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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 창세기 6:6-13/ 역청을 칠하세요 [수요]
  • 조회 수: 970, 2013.01.07 11:45:02
  • 요즘 겨울에는 너무 춥고,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사람들이 괴로워합니다. 이틀 전에 신문을 보았는데 북극에 근접해 있는 핀란드, 노르웨이... 이런 나라들도 지금 32도... 이렇게 기온이 올라가나 보더라고요. 그런 나라는 빙하에 근접해 있기 때문에 여름이 없는 나란데 그 정도로 온도가 올라가면 빙하의 위력보다 더운 공기가 더 강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게 바로 온난화 재앙이라고 하거든요. 이렇게 해서 이 지구의 기후 환경이 급격하게 바뀌어가고 있다고 야단입니다. 


    지구의 기후조건이 확 바뀌게 되는 두 단계가 있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지금부터 앞으로 우리가 겪게 될 온난화이고요... 첫 번째는 노아홍수지요. 노아의 홍수로 하나님이 만드신 완벽한 기후환경이 무너짐으로 지구에 혹독한 추위와 더위가 찾아옵니다. 그래서 극지방의 빙하, 그리고 적도 주변의 거대한 사막화가 이루어 진 것입니다. 노아 홍수를 통해서 다가온 기후변화에 비해 앞으로 온난화를 통해 다가올 또 한 번의 기후변화는 어떨 것인가... 상상을 해 보면 참 두렵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인류를 심판할 계획을 세우신 가운데 인류의 보존을 위하여 한 가정을 선택하셨습니다. 멸망의 한 복판에서 선택받은 한 가정은 노아의 가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구원하기 위해 택하신 방법은 방주였습니다.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어 가족과 동식물의 생명을 보존하게 하셨습니다. 노아는 즉시 순종하여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방주는 히브리어로 <테바하>라고 하는데, <상자>, 혹은 <궤>라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가 구약 성경에 한 번 더 사용되고 있는데, 모세를 담아서 나일강에 띄울 때 사용했던 갈대 상자를 <테바하>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노아의 방주와 모세의 갈대 상자는 같은 것입니다. 둘 다 물 위에 떠서 물에 빠지지 않도록 함으로써 목숨을 살려주는 구원의 용도로 쓰인 것입니다.


     어쨌든 누구든지 무사하려면 방주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방주를 대강 만들 수는 없습니다. 온갖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방주가 균형이 맞지 않는다든지, 재질이 좋지 않다든지 하면 구원선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노아는 최선을 다해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그 규모가 대단하였습니다. 어림잡아 보면 길이가 약 130 미터, 폭이 23 미터, 높이가 14 미터 정도입니다. 일찍이 15세기말에 컬럼부스가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을 탐험할 때 사용했던 배의 길이가 겨우 23미터 정도라고 하니, 노아의 방주가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 어마어마한 방주를 만들기 위하여 노아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반드시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재료로 크고 견고한 방주를 만들어도 이것을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되는 그 한 가지 결정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역청을 칠하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방주 만들 것을 지시하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으로 역청을 칠하라고 하셨습니다.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고 하셨습니다. 고페르 나무는 이태리 편백으로 알려진 나무로 잣 열매 모양이 나지만 사실은 잣은 아닙니다. 저도 편백나무에 달린 열매를 보고 잣나무인줄로 착각했었습니다. 편백나무는 굉장히 길고 쫙 뻗은 나무라 옛날에는 건축자재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이 나무로 배를 만든 다음에 역청을 칠하라고 말씀합니다.


     역청을 칠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간단합니다. 역청은 나무와 나무 사이의 틈을 막아주어 물이 새지 않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역청은 물에 가라앉지 않게 하는 데 필수적인 것입니다. 역청을 바르지 않은 방주는 아무리 크고 화려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반드시 역청을 발라 방주의 틈을 막아야 합니다. 틈은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틈이 없는 줄 압니다. 그러나 물에 띄우면 금방 틈새가 드러나 물이 샙니다. 반드시 역청을 발라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칠해야 할 역청은 무엇입니까? 역청을 히브리어로 <코페르>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역청이란 말 그대로 쓰여질 때도 있지만, 다른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사무엘상 12장 3절에 <코페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거기서는 <뇌물>이란 뜻으로 쓰였습니다. 사무엘이 자신은 한 번도 뇌물을 받은 일이 없다고 말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뇌물은 왜 줍니까? 뇌물이란 잘 봐 달라고 부탁할 때 줍니다. 흔히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자기가 할 바는 다 하지만 그것 가지고는 부족하니까 뇌물을 써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뇌물은 나쁜 것이지만 긍정적으로 보자면 부족한 부분을 완벽하게 채워서 일이 잘못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역청을 칠하라는 말씀은 <하나님, 제가 이렇게 있는 재산을 다 투자해서 정성껏 방주를 만들었으니, 이 방주를 통해서 저와 가족이 죽지 않고 살아나도록 도와주십시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역청은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반드시 칠해야만 하는 보혈의 피와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순종의 삶에다 예수님의 보혈의 피를 묻혀야 합니다. 


    노아가 너무나도 터무니가 없이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지만 순종하였습니다. 노아는 비를 몰랐습니다. 홍수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순종했습니다. 그 순종의 기간이 120년이나 되었습니다. 120년간 순종하여 노아는 그가 전혀 경험한 바도 없는 홍수를 준비하며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노아를 본받아 우리가 따라가야 할 순종의 생활입니다. 우리는 계시록에 나타난 마지막 심판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노아처럼 믿고 순종하며 준비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순종의 삶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내 행위, 내 노력, 내 자랑스러운 삶.... 그것만으로는 심판의 물에 견딜 수 없습니다. 자신이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볼 때도 충분해 보이는 듯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의 물에 띄워보면 곧곧에서 물이 새기 시작하여 금방 가라앉아 버릴 것입니다. 

            

    1912년 4월 14일 2,208명의 승객을 태우고 영국을 출발하여 미국을 향하던 <타이타닉>호를 기억하시지요? 그 여객선은 총 46,328톤, 길이 259.08m. 깊이 19.66m, 폭 28.19m나 되는 초호화 여객선이었습니다.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이 어마어마한 배를 건조한 것입니다. 그들은 이 배를 '절대로 침몰할 수 없는 배', '하나님도 침몰시킬 수 없는 배'라고 호언장담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배는 대서양의 뉴펀들랜드 해역에서 가라앉았습니다. 그 엄청난 배가 물속으로 들어가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두 시간 정도였습니다.  그 배는 빙산에 부딪혀 배 한 구석에 구멍이 뚫리면서 물이 새어 들어와 순식간에 가라앉은 것입니다. 무려 1,513명이 수장된 비극적 사고였습니다. 하나님도 침몰시킬 수 없다고 하면서 큰  소리치던 배, 인간의 교만을 재료로 하여, 인간적 기술이란 도구로 만든 그 여객선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역청을 바르지 않은 배였습니다. 타이타닉호는 예수님 없는 배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타이타닉 호가 침몰한지 4년 후 한 젊은이가 어느 모임에서 이렇게 간증을 했습니다. <저는 그때 타이타닉 호에 타고 있다가 바다에 빠졌습니다. 나무 파편을 붙잡고 표류하는 내 곁으로 한 신사가 표류해 왔습니다. 그 분은 <존 하퍼>라는 목사님이었습니다.  그 분은 그 다급한 와중에서 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나는 "아니오"라고 대답했지요. 그 분은 숨을 헐떡이며 매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 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파도가 밀려왔습니다. 그 분이 파도에 휩쓸렸습니다. 잠시 후 파도에 잠겼던 그분이 또다시 물위로 떠올랐습니다. 그리고는 또 물었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나는 역시 동일한 대답을 했습니다. "아니오, 믿지 않습니다." 그 분이 다시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잠시 후 목사님은 파도에 휩쓸려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극적으로 구출된 후 저는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저는 물에 빠져 죽는 사람에게 무슨 구원이 있는가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구출된 후 저는 알았습니다. 그 때 살아난 사람들도 언젠가는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 때 그 목사님이 말씀한 구원은 순간적으로 살아나는 구원이 아니었습니다. 그 분이 말씀한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었습니다. 대서양 물보다 훨씬 무서운 죄악과 형벌, 무서운 심판과 멸망의 물에서 건짐을 받는 구원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지금 여러분에게 그 목사님이 저에게 하신 말씀과 똑같은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 믿으십시오. 그리고 장차 다가올 그 무서운 멸망의 바다에서 구원을 받으십시오. 예수님의 보혈의 역청을 여러분의 인생의 방주에 칠하십시오. 칠하되 철저히 틈이 보이지 않도록 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안팎으로 칠하라>고 하셨습니다. 부할 때도 예수님으로 만족하고, 형편이 어려울 때도 예수님으로 넉넉히 이겨야 합니다. 부자일 때는 물이 새지 않아도 가난할 때 물이 새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난할 때는 물이 새지 않는데, 부자일 때 물이 새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철저히 예수님만을 의지하여 인생의 빈틈을 메우고, 이 죄악의 바다를 안전하게 항해하여 저 천국의 항구에 도착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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