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갈 2:20) [고난주간]
  • 2013.08.16 10:38:45
  •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을 갖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이와 같은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함께 따라하시겠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가 짧은 인생길을 살아가는 동안에 가장 큰 은혜, 큰 기적을 체험하는 것이 바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이 없습니다. 더 큰 축복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그 순간 우리의 신분이 바뀝니다. 마귀의 노예, 저주받은 인생에서 하나님의 자녀, 축복받은 인생으로 우리의 신분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 받은 자녀의 삶을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모를 때는 죄와 절망가운데 살았지만은 예수를 믿고 나서 새사람이 되어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위해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일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한때는 예수님을 몰랐을 때 교회를 핍박하는 자였지만은 예수님을 만난 다음 그 후에 삶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고백한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이 고백이 그의 일생의 가장 귀중한 고백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 말씀 붙잡고 일생을 다가도록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며 살았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그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만이 내 삶에서 존귀케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 위해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주님 앞에서 참 기쁨을 누리며 승리의 삶을 살아가기 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있습니다.

    1. 내가 죽는 신앙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첫째로 내가 주님 앞에서 죽어야 합니다. 내가 죽는 신앙으로 먼저 주님께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자신, 다시 말하면 내 옛 사람, 육에 속한 사람, 죄에 속한 이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우리가 생각해볼 때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그 순간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우리가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를 지으며 죄 속에 살아가던 사람이었는데,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그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우리는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6장 6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서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제는 죄의 종노릇 하지 마십시오. 알고 있는데 잘 안 되요. 내가 미워하면 안 되는데, 내가 이렇게 쉽게 화내면 안 되는데, 내가 이렇게 아무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속상해하고 답답해하면 안 되는데, 아는데 잘 안 되요.

    왜? 아직 내가 살아있으니까.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옛 사람이 살아갖고‘자기가’, ‘자기가’, 자기 힘으로 모든 것을 하려다 보니까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을 때도‘아 잘 죽는다.’그리고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난 다음 완전히 그 삶이 바뀌어졌어요. 그는 인간적으로 자랑할 것이 많았는데 그것을 다 내버리고 예수님만 높이고 예수님만 위하여 살았던 것입니다.

    그의 고백이 빌립보서 3장 8절에 있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는 이와 같이 고백을 했습니다. 자신의 자랑거리를 십자가에 다 못 박아 버린 것입니다. 사람이 죽고 나면 누가 귀에다 대고“야, 이 나쁜 놈아”욕해도, 발로 걷어차도, 송곳으로 찔러도 반응이 없어요. 왜? 죽었으니까.

    여러분, 여러분의 옛 사람이 죽었으면 누가 뭐라고 그래도“못 들었습니다. 난 죽었어요.”누가 뭐라고 그러면 막 분노하고, 사실 확인하기도 전에 막 혼자 속상해하고, 밥 먹다 얹히고, 잠 못 자고, 그런 일이 종종 있어요.

    여러분, 옛 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예수를 믿을 때 내 고집과 교만과 불순종과 하루에도 몇 번 씩 욱하고 화내는 것과, 다 죽은 거예요. 죽은 사람은 실망할 것도 없고, 불쾌할 것도 없고, 섭섭해 할 것도 없고, 미워할 것도 없어요. 죽었으니까. 문제는 어디 있습니까? 내 자신입니다. 이 내 자신이 죽은 것 같은데 또 살아나가지고, 또 미워하고, 또 속상해하고, 또 화내고, 또 소리 지르고, 그래서 이 내가 문제입니다. 사도바울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따라하세요.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할렐루야.

    이 죽는‘나’는 뭐냐, 옛 사람. 미워하고, 분노하고, 속상해하고, 죄 짓고, 불의하고, 방탕한 이 사람이, 옛 사람이 날마다 십자가에 죽어야 되요. 그래서 우리는 새 사람으로 살아야 됩니다. 옛 사람의 모습에 끌려 살면 또 죄 짓지요, 또 미워하죠, 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참 욕심덩어리예요. 아무리 많이 가져도 더 가지려고 그래요. 뉴스 보셨지요? 땅에다가 돈을 27억을 묻어 놓고, 그 중에 4억을 빼 쓰고 잃어버렸다고 신고했다가 그 돈을 다 압수당했어요. 참, 좋은 일에 써야지, 땅에다 묻어놓고 그러면 되겠습니까? 욕심덩어리예요. 자꾸 가지려고 하고. 잘못 도박에서 돈을 벌어갖고 이게 드러나면 안 되니까 밭에다 파묻어놓고. 사람마다 다 가서 밭을 파 볼지 모르겠네요. 뭐가 있나 하고. 여러분, 욕심덩어리예요. 그런데 죽어지면 그 욕심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우리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게 되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6장 11절에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고백해야 되요. “나는 죄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내가 분노하던 옛사람도 죽었습니다. 미워하던 옛 사람도 죽었습니다. 속상해 하던 옛 사람도 죽었습니다. 늘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던 옛 사람도 죽었습니다. 밤 잠 이루지 못하고 마음속에 분노와 원한으로 가득 차 고통하던 그 모습도 죽었습니다.”

    그래서 일찍이 앤드류 머레이 목사님이 이렇게 고백을 했어요. 그분의 책「나를 버려야 예수가 산다」에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의 특징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아가 깨어진 사람은 자기의 무능을, 무능력을 깨닫고 나는 아무것도 아님을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다. 나는 전적으로 무력하다. 모든 생명의 호흡과 힘이 내 주 예수님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따라하세요.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모든 것 되십니다.” 할렐루야. 우리 기독교의 진리는 역설적인 진리라고 말해요. 내가 죽어야 살아요. 살고자 하면 죽는 거예요. 내가 죽어야 하는 거예요. 내가 죽어야 내가 살고, 내가 죽어야 내 가정이 살고, 내가 죽어야 이웃이 살고, 내가 죽어야 이 사회가 살고, 내가 죽어야 이 나라가 사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있으니까 늘 내 자신이 문제덩어리가 되고, 내가 살아있으니까 가정에서도 늘 소란하고 시끄러운 소리가 나고, 내가 살아있으니까 이웃과의 관계가 그렇고, 내가 살아있으니까 이 사회 속에 아름다운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나시면 좋은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힘으로는 스스로가 죽을 수가 없어요. 주님이 함께 나를 도와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실 때에만 내가 죽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 그 순간 예수님의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어요.

    로마서 8장 35절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느냐? 우리는 사랑으로 주님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내가 죽고 주님과 함께 부활하는 놀라운 은혜가운데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 붙들고 기도할 때 주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놀라운 일을 베풀어주십니다.

    앤드류 목사님의 또 다른 책「나를 비우고 성령으로 채우라」그 글에서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거나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는 일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우리 힘으로 얼마든지 예수님처럼 살아갈 수 있고 또 그렇게 살려는 의지를 가질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예수님의 삶은 너무나 고귀하고 신성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는 그 모양을 흉내조차 낼 수 없다. 그런 삶은 오직 그리스도께만 속한 삶이기 때문에 주님이 성령으로 친히 우리 안에서 그런 삶을 살게 하실 때 가능하다.”

    주의 성령이 임하면 주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와 같은 삶을 살 수 있게 만들어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내가 어떻게 화나는 것을 다스려요? 못 다스려요. ‘화내면 안 되지’생각하고 있지만 벌써 화 대고 있거든요. ‘내가 소리 지르면 안 되지’하면서 벌써 소리 지르고 있어요.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함께 하셔야 되요. 성령이 나를 사로잡아야 되요. 성령이 나를 사로잡아서 내 입술을 다스리고 내 생각을 다스리고 내 삶을 다스려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여 임하시옵소서. 나를 사로잡아주시옵소서. 내 삶 속에 주님이 역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2.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신앙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둘째로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신앙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장 20절에,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누가 사신다고요? 그리스도께서. 예수를 믿는 그 순간 우리의 옛 사람, 옛 모습은 사라져 버리고, 우리가 새롭게 변화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분명하게 우리에게 설명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로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도다. 하나님의 피조물이 되었도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도다. 따라하세요. “나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내 삶의 주인이 예수님이 되셨어요.

    그래서 비즈니스를 해도 그 비즈니스의 사장님, 회장님이 내가 아니라, 이름은 나로 되어 있지만 예수님이 그 회사의 회장이고 사장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집을 사서 들어갔을 때 등기에는 내 이름이 올라가 있다 할지라도 실제로 그 집의 주인은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공부를 해도, 좋은 데 취직을 해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도 그 자리는 주님께서 함께 하셔서 주신 자리이기 때문에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자리요, 주님이 높이심을 받으시는 자리요,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을 증거하는 자리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이 오직 주께 영광. 운전을 할 때도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집에서 음식을 만들 때도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에요.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내가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는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최봉석 목사님은 일제 시대 때 아주 능력이 많아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나타내신 목사님이 되셔서 이름이 별명이 ‘최권능’ 목사입니다. 그런데 신사참배를 거부해서 감옥에 갇혔어요. 그를 끌어내서 형사가 조사를 합니다. 아무리 물어도 대답을 안 합니다. 그러니까 몽둥이를 갖다가 때립니다. “왜 이 늙은 영감이 말이 없어?” 하고 ‘탁’ 때리니까 “예수” “어, 이것 봐라.” ‘탁’ 때리니까 “예수” 비명을 지르지 않고 입만 열면 “예수”, 걷어차도 “예수”, 때려도 “예수”. 그래서 기가 막혀서 “어디 예수뿐이야, 이 영감탱이야!” 소리를 질렀더니, 이 목사님이 이렇게 답을 했다고 합니다. "내 몸 속에는 예수만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아무리 때려도 예수 밖에 나올 것이 없소."

    할렐루야. 여러분 그 신앙을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가운데 예수님 밖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나를 아무리 흔들어도, 나를 짓밟아도, 나를 때려도, 나를 무시해도, 나를 멸시해도, 내 삶 속에서 예수님밖에 나올 것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오직 예수. 할렐루야.

    로마서 14장 8절에 이렇게 되어 있잖아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사나 죽으나 오직 주님을 위하여서.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 마음 가운데 계심으로 말미암아 내 삶 속에서 주님이 영광을 받아야 됩니다.

    주님이 내 삶 속에 의로우신 예수님으로 오셔서 날 의롭게 만들어주시고, 거룩하신 예수님으로 오셔서 나를 거룩하게 만들어주시고, 기쁨의 근원되신 예수님으로 오셔서 내 맘에 기쁨이 넘쳐나게 만들어주시고, 사랑과 용서의 근원으로 오셔서 예수님 우리 마음 가운데 사랑과 용서가 넘쳐나게 만들어주시고, 치료자 예수님으로 오셔서 우리를 모든 병에서 치료하여 주시고, 형통케 하시는 예수님으로 오셔서 우리를 모든 생활에서 형통케 만들어주시고, 영생의 예수님으로 오셔서 우리를 영생천국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여러분 마음속에 예수님이 와 계십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연세대 영동 세브란스 병원의 암센터 소장인 이희대 박사님이 있습니다. 최근에 이희대 박사님이『희대의 소망』이라고 하는 책이 다시 재출간되어서 도착이 되었어요. 제가 이 책을 받아들고 그 날로 다 읽었어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물론 이 분을 만나서 같이 예배를 드린 적도 있는데 2003년도에 대장암이 발병이 되어가지고 지금까지 8년 동안 병과 싸우고 있는데 대장암을 비롯해서 온 몸에 암이 전이되어서 열 번 이상 재발을 하고요, 수술을 수없이 받았습니다. 현재 암세포가 간과 골반 뼈에 전이되어 암4기, 말기 암 상태이지만은 아직도 그는 절대 희망을 가지고 예수님 붙잡고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어요. 본인이 암센터 소장이에요. 본인이 암을 몸 여러 곳에 갖고 있으면서, 암4기는 암 말기입니다.

    그런데 암말기라는 말을 안 써요. 이분은 “암4기 다음에 생명의 5기가 있다.” 그래가지고 절대 죽음을 선고받고도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갖고 전진해 나갑니다. 조용기 목사님께 두 번 기도 받고요, 사차원의 영성을 가지고 목사님의 그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늘 고백합니다. 그래서 암이 분명히 있는데 일반 상식적으로는 벌써 세상을 떠나고도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아직도 건강하게 살아 계세요. 원래 말기 암 환자가 3개월에서 6개월 선고 받거든요, 8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암이 허락 없이 와서 돈도 안내고 전세 살고 있다고.” 암과 싸우는 거예요. 이런 고백을 합니다. “암은 하나님을 만나게 채 주었기 때문에 저에겐 차라리 축복이었습니다. 기독교 학교도 나왔고 성경을 접한 적도 있었지만 수박 겉핥기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암을 통해서 철저히 낮아짐으로써 비로소 저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2003년 6월에 저는 이미 4기였습니다. 말기입니다, 말기. 그때 죽는다, 죽는다 했더라면 진짜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적인 치료 외에 영적인 치료를 허락하셔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게 해주셨습니다. 절망 속에서 만난 하나님은 믿음으로 암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의술을 뛰어넘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모든 영광 돌립니다. 많은 암 환자들이 이분의 권면을 받고 암과 싸워서 이기고 죽음의 병상에서 일어나 건강한 몸으로 회복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께 맡기세요.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 주님이 주님의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나의 옛사람은 날마다 죽어지고 내 삶 속에서 주님만이 높임 받게 되기를 원합니다.

    세례 요한의 고백처럼 우리는 이렇게 고백해야 됩니다. 요한복음 3장 30절에,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내 삶속에서 예수님은 흥하여야 하겠고 나의 옛사람은 쇠하여야 하리라. 오직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신앙

    세 번째로 우리는 이제 내가 죽고 주님과 함께 부활하여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여러분,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예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하고 믿음의 발걸음을 옮겨나가시기를 바랍니다. 환경을 바라보지 마세요. 문제를 바라보지 마세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예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세요.

    히브리서 11장 6절에 이와 같이 믿음으로 전진해 나갈 것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우리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 믿음.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

    보세요. 로마서 8장 32절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버리시고 희생하셨어요. 그 희생의 사랑에 감동되어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다가오고, 어떤 절망이 다가오고, 어떤 고통의 순간이 다가와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 있으면 우리는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해결하지 못한 많은 문제를 갖고 이 자리에 오셨습니까? 가정에 문제가 있습니까? 육신의 질병이 있습니까? 자녀의 문제가 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주님, 나와 함께하여 주옵소서.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그 믿음 안에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국 대학생 선교회를 창립하시고 민족 복음화를 위해서 일생을 헌신하셨던 김준곤 목사님께서 2년 전 향년 85세로 소천 하셨습니다. 그분의『딸의 죽음, 그 존재의 제로점에서』라는 책이 있는데, 2009년 8월8일자 국민일보에 마지막 글을 남깁니다. 그분이 따님이 세 분이신데 둘째 딸 신희가 세상을 떠나는 그 일에 대해서 고백을 합니다.

    1982년 4월 26일 화창한 봄날에 사랑하는 둘째 딸 신희는 세 살, 다섯 살 난 두 딸과 남편을 남겨두고 만 2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위암 수술을 받은 날부터 167일 동안 극심한 고통을 겪었던 신희는 전주 예수병원 병실에서 끝내 숨을 거두었다. 그 날 아침에도 기도를 해주고 병실을 나왔는데 딸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얘기를 듣고 병원 응급실에 달려갔는데 이미 호흡이 멈춘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이 다들 이 병실에서 좀 나가달라고 그러고 딸의 손을 붙잡았습니다. 그 사랑하는 딸이 눈앞에서 호흡이 멈춘 것입니다.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그때 이런 고백을 합니다. “꼭 붙잡고 있는 신희의 손목이 서서히 굳어지며 차가와지고 있음을 느꼈다. 종잇장 같이 마르고 창백한 얼굴은 분명 태풍이 지나간 뒤의 호수같이 잔잔하다. 지상의 산 사람 얼굴 중에 이토록 성스럽고 가난한 여인의 얼굴이 있을까. 시간이 흐른다. 나는 언어도 행동도 존재조차도 정지된 제로점에 선 것이다(Be nothing, Do nothing, Say nothing). 십자가상의 주님을 쳐다본다. 가시관 밑으로 피가 줄줄 흐르고 있다. 주님의 제로와 나의 제로, 주님의 고통과 내 고통, 주님의 죽음과 내 죽음, 신희의 죽음이 만나고 있는 것일까.

    잠시 뒤에 생각했지만 나는 주님이 섭섭했던 것이다. 그리도 가냘픔 아이에게 그리도 가혹한 고통을 주시다니. ‘주여...’하고 부를 힘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요, 그, 그 죽음 앞에 가만히 멈춰선 순간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윽고 내게는 한 기적이 일어났다. 깊고 깊은 존재의 밑바닥, 주님이 뚫어버린 지하에서 지하수가 솟듯 세미한 음성으로 한 찬송이 터지고 있었다. 찬송의 영이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심령 속에서 주님 앞에 찬양이 울려 퍼집니다.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주님 그 십자가에 달릴 때, 오 때로 그 일로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것은 분명 내 찬송이 아니다. 내 속의 성령이 내 대신 부른 찬송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살아계셨다. 그때 그곳에도 나와 함께 내 위에 계셨다. 성령의 대송이다.”

    여러분, 지금 죽을만한 그러한 고통의 밑바닥을 헤매고 있습니까?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내가 너를 사랑한다.” 사랑의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계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절망도, 어떠한 문제도, 어떠한 고통도, 어떠한 괴로움도, 어떠한 슬픔도, 예수님을 바라보면 우리는 다 이길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린 그 피가 강물을 이루어서 우리의 상처 난 곳을 적시고, 우리의 절망적인 환경을 적시고, 우리의 문제 있는 가정을 적시고, 우리의 심령 깊은 곳을 적셔서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부활의 영으로 우리에게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 낙심하지 말고, 절대 포기하지 말고, 절대 뒤로 물러가지 말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바라보고 믿음으로 일어나십시오. 부활의 주님을 만나십시오. 주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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