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와 자녀 2 (엡6:1-4)
  • 조회 수: 133, 2013.07.20 21:09:25
  • 잠재의식 가운데 우리는 우리 자신이 선(善)하다고 믿고 있으며, 옳게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남들이 내가 잘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면 화가 나는 법입니다. 
    잠재의식 가운데 우리는 선하며 옳게 행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고 하여, 실제 삶에서 전적으로 우리가 옳은 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수가 많습니다. 
    나도 모르게 잘못 판단하는 것이 많습니다. 
    남을 해롭게 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었는데 내 말과 행위로 인해 다른 사람이 상처를 받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 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렇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너그럽게 보아 주어야 할 부분들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마치 큰 악이나 행한 것처럼 비판하면 나는 반발하지 않을 수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잠재의식과는 달리 "의로운 사람은 없다"고 선언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는 것으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하심을 얻3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롬 3:20) 
    우리는 하나님의 계영을 온전히 지킬수가 없습니다. 
    내 안에 계명을 지키고자 하는 마으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마음은 계명을 다 지키고 싶어하고 ,선을 행하고 싶어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잘 해주고 싶고, 다른 사람과 화목한 관계를 맺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과 만나면 다투게 되고 기분이 상하게 됩니다. 
    평소에는 그렇지 않다가 불편한 관계와 갈등을 풀려고 만났을 때는 오히려 더 관계가 꼬이는 것을 경험합니다. 
    왜 그럴까요? 
    바울은 우리 안에 죄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롬 7:20) 
     
    만일 우리가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수 있다면, 우리는 한 사람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수 없을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조건없이 우리를 의롭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길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그 길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수 있습니다.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서 우리앞에 하나님께 이르는 길을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 다른 길로 하나님께 이르려 하는 사람은 실패합니다. 
    예수님만이 길이십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이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제한 없이 하나님께 나아갈수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선하게 살려고 한 사람이든 죄가 많은 사람이든 차별을 두지 아니합니다. 
    교히를 위해 공로가 많은 사람이든 늦게 믿어 교회를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사람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다닌 사람이든 불교나 미신을 섬긴 사람이든 아무 문제가 안됩니다. 
    예수님은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 이르는 자를 누구든지 용납하십니다. 
    예수님은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6:37) 
    로마서 10:13에도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스스로 죄가 없다고 믿는 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우리가 죄가 없다는 판결을 받아야 죄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스스로 죄가 없다고 아무리 마음 먹어도 죄책과 그 고통에서 해방된느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씻어 주시고 자신을 정죄하는 죄책에서 벗어나야 죄가 없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들이면, 놀라운 변화가 내게 이루어진다. 
    그 변화가 무엇인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운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는것입니다.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을 때  
    (1)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새로워 졌음을 깨닫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무서운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가장 든든하고 가까운 분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라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2)참 평안을 얻게 됩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불안정하고 위태롭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어떤 환란과 풍파에도 빼앗기지 아니합니다. 
    (3)다른 사람을 용서 할수 있습니다. 
    용서란 내 안에 구원 받은 확신과 참 평안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내가 용서함 받았을 때 남을 용서 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도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용서하라"고 했습니다.(엡4:32, 골3:13) 
     
     
    여러분 ! 
    우리는 의롭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관계를 맺음으로 우리는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우리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의 기초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옳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는 의롭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의롭다 하심을 얻을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관계]입니다. 
    성경은 이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모든 계명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든지 이웃과의 관계를 바로 맺게 해주는 것들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은 부모와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도적질 하는 것은 이웃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비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비판하는 것은 관계를 깨뜨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부라도 비판하는 것은 관계를 깨뜨립니다. 
    어는 집사님이 믿지 않는 남편과 함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남편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에 대해 속이 상해 있었습니다. 
    때마침 전도 광고판을 든 어떤 남자가 다가 왔습니다. 
    그 광고판에는 "당신은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까? , 아니면 마귀를 따르고 있습니까?" 
    하고 쓰여 있었습니다. 
    아내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저것은 바로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이예요 당신은 지금 마귀를 따르고 있단 말이예요"  
    그러자 남편이 수긍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암 그렇고 말고, 내가 바로 당신 뒤를 따라가고 있지 않소!" 
     
    오늘 말씀에 1절에는 "자녀들아"하고 자녀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4절에는 "아비들아"하고 부모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자녀들에게만 말하고 있지 않고, 부모들에게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일방적으로 어느 한 쪽에만 의무를 부과하지 않습니다. 
    5절 이하에 보면 "종들아, 상전에게 순종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들에게만 요구하고 있지 않고 상전들에게도 말하고 있습니다. 
    "상전들아, 공갈을 그치라"고 한것입니다. 
    종들이 상전에게 순종하는 것과 상전이 종에게 협박하지 않는 것은 같은 차원의 일입니다. 
    그것은 부부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들이여 범상에 그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또한 "남편들이여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어는 것이 더 먼저여야 합니까? 
    어는 것에 더 중요성을 두어야 합니까? 
    관계는 동시적입니다. 
    자기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지 않는 남편은 아내에게 "남편에게 복종하도록"요구할수 없습니다.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는 아내는 남편에게 자기를 사랑해 달라고 요구할수 없습니다. 
     
    우리가 부모로서 자녀를 대할 때 유의해야 할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부모 말씀에 순종하라고 요구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곧잘 자녀에게 훈계했고, 자주 무엇을 하라거나 무엇을 하지 말라고 명령해 왔습니다. 
    우리는 부모의 권위로, 자녀는 부모에게 마땅히 순종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생각하며 일방적으로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자녀가 부모의 말씀을 듣지 않을 때는 위협했고 큰 소리를 쳤고, 때로는 매를 들어 때렸습니다. 
    그것이 자녀를 잘 되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고, 부모의 사랑이라고 믿었습니다. 
    잠언의 말씀은 우리의 이 행위를 정당화 시켜 주는 것 같습니다.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리라"(잠13:24)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잠22:15)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잠 29:15) 
     
    자녀들에게 순종을 요구한 부모들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자주 자녀를 노엽게 했다는 것입니다. 
    왜 자녀가 노여워 합니까? 
    부모는 온전하지 못하면서 자녀에게는 온전하기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들도 부모들이 온전하지 못하고 의롭지 못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녀들에게 온전함과 의로움을 보여줄수 있을까? 
    부모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지키는 모습을 통해 자녀들은 부모의 말씀에 순종을 합니다. 
    어느 신학대학에서 머리를 붉게 염색한 학생을 두고 교수회의에서 어떻게 징계할까. 의논이 있었습니다.
    그 때 한 교수가 말했습니다. 
    "나도 흰 머리가 많아 검게 염색을 했는데 검은 머리 붉게 염색했다고 징계할수 있겠습니까? 그 학생이 성경을 위반했다면 징계의 대상이 될수 있겠지만, 교수도 염색을 하는데 학생이라고 염색하지 못하게 할수 있습니까? 단지 검은 색이냐 붉은색이냐의 차이뿐인데 " 
    결국 그 학생은 징계를 받지 않았습니다. 
     
    자녀들에게 술을 먹지 못하게 하려면 부모들이 먼저 술을 먹지 않아야 합니다. 
    자녀들이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려면 부모들이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해로운 것은 부모에게도 해로운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하기 보다 부모의 권위로 자녀를 양육하려고 한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켜야할 계명을 주셨으면서도 죄인인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입니다.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도 이와같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바르게 가르치고 바르게 훈계하되 자녀를 잘못되었다고 보지 말고 의롭다고 보아야 합니다.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녀가 잘못되었다고 보는 이상 아무리 훈계하고 꾸짖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은 자녀를 노엽게 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행위에 앞서 관계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자녀의 행위를 바르게 고치려 하기 이전에 자녀와의 관계에 힘써야 할것입니다. 
    자녀와의 관계가 바르게 되면,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을 합니다. 
    죄인을 의롭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용서를 마음깊이 새길수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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