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계를 발전시키는 방법(딤후 1:3-8)
  • 조회 수: 73, 2013.07.29 12:32:57
  • 예로부터 부부 사이가 좋은 것을 가리켜 '금슬이 좋다'라 했습니다. 이 말은 공자가 편찬했다는 시경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보다 정확하게는 시경에 있는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금 곧 가야금과 슬 곧 비파를 연주하는 것과 같다'는 대목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니까 부부가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을 금과 슬 두 악기가 서로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이중주와 같다고 비유한 것입니다. 멋진 비유입니다.

    저는 음악을 참 좋아합니다. 그런데 노래도 독창보다는 중창이 더 좋고, 연주도 독주보다는 중주가 더 좋습니다. 소프라노나 테너의 독창도 멋있습니다만 오페라 아리아에서처럼 소프라노와 테너가 이중창을 하면 더 멋있습니다. 바이올린이나 첼로 독주도 좋습니다만 이 두 악기가 이중주를 하면 더 좋습니다.

    독창이나 독주보다 중창이나 중주의 아름다움은 배가 됩니다. 각자의 소리가 서로 어우러져서 화음을 만들어내고 멋진 조화를 이루어냅니다. 도저히 독창이나 독주가 만들어 낼 수 없는 아름다움입니다.

    그런데 이런 중창은 부르는 두 사람 모두 독창할 때보다 훨씬 더 즐겁고 더 행복합니다. 상대방의 소리를 듣고 함께 조화를 이루어낼 때 부르는 사람의 마음은 혼자 부를 때와 비할 수 없는 기쁨이 넘칩니다. 뿐 만 아니라 듣는 사람들도 독창을 들을 때보다 더 즐겁고 더 행복합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이렇습니다. 혼자 사는 것이 행복할 수 있겠습니다만 둘이 사랑하며 살 때 더 행복합니다. 사랑을 줄 때의 행복과 사랑의 받을 때의 행복이 시너지 효과를 불러 일으켜서 그 행복이 배가 됩니다.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것을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도 덩달아 행복합니다. 부모님들, 자녀들, 친지들 모두 금슬 좋은 부부를 볼 때 무척이나 행복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금슬이 함께 연주된다고 언제나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중창이나 중주가 잘 될 때는 좋은데 서로 화음이 맞지 않고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음악이라기 보다 소음입니다. 이를 연주하는 사람들도 고통스럽고 이를 듣는 사람도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금슬이 나쁜 부부는 그 불행도 배가 됩니다. 부부 관계가 나쁠 때 겪는 불행은 혼자 살 때 겪는 불행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고통스럽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그들의 나쁜 관계를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도 불행합니다. 양가 부모들이 고통스럽습니다. 자녀들이 괴롭습니다. 하나님께서도 힘이 드십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인간 관계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부부 관계가 좋으면 가정 생활이 행복합니다. 교인들과의 관계가 좋으면 교회 생활이 행복합니다.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가 좋으면 직장 생활이 행복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역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불행을 느낍니다. 부부 관계가 좋지 않으면 가정 생활 전체가 불행합니다. 교인들과의 관계가 나쁘면 교회 생활이 불행합니다.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가 나쁘면 직장 생활이 불행합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람 사이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의 행복을 키워 가는 지름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맺고 있는 모든 인간 관계를 조금만 더 좋게 발전시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부부관계를 조금 더 발전시켜보고 싶어도 그 동안 긴 세월 살아온 습관이 있어서 어렵습니다. 한 평생 사랑한다는 말 한번 하지 않고 살아왔는데 갑자기 '여보 당신 사랑합니다' 말하려니 쑥스럽고 도저히 말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이 습관이 무겁게 우리 인간관계 발전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또 설령 습관을 고쳐서 억지로라도 변화를 시도했을 때 상대방이 받아주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아내가 어디서 강의를 듣고 작심했습니다. 남편에게 과거와 달리 화장을 예쁘게 하고 남편 퇴근 후에 '여보 나 어때? 나 예뻐!' 하고 다가갑니다. 남편이 그걸 따뜻하게 받아주면 좋은데 '당신 오늘 뭐 잘못 먹었나?' '나이도 젊은데 벌써 망령이 들렸나?' 핀잔을 주면 다 수포로 돌아갑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 까요? 힘든 일이니까 포기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이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줍니다. 우리가 사랑의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줍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문을 차분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디모데 후서는 사도 바울이 제자 디모데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입니다. 2절을 보면 바울이 디모데를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친아들이 아닙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제자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바울이 제자 디모데를 정말 아들처럼 생각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가 부자지간의 관계까지로 발전됐다는 것을 뜻합니다. 본래 남남이었던 두 사람이 부자지간의 관계까지 사랑의 관계로 발전된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어떻게 이 두 사람의 관계가 이렇게 발전될 수 있었던가를 보여줍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사랑의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줍니다. 

    우선 기도하는 것입니다 

    3절 말씀을 보면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늘 디모데를 생각하며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이 기도가 두 사람의 관계를 사랑의 관계로 발전시킨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누구와 사랑의 관계를 발전시키려 할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기도입니다. 그를 위해 축복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하면 우리의 생각이 바뀝니다.

    기도하지 않고 그 사람을 생각하면 야속한 생각, 섭섭한 생각, 괘씸한 생각 이런 생각들이 우리 마음을 가득 채웁니다. 그런데 기도하면서 그 사람을 생각하면 성령께서 우리의 생각을 바꿔주십니다.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도록, 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의 생각을 바꿔주십니다. 

    행 7을 보면 스데반이 순교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며 큰 능력을 행하자 위협을 느낀 유대교 신봉자들이 산헤드린 공회로 잡아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갖은 핍박과 모욕을 다 당하면서도 스데반은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견디다 못한 공회는 스데반을 죽이기로 결정하고 성밖으로 내치고 돌로 치기 시작했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기 직전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자기들을 죽이는 저 원수들을 용서한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기도입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으면서 한 일이 기도입니다. 이미 기도 중에 성령이 충만했고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기도 중에 그 마음이 변했습니다. 사랑으로 충만해졌습니다. 

    남편이 미우십니까? 아내를 용서할 수 없습니까? 자식들이 괘씸합니까? 교인들이 밉습니까? 그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성령께서 우리의 생각을 바꿔주실 것입니다. 우리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본문 3절을 보면 바울이 디모데를 위해 기도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훌륭한 제자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동역자와 함께 사역할 수 있으니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남편을 위해 기도하면 그 남편이 내게 너무도 과분하고 너무도 소중하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입니다. 남들은 뭐라 해도 내게는 너무 소중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을 내 남편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남편뿐이겠습니까? 이런 자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런 교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런 목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4절을 보면 바울이 디모데를 위해 매일 기도하니 디모데가 점점 더 사랑스러워 보입니다. 점점 더 멋있게 보입니다.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가까이 하고 싶어집니다. 기도 안에 성령께서 우리를 그렇게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면 그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얼굴이 못생겨서 불평을 했지만 기도하다 보니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키가 작아 불평을 했지만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습니다. 공부 못해서 불평했지만 좋은 성격 때문에 멋있어 보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 우리의 마음을 바꿔주십니다. 사랑의 관계 발전은 우리 생각과 우리 마음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인간 관계를 발전시켜야 될 사람이 있으시죠? 그 분을 위해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진심으로 축복하는 기도를 드리십시오. 사랑의 관계가 발전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믿어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위해 기도한 후 차분히 디모데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디모데 안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보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믿음은 오래 전에 루스드라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만났던 디모데의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에게서 전수받은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더욱 디모데가 믿음직스러웠습니다. 이제 순교를 눈앞에 둔 바울로서는 이 디모데를 자신의 후계자로 세울 생각을 굳히게 됩니다. 믿고 일을 맡기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는 이제 믿어주는 관계로 발전됐습니다. 믿고 자기가 평생하던 일을 맡기는 관계로 발전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서로 믿어주고 또 그 믿음을 지켜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중국 사람들은 우리 한국 사람들과 여러 가지 면에서 그 의식구조가 많이 다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안면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전에 인사했던 적이 있고, 한번 만났던 적이 있어서 안면이 있는 경우 반갑게 맞습니다. 안면이 있다는 것 때문에 부탁도 들어주고 쉽게 마음도 엽니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아무리 여러 번 만났어도 서로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마음 문을 열지 않습니다.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고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어가 關係입니다. 그 사람과 내가 관계가 있다면 쉽게 마음도 열고 부탁도 잘 들어줍니다. 그러나 그 사람과 관계가 없다. 즉 無關係면 아무리 쉬운 부탁도 들어주지 않습니다. 마음 문을 열지 않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관계를 형성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믿음입니다. 이 사람 정말 믿을만하다 판단돼야 비로소 관계가 형성됩니다. 관계 형성되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의심이 많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가 인간 관계에서 서로 믿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누군가를 믿는다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동안 많이 속아봤고,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혀본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벌써 제 작년 일입니다. SBS 방송국이라며 전화가 왔습니다. 상도동 사는 사람인데 가까운 교회를 추천해 달라는 사람이 있어서 우리 교회를 추천했다는 것입니다. 아무개가 갈테니잘 보살펴 달라는 당부 전화입니다. 며칠 뒤에 명함을 하나든 사람이 찾아와서는 SBS 아무개 PD가 보낸 사람이라고 자기를 소개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흉악범으로 청송 교도소에서 15년을 복역하다가 예수 믿고 새사람되어 모범수로 며칠 전에 출감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신앙생활 잘할 테니 잘 지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PD 소개로 모 가내 공장에 취직했고 그 사장님이 상도 5동에 자취방을 마련해 주어서 여기 살게 되었답니다.

    그러면서 잠시 고향에 보름 동안 다녀온 뒤에 이사하고 이 교회에서 신앙생활 잘할 것이고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잘 지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 보자고 격려하고 내 보내는데 한가지 청이 있다는 것입니다. 부산 다녀올 차비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녀와서 갚을 테니 빌려달라는 것입니다. 마침 책상 속에 어디 쓰려고 10만원을 봉투에 담아 놓은 것이 있었습니다. 믿는 마음으로 그 돈을 주었습니다. 3년이 다 되는데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제가 어리숙해서 속은 것입니다. 처음에는 미련하게 속았다는 생각에 내 자신에게 화가 났습니다. 이런 일을 몇 번 당하고 나니까 도와달라고 오는 사람들을 의심부터 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려운 이웃들 구제할 수 없게 됐습니다.

    제가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그래도 믿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그들이 우리를 속이러 왔을 지라도 그래도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르구나 깨달을 때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생각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찾아오면 또 작은 돈이지만 믿고 주려고 합니다.

    우리에게 돈보다 소중한 것은 믿음입니다. 상대방이 그 믿음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해도 우리는 적어도 믿어주어야 합니다. 누군가 손해 보면서 믿어주어야 둘의 관계가 발전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충고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바울은 디모데에게 사랑의 충고를 합니다. 이제 바울은 디모데에게 충고할 수 있는 입장에까지 서게 됐습니다. 바울은 충고를 하고 디모데는 그 충고를 소중하게 듣는 관계로 발전한 것입니다. 

    얼마 전에 푸른 교실 어르신께서 저 들으라고 하소연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달마산 정자에 가려고 교회 윗동네로 올라가셨답니다. 담벼락에서 이제 중학교 1-2학년으로 보이는 녀석들이 담배를 피우며 장난을 하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어린 녀석들이 벌써 담배를 피우냐고 야단을 치셨답니다. 그랬더니 이 녀석들이 어르신을 주위로 둘러서서는 삿대질을 하면서 '할아버지가 우리 담배 피우는데 보태준 것 있느냐고!' 소리를 지르더랍니다. 더 이상 야단을 쳤다가는 봉변을 당할 것 같아서 부지런히 그 자리를 뜨셨답니다.

    옛날하고 달라서 아무에게나 충고를 했다가는 봉변 당합니다. 충고는 고맙게 받을 정도로 인간관계가 발전됐을 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충고해 줄 사람, 또 그 충고를 고맙게 받을 사람이 있다는 것은 복된 일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세 가지 충고를 했습니다.

    하나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복음 사역을 감당할 때 대적들이 많고 방해하는 세력들이 많기 때문에 겁나게 될텐데 그래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은 부끄러워 말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증거하다가 옥에 갇힌 스승 바울 때문에 부끄러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복음을 전하다가 고전 1:23 말씀처럼 이 복음이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기 때문에 부끄럽게 생각할 수 있는데 그래도 부끄러워 말라는 것입니다.

    셋은 고난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복음 사역을 감당하려면 필연적으로 고난을 받을 텐데 그 고난을 피하지 말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충고는 바울이 한 평생 복음을 전하며 체득한 것입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깨달은 체험적 진리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이 소중한 깨달음을 가르쳐주고 싶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왜 충고합니까? 그 사람이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잘되도록 진심으로 돕고 싶기 때문입니다.

    충고는 잔소리와는 다릅니다. 잔소리는 그 사람이 변해서 자기가 좀 편해 보고자 할 때 하는 말입니다. 잔소리는 자기를 위해서 합니다. 그러나 충고는 그 사람을 위해서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진심으로 잘되기를 바랄 수 있어야 합니다. 진심으로 축복해야 합니다. 그러던 중에 그 사람이 깨닫지 못한 것이 있다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고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그 충고를 소중히 여긴다면 두 사람의 사랑의 관계는 더욱 더 깊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다른 사람과 인간 관계를 발전시켜가야 합니다. 함께 노력하면 좋겠지만 처음에는 그게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때 우리 먼저 시작할 일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믿어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고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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