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사람(히 11 : 13 - 16)
  • 조회 수: 87, 2013.08.04 16:09:08
  • 우리나라는 지역 감정이라고 하는 심한 망국 병을 앓고 있기 때문에 고향을 말하는 것은 별로 달갑지 않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고 부모 형제가 거주하는 그리고 진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는 고향이야말로 우리의 마음을 흥분케 하는 곳입니다.
    사실 우리 민족처럼 고향에 대한 애착심을 가진 민족도 드물 것입니다.
    명절 때마다 교통 체증을 개의치 않고 장시간의 고통을 감내 하면서도 고향을 찾아가는 모습들이 이것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본문이 있는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장'으로 믿음을 따라 살았던 선진들의 신앙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현실에 메이기보다는 미래를 바라보는 삶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고난의 투쟁을 기쁨으로 감당한 삶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붙여진 이름이 있는데 그것은 '외국인'과 '나그네'라는 별명입니다.
    그들은 육신적인 고향보다 더 나은 본향을 향해 순례자의 길을 걷는 나그네였습니다.
    여기 '더 나은 본향'은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을 가리킵니다.
    세상의 고향은 아직도 고통이 있고, 슬픔이 가득차 있고, 질병과 고독, 외로움 그리고 인생의 고뇌가 그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이 곳에서는 참 안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더 나은 본향에는 인생을 괴롭히는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거기에는 참 만족과 기쁨과 행복이 가득차 있습니다. 영생의 축복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들을 때 땅에 것에 머무르는 삶이 아니라 위엣 것을 찾는 삶, 천국을 사모하며 나그네처럼 이 세상을 통과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사람!

    1. 믿음을 따라 죽는 사람입니다.

    본문 13절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이 사람들'은 앞에서 언급한 아벨과 에녹과 노아와 아브라함과 사라를 의미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히브리서 11장에 언급된 모든 믿음의 선조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믿음을 따라 죽었다는 말은 믿음으로부터 변절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믿음을 따라 죽으려면 먼저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안됩니다.
    믿음으로 살았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았음을 나타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그 들음의 내용은 곧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롬10:17).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의 포로가 되어 그 말씀에 일치하는 삶을 사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살았던 그들은 더 나은 본향을 사모했기에 믿음을 따라 죽었습니다.
    그들은 육신적인 고향을 떠나도록 지시를 받았고, 우상숭배가 가득한 곳들을 지나오면서 그 땅 한 조각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장막(Tent)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믿음을 따라 살았기에 많은 시련과 어려움과 고통을 받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누릴 수 있는 세상의 유익들을 받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믿음을 지키며 산다는 이유 때문에 조롱과 비웃음과 야유를 받았습니다. 더 나아가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모두 믿음을 따라 죽었습니다.
    그들의 영의 눈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분명히 보았고, 그 약속들이 때가 되면 그들에게 성취될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은 미래의 분깃에 기쁨으로 참여하였고, 그것을 위해 현재의 이익들을 기꺼이 포기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늘의 것 때문에 기꺼이 땅에 있는 온갖 좋은 것들을 외면하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정말 믿음으로 살았고, 또한 믿음으로 죽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영광스럽고 복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확신이 가득 찼기에 믿음을 따라 죽었습니다.
    우리는 분명하게 들었고, 보았고 손으로 만져진(요일1:1)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약한 자리에 떨어지는데, 그들은 희미하게 주어진 은혜의 일부분을 맛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만족해하고 결코 그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약속을 받지 못했어도(13절)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여기 '받다'는 뜻은 참예와 소유를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받지 못했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참예하지도, 소유하지도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아직 우리의 것이 아닌 것을 의뢰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아직 실제로 소유하지 못했을 때 약속의 내용을 붙잡고 즐기는 것입니다.
    그들은 실제로 약속에 참여하지 못하고 그것을 멀리서 보았으나(13절) 결코 실족하거나 믿음에서 떠나지 않고 견고한 믿음을 따라 죽었습니다.
    이것이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사람!

    2. 외국인과 나그네처럼 사는 사람입니다.

    본문 13절에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외국인'은 국적이 없이 임시로 머무는 자에게 주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고대사회에서는 이들을 야만인이나 피난민으로 대접했습니다.
    또한 '나그네'는 제한된 기한 안에 일시적으로 체류하고 있는 사람으로 정착할 집이 없는 자를 가리킵니다.
    이들은 안정된 장소나, 안정된 직업이나, 안정된 시간을 갖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뿐만 아니라 모든 신분상의 제한까지도 받고 있는 자들입니다.
    나그네와 외국인은 모두가 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이며, 결국 고향으로 가고 말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 자체가 참된 고향, 더 나은 본향을 찾아가는 나그네요, 순례자입니다.
    인간의 삶은 이 땅이 전부가 아닙니다.
    어거스틴은 그의 책 '하나님의 도성'에서 세상에는 영원한 도성이 없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죄와 세상을 향해서 싸워야 할 것임을 말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니라"(고전15:19)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부족한 사람들이지만 영원한 도성, 더 나은 본향을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들입니다.
    인생은 창조될 때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계신 곳 즉 천국이 우리의 영원한 고향이며, 안식처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잠시 거쳐가는 나그네의 땅입니다.
    여기에는 슬픔과 고통, 질병과 환난, 외로움과 죽음 등 인생의 고뇌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인생을 고해와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에게 나아간 야곱도 창세기 47장 9절에서 그의 인생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 나그네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성도는 예외 없이 이 세상에서는 영구한 도성을 찾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땅의 것보다 더 나은 본향을 향해 가고 있는 순례자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가 앓고 있는 질병 중의 하나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보다는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안주하려는 것입니다. 그저 땅의 축복이 전부인 것처럼 여기에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축복을 결판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나그네의 삶인 줄 아는 성도는 천국을 사모하게 됩니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자는 땅의 것들에 대한 애착을 끊어 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외국인과 나그네의 길은 고생과 수고의 여행길입니다.
    이 길이 저와 여러분이 걸어가야만 하는 길입니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사람!

    3. 세상을 등진 사람입니다.

    본문 15절에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나온 바 본향'은 갈대아 우르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곧 땅위의 고향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났습니다(창12:1,4).
    성도는 결코 세상에 메일 수가 없는 자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이 영원한 도성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상의 본향은 우리의 영원한 도성이 될 수 없습니다. 잠시 외국인과 나그네로, 우거하는 자로 머물 장소에 불과합니다.
    우리에게는 더 나은 본향, 바로 인생이 처음 나온 하나님 자신의 세계가 있습니다.
    여기 '더 나은 본향'은 여러 가지로 설명되고 있는데 10절에서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으로, 16절에서는 "한 성"으로, 또한 "하늘에 있는 것"으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자는 결단코 뒤돌아보거나 세상으로 돌아가는 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세상을 등진 채 멀고먼 순례의 길을 걸었습니다.
    외롭고 쓸쓸하게, 온갖 종류의 세상의 냉대와 멸시와 천대와 굴욕 속에서도 앞을 향해 걸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저들에게는 되돌아갈 길이 항상 열려 있었습니다.
    여기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은 '저들의 마음이 갈대아에 있었다면', '저들의 마음이 그것을 갈망했다면'의 뜻입니다.
    저들이 나온 본향을 생각하고 거기에 마음이 끌렸다면 다시 돌아갈 수 있었으나 저들은 철저하게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였습니다.
    저들이 갈대아로 돌아가지 않음은 세상을 계속적으로 부인하며 천국을 향해서 나아가는 성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출애굽 운동을 전개했던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 12명의 정탐꾼을 보내었는데 10명의 정탐꾼이 악평을 하자(민13장) 온 회중이 소리 높여 울며 애굽으로 돌아가자(민14:1-4)고 하였습니다.
    출애굽을 감행했던 이스라엘 백성은 더 나은 본향을 찾기보다는 애굽(세상)을 항상 동경하였습니다.
    그러나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자들은 언제나 세상을 부인하였습니다.
    이들은 결코 부와 명예와 쾌락, 갈대아 사람들의 사회를 열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훨씬 초월적인 것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들은 한 때 그들을 만족케 했던 하찮은 것들을 경멸할 줄 알았습니다.
    우리가 세상으로 돌아가 헛된 일에 종사하기를 원한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 세상을 포기하는 자는 승리를 획득한 자요, 하늘의 축복을 쟁취한 자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늘의 보물을 찾고 있는 자입니까? 아니면 애굽(세상)의 고기를 갈망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지금까지 외국인과 나그네의 이름으로 여기까지 살아왔습니다.
    더 나은 본향을 향해 걷는 이 길에는 눈물과 고통이, 수고와 슬픔이 우리를 기다릴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것들이 때로는 우리를 순례의 길에서 피곤하게 하고, 넘어지게 하고, 쓰러지게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우리가 받은 새 소망의 본향을 포기하거나 잃어버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사람들이기에 믿음을 따라 살고, 믿음을 따라 죽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또한 나그네와 외국인처럼 가야 할 본향을 사모하며 사는 삶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등지고 살아야 되는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이것은 곧 세상에 대한 미련을 떨쳐 버리는 것이요, 세상을 부인하며 사는 삶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세상 하란을, 세상 애굽을, 세상 바벨론을 떠나 새 하늘과 새 땅을 대망하며 오늘도 걸음을 옮기는 나그네들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경멸하고 조소를 보낸다고 할지라도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묵묵히 나그네의 행진을 계속하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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