엡 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엡 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엡 6:3)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만일 이 말씀들이 다른 종교의 도덕경과 같은 정도의 말씀이라면 그렇다면 구태여 기독교를 고집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같은 내용이 성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몰라서 부부간에 사랑하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며, 어떻게 살아야 자녀들에게 본이 되는 부모가 될 수 있는지 모르는 바가 아니며, 어떻게 하면 부모님이 기뻐하시는지 몰라서 부모를 욕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 알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 그대로 살지 않고 있는 것이 오늘의 가정이 안고 있는 최대의 난제가 아닙니까? 하나님은 이와 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 성경 말씀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하는 원줄기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오늘 성경 말씀은 성령 충만한 삶이 교회 안에서 종교의식이 되어서는 가정과 직장과 사회 전 영역에 파급되어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는 말씀입니다. 속이 상한다고 술에 취하여 식구 들 앞에서 성질 부리고 욕하고 소리지르고 폭력을 휘두르는 연약한 인간이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아 새 사람이 될 때

    1) 아내를 자기같이 사랑할 수 있게 되고 
    2) 남편을 하나님 다음으로 경외할 수 있게되고 
    3)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게 되고 
    4) 자녀들을 교양 있게 잘 가르칠 수 있게 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결코 교회 성장만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가정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성령 충만은 결코 기도를 잘하고 전도를 잘하고 주일학생을 잘 가르치는 일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좋은 남편 좋은 아내 좋은 부모 좋은 자녀가 되어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가는 일을 위해서 성령은 이미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내 마음에 모시는 것처럼 내 가정에 모셔들여야 합니다. 온 식구가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말고 성령 충만한 가족이 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내 가정이 사는 길이며 축복 받는 최선의 길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가족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 성령께서는 각 가족에게 합당한 은사를 부어 주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은사를 개혁 주의 입장에서 정리한 어느 목사님의 석사 논문에 보니 자그만 치 31 가지나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이스크림의 종류만 31 가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사가 31 가지나 되는데 과연 나는 몇 가지의 은사를 받았습니까? 지혜, 지식, 믿음, 신유, 능력, 예언, 영분별, 방언, 통역, 사도, 선지자, 전도자, 목사, 교사, 섬김, 가르침, 권면, 구제 다스림, 긍휼, 독신, 청빈, 대접, 순교, 선교, 찬송, 기도, 기술, 축사, 이름, 사랑이었습니다. 신앙은 결코 막연하고 피상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것입니다.

    1) 성령이 주시는 가르침이나 다스림의 은사를 받아야만 부모다운 부모가 될 수 있고, 
    2) 사랑과 긍휼의 은사를 받아야만 부부간에 서로 사랑할 수 있고, 
    3) 섬김과 대접의 은사를 받아야만 부모를 좀더 잘 공경할 수 있습니다

    진정 행복한 가정을 원한다면 무엇보다 온 가족이 돈을 많이 벌어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접어두고 무엇보다 우리 가족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주시는 은사를 받아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때 더욱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바로 그 가정이 주님을 모신 복된 가정입니다.

    (시 128: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시 128: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시 128:3)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시 128: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시 128: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시 128:6)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우리 모두 가정을 직장이나 학교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유명한 불란서의 화가 밀레가 그린 만종이라는 그림은 불고 70달러 자리 그림이었으나 사람들이 그 그림을 통해서 가정과 노동과 신앙의 소중함을 깨우쳐 주는 가치있는 그림임을 깨닫고 어느 미국인이 12만 5천 달러를 주고 사갔다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정은 교회 못지않게 중요함을 깨닫고 가정을 교회처럼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칼빈은 가정에 대해서 '가정은 교회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작은 교회'라고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주신 성령강림주일입니다. 가정의 달 5월을 한 주 한 주 보내면서 가장 이상적인 가정은 다름이 아니라 성령 충만한 가정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매일 온 가족의 성령 충만을 구하여 받는 가정 가정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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