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전받는 어버이들(엡 6 : 1-3)
  • 조회 수: 344, 2013.07.20 21:01:22
  •  통계에 의하면 자식들에게 학대받는 노인들이 전체 노인인구에 8%라고 합니다. 이것은 상당히 높은 비율입니다. 노인들은 친족들이나 사회적으로도 학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낳아서 기른 자식들에 의해 학대받는다는 것에 대단히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이런 노인들이 늘어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회적인 현상을 염두에 두고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진정한 부모공경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새겨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부양과 공경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네 부모를 순종하라고 했고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순종하라는 것과 공경하라는 것은 의미가 서로 통하지만 그러나 구분이 있습니다. 부모를 순종하는 것은 부모를 기쁘게 한다는 차원이고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그 이상의 무거운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를 순종하는 것과 공경하는 것을 동시에 다 해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은 효의 가르침이 아니라 신앙행위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것과 부모님을 공경한다는 것은 서로 하나된 개념이고 그와 같은 영적이고 깊은 의미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말은 히브리말로 '부모를 무겁게 대하라'는 말입니다. 부모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큰 비중을 두고 대하라는 것입니다. 보다 더 깊은 뜻은 부모답지 못해도 부모이기 때문에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어린이 약 7천명이 아버지로부터 매을 맞고 학대를 받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공식적인 숫자이지만 그외에도 수없이 될 것이라고 추산을 합니다. 어린이를 학대하는 부모도 있을 것이고 부모답지 못한 부모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공경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모답지 못해도 부모됨을 인정하고 부모됨을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고사성어 가운데 '견마지양(犬馬之養)'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유래는 아들을 셋을 둔 어느 가정에 아버지가 부인을 잃고 외롭게 사는데 노년이 되어가자 기력도 쇠하여지고 자신감도 없어지는데 더욱 마음이 괴로운 것은 자식들이 자기를 대하는 태도가 점점 달라져 간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버림받지 않을까 위기감을 느껴서 지혜를 발휘하여 목공소에 가서 큼직한 궤를 하나 맞췄습니다. 궤 안에 유리조각으로 가득 채우고는 자물쇠를 잠그고 마루바닥 밑에 넣고 출입할 때마다 보이게 했습니다. 큰 아들이 무엇이냐고 묻자 아버지는 지금 말할 수 없고 내가 죽거든 열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 큰 아들의 호기심은 더해가고 궤를 차보니 찰랑이는 소리에 금화가 들은 것으로 착각하고는 큰 아들이 그때부터는 완전히 아버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둘째 아들도, 셋째아들도 마찬가지로 착각하게 되어 아버지를 잘 공경하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큰아들이 아버지의  호화장례를 치르고 삼오제가 지나 드디어 궤짝을 열어보니 놀랍게도 유리조각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궤 맨 밑바닥에 '네 어버이를 공경하라'는 글이 써 있었습니다. 큰아들은 굉장히 분개했지만 둘째아들은 형님의 모습을 보고는 가책을 느끼고 펄쩍뛰는 형님을 만류하면서 우리가 궤를 봉양했지 아버지를 봉양했냐고 우리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며 뉘우치고 통곡할 때 동생과 며느리 모두가 뉘우쳤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부모부양과 공경은 다릅니다. 우리는 곧잘 부모를 부양합니다. 잠자리를 드리고, 음식을 드리고, 옷을 드리면서 부모부양은 잘 합니다. 그러나 부모공경이 없는 부양이 이 땅에 굉장히 많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부모에 대한 효를 근본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부모의 주머니를 보고 부모를 섬기지 사실상 부모를 정신상으로 이미 학대하고 있는 자식들이 없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이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고백입니다. 그만큼 부모공경은 높은 도덕입니다. 

        부모를 기쁘시게

        부모를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돈으로 효를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세태는 돈으로 효를 사서 드립니다. 그러므로 부모마음이 상처를 받습니다. 60세 이상 노인인구가 318만명인데 그 가운데 놀랍게도 130만명(40%)이 몸이 건강하면 자녀와 따로 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불편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이 통계는 오늘 우리 사회에 부모님들이 자식들과 함께 살면서 마음이 불편해 있는 상태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부모의 마음을 읽으면서 부모를 섬겨야 합니다. 특히 홀로된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을 자식들은 지혜롭게 관찰하며 섬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고양진미로 부양하셔도 부모님은 상처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를 기쁘게 해야 합니다. 
        두 가지 실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어느 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이 할머니는 아들이 넷이 있는데 명절때만 되면 아들네가 모여 한바탕 전쟁을 합니다. 어머니를 모시는 문제 때문입니다. 이것이 한 두 번 거듭되자 어머니 마음에 한이 맺혔습니다. 어느 명절에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한달씩 모시기로 정한 자식들의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들은 어머니는 자기가 갖고 있는 용돈을 모아 갈 길을 준비키로 결심했습니다. 둘째 아들이 어머니를 모시러 왔을 때 너희들 집에는 안간다고 하면서 그때부터는 시설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아무리 자식들이 가서 말려도 이 어머니의 마음은 돌이켜지지 않습니다. 내가 비록 헐벗고 병든 상태로 있지만 그래도 마음은 편하다고 기자에게 말했지만 기자가 떠난 뒤에 어머니는 구석에서 통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노인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어느 중학생의 효행은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동식이는 점심때만 되면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습니다. 동식이 도시락에는 돌이 나오거나 머리카락이 안나올 때가 없습니다. 비록 눌려서 떡이 된 도시락이지만 동식이는 얼굴 하나 붉히지 않고 도시락을 맛있게 먹으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친구를 자기 집에 데리고 가지 않고 선생님이 방문을 하려 해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 옆자리 친구가 과제물로 인해 동식이 집에 가게 되었는데 동식이의 엄마는 놀랍게도 장님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동식이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어머니, 오늘도 도시락 맛있게 먹었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이 학교로 전해지고 사회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부모를 모신다는 이 문제에 대하여 거창한 효도의 원리를 적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면 됩니다.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면 됩니다. 부양이 아니라 공경을 해드리면 됩니다. 부모를 기쁘시게 하는 순종이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 효를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효를 복잡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근본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진정 부모를 부모 자리에 세워주고 부모를 공경만 한다면 그 부모는 자식들의 효를 통해 기뻐할 수 있는 것이고 그 모든 것은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나 부모공경을 잊어버리고 부모의 마음에 상처를 입혀놓고는 어떤 부양책도 부모에게 효가 되지 못합니다. 

        믿음의 재산

        오늘 저는 연만하신 우리 어버이들에게 귀한 권면의 말씀을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영원한 재산을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마찬가집니다. 인생에는 놓칠 수 없는 재산이 있습니다. 이 재산을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실직을 당하고 왜 자살을 합니까? 자살 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실직은 직장을 잃었다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나는 이제 필요 없는 인간이구나, 이 사회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구나, 나는 이제 희망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실직당한 사람의 정서라는 것입니다. 연애하다가 실연한 친구가 자살한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참 못난 놈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평생 같이 살자고 약속한 사람이 배반을 하면 죽음을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정서적으로 인간은 약해 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병을 앓아본 경험이 있지만 중병을 앓고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의 심정은 죽음을 느끼는 자리에까지 가는 것입니다. 
        늙음은 우리를 약하게 만듭니다. 죽음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내가 병들었다고, 내가 늙었다고, 내가 실직을 당했다고, 내가 명예를 잃어 버렸다고 믿음까지 놓치면 안됩니다. 믿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붙잡아야 하는 인생의 재산입니다. 믿음은 우리를 약하게 만드는 순간을 허용합니다. 왜 믿음이 약해집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돕지 않고 침묵하시기 때문에 약해집니다. '예수 믿어봐도 별수 없다. 그렇게 기도했는데도 하나님이 안 들어주신다. 내가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 데 하나님은 왜 도와주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약해집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침묵하는 그 순간에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고비를 넘겨야 됩니다. 내가 이 땅에서 약해져 있기 때문에 강하신 여호와를 더 붙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변의 평가 때문에 믿음이 약해집니다. 옆에서 말하는 것이 상처가 되어 그만 믿음을 놓아버립니다. 옆에서 무슨 소리를 해도 그것을 넘어가야 합니다. 사람의 어떤 평가 때문에 믿음을 놓친다면 인생의 모든 것을 놓치는 것입니다. 이유없는 고난도 오지만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며 그 고난을 극복하는 믿음이 되길 바랍니다. 믿음은 정년이 없습니다. 언제까지 믿어야 합니까? 내 목숨 다하는 그 순간까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믿음을 놓아 버리는 인생은 아무 것도 안됩니다. 나이가 들어가셔도 믿음은 청년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노인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룬 일이 성경에는 많이 있습니다. 믿음과 기도는 우리 인생의 영원한 재산입니다. '나는 여호와를 의지하리다'는 믿음을 가지고 인생의 어려움을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좋아하는 장로님이 계시는데 수년전에 저녁을 먹고난 후 복통이 있어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니 암초기로 발견되어 깨끗이 수술하고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 하룻밤 복통의 고통은 영원한 고통을 예방하는 경고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 하다가 우리를 약하게 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때를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무슨 고통이 와도 믿음을 놓아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 붙잡고 있으면 길이 있습니다. 그 믿음 가지고 남은 때 복되게 사는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맺는 말

        어느 가정에 부부가 골프를 좋아합니다. 부부는 서로 가벼운 내기를 걸곤 하는데 골프를 치고 집에 돌아오니 아이가 반갑게 맞으며 누가 이겼냐고 물었습니다. 아빠가 대답을 않자 엄마에게 묻습니다. 엄마, 아빠가 졌지? 아빠가 졌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골프는 이기려고 치는 게 아니라 재미로 친다고 말하는 아버지에게 총명한 아이는 두번째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아빠가 더 재미 있었어?" 이기는 것과 재미는 함께 갑니다. 게임은 이겨야 재미가 있습니다. 부모공경은 중요한 우리 인생의 게임입니다. 부모공경을 지고 내 인생의 보람을 얻으려 하지 마십시오. 부모공경의 게임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모공경에 약속된 하나님의 축복을 모두 누리시기 바랍니다. 

댓글 0 ...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123 admin 345 2013.07.20
admin 344 2013.07.20
121 admin 343 2013.11.04
120 admin 343 2013.01.15
119 admin 339 2013.07.27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