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2 (엡6:1-4)
  • 조회 수: 161, 2013.07.21 16:28:50
  • 일본에 남자 고교생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하였는데 33.1%가 자신들의 부모를 때리고 싶
    다고 대답하였습니다. 27.3%는 자신들의 교사를 때려주고 싶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실제 우리 나라에서도 자기 부모에게 용돈을 주지 않는다고, 잔소리를 한다고 폭행을 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10대들의 범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10대들의 범죄가 더욱 잔인하고 폭력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예전에 참으로 가난하고 어렵게 살았습니다.
    그 가난한 시절에도 범죄는 있었습니다.
    어려운 시절이 지나고 풍족하고 넉넉한 시절이 오면 범죄율도 낮아지고, 더 살기 좋은 세상
    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지금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게 되었는데 범죄는 더욱 잔인하고, 더욱 폭력적이 되
    어 가고 있습니다.
    예전에 아이들에게 마음대로 먹이지 못하고, 마음대로 입히지 못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이제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더
    즐겁고 기뻐하며 아름다운 삶을 살 것 같은데 오히려 그렇지 않습니다.
    경제 성장과 범죄율이 함께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 땅의 아이들이 더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변해 가고 있는 것입니까?
    무엇이 우리의 아이들을 이렇게 망가뜨리고 있는 것입니까?


    화단과 교회와 아이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가꾸어야 하고, 가꾸지 않으면 망가진다는 것입니다.
    화단을 그냥 놔 둬 보십시오. 아름다운 잔디와 꽃이 심겨진 화단이 잡초 밭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잡초를 뽑고 잘 돌봐야 아름다운 화단이 됩니다.
    교회도 그냥 놔 둬 보십시오. 주님께서 세우신 아름답고 거룩한 교회가 황무지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며 교회를 사랑하는 일꾼들이 열심히 섬기고 봉사하고 충성을 다
    할 때에 아름답고 든든하고 평안하고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
    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놔두면 망가지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잘 자라도록 가르치고 인도하고 돌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폭력적이고, 잔인하고, 비인격적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우리의 아이들을
    잘 돌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잘 돌본다고 하였지만 잘 못된 방법으로 돌보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부산에서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다 흉기를 꺼내 편의점 직
    원을 협박하여 현금 9만원을 빼앗았습니다. 돈을 빼앗은 이 학생은 경찰에 신고하라고 말하
    는 것입니다. 직원이 허둥대자 직접 전화 번호부에서 인근 파출소 전화 번호를 알려 주었고,
    출동한 경찰에 순순히 붙잡혔습니다.
    경찰에서 이 학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랫동안 선원 생활을 해 온 아버지와 전혀 대화
    가 없었습니다. 주위로부터 소외되었습니다. 차라리 소년원에 가서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
    이 학생은 무엇을 원하고 있었습니까?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습니까?
    이 학생은 부모가 사주는 좋은 옷과 신발, 맛있는 음식을 원한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사랑입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먹고삽니다. 사랑을 먹고 자랍니다. 사랑을 먹으며 인
    격자로 자라는 것입니다.

    요사이 많은 부모들이 맞벌이를 합니다. 아빠도 엄마도 직장에서 늦게 돌아옵니다. 집에 돌
    아와 살림을 해야 하는 엄마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와 누워 버린 아빠 사이에서
    아이들은 사랑에 굶주려 가고 있습니다.
    부모들은 맞벌이해서 벌어 온 돈으로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입이고, 좋은 장난감을
    사주고는 아이들에게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고 많은 사랑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
    다.
    아이들은 좋은 옷과 장난감보다 부모의 어루만짐, 부모와 대화, 부모와 노는 것을 원하고 있
    는데 말입니다.

    미 국무부 대변인이었던 40살의 루빈이 사표를 던졌는데 이유는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
    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에게는 한달 전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앞으로 미스터 맘, 아이 보는 아빠가 되어 아이
    기저귀를 갈고, 우유를 타서 먹이기 위하여 화려한 은퇴를 한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잘 살기 위하여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단란한 시간을 희생하며 좋은 직장을
    찾아 나서는데 루빈은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남들이 부러워하는 국무부 대변
    인 자리를 버린 것입니다.
    그는 가정의 소중한 가치를 아는 사람입니다.
    대변인 자리는 누가 앉아도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태어 난지 한 달된 아이에게는 루빈 외에는 아빠의 자리를 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직장을 버리고 소중한 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루빈은 행복한 사람이고
    아빠가 기저귀를 갈아주는 루빈의 아들도 행복한 아들이고
    이런 남편과 아들을 둔 부인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가정에서 자녀들의 부모가 되는 일, 자녀들과 함께 놀아 주는 일, 자녀들을 사랑으로
    양육하는 일은 부모 외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까지 가장 엄격한 교육을 한 나라는 고대 그리이스의 스파르타입니다.
    스파르타 사람들은 교육의 목표를 국가를 위한 것으로 정했습니다.
    태어나는 사내아이들은 국가의 재산으로 국가에 등록됩니다.
    사내아이가 태어났을 때에 아이가 약하면 길가에 내어 버렸다고 합니다. 버려진 아이들 가
    운데 주워 노예로 팔리기도 하였답니다.
    아이는 7살까지 부모 밑에서 자랍니다. 7살이 되면 국가가 경영하는 학교에 들어가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 학교는 군사학교입니다.
    무섭도록 강한 훈련, 통제, 학과 공부를 30살까지 하였답니다.
    스파르타의 교육 목표는 강한 군인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강한 군인이 되어서 국가를 위하
    여 자신의 생명을 바쳐 적과 싸우는 것입니다.
    또한 스파르타에는 국민보다 몇 십 배를 능가하는 노예들이 있는데 이들을 효과적으로 통치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노예들을 잘 다스리는 기술과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키면 습격하여 노예들을 죽이는
    살인하는 기술을 배웠습니다.

    혹독한 훈련과 엄격한 규율을 통하여 스파르타의 교육은 강한 군인들을 길러 내었습니다.
    그러나 전쟁과 살인을 잘 하는 무식하고 포악한 수많은 깡패들을 만들어 내었던 것입니다.

    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는 스파르타가 영원한 것 같았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스파르타의
    강한 군대가 국가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스파르타의 교육은 실패로 끝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지구의 한편 구석에서 끈질기게 민족적 주체성을 가지고 생존해 오는 한 민족이 있
    습니다.
    바로 유대인들입니다. 강한 군대와 놀라운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 스파르타는 사라졌지만 약
    하고 힘없이 살아온 작은 민족 유대인들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의 자그마한 땅 덩어리에서 강대국 틈바귀에 끼어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고, 온갖 박해와 멸시를 당하면서도 아직까지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생존해 올 수 있는
    생명력은 교육에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모든 사람들이 유대 교육의 훌륭함을 인정합니다. 유아 교육에 관한 책들 가운
    데 많은 것이 유대인의 자녀 교육을 소개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교육의 장소는 가정이었습니다.
    교사는 어머니였습니다.
    교재는 성경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아이가 조금 크면 회당이라는 곳에 보내어 랍비에게 역시 성경을 배웠습니다.
    아이가 12살 성년이 되면 성경대로 살 의무를 가지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또한 아이가 아버지에게서 직업 교육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배운 기술을 자
    식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요셉에게 목수 일을 배웠고, 베드로는 아버지에게 고기 잡는 기술을 배웠고, 사도
    바울은 아버지에게 천막 만드는 것을 배웠습니다.

    윌리암 바클레이라는 성서 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스파르타의 교육이 훌륭한 육체와 고도의 싸움 기술을 통하여 스파르타를 구
    원하는 듯 하였고 반면 유대인의 교육은 나약하고 무기력하여 유대인을 좌절시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스파르타와 유대인의 교육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스파르타의 교육은 채 자라지도 않은 아이들을 기숙사로 끌어다가 훈련시킴으로 성장 과정
    에서 받아야 하는 부모의 사랑을 송두리 채 부정해 버림으로 스파르타 사람은 힘만 자랐지
    그 힘을 바로 쓸 수 있는 지혜와 사랑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반면 유대인들은 외국의 침략을 받아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렸지만 가정만은 빼앗기지 않았
    습니다. 예루살렘이 함락되어도 가정은 함락되지 않았습니다.
    가정은 하찮게 보이는 인간의 공동체 같으나 그곳에는 생명이 오고 가고, 생명이 자라는, 놀
    라운 창조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가정을 지킨 유대인들이 승리한 것입니다.
    가정에서 하나님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랑과 평화를 위하여 살라고 교육한
    것이 승리한 것입니다.  
    스파르타는 사람을 죽이는 군사적 승리를 얻은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음으로 사랑과 섬김을
    거부한 인간성의 상실을 가져왔지만
    유대인들은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과 평화를 배웠습니다.

    스파르타는 어린이들을 전쟁을 위한 수단과 도구로 보았지만
    유대인들은 어린이들을 하나님의 말씀의 상속자로 보며 날마다 말씀을 가르치고 묵상하며
    생활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강한 생명력의 비밀인 것입니다.


    이제 웬만한 부모들이면 다 알고 있는 이야기 "지능지수인 IQ는 일자리를 보장하지만, 감성
    지수인 EQ는 승진을 보장합니다."
    이제는 IQ보다 EQ가 더 중요한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IQ 높은 사람들이 해결할 문제는 컴
    퓨터가 대신하는 세상이 되어 IQ 높은 사람들 보다 EQ 높은 사람들이 더 필요로 한 세상
    이 되었습니다.

    자녀들에게 머리가 좋아지는 우유와 약이 나왔다고 먹이는 부모가 많은데, 이제는 IQ보다
    EQ가 높여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스파르타 사람들은 자녀들을 전쟁하는 도구, 강한 군인으로 만들려고 하였다면 
    우리들은 우리의 자녀들을 공부 잘하는, 시험 문제를 잘 푸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IQ 높은
    천재로 만들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주한 이스라엘 대사로 일하던 아셀나임이란 분이 예루살렘에서 한국의 기형
    적인 교육 풍토를 개선하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고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보내왔습니
    다.
    "EQ를 높여야 합니다.
    EQ를 가장 높일 수 있는 것은 가정교육입니다. 
    학교는 교육하지 않습니다. 단지 지식과 정보를 전달해 줄뿐입니다.
    한 어린이가 자립적 인간으로 성장하려면 학교, 교회, 책, TV, 친구 등 다양한 곳으로부터
    기술과 가치 기준을 얻게 되는데 어는 것도 부모가 가르치는 내용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교육은 부모가 인식하든 안 하든 간에 자녀에게 일생 동안 계속되며 인생의 모든 분
    야를 망라하는 것입니다. "

    유대인다운 권면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가정에서 신앙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EQ를 가장 높이는 방법은 신앙 교육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랑하고 섬기고 평화를 위
    하여 일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정에서도 중요한 EQ 교육보다 IQ 교육을 시키려고 합니다.
    부모가 하는 가장 많은 말이 공부하라는 것입니다.
    지난주간 학생들의 시험기간이었습니다.
    중고등부 학생들이 평소에 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시험 공부를 할까?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릴까? 하면 기꺼이 예배 드리는
    것을 포기하고 집에 남아서 공부하라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이는 시험 성적은 조금 올라갈지 몰라도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의 소중함, 우리 인생의 복을 주시고 인도하
    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가르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 하는 것임을 가
    르쳐야 하는데
    시험성적을 위하여 포기해도 되는 것으로, 인생의 더 중요한 일을 위하여 차선으로 밀어 놓
    아도 되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신앙을 가지고 바른 사람으로 성장하는 곳은 가정입니다.
    바른 신앙과 바른 사람으로 가르치는 가장 훌륭한 신앙의 교사는 부모입니다.
    모세가 민족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 되었지
    만 어릴 적 친어머니가 유모가 되어서 그에게 젖을 먹이며 "너는 히브리 사람이다. 너의 민
    족은 지금 애급 사람들 밑에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다. 너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이다. 너
    는 운 좋게 애급의 공주의 아들이 되었지만 네 민족의 고통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는 가
    르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디모데가 진실한 목회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귀한
    신앙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기 때문입니다.

    발명한 에디슨은 하도 엉뚱한 질문을 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
    머니는 한번도 에디슨의 질문을 피해 본 적이 없습니다. 훗날 에디슨은 "나의 모든 정신적
    인 압박을 어머니에게 풀 수 있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성 어거스틴도 그의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 어린 기도와 호소와 권고 앞에 무릎을 꿇고 최대
    의 신학자가 되었습니다.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잔나는 자그만치 19명의 자식을 가졌는데 모두 훌륭
    한 인물로 키웠습니다.

    링컨의 어머니 낸시는 말을 시작할 때부터 매일 성경을 읽어 주었는데 링컨이 아홉 살 되던
    때에 숨을 거두며 엄마가 죽어도 성경을 읽으라고 유언하였다고 합니다.

    가정에서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부모가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딤후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
    케 하려 함이니라 하는 말씀대로
    성경이 사람으로 하여금 바른 길을 걸어 가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많아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 땅에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확장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복음의 전파가 가정을 통하여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통하여 큰 민족을 이루고, 큰 민족을 통하여 세계 모든 민족이 복을 받
    도록 계획하시고 약속하셨습니다.
    믿음의 조상이지만 아브라함의 단 한 세대를 살 뿐입니다. 아브라함이 세상을 떠난다고 하
    나님의 약속이 폐하여 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아들을 이삭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
    속과 축복은 계속됩니다. 이삭의 아들 야곱을 통하여, 야곱의 아들 12형제를 통하여, 12형제
    를 통하여 12지파에게, 그리고 큰 민족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은 계속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이 가정에서 자식을 통하여 이어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부모에게는 자식을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상속시킬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이 목이 부러져 죽은 이유를 알고 있습니까?
    엘리 제사장은 두 아들을 하나님께 선물로 받았습니다. 선물로 받은 이 아들을 훌륭한 제사
    장으로 키울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제사장 옷을 입고 있을
    뿐이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나 믿음의 열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제사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제사장의 신분으로 불경건한 일을 서슴치 않고 하였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어나 능력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 제사장을 책망하십니다.
    "너는 어찌하여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기느냐?
    나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
    라,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날에 죽을 것이고,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라."

    자녀을 신앙과 믿음으로 양육하는 일에 실패한 것에 대한 책망입니다. 두 아들은 전쟁터에
    서 잃고, 이 소식을 들은 엘리 제사장도 목이 부러져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소중히 여기는 말씀이 있습니다.
    (신 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신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6:6)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신 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 6: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신 6: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이 말씀대로 집안에서 부모 된 이들이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이스라엘
    을 향한 사명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을 향한 사명입니다. 책임입니다. 의무입니다.

    이 사명을 잘 감당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천대에 이르러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자
    녀들을 통하여 말씀이 흥왕할 때에 하나님이 넘치는 복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귀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 안에서 하나님께 받은 자녀들을 말씀으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믿음의 상속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보다 더 잘 되는 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 교회가 더욱 든든하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 세워지는 가정
    말씀의 상속이 있는 가정
    말씀에 약속된 축복이 넘치는 가정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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