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원한 본향(히11:13~16)
  • 조회 수: 152, 2013.08.04 16:08:06
  • 인간에 대한 부정적 모습들 예를 들면 인생이 아침에 이슬 같고 풀의 꽃과 같은 허무함과 찰라적인 모습들 내일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 무지함이며 자식이 죽어 가는데도 어찌 할 수 없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인간의 무능력 등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인생이 먹고 마시고 자기 위하여 이 세상에 왔다면 그래서 창고의 곡식과 고기를 먹어 치우고 빈 접시만 남기고 가는 것이라면 인생은 태어나야 될 이유가 없다고도 말을 합니다. 인간을 부정적으로 보면 이렇게 삭막하고 메마르고 무의미한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는 한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어떤 입장에 있든 어떤 환경에 처하든 그 마지막에 그 종래에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죽거나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것입니다.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을 생각하면서 살 수 있도록 섭리해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본능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아무리 고향을 잃어버렸다고 하더라도 고향을 떠났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영혼 깊은 곳에서는 결국 한 가락 노래가 흘러나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리움과 목마름이 있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내게는 고향이 있습니다. 고향이 보고 싶습니다. 고향이 그립습니다. 거기에 묻히고 싶습니다. 그래서 병든 사람을 고향에 갖다 뉘이면 그 병이 조금 좋아진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애굽에서 마지막 유언으로 자기를 고향 땅에 묻어 달라는 것이나 요셉 역시 애굽의 부귀영화를 다 누리고 죽어 가면서 그의 시신을 열조의 무덤에 함께 두어 달라고 했습니다. 이북에서 내려온 이산 가족들이 두고 온 고향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곳에서 보기 위하여 강화도 아니면 백령도에까지 올라가서 생활을 하고 있는 이유들은 한 가지입니다. 죽으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본능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고향을 사모하고 본향을 사모하며 사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증거하면서 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그네의 자아상을 가지고 살아갈 때 주님께서 예비하신 아름다운 성에 들어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추석에 찾아가는 지상에 있는 고향이 아니라 더 나은 본향, 하나님 아버지께서 준비하신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는 나그네라는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전도서가 말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는데 그 마음을, 그 본향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더 나은 본향을 향하여 나아가는 성도들에게 3가지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각자가 답을 생각하여 보시기를 바랍니다.

    1. 더 나은 본향을 향하여 나가는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3절( )

    아브라함이나 이삭 야곱 등은 모두가 다 가나안의 땅을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하였지만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 약속대로 성취될 것을 확신하고 기뻐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마음만 먹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지만 그렇게 못한 것은 더 나은 본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로지 하늘 본향으로 돌아갈 날을 생각하면서 이 땅에서는 나그네처럼 외국인처럼 살아갔던 것입니다.

    순례자와 방랑자를 비교해 보면 차이점은 방향성입니다.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고 가는 이들이 방랑자입니다. 저들에게는 목적지가 없습니다. 인생의 첫 번째 질문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좀더 좋은 집, 좋은 자리, 좋은 음식을 먹기 위하여 몸부림을 칩니다. 만약 우리가 가야할 본향을 모르고 산다면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은 나의 장례식에 쓰여질 제사상 차림밖에 더 될 것이 없습니다.

    또 한가지 순례자와 비교되는 말이 있는데 피난민이 있습니다. 피난민들은 목적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억지로 전쟁 때문에 쫓겨났기에 불평이 많습니다. 수용소에 들어 있는 피난민들은 아무런 삶의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배부르게 먹여만 주면 더 이상의 만족이 없습니다. 저들은 목적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오로지 정욕을 채우려고만 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윤리 도덕이 없습니다. 언제나 내가 더 많이 먹어야 하고 가져야 하기에 싸움과 갈등과 시기와 요란함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방랑자가 아닙니다. 가랑잎처럼 몰려다니는 피난민도 아닙니다. 분명히 가서 쉴 곳이 있는 아버지의 집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이 본향은 미리 예비 되어진 곳입니다. 주님이 요한복음에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고 너희를 나 있는 곳으로 데려 가리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갑자기 성도님 가정을 찾아가면 굉장히 놀랍니다. "아이고 오신다는 연락이라도 하시고 오시지 갑자기 오셨습니까?" 그 얘기는 준비하지 못했다는 얘기 아닙니까? 아니면 목사 심방 오는게 귀찮아서 피하려고 했는데 못 그래서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귀빈'이라는 말을 젊은이들은 '귀찮은 빈대'라고도 한답니다. 가끔 그런 귀빈들이 있더라고요. 바라지 않은데 갑자기 왔단 말이에요. 그러니 어떡합니까? 나가란 말은 못하고 들어오라고 그러겠죠. 그러나 우리의 본향은 그런 곳이 아닙니다. 언제나 예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넓고 넓은 사랑으로 아주 넓게 예비하셨습니다. 넉넉하게 준비하셨습니다. 꾸짖지 아니하고 후히 주시는 것으로 예비하셨습니다. 바로 이렇게 주님이 예비하신 곳에서고 영원히 안식할 곳입니다.

    2. 두 번째 질문 : 더 나은 본향을 향하여 가는 자의 현실적인 사명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사는 이곳은 본향이 아닙니다. 여기는 잠깐입니다. 서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쇠하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림자입니다. 가짜입니다. 그러나 진짜가 있습니다. 변하지 않고 쇠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영원한 진지의 나라가 있습니다.

    한국사람들은 보물이나 진주 목걸이를 하면 진짜를 하고 다녀요. 그래서 진짜를 가지고 다니다가 날치기 당하거나 하면 얼마나 원통할까요? 그런데 외국사람들은 가능하면 진짜는 안 하고 다니고 가짜를 하고 다닙니다. 아주 화려하게 파티에 나갈 때도 가짜를 달고 나갑니다. 그리고 누가 아름답다고 말하면 이것은 가짜입니다. 진짜는 따로 있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진짜 가치, 진짜 생명은 따로 있습니다. 진짜 고향은 따로 있습니다.

    그런즉 이 세상의 것 가지고 싸우고 믿음을 잃지 않고 살겠다는 결단을 지금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을 향해서 갑니다. 자꾸만 눈앞에 코앞에 무엇인가가 아른거립니다. 냄새가 납니다. 그 애굽에서 먹던 고깃덩어리 왔다 갔다 합니다. 그 고깃국 냄새가 코에서 왔다 갔다 합니다. 즐겁게 쾌락을 누렸던 푹신한 잠자리가 왔다 갔다 합니다. 그래서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감사를 빼앗겼습니다. 구원의 은총을 잃어 버렸습니다. 불평이 많아집니다. 40년 동안 방황하면서 들어가지를 못했습니다. 바로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영혼의 갈등입니다.

    그러나 본향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지난 세월을 한탄하지 않습니다. 지나간 것을 그리워하지 않습니다. 애굽의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사람은 세상 냄새에 취하여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런 것 때문에 믿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더 나은 것을 향하여 움직이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정체하지 않습니다.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더 나은 것을 바라기 때문에 이 땅에서도 더 나은 것, 더 온전한 것, 더 선한 것, 더 의로운 것 이런 것을 바라며 삽니다. 날마다 새 일을 행하시는 성령과의 동행을 계속하여 나갑니다. 이것이 세상적으로는 개혁이고 변화지만 우리는 성화라고도 합니다.

    독수리와 매가 비슷한 것 같지만 먹는데서부터 전혀 다릅니다. 매는 항상 죽은 것만을 먹습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절대로 아닙니다. 반드시 살아있는 것만을 먹기에 식중독으로 고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태풍이 불면 매는 미리 일찌감치 피하여 숨어버립니다. 반면 독수리는 태풍이 올라치면 점잖게 바위에 앉아서 몰려오는 태풍을 지켜본다고 합니다. 드디어 빗방울이 독수리 머리 위에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때서야 양 날개를 펴고 날기 시작합니다. 바람을 역이용하여 유유히 더 높은 하늘로 올라가서 태풍이 지나가기까지 밝은 햇빛을 받으면서 구름 위를 즐기면서 날게 됩니다.

    우리는 독수리처럼 하늘에서 내려온 순례자들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이 땅을 걷는 순례자이며 동반자입니다. 그의 제자들의 사명을 감당하다가 주님이 부르실 때에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3. 더 나은 본향은 어떠한 곳입니까?

    (1)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쉽게 천당, 천국, 하늘나라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고뇌와 인간의 이기적인 싸움과 불안과 불만 욕심이 없는 곳임을 말합니다. 하늘에 있다고 하는 것은 이 땅의 부조리와 모순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곳입니다.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삶과의 모습과는 전혀 구별되는 안식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곳과 똑같은 모습으로 천당에 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전도해서 예수를 믿게 했는데 시어머니 돌아가신 다음에 예수 안 믿어요. 그래서 왜 신앙을 포기하였느냐고 물으니깐 "나는 우리 시어머니 있는 천당에는 안 가겠습니다." 반대로 며느리 있는 천당에 안가겠다는 시어머님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이 세상에서 지지고 볶고 사는 그 모습이 그대로 하나님나라에서 또 이루어진다면 거기 갈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과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뜻하고 다른 하나님의 뜻과 사랑이 완전하게 행사되는 곳이 그런 안식처가 바로 우리의 본향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보다도 더 구체적인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이 있습니다.

    (2)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 하시는 나라가 더 좋은 고향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내가 왔어요. 창극이가 이제 왔어요.' 해도 하나님은 창피하게 여기지 아니하시고 영접해 주시는 곳이 바로 하늘 나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명절이 되면 식구들이 다 모이죠? 다 모였는데 가장 속썩이는 아들이 아니면 가장 못 사는 아들이 오지 않으면 더 마음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뭐 바리바리 싸들고 돌아가야 그렇게 가야 기쁘겠습니까? 아니죠 부모님은 자식이 집으로 와 준 것만으로도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나 같은 죄인이 집을 나간 탕자 꼴이 되어서 아들 자격이 없다고 해도 하나님은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오히려 우리를 영접하신다고. 달려나와서 내 손 잡아주시고 내 눈에 눈물을 씻기워 주시는 그 하나님 그 아버지가 기다리는 곳이, 그런 곳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찬송가.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영광나라 계신 임금 우리구주 예수라' 바로 거기가 더 나은바 우리의 본향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아버지를 부르며 가는 것 그것만으로도 환영받는 곳 바로 그런 것이 본향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를 믿는 그 순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그 순간 우리는 하늘의 고향을 바라봅니다. 결코 세상을 돌아보는 것이 아닙니다. 본향을 사모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언제 부르실지 모릅니다. 더 알찬 귀향 보고서를 만들어서 주님께 보고 하도록 열심히 봉사하십시다. 사랑으로 나누고 섬기면서 살아갑시다. 주님은 더 큰 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더 나은 본향을 위하여 손해 보는 것만큼 믿음이 결단을 하느라고 잃어버린 것 이상으로 더 큰 축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칼빈 선생도 말했습니다. 배가 부르니까 기도보다는 하품이 먼저 나오더라고. 신앙에서 이 정도면 되었다 하고 생각하는 이가 있으면 매우 어리석은 부자와 같습니다. 더 나은 본향에 이르도록 끝없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겸손을 잃지 않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주어진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형편이 어떠하든지 간에 하늘 백성답게 소망을 가지시고 당당하게 나아가십시오. 잘 사는 친척들에게 기죽지 마십시오. 우리의 진짜보석, 진짜 집은 이곳이 아니라고 자랑할 수 있는 증거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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