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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 창세기 50:15-21/ 용서 [주일낮]
  • 조회 수: 349, 2013.08.03 17:27:03
  •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용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인간들이 전쟁으로 황폐하게 만든 산과 들에도 봄이 오면 또 다시 풀이 나고 들꽃이 피어 그 상처를 아물게 하고 치료합니다. 인간의 파괴 행위에 대한 자연의 용서인 것입니다. 서울의 한일월드컵 축구대회를 연 상암구장이 들어선 난지도를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서울 시민들이 만든 흉물스런 쓰레기 동산이었던 곳이 이제는 아름다운 자연학습동산이 되었습니다. 자연은 인간의 환경파괴를 행위를 용서하고 다시 아름다운 생명으로 재건해 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용서는 새로운 삶을 가져다주는 근원적인 힘이 됩니다.


    요셉은 배다른 형제들로부터 시기와 질시를 받아 머나먼 타국 애굽에까지 팔려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과 고난을 겪었습니다. 천추에 한 맺힐 고생이요, 고난입니다. 그러나 긴 고생 끝에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파격적인 출세의 핵심이 되는 황제의 총애와 권력이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철천지 원수 형제들을 만났으나 그는 지난날을 다 잊고 용서했으며 형제들의 후원자가 되기로 자처하였습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요셉이 이렇게 형제들을 용서하게 된 배경에는......


    그의 운명이 형제들의 의해서 움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움직여졌다는 깨달음 때문입니다. 그가 애굽에 노예로 팔린 것도,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들어간 것도, 여주인의 유혹과 무고에 의해 왕궁 시위대 뜰에 갇힌 것도.... 멸망과 파탄에 빠진 가정을 구하고 더 나아가 이스라엘이라는 기초를 놓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 이렇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시는 일에 영광스럽게도 내가 쓰임을 받았구나.... 하는 깨달음입니다.


    그러나 요셉이 처음부터 이렇게 깨달은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누구나가 처음부터 위대하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고난 가운데서 참고 인내하다 보니 한 걸음 한 걸음 그 깨달음으로 나아가게 된 것이라고 봅니다. 원한에 사로잡힌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보지 못합니다. 무슨 위대한 깨달음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원한에 사로잡힌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고 스스로를 억제하는 힘이 생기기 시작하고.... 거기에다 요셉은 신앙의 사람이었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달래고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하니까 그 영혼이 서서히 맑아지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희미하게나마 느끼는 것입니다.


    샘 설리번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2005년도 캐나다 밴쿠버 시장을 역임했으며 캐나다 최고 명예 훈장을 받은 분입니다. 이 분은 어릴 때부터 스키를 타는 것을 좋아했는데 열아홉 살 때 스키를 타다가 한 친구의 장난으로 넘어져서 목뼈가 부러졌습니다. 그래서 하반신이 다 마비가 되어 버렸습니다. 평생 장애로 지내야만 하는 불행이 찾아온 것입니다. 7년 동안 분노와 심한 우울증에 빠져서 차라리 그 때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을 한탄하며 몇 번이나 자살하려고 했습니다. 장난쳐서 자기를 이 지경에 빠뜨린 그 친구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도망을 가 버렸고 심지어는 가까웠던 사람들 다 떠나고 여자 친구도 떠나고 삭막한 인생광야에 내던졌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분노와 우울증에 걸려 인생이 파탄이 날 지경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자살하려고 해도 그 스스로 어디에 가거나, 무슨 약을 사거나... 무얼 스스로 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 어릴 때부터 믿었던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 마음 가운데 들어오셔서 그의 황폐한 마음을 치료하기 시작했습니다. 절망이 사라져 버리고, 기쁨이 넘쳐나고, 새로운 희망이 솟아났습니다. 그는 장애를 극복해가면서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장애인 인권관련 협회를 조직해 장애인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열심히 활동을 하면서 1993년에 밴쿠버 시의원이 되고, 2005년에 밴쿠버 시장이 됩니다. 그가 밴쿠버 시장으로 있으면서 밴쿠버 시를 장애인을 위해 완전히 개조했습니다. 장애인들이 어디나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지하철이나 버스도 그 턱을 낮춰 휠체어타고 바로 들어갈 수 있게 다 고쳐놓고.... 그래서 현재 장애인들이 이 지구상에서 가장 편하게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어디든지 접근하기 좋게 만든 도시가 바로 밴쿠버라고 합니다.

     
    그리고 2010년에는 캐나다 세계 장애올림픽인 동계패럴림픽의 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 또 본인이 직접 장애인들을 위한 여러 가지 기구를, 기계들을 만들고 보조 기구를 만들었어요. 장애인을 위한 요트도 개발해 장애인들이 자기가 만든 그 요트를 타고 다니고, 또 장애인용 산악자전거도 만들고.... 엄청나게 장앤인들을 위한 실제적인 일을 했습니다. 현재는 ‘샘 설리반 장애재단’을 만들어 장애인들을 위해서 아주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 장애인들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갖게 될 정도가 되자 이 분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캐나다를 장애인들의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나를 장애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는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참새 한 마리가 딸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는데 나의 삶에 나를 괴롭히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하나님이 나를 위해 준비해주신 천사라는 생각이 필요합니다. 목자는 가끔 수많은 양들의 유익을 위해 험악한 염소들을 양 우리에 집어넣는다고 합니다. 호주 같은 나라에는 양이 참 많이 있습니다. 이 나라는 날씨가 참 좋은 편이지만 그래도 추운 날씨가 있고, 더운 날씨가 있죠. 그런데 더운 날씨에는 양들이 함께 엉켜있으면 여러 가지 사고가 납니다. 몰려다니다가 깔려 죽기도 하고, 더위에 양끼리 털에 짓물려 피부가 상하여 병이 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사나운 염소들이 그 우리 속에 들어가서 한 번씩 뿔로 받아주어야 양들이 뿔뿔이 흩어져 그러한 위험들을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양들의 입장에서는 사나운 염소들이 원수들입니다. 그 염소들이 있어서 죽을 지경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 염소들은 양들을 위한 것입니다. 이 양들이 그들의 생애에 이런 염소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을까요? 절대 깨달을 수 없죠.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과 통하기 때문에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오는 것입니다. 요셉은 그가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는데 하나님에 의해서 그의 형제들이 이런 염소들처럼 사용된 것을 깨닫고는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우리 인생에 때로는 철천지 원수 같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던져질 수 있습니다. 얼마나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지 가끔씩 “하나님 저런 인간들이 어째서 제 주변에 있는 것입니까? 좀 사라지게 해 주세요!!”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한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나의 사랑하는 양을 위해 내가 특별히 준비한 염소이니라. 잠시 후면 들어내 줄 테니까 잠시만 참아라.”   


    용서에 대한 이러한 깨달음뿐만 아니라도 우리는 용서에 대한 성경적인 가르침을 잘 받을 때 용서가 남을 위한 배려나 축복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축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호산나 교회에 다니시는 모 권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딸과 손녀가 길을 건너 가다가 과속차량에 치어서 둘 다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절명하고 말았습니다. 그 딸의 어머니가 자기 딸과 손녀의 죽음을 애통하고 통곡을 하고 있을 때 그 자동차 운전수가 경찰에 잡혀 왔습니다. 그 운전사는 말하기를 실수로 신호등을 무시하고 질주하다가 이런 사고를 범했으니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는 기왕 딸과 손녀가 죽었는데 더 어찌하겠는가 하고 용서를 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딸과 손녀를 치고 간 이 사람은 뺑소니로 경찰에 잡혔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용서할 생각이 싹 사라지고 괘씸한 생각과 복수심이 생겨났으며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이 흉악한 놈에 대해서 내가 복수를 해야 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용서해 주어야 될 것이냐? 그러나 그는 오래 생각한 끝에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용서해 주기로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움과 복수심을 마음에 품고 있으면 그 자체가 자기를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파괴하게 되며 또 사회생활 중에서 불행하게 만들어 결국 파괴는 자기가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심하고 주님 안에서 그 뺑소니 운전사를 용서해 주고 마음에 평안을 얻고 그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간증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마태복음 5장 43절로 44절에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주님께서 하신 이런 말씀은 정말 실천하기 힘든 것입니다. 내 원수를 사랑하고 너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결국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어마어마한 미움의 파괴에서 해방시키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31절로 32절에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많은 염려, 근심, 고통, 좌절, 절망의 감옥 속에 들어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이웃에 대한 용서를 해주지 아니하므로 하나님께서 진노의 채찍을 내리신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용서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마태복음 18장 35절에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골로새서 3장 12절로 14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미움과 원한과 복수심을 가진 적이 있고 현재에도 그러한 삶을 사는 살기도 합니다. 마음에 자리 잡은 미움, 그로 인한 원한, 좌절감... 이런 것들은 그 무엇으로도 고칠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은 부정적인 마음의 짐을 가지고 있으면 삶이 어둡고 부정적이 되고 불행합니다. 이와 같은 마음의 쓴물은 오직 용서를 통해서만이 치료되고 해결되며 해방될 수가 있습니다. 이 용서는 갈보리 십자가 밑에 나와서 그 찢어진 몸과 흘리신 피를 바라보고 거기에서 내가 내 이웃을 용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그 용서 속에서 자기의 잘못조차 용서하여 자기 혐오해서 벗어나면 비로써 마음이 젓과 꿀이 흐르는 물댄 동산 같이 되어서 참으로 하나님의 영광 속에 살아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용서를 통해 전정한 회복의 은혜를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며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죄인들입니다. 죄짓지 않은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에 원한과 미움을 품고 있으면 이것은 무시무시한 독을 품어내고 자기를 파괴하고 좌절과 절망케 합니다. 이웃을 용서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받고 자기를 용서하고 그 결과 사랑이 넘쳐 나서 변화와 행복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 용서할 수 있는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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