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녀와 함께 교회로(딤전 3:1-7)
  • 조회 수: 74, 2013.07.29 06:53:16
  • 한 교회에서 자라난 세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들 세 친구는 어릴 때부터 함께 성공해서 잘 살자고 단단히 결심을 하고 기도도 했습니다. 이후 세 친구는 서울에 올라와 살게 되었습니다. K라는 첫째 친구는 머리가 좋고 공부도 잘해 출세의 길을 걸었습니다. 장학금으로 공부하고 유학도 가서 박사학위를 얻어 대학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J라는 둘째 친구도 공부는 못했으나 사업을 잘해 부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L이라는 셋째 친구만은 병약한데다 공부도 잘 못하고 사업에도 실패해 결국 노점상을 하며 겨우 끼니를 잇는 형편이 되고 말았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모두 은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자녀 만큼은 서로 달랐습니다. 먼저 K라는 친구의 아들은 아버지가 유학을 간 후 어머니가 혼자 가난하게 살면서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해 지금은 결혼해 처갓집에서 살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J라는 친구의 자녀들은 교육을 잘 받은 것 같았는데 결국 아버지의 돈만 믿고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지금은 감옥에 가서 장기수로 복역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L이라는 친구의 자녀들은 병약한 아버지를 도우며 열심히 공부해서 고시에 합격하여 고급 공무원으로, 교회에서도 장로님이 되어 아버지를 잘 모시고 있습니다.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건강해야 합니다.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둘째로 사업에 성공해야 합니다. 돈이 있어야 이름 석자라도 내 놓고 살 수 있고 건강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자녀들이 잘 되어야 합니다. 건강, 재산, 자식 이 세 가지가 동양의 오복(五福) 중 가장 기본적인 세 가지 요소입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건강해야 장수하고 재산이 있어야 명예도 얻고 또 자녀가 있어야 하는 것이 오복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씀드린 세 친구들 중 첫째 친구는 비록 자신은 건강하고 장수해서 70세를 넘기고 교수라는 명예도 얻었지만 자식에 실패해서 늙어서는 의지하고 갈 곳조차 없는 노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둘째 친구도 사업에는 성공했지만 자식이 그만 잘못해서 감옥에 가 있으니 그 많은 재산과 사업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한숨과 탄식으로 남은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셋째 친구는 비록 입신 출세는 못했어도, 사업에 성공은 못했어도 자식교육과 양육을 신앙으로 잘 시켜서 늘그막에 고급공무원이요 교회의 장로인 자식의 효도를 받고 살 수 있었습니다. 결국 어떤 사람이 참으로 성공했는지는 입신 출세나 재산을 모으는 사업에 있지 않고, 자녀를 얼마나 바르게 양육했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자녀를 신앙으로 바르게 양육하면 자신의 입신출세도 빛나고, 사업의 성공도 아름답고 자랑스러울 것입니다. 더 나아가 비록 자신은 입신출세를 못하고 사업에 성공하지 못해 길가에서 콩나물 장사를 하거나 사과장사를 할지라도 자식이 성공하면 그것까지도 돋보이고 자랑스럽고 훌륭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한국인들은 세계 어느 민족 못지 않게 교육열이 높다고 합니다. 하지만 열심만 있다고 교육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바르게 교육해야 하고, 진리를 따라 양육해야 합니다. 바른 교육이 무엇이며, 진리를 따라 양육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무조건 자식에 대한 애정과 교육열만 가지고 무턱대고 달려들기 때문에 사회의 온갖 부조리가 나라를 어지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병역기피 부조리, 학원비리, 고액 과외사건, 치맛바람, 입시전쟁 등이 모두 이 때문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목적이 옳다고 악한 방법, 부정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이 좋아도 그 방법이 악하면 악이라고 했습니다. 비록 자기 자신은 입신출세를 못하고 사업에 부진해 있어도 자녀를 신앙으로 바르게, 진리를 따라 교육하고 양육하는 것이 인생의 행복입니다. 

    I. 자녀를 신앙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유태인들은 소수민족에 속하지만 세계의 정치, 경제, 과학 등 모든 분야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합니다. 노벨상이 제정된 이래 단일 민족으로 가장 많은 수상자를 배출한 민족도 바로 유태인들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자녀 교육에 있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자녀들은 어릴 때부터 토라라는 경전을 배우기 시작하고 교회의 예법을 생활에서 익힙니다. 소위 신명기 6장의 쉐마라는 이스라엘 교육 헌장이 그들 신앙교육의 법률입니다. 어릴 때부터 그 아이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관계없이 필수적으로 교회법에 따라 신앙교육을 받도록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법을 삶으로 익혀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신앙고백이요 교육입니다. 이같은 이들의 신앙교육은 시대가 변하고 사회 환경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불변의 원칙입니다. 비록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제2의 물결에서 제3의 물결로 옮겨 갈지라도 변함없는 신앙교육입니다. 그들은 미국에 살든, 영국에 살든, 이스라엘에 살든 관계없이 철두철미하게 신앙교육을 기초로 사회교육과 사회과학을 배워갑니다. 그렇기에 창조적이고 발전적인 학문을 많이 연구하여 노벨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의 우수성은 이들의 신앙교육에서 배태되어 자라납니다. 신앙교육이 얼마나 자녀들을 지혜롭게 성장시켜 주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인 것입니다. 자녀를 신앙으로 양육하는 일은 그들의 훌륭한 삶을 준비시켜 주는 일입니다. 
    II. 신앙교육은 어릴 때부터 실천되어야 합니다 

    속담에 ""될만한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내용으로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도 있습니다. 인생은 어릴 때 이미 결정된다고 했습니다. 심리학자 에릭 프롬은 인간의 심리 발달을 8단계로 나누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생의 됨됨이는 이미 3살 이전에 결정된다는 말입니다. 꽃을 파는 꽃집에서 분재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 가지를 주인의 마음대로 예술적으로 키워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사람도 예외가 아닙니다. 사람에게도 귀소본능(歸巢本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윤흥길 집사님이 대학에서 국문학을 강의하고 계십니다. 그 분이 오래 전에 쓴 "밟아도 아리랑"이라는 장편 소설이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 두 번째 읽어가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다루는 것이 인간의 귀소본능입니다. 인간은 어릴 때의 본능,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하나님을 찾는 본능이 있습니다. 연어같은 고기도 어릴 때의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우리 교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어른 중 한 분은 지금 연세가 100세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 분은 어릴 때 골목에서 뛰놀던 기억 외에는 모두 잊었다고 합니다. 열살 이후에 배운 것은 다 잊어도 그 이전에 배운 것은 잊지 않는다는 말일 것입니다. 
    신앙교육은 어릴 때 시켜야 합니다. 크면 알아서 할 것이라는 생각은 지나친 낙관입니다. 사실 세상에서 건강이나 재산이나 사업에 성공해도 자녀 교육에 실패하면 먼 훗날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III. 자녀 신앙교육은 부모님과 함께 교회에서 해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교회 내 감독의 자격 13가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 자격 가운데 하나가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한다는 자격 규정이 나옵니다. 이에 대한 보충 설명으로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라고 덧붙입니다. 
    흔히 도심에서 사시는 교인들을 보면 자신은 본 교회에 출석하면서 자녀들은 가까운 교회나 교회학교로 보내는 경우를 종종 만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일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대단히 위험하고 무책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서로 떨어져서 신앙생활을 한다면 자녀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신앙교육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남는 시간들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부모님들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친구 집에 가 있거나, 오락실이나 비디오방에 갈 수도 있습니다. 언제나 선량하고 좋은 친구들만 만나는 것도 아닙니다. 최근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사건이 미국 전역을 충격 속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히틀러 탄생 기념으로 저지른 총기 난사 사건으로 10여명이 죽고 40여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자살한 이 사건의 용의자들은 바로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었습니다. 기관총과 폭탄으로 무장하고 "흑인"이라는 이유로 동료를 쏘아 죽이는 지독히 삐뚤어진 이들의 사고방식을 부모들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자식들이 나치 주의에 흠뻑 빠져 있을 뿐만 아니라, 컴퓨터를 통해 자신들의 왜곡된 사상을 전달하고 있었던 일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설마 내 아이는...""하고 방심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처럼 중요한 인생의 첫 걸음, 그 중에서도 신앙교육을 어떻게 이웃의 친구나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있겠습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귀중품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못하면서 어떻게 이보다 더 소중하고 백 배 아니 천 배 더 귀중한 내 자식을 남에게 맡길 수 있겠습니까? 공부한답시고, 수험생이라고 으레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교회에 나오는 시간조차 아까워하거나 아니면 가까운 교회에 잠깐 다녀와서 공부하라고 가르치는 부모님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자녀들이 이렇게 해서 일년을 지내고 나면 이 일이 버릇이 되어서 그 이후에도 무슨 일이 생기면 으레 교회에 안 가도 되는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학교 공부보다 덜 중요하다고 부모님 스스로 자녀들에게 그렇게 암시하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공부보다 중요한 것이 인격이요, 인격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신앙입니다. 신앙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 최대의 보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중직자는 반드시 자녀들을 신앙으로 교육해야 할 뿐만 아니라, 본 교회에서 자녀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도록 지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신앙교육은 부모와 교회가 함께 책임을 지고 어릴 때부터 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님이 자녀들과 함께 교회에 나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함께 예배하고, 함께 교회의 온갖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생활화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자녀를 참으로 아끼고 사랑하고 책임져 주는 부모님의 모습입니다. 
    자녀의 신앙교육은 "자녀와 함께 교회로" 올 때부터 시작됩니다. 이것이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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