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엡 6 : 1 - 4)
  • 조회 수: 760, 2013.07.20 21:07:41
  • 어떤 동물 학자가 원숭이의 심리 상태를 실험하기 위해 원숭이 일가족을 철판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서 불을 지폈습니다. 철판이 서서히 달아 올랐습니다. 바닥이 뜨거워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아빠 원숭이는 새끼 원숭이들을 밟고 그 위에 올라섰습니다. 그러나 엄마 원숭이는 뜨거운 철판 위에 들어 눕고는 자기 배 위에 새끼 원숭이들을 올려 놓았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은 짐승일지라도 모성애가 있습니다. 짐승 중에서 곰의 모성애는 가장 커서 거의 사람과 같다고 합니다. 그러나 짐승의 모성애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짐승은 자기 새끼를 어릴 때만 사랑합니다. 새끼가 자라서 스스로 살 수 있게 되면 더 이상 돌보지를 않습니다. 새끼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릴 때는 어미의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닙니다. 그러다가 일단 성장하면 어디론가 떠나 버립니다. 그 후에는 어미를 몰라봅니다.

    그러나 사람은 다릅니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자식을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어머니가 아무리 늙더라도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80이 된 어머니가 환갑이 지난 자식을 보며 안타까워합니다. 결혼을 해서 애를 몇 나았어도 아직도 그 자식을 걱정하십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 그저 무엇인가를 주고 싶어 합니다. 세상이 이런 끈질긴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연로한 어머니를 두고 계신 분들은 이것을 실제로 경험하고 계실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정말로 숭고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서는 어머니 주일이 어버이 주일로 바뀌었습니다. 어머니 주일로 부르는 것보다는 어버이 주일이라고 하는 것이 휠씬 듣기가 좋습니다. 저가 남자라 그런지 몰라도 과거에 왜 아버지 주일은 없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당초 아버지 주일이 없고 어머니 주일만 있었던 것은 아마도 아버지에 비해 어머니의 사랑이 더 간절하고 애뜻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여기에 아버지들이 계시지만 자식 사랑에 대해서는 그 농도에 있어 어머니와 비교해 볼 때 좀 뒤떨어진다는 것에 대해 동의를 하시리라 믿습니다.

     

    우리 자녀들의 마음 속에 날마다 샛별처럼 빛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일 큰 것 한 가지만 말하라고 한다면 “어머니의 사랑”일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그 다음일 것입니다. 저가 틀린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말씀 드려서 저도 아버지이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에 비해서 덜 진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부모님께서는 오래 전에 돌아가셨습니다만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나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물론 아버지의 사랑도 생각이 나지만 어머니의 사랑이 더 생각납니다. 지금도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합니다.

     

    영국의 여류 문학가 메컬리는 평소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애들아, 너희들은 어머니의 인자한 눈, 부드러운 손, 친절한 음성이 있는 동안 이것들을 귀하게 여겨라. 사랑하는 어머니는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그러기 때문에 어머니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일생 동안 아무리 많은 친구들에게 사랑을 얻는다고 해도 어머니에게 받는 사랑만은 못할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선물입니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만큼 애절한 것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서라고 하면 모든 것을 희생합니다. 자식을 위해서라고 하면 먹을 것을 먹지 않습니다. 입을 것을 입지 않습니다. 가고 싶은 곳을 가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식을 위해 사용합니다. 그저 자식이 잘되는 일이라고 하면 물, 불을 가리지 않고 합니다. 어머니들의 자식을 위한 사랑과 정성을 보면 정말로 눈물겹습니다.

     

    어느 청년이 깊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상대는 아름다운 처녀였지만 잔인하고 표독하기가 그지 없었습니다. 처녀는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나를 사랑한다면 그 증거로 당신 어머니의 심장을 가져다 주세요. 그러면 내가 당신의 사랑을 믿겠습니다.” 사랑에 눈이 어두워진 청년은 무척 망설이기는 했지만 결국 어머니의 심장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이 나서 여자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돌 뿌리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손에 들었던 심장은 손에서 빠져 나와 데굴데굴 굴러갔습니다. 굴러가면서 어머니의 심장은 말했습니다. “애야, 어디 다치지는 않았니?”

     

    이것은 어머니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를 말하기 위해 지어낸 예화입니다. 그러나 이 예화를 통해 보듯이 어머니의 사랑은 정말로 극진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서는 많은 글이 있습니다만 상대적으로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서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사랑이 가치가 없다는 것이 아니고 어머니의 사랑이 상대적으로 애절하기 때문입니다.

     

    대개 부인이 죽으면 아버지들은 재혼을 합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으면 재혼을 하는 어머니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홀로 남은 어머니들이 다시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는 자식의 장래 때문입니다. 재혼하였을 경우 자식의 장래가 그리 평탄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에 결혼을 안 하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는 홀로 되셨어도 재혼하지 않으신 어머니를 두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만 그런 어머니를 두고 계신 자녀들은 어머니를 아주 귀하게 여기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어머니는 여러분들을 위해 희생하셨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오랜 전에 장한 어머니로 뽑힌 어느 어머니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홀로 되신 어머니에게는 장성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6.25 전쟁이 일어나 학도병으로 참전을 했습니다. 학도병이란 학생으로서 전쟁에 나가는 것입니다. 6.25동란 때에는 남자가 부족하기 때문에 좀 나이가 든 학생들은 전쟁에 참가했습니다. 전쟁이 소강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잠시 휴가를 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집에 와 보니 집안 형편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병상에 누워 있고 동생들은 굶주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이것을 본 아들은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귀대 날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이 상황에서 다시 부대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자기가 돌아가면 어머니와 동생들은 죽게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가족을 부양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전쟁 중이어서 군법이 매우 엄했습니다. 부대를 탈영하거나 휴가에서 귀환하지 않는 군인들은 사형이나 무기 징역의 엄벌에 처했습니다. 아들은 다행히 사형은 면하였지만 무기 징역을 선고 받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무기 징역에 처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의 가슴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서둘러 가산을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갇혀있는 교도소 부근에 셋방을 얻었습니다. 떡 장사, 과일 장사를 하며 매 주 아들을 면회했습니다. 무기 징역을 받은 아들은 삶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런 아들을 보고 어머니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하며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재주가 있었던 그림을 그려 볼 것을 간절히 권유했습니다. 어머니의 요청에 못 이겨 아들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어머니는 정한 날자, 정한 시간에 아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아들이 교도소를 옮기게 되면 어머니도 옮겼습니다. 이렇게 옮기기를 수십 번 하였습니다. 그 동안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아들의 그림 솜씨가 굉장히 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그린 그림이 어느 날 국전에 입상하게 되었습니다.

     

    교도소에 수감 중인 무기 징역수가 입선을 했다는 소문은 신문과 텔레비전의 큰 화제 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행한 일도 함께 소개가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어머니는 장한 어머니로 뽑혀 상을 받았습니다. 이 일 때문에 결국 아들은 감형을 받고 출옥을 하게 되었습니다. 투옥 된지 19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19년 동안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정말로 고귀한 어머니의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가 오늘 어머니의 사랑을 강조한다고 해서 아버지의 사랑은 보잘 것이 없는 것이라고 말씀 드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어머니의 사랑에 비해 애틋함에 있어서나 간절함에 있어서 좀 뒤질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사랑 또한 작게 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과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과 같이 잔잔하고 섬세하지 못합니다. 다정다감하고 부드럽지 못합니다. 그러나 바다와 같이 넓고 깊습니다. 태산과 같이 높습니다. 때로는 엄격하고 무섭습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어머니의 사랑이 돋보이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온전한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어머니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다 같은 것인데 자식의 입장에서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각각 사랑의 표현 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보여준 하나님의 사랑이 아버지의 사랑과 같다면 신약에 와서 예수님이 보여준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사랑이 합하여 완벽한 사랑이 되듯이 아버지의 사랑과 어머니의 사랑이 합하여 온전한 사랑이 됩니다.

     

    우리는 어머니의 사랑이 있어서 좋지만 또한 아버지의 사랑이 있어 좋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섬세하고 부드러워서 좋습니다만 아버지의 사랑은 굵직하고 강해서 좋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봄 빛처럼 따스해서 좋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여름 햇빛같이 뜨거워서 좋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여성적이어서 좋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남성적이어서 좋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의 사랑과 어머니의 사랑 두 가지를 주시어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의 부모님들은 여러분들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부모님들의 여러분들에게 대한 사랑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습니다.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여러분들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부모님들은 여러분들을 위해서라고 하면 어떠한 희생도 하실 각오가 되어 있는 분들입니다. 이 사랑을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사랑은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부모님들을 섭섭하게 하여 드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고 부모님에게 공경하십시오. 이것이 자식으로서 해야 할 마땅한 도리요 의무입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을 내려 주십니다. 여러분들이 이 땅 위에서 하는 일들을 형통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왜냐하면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결국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장래가 잘되기를 바랍니까? 성공하기를 원합니까? 방법은 간단합니다. 부모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리고 부모를 잘 공경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 땅 위에서 하는 일들에 복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는 일이 잘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에게 불순종하며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복 대신에 저주를 내리십니다. 그런 자식에게는 하는 일을 형통하지 못하게 합니다. 하는 일마다 막히게 합니다. 나가면 재난을 당하게 하고 들어 오면 화를 당하게 합니다. 엎어지면 코가 깨지고 자빠지면 머리를 다치게 합니다. 이것은 부모에게 불순종하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은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부지런히 섬기십시오. 말씀에 거역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기쁘게 해드리십시오.

     

    어느 미국 사람이 어머니가 죽은 후 살아 계실 때 잘 해드리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쓴 글이 있습니다. 이 글의 제목은 “늦기 전에”입니다.

     

    어제는 내 생애 중에 가장 슬픈 날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어머니를 무덤에 묻고 온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앉아 있자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 올라 내 마음을 더욱 슬프게 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 번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필요한 것이 없는지 여쭈어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한 적이 없었습니다. 한 번은 빵 집에 계신 어머니를 보고 빵 집에 뛰어 들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어머니는 낡은 겨울 코트를 입고 있어 너무 초라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새 코트를 한 벌 사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 결국 사드리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의 마지막 생일 날, 나는 겨우 화분 하나를 보내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축하 카드를 동봉하는 것을 잊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직접 찾아가서 뵈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 날 좋아하는 축구 경기가 있어 가지 못했습니다. 내가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뵌 것은 사촌의 결혼식 날이었습니다. 그 때 어머니는 너무 늙고 피곤해 보였습니다. 나는 속으로 어머니를 훌로리다로 휴양을 보내드려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에는 외삼촌도 계시고 또 햇빛도 쪼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비행기 표를 사 드리지 못했습니다.

     

    만약 시간을 거꾸로 가게 할 수만 있다면, 그래서 어머니께 그 코트를 사드릴 수 있다면, 해마다 생일 날 어머니를 찾아가 만나 뵐 수 있다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전화를 하여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 보내드릴 수 있다면, 훌로리다행 비행기 표를 사드려 외삼촌도 만나게 해드리고 그곳에서 휴양을 하실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제는 너무 늦었습니다.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마음이 아픕니다.

     

    이 사람은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는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을 자꾸 미루었습니다. 다음에 하지, 내일 하지 하며 차일 피일 미루다 보니 하나도 해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돌아 가시고 나니 이제 아무리 후회를 해 보아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저의 아버님은 저를 50에 낳으셨습니다. 늦은 나이에 저를 낳으신 것은 아들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들을 못 낳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들이 셋이나 두셨습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흔히 그랬듯이 질병에 아들 셋을 모두 잃으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에 늦게 저를 낳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가 초등 학교 다닐 때 기억으로는 아버지가 마치 할아버지처럼 느껴졌습니다.

     

    대학을 다닐 때 일이었습니다. 학교를 끝내고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었습니다. 저기 멀리서 어떤 노인 한 분이 혼자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점점 가까이 오는 모습을 보니 저의 아버지였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70이 넘은 할아버지였습니다. 생활도 넉넉치 못하여 옷차림도 남루하였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보고 반가웠습니다. 그러나 “아버지”하고 부르며 달려가지를 못했습니다. 그 초라한 할아버지가 나의 아버지라고 친구들에게 말하기가 창피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농약이 눈에 들어가 시력이 좋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를 보지 못하시고 그냥 지나치셨습니다.

     

    그 날 이후 지금까지 저는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그 때 기억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지나가시는데도 모른척한 나의 불효는 지금도 저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늙었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초라한 행색을 하고 있을지라도 나를 낳으시고 기르신 아버지인데 그 아버지를 무시하다니, 나처럼 불효 자식이 있을까? 저는 이것 때문에 회개도 많이 하였고 울기도 많이 하였습니다. 지금이라도 아버지가 옆에 계시다면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여러분! 늦기 전에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부지런히 효도하십시오. 돌아가시면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생전에 하지 못한 것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부모님을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아직 살아계실 때 잘 해드리십시오. 기쁘게 해 드리십시오.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리고 잘 보살펴 드리십시오. 여러분들은 부모님들은 이제 해가 갈수록 쇠약해져 가십니다. 얼굴에 주름이 늘어나고 머리에 흰 머리가 늘어납니다. 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사랑을 쏟아 부으셨던 부모님을 내가, 여러분들이 돌보지 않으면 누가 돌보겠습니까?

     

    아직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한 중고등부 학생, 청년 여러분! 여러분들의 부모님은 훌륭하신 분들이십니다. 여러분들의 부모님은 여러분들을 위해서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삶을 살아오신 분들입니다. 그 분들의 은혜를 결코 잊지 마십시오. 그 분들에게 반항하지 마십시오. 그 분들에게 잘 대접하십시오. 아직 그 분들이 살아 계실 때 잘 해 드리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이 땅에서 잘 되는 길입니다. 복을 받는 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 계명을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부모님께는 효도하는 자식,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는 복을 받는 성도님, 청년 그리고 학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면서 말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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